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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단(禁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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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12.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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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禁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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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붕어, 송사리, 기름치, 눈검쟁이, 메기- 웅덩이가 비좁게 모여 들어 오구장단이다. 물줄기를 찾아 모여들기까지는 용하였으나, 웅덩이의 물도 이틀이 멀 것 같다. 크대야 고작 대들잎만한 놈도 몸을 자유로 세우고 활기나마 마음대로 칠 수 있을 그만한 여유에까지도 물은 절박하였다. 설 수도 없고 물은 탁하고 모두들 모로 누워서 숨이 막히는 듯이 대가리들을 내저으며 꼬리를 친다. 미운 게 메기다. 그러지 않아도 탁한 물이었다. 남의 생각은 조금도 않고 제멋대로 꼬리를 휘저으며 그 탁한 죽탕물을 여지없이 흐리며 돌아간다. 볼수록 괘씸하다. 잡아 던졌으면 시원할 것 같다. 손을 넣었다. 아가미 짬을 단단히 붙잡기는 하였으나 꼬리의 요동이 무던하다. 굽실 하고 내두르는 바람에 감탕이 얼굴에 푹 뒤집어씌운다. 훔칠 하고 놀래어 놓았다. 놓고 보니 사람의 물결이다. 자전거가 지나간다. 자동차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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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開原)의 들판이 아니요 서울이었다. 아침에 와 앉았던 그대로 남대문로 조흥은행 지점의 벽돌담을 지고 앉아 있었고, 무릎 앞에는 가져가 놓았던 그대로 그저 담배와 빵이 상자 속에 여전히 담기어 있다. 그제서야 연이는 조금 전에 휘즈믓이 졸리어 눈이 감겨 오던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꿈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 보았다. 감탕 한 점 묻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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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꿈이었구나!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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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물 마른 논귀에서 체로 송사리를 건지던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게 재미나던 고기를 채 다 못 잡고 우리나라가 독립되었다는 소리에 인젠 우리나라로 나가 살자고 부랴부랴 짐을 꾸리는 아버지를 조력하던 생각, 나오다가 되놈한테 짐을 다 빼앗기고 알몸이 되어서도 제 나라로 살러 나가는데 그까짓 옷가지쯤 대수냐고 어머니의 걱정에도 관심치 않던 생각, 제 나라로 나가면 옷도 있고, 밥도 있고 다 잘살게 되리라고 기뻐하던 아버지 생각, 별 생각이 다 떠오르다가 별안간 시장기에 가슴이 쓰림을 느낀다. 생각을 더듬어 볼 여지도 순간 잊는다. 눈은 저도 모르게 상자 속으로 떨어져 빵을 노린다. 다섯 개에서 두 개 팔고 남은 세 개가 어지간히 구미를 돋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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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만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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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이 나가지 않는다. 금단의 빵이다. 한 개도 축내서는 안 된다. 생활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다. 빵 다섯 개, 담배 열 갑에 가족의 생명이 달렸다. 날마다 팔아서 사 보는 금이 빤하다. 그게 다 팔려야 내일 아침 먹을 양식과 내일 팔 쌀값, 담뱃값이 마련된다. 반쪽의 여유도 허치 않는다. 그런데도 날마다 요맘때면 눈앞에 마주 바라보이는 그 빵조각이 어떻게도 가슴 쓰린 식욕의 대상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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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사가 잘만 되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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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던 생각이 또 떠오른다. 잘만 되면 한 개쯤은 축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제일 커 보이는 놈으로 하나 골라 든다. 손이 떨린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사도 날마다 충분하지 못함이 뒤미처 떠오르는 것이다. 오늘 따라 잘 되길 바랄 수가 없다. 언젠가 한 번은 그적에도 참다참다 못해 손을 대었더니 그 여울에 어머니가 혼자 몰래 아침을 굶는 눈치를 엿보았다. 생각이 더듬어질수록 손에 힘이 빠져 나간다. 빵은 제자리에 도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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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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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었다. 빵에다 손가락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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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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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잔등 같은 노동자의 커다란 손이 두 개의 빵을 움켜쥐고 십이 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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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오늘은 아마 다 팔리려나 보다. 아직 이른 저녁때다. 해가 멀었다. 한 개 처리는 문제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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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개만 남은 빵, 안타까운 식욕의 대상이다. 마저 팔릴까보아 도리어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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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먹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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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쩍 동하는 식욕이었다. 또 이 빵에다 눈을 건 손님은 없나 주위를 살피며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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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치 아이 하나가 마주 걸어온다. 빵에다 눈을 건 모양이다. 빵 쥔 손을 연이는 얼른 치마폭으로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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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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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팔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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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결에 대답은 하여 보냈으나, 정말 먹나 하니 금시 피가 마르는 듯이 몸이 오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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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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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못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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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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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팔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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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 망설이다 그만 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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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아이들이 물건 담은 상자들을 들고 뛴다. 교통정리인 모양이다. 부리나케 연이도 상자를 들어 안는다. 휩쓸려 오는 먼지와 같이 잦은 발소리, 골목을 찾아 도는 난탕, 어느 아이에게 부딪치었는지 연이의 상자는 가슴 안에서 거꾸러진다. 순경이 뒤에 달린 것은 아닌가 돌아다본 게 실책이었다. 떨어진 빵덩어리는 딱따구리처럼 시멘트 포도 위를 굴러 다닌다. 담배는 주울 생각도 못하고 빵만 쫓아 달리었으나, 다 쫓아간 발부리 앞에서 공교롭게도 빵은 하수도 구멍으로 빠져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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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아야 새까만 구멍이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 없이 구린내만이 코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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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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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민족일보》(194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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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한국문학전집』제12권(민중도서관, 1959)
【원문】금단(禁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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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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