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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4
현진건
1
나들이
 
2
루시앙 데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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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서 금일금일 어머니가 될 몸으로─그것은 고향 무도장(舞蹈場)에서 얻은 치명적 결과이었다.─프로란치누는 다른 많은 여자와 같이 타락의 산 증거를 감추려고 파리에 올라와서 어느 산과병원(産科病院)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여기를 나올 때는 어떤 단단한 결심을 품고 있었다.
 
4
어린애를 뒤업고 제 동네에 돌아가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어데 유모 노릇이나 하였으면 그럭저럭 지내갈 수입이야 생기련마는 그런 자리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제 아이를 기르랴 기를 수 없어 잠깐 육아원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조략(粗略)한 위임장에 서명을 마치자 빈손으로 길거리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다. 눈물을 켜켜이 눌어 붙은 얼굴로, 그는 자기가 곱삶고 또 곱삶은 물음에 대한 서기의 최후의 대답을 또 한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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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애를 찾을 만한 형편이 될 때는 꼭 도루 내 주십시오.”
 
6
“그야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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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에 이 애의 안부를 물어 볼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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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에 한 번씩 ‘아에니유 빅토리아’에 가게. 가서 이것을 보이면 묻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지 물을 수 있으니.”
 
9
이런 말을 하고 서기는 혼승 자동차(混乘自動車) 차표 같은 종잇조각을 그의 손 위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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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통보부(通報部)에 최초의 방문을 그는 언제든지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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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앞에 여자 셋이 서 있었다. 좁은 복도가 막다른 곳에 살창 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 서기 하나가 있어 표를 받아 가지고 장부의 페이지를 뒤적거리더니‘살아 있다’는 오직 말 한마디로 여편네들을 차례차례로 돌려보내었다. 그러므로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12
프로란치누 앞에 벌써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젊은 계집애로 모자도 쓰지 않았으며 옷이라야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다 된 것이었다. 계집애는 조심 조심 표를 보이고 장부 날리는 서기의 손을 염려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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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츰내 서기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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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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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애의 눈은 호동그래지고 말았다. 입을 딱 벌린 채 망연자연하였다. 그래도 마치 모르겠다는 듯이 한동안 머뭇머뭇하고 있다.─무슨 착오나 아닌가고 의심하였든가, 자세한 일이 묻고 싶었든가. 애의 죽은 병명은? 애의 묻힌 장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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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이 프로란치누의 차례이었다. 서기는 자동기계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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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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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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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란치누는 차근차근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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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나 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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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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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덕분에 듣게 해 주십시오, 어데로 편지를 하면 안부를 알 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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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는 또 뒤를 대여 들어서는 여자들을 보고 제 앞의 여자를 어서 돌려보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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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잔소리는 묻지 못하는 법이다. 네 자식이 살았단 밖에. 또 말이 무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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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꼭 석 달 만에 한 번씩 그 살창 가까이 들어서자 언제든지 심장이 극렬하게 고동하였다. 증서를 보이었다. 그리고 아모 감각 없는 서기의 얼굴을 더듬어서 안타깝고 염려스럽고 기가 막히는 말씨를 찾아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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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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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제 그 위에 아모 것도 더 물으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에라 말할 수 없는 감사에 채운 가슴으로 그 곳을 나왔다. 그것이 그의 주인으로 부터 얻는 유일의 외출의 고뇌이고 또 환희이었다. 찾아갈 일가도 없고 친구도 없는 데다가 돈은 한푼이라도 쓰려 들지 않는 터이니 도모지 바깥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아모리 하여도 없어서는 못 견딜 것밖에 모든 출비(出費)를 알뜰히 살뜰히 피하였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어머니 된 의무가 다하게 되도록 조그마한 저축을 하였다. 허나 이태를 지내도 겨우 육십 프랑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몸은 튼튼치 않았다. 그는 두 번이나 병원에 아니 들어갈 수 없었고, 또 퇴원한 때는 하릴없는 뱅충이가 되어 아모 일도 해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직업 소개소에서도 노예나 진배없이 함부로 부려먹는 흉악한 곳밖에 주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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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츰내 이 고로(苦勞)에도 끝장 날 날이 왔다. 숨 돌릴 장소도 있고 쉴 시간도 있는 드난살이 자리를 발견하였다. 거기서 그는 지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의 주인은 온화하고 동정심 많은 식구 단촐한 노부부이었는데 고된 일은 아주 적고 급료는 꽤 푸진 곳이었다. 그야말로 휴식의 항구이었다. 그래 프로란치누는 드디어 제 딸을 도로 찾아 올 만한 금액을 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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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방문할 날이 왔다. 그가 늘 말하는 ‘그 애 보러’갈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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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마님은 선선히 나들이의 요구를 허락하였다. 그만큼 프로란치누는 즐거이 저녁밥 짓기 되어서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그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었다. 다섯 시에는 벌써 부엌의 솥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탁에서 부인이 웬 셈인지 알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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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란치누가 오늘은 어째 허둥허둥하는 모양입니다그려. 그렇지 않습니까? 인제도 부엌에 들어가 보니까 에이프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겠지요. 아마도 나들이를 가서 무슨 언짢은 일을 당했는가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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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 제 좋아하는 토공병(土工兵)이 정을 옮긴 게지. 그 애보담 한결 아름다운 계집한테.”
 
33
노신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 노인의 해학은 그 근원을 제이(第二) 암페어 시대에 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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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으면, 제 좋아하는 소방부(消防夫)가 약속대로 오지 않았던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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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이렇게 정정하였다. 부인의 말이 훨씬 현대식이었다.
 
36
부부는 가만히 드난살이의 거동을 살피었다. 그러다가 그 얼굴의 표정이 전보담 아주 다른 것을 깨단하자 실살로 놀래었다. 요리는 매우 나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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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어처구니없이 짜군. ─필연 국솥 위에서 운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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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는 농담같이 이런 말을 하였다.
 
39
부인도 찬성하였다. 그리고 희롱 삼아 하는 말이,
 
40
“그 말씀을 하니 말이지, 오늘 저녁 요리는 모두 그 모양이었어요. 이게나 저게나 모두 눈물 맛이 있었어요.”
 
 
41
(『동명』,19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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