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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센스 인간(人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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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9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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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센스 人間[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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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열 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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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 즉 ××이라고 할 만큼 1만 4천 3백 12만리 전토에서 열정적 ××기분이 팽창하여 있던 시절입니다. 그도 역시 그 조류에 따라가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라고는 하였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누구인지 모를 것이요, 본명을 쓰자니 좀 거리끼는 일이 있고, 그러면 그의 특징 하나를 잡아서 임시로 이름을 지읍시다. 그의 특징이 많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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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판에 넘어서 황소눈같이 두리두리뻥한 그의 눈도 그렇고 비가 오면 콧등에다 우산을 받아야 하게 구멍이 하늘로 향한 들창코도 그렇고 요즈음 크다고 들레는 김부귀(金富貴)쯤은 통으로 삼킬 만큼 입이 큰 것도 그러하고 유도를 삼단이나 하고 공을 잘 차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보다 가장 눈에 띄는 그의 특징은 저무나 새나 나막신을 신고 양산을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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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아니하여도 큼직한 키에 굽 높은 나막신을 끌고 감장 바탕이 희끄름하게 바랜 양산을 들고 덜그럭덜그럭 이동을 하는 양은 기물(寄物)이라면 확실히 만점(滿點)짜리의 기물이었읍니다. 우리는 편의상 앞으로 그이 이름을 전(全, 공교하게도 그의 성이 전가입니다)나막신이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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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막신은 저녁밥을 느직이 먹고 여전히 양산을 들고 나막신을 신고 집을 나섰읍니다. 나서기는 하였으나 별로이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고 흐느적 덜그럭거리며 원(苑)골 꼭대기에서 동관으로 내려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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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파주교다리까지 왔을 때에 공교하게도 오줌이 마려웠읍니다. 휘휘 둘러보아야 마침 으슥한 곳도 없고 해서 그대로 돌아서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아마 남의 집 대문 옆이었던 모양입니다. 한참 동안 속시원하게 누는데 그 집 대문 안에서 사오 십쯤 되는 부인 하나가 쏙 나오다가 그만 기겁을 하며 에구머니 소리를 치고 도로 들어갔읍니다. 전나막신은 피쓱 한번 웃고 그대로 오줌을 누면서 두덜거리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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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래도 좀 보고 싶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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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대문 안으로부터 주인인 듯싶은 사람이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 나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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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놈이 남의 집 대문 앞에다 오줌을 깔긴단 말이냐? 응? 어느 놈이냐,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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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전나막신은 이미 괴춤을 거두고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갈 때 이었읍니다 그는 등 뒤에서 . 쏟아지는 욕설을 다 듣다가 한마디“망헐 자식 남이 오줌을 누는데다가 집을 지으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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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막신은 관수교(觀水橋) 옆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선 곳으로 갔읍니다. 무슨 구경거리가 있었는지 한 오십 명이나 모여 있었읍니다. 전나막신은 그 틈으로 들어가서 눈치를 보고 있다가(싸움 구경 끝에 모여선 군중은 무어나 다른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것이니까) 몇 사람을 보고 “순사들도 없고 하니 우리 ×× 한번 아니 ×× 려오” 하였읍니다. 몇 사람이 동의를 하고 따라서 전부의 입에서 좋다 소리가 나왔읍니다. 그리하여 전나막신이 중심이 되어 한바탕……그랬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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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관 파출소에 모여 있던 순사들이 왁하고 절그럭절그럭 쫓아왔읍니다. 순사가 오는 것을 보고 군중들은 이리저리 좍 퍼져 달아났으나 전나막신은 다리 위에 가 나막신을 신고 우산을 든 채 두리번두리번하고 섰읍니다. 쫓아온 순사들은 전나막신을 힐끔 치어다볼 뿐 말 한마디도 붙이지 아니하고 달아난 사람들만 쫓아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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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고 나서 전나막신은 싱긋 웃고는 “흥 시러베아들놈들!” 하고는 다시 덜그럭덜그럭 이동을 시작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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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위대한 나막신발을 옮기어 개천을 끼고 서편으로 향하여 이동을 하는데, 마침 바로 길 옆으로 있는 집 들창에서 방안이 들여다보이는 곳이 있었읍니다. 그래도 갈 리가 있겠읍니까. 그는 나막신을 정지시키고 그 안을 굽어다보았읍니다. 들여다보니까 이러한 광경이 전개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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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쯤 되어보이는 상인(商人)형의 남자와 스물댓 살 되어보이는 총채형의 여자가 나란히 드러누워 무슨 아야긴지 하고 있는 판인데 남자가 여자의 볼따구를 살짝 꼬집으면서 “아이고 요것아” 하였읍니다. 여자는 “요 깍정이! 남 말을 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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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다시 여자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네가 더하지 내가 더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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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여자는 남자의 너벅다리를 꼭 꼬집으면서 “네가 더하지 내가 더하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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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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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보고 섰던 전나막신은 히히 한번 웃었읍니다. 이 웃음소리에 놀란 두 남녀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들창을 바라보았읍니다. 들창 밖에는 불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전나막신의 싱긋이 웃는 얼굴이 물론 남아 있었읍니다. 성이 꼭뒤까지 치민 남자는 “웬 놈이냐!”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읍니다. 전나막신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만 섰고 남자는 연해 소리를 지르며 “이놈 냉큼 못가?! 하고 호령호령하였읍니다. 그래도 전나막신의 나막신은 이동이 아니 되었읍니다. 남자는 참다 못하여 문을 박차고 대문으로 해서 길거리로 뛰어나와 전나막신의 멱살을 당시랗게 움켜쥐고 본새좋게 따귀를 한대 올려붙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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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를 맞고야 비로소 나막신은 이동이 되고 그의 입에서는 “제길! 그것 좀 본다고 그래! 누가 그걸 칼로 도려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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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저렁 우미관(優美館)에서 연속사진(連續寫眞)『명금(名金)』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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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막신은 표 받는 친구의 대대적 환영리에 아래층 맨 뒷자리에 들어서는 특전을 가지었읍니다. 불이 꺼지며 스크린에서 로로가 뛰고 치고 키티그레이가 말을 타고 달리고 하는데 전나막신의 앞에 섰는 어느 친구가 모자를 쓴 채 서 있기 때문에 적지 아니한 장애물이 되었읍니다. 전나막신은 앞에 있는 모자 친구의 어깨를 탁 치며 “이 친구 모자좀 벗읍시다” 하였읍니다. 모자 친구는 남이 지금 한창 재미나게 구경을 하는데 웬놈이, 더구나 어깨를 쳐가며 이 지랄인가 하고 골김에 모자를 벗지 아니하고 버티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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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막신은 속으로 ‘흥 요놈 보아라’ 하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모자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이 친구 모자 좀 벗어요” 하였읍니다. 그러나 모자 친구는 못들은 체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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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막신은 모자 친구의 귀에다 바싹 입을 대고 남이 보기에는 아주 정다운 친구끼리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소곤소곤 “이 자식아 왜 모자를 좀 벗으라니까 아니 벗어” 하였읍니다. 이 말에 모자 친구는 “이게 어느 자식이 이래”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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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날에 낯익은 사람을 물색하며 종로 네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십전만 줍시오 나리님, 옛날 서상호(徐相昊)를 이렇게 괄세하십니까”하며 아편에 인이 물려 거의 죽게 된 그 서상호 ㅡ 그래도 옛날의 그때 당시면 『명금』과 한가지로 영화계의 거물인 ㅡ 그 서상호의 해설에 열중되었던 청중들은 방해되는 소리를 지르는 자에 향하여 “시끄럽다” “끌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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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아” “집어치워라” 하는 욕이 빗발치듯 하였다. 모자 친구는 다시는 꿀꺽 소리도 못하고 그러나 모자는 종시 벗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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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막신은 시시 모자 친구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소곤 “이 자식아 왜 아니 벗고 괜히 소리만 질러? 소리만 지르다가 꼴 좋다! 이 자식아 그래도 아니 벗을 테야? 뭔 네 어미 뱃속에서부터 쓰고 나온 모자냐” 하고 자꾸만 골을 올려주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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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친구는 어두운데 아무리 소리를 쳐야 자기만 욕을 먹을 줄을 알고 꼭 참았다가 불이 켜진 뒤에야 뒤를 돌아보며(누구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어느 놈이 남의 귀에다 대고 욕을 했느냐”고 소리를 질렀읍니다. 그러나 전나막신은 모른 체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서서 있기만 하였읍니다. 관중들이 보기에는 모자 친구가 아무리 하여도 저 혼자만 떠드는 미친놈 같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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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또 불이 꺼지고 사진이 시작되었읍니다. 전나막신은 또 모자친구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욕을 하였읍니다. 모자 친구는 참아가다가 못견디겠으면 한마디씩 소리를 질렀으나 그 효과로는 관중으로부터 욕이 오는 것밖에는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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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이 커졌을 때에 모자 친구는 이를 갈며 적을 찾느라고 야료를 놓았으나 전나막신은 여전히 시치미를 뚝 떼고 있으므로 그는 이제야말로 혼자서만 떠드는 정말 미친놈이 되었읍니다. 군중은 몰아내라고 소리를 지르고 순사는 와서 모자 친구를 등을 밀어내었읍니다. 이 꼴을 본 전나막신은 완이이소(莞爾而笑)할 따름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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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乾坤[별건곤] 1930년 9월호>
【원문】넌센스 인간(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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