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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 스켓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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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8
채만식
1
農村[농촌] 스케치 (2幕[막] 4景[경])
 
 
2
〔인물〕
3
강추강(康秋江)……청년지주
4
강의 친구
5
  전(全)……크리스찬
6
  송(宋)……보통학교 교원
7
  주(朱)……면서기
8
  서(徐)……금융조합 서기
9
  김(金)……사립학교 교원(등장치 아니함)
10
최(崔)생원……강의 소작인
11
성(成)서방……동상(同上)
12
석순(石順)……강의 하인
13
기생
14
  은옥(銀玉)
15
  옥란(玉蘭)
16
백작……광대
17
판돌이……강의 전(前) 하인
18
판돌네……판돌이의 안해
19
장(張)……주재소 순사
20
농민연합회 회원 다수
21
농민연합회 총회의장
22
농민연합회 서기
23
강생원(康生員)
24
한(韓熙烈[한희열])
25
출장 경부(出場警部)
26
출장 형사
 
27
〔시대〕
28
현대 초하 이앙 전(移秧前)
 
29
〔장소〕
30
전라도 어느 농촌
 
 

 
31
제1막
 
32
제1경
 
33
측면으로 보이는 강의 사랑채의 전후퇴삼간 장방형의 대청. 무대 후면은 샛문이 쌍으로 열린 건넌방. 좌수(左手)로는 백회벽. 벽 사이에는 두 개의 쌍바라지 판자문이 열리어 내실과 경계가 된 개와담의 일부분씩이 내어다보인다. 그중 전면 판자문 안으로는 새까맣게 칠을 한 평상이 놓여 있다. 우수(右手)는 여덟 짝의 들문이 네 짝으로 접혀서 퇴서까래에 매어달린 등자쇠에 들받쳐 전부 훤하게 열렸고, 그 밖으로는 얕은 문턱을 경계로 툇마루를 지나 초록이 우거지려는 정원의 일부와 후면(後面) 편으로는 대문간의 딴채의 일부가 내어다보인다. 대청 바닥에는 적당한 곳에 담배서랍, 장죽, 재털이, 돗자리로 만든 방석 같은 것이 놓여 있다.
34
오후 세시쯤. 막이 열리며 주인 강과 보통학교 교원 송은 평상 앞에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크리스찬 전은 평상에 누워 신문을 읽고 있고 면서기 주는 우수 전면의 문턱을 베고 누워 있다.
 
 
35
    (신문을 한참 보고 있다가 독백) 그래 이 중국놈들은 밤낮 저이끼리 싸우기만 허다가 말 텐가?
 
36
    (벌떡 일어나 앉으며) 흥 하나님 자제라 걱정이 널리 중국까지 미치시는 모양이로구나? 그렇지만 이 넋이 나간 저석아, 방금 비가 아니와서 모를 못 심을 지경인 줄을 알구 그러니? 모르구 그러니? 너부터도 모를 못 심어서 쩔쩔매고 있지?
 
37
    (신문을 놓고 일어나 앉으며) 그러니 어쩌란 말이야 이 저석아.
 
38
    그러니까 남의 걱정은 두었다가 풍년이나 들거든 헐 요량허고 우리 걱정을 좀 허란 말이야.
 
39
    그래서? 뭣 내가 걱정을 허면 아니 오실 비가 갑자기 오신다더냐?
 
40
    너는 전지전능인지 막걸린지 헌 하나님의 자제라니까 가서 기도라도 좀 허렴.
 
41
    허허허허. 인젠 아쉬우냐?
 
42
    아쉰 것이 아니라 이 저석아. 그까짓 놈의 하나님을 두었다가 뭣 네 아비 제사에 잡어나 쓸련? 그런데나 부려먹어야지.
 
43
    이놈, 죄 받는다.
 
44
    죄는 외상으로 허고 위선 비나 좀 왔으면 허겠다.
 
45
    (바둑을 두느라고 골몰하다가) 여보 젠상(全樣).
 
46
    네.
 
47
    (주의는 역시 바둑판에 두고) 오늘 예배당에 가섰읍데까?
 
48
    (間) 오늘이 주일인데 으례히……
 
49
    (잠자코 바둑을 두다가) 하나님 오섰읍데까?
 
50
일동   (다 같이 웃고 강도 나중에 싱긋 웃는다)
 
51
    (재쳐서) 하나님 아니 오섰어요?
 
52
    (웃으며) 왜? 꼭 알고 싶으시오? (間) 하나님은 무소부재시니까 오시고 아니 오시고가 없읍니다.
 
53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러면 똥뒷간에도 계시겠군요?
 
54
일동   대소(大笑).
 
55
    (입맛을 다시며) 엥 망신이로군.
 
56
    그렇지. 하나님이 똥뒷간에서 구린내를 맡고 있자면 망신은 망신이지.
 
57
    그래도 인제 봐라. 말세가 당해서 다 죽게 되면 하나님 앞에 꿇어앉어서 살려줍시사고 애걸할 때가 있을 테니.
 
58
    글쎄 이 떫은 놈아,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허는 재조가 있으면 웨 지금 비가 오게 못 허느냔 말이야?
 
59
    너 같은 놈이 미워서 비를 아니 주신다.
 
60
    미우면 예수를 아니 믿는 사람이나 미웁지 너 같은 하나님 자제도 미웁다더냐? 왜 네 논만에라도 비가 오지 않느냔 말이야?
 
61
강・송   (계가(計家)를 하고 물러앉는다)
 
62
    큰일났어. 이대로 비가 아니 오다가는……
 
63
    큰일나구말구. (間) 금년까지 흉년이 든다면 있는 놈 없는 놈 헐 것 없이 다 죽는다 다 죽어.
 
64
    (담배를 붙여 물며) 만날 가물어도 내게야 걱정없다.
 
65
일동   (미웁게 바라본다)
 
66
    왜?
 
67
    내가 농사 한 마지기를 짓소? 뭣.
 
68
    월급만 가지고 살어가니까 말이지?
 
69
    껄렝이가 껄렁껄렁헌 소리만 허느라구……
 
70
    그게 왜 껄렁헌 소리요?
 
71
    아니 여보, 그래 아주 흉년이 들어서 쌀이 한 알갱이도 아니 걷혀도?
 
72
    외국쌀은 없나?
 
73
    저 따위 때문에 올 비도 아니 와!
 
74
    뭘 송상(宋樣)은 쌀이 없으면 돈을 삶어먹는 재조가 있다니까―
 
75
    여보 추강(秋江)도 말을 말어요.
 
76
    무얼?
 
77
    실컷 논을 준다는 게 그래 심으지도 못헐 거야?
 
78
    허허 그거야 어데 내 잘못이요?
 
79
    말두 말게. (間) 괜히 나도 논을 바꾸어 준다고 허더니 지금 심으지도 못허고 요 지경이라네.
 
80
    당신들이야 일년 농사를 안 지은 셈만 치면 그만이요?
 
81
주・전   (동시에) 왜?
 
82
    손해날 거야 없잖소? 고지(註) 준 것은 금년에 농사를 아주 못 짓는다면 명년에 다시 일을 시킬 수가 있고 도조(소작료)는 물지 않을 것이고 (間) 그러면 결국 죽는 놈은 나 하나뿐이 아니요?
 
83
    그런 모양이지.
 
84
    노동자도 좀 곤란허겠지.
 
85
최생원   (우수 대문 안으로 들어와 토방에 올라선다)
 
86
    (반쯤 일어서는 체하다가 도로 앉으며) 최생원 웬일이시요.
 
87
    (입을 비죽비죽하며 방금 울듯이) 내가 내가 자네를 보고 좀 만나보고(마루로 올라앉는다) 후유, 여보게 내 말을 좀 들어보게. 세상에 이런 원통허고 서러운 일이 또 있단 말인가. (눈물이 흘러내린다)
 
88
    (이맛살을 찌푸리며) 아니 왜 그러시요?
 
89
    왜라니 이 사람아, 내가 짓는 자네 논을 자네 사음(舍音)이 윤가가 떼었다네. (間) 그 논이 그것이(운다) 자네 선친께서 내 생전은 지어먹으라고 주신 것인데 작년에 그렇게 흉년이 들어서 거름값도 못 갚고 도조도 못 내었다고 이 파종기에 와서 논을 떼어바리니 세상에 이런 원통허고 억울헌 일도 있는가?
 
90
    (이맛살만 찌푸린다)
 
91
    내가 그 논을 발써 열네해나 두고 자식들을 데리고 급헌 때는 어린 손자새끼까지 몰고 나와서 그것을 지어가지고 이 늙은 놈이 굶어죽기를 면해왔더니 (더욱 운다) 인제는 인제는 꼼짝 못허고 굶어죽었네.
 
92
    허허 그것 참 난처헙니다.
 
93
    이 늙은 놈을 좀 보게 (間) 작년에도 내가 잘못인가 웬? 이른봄부터 우리 삼부자가 논바닥에 가 살다시피허고 암모니안지 허는 것을 자네게서 갖다놓고 공력을 들이다가 겨우 싸움을 해가면서 물을 세 케 네 케 품어올려서 겨우 심어놓은 것이 하나님이 비를 주섰어야 말이지! 그래서 벼 한 꺼럭 못 얻어먹고 도조는커녕 거름값도 빼지를 못했네그려. 그것이 내 죄겠나? (間) 그래서 작년에는 못 먹었을망정 금년에는 잘 지어서 작년 것까지 갚으려니 허고 이른봄부터 우리 삼부자가 죽을 공력을 다 들이고 못자리까지 다해 놓고 지금 하날서 비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데 논을 뚝 잡어떼니 후유, 이 늙은 놈은 무얼 먹고 산단 말인가?! (운다) 여보게 자네가 자네가(애원하듯) 이 늙은 놈을 불쌍허게 여기거든 금년 일년만 더 지어먹게 해주게 응 여보게.
 
94
    그것 참 안되얐읍니다마는 나도 윤씨한테 일을 전부 맡겨놓고 나서 이러니 저러니 헐 수야 있읍니까?
 
95
    (원망스러이 그러나 애원하듯이) 여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자네 논을 자네 마음대로 허지 못허면 누가 헌단 말인가? 여보게 제발 돌아가신 자네 선친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그저 금년 일년만 더 지어먹게 해주게.
 
96
    (성가신 듯이) 글쎄 아무리 여러 말을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어요. (間) 그러지 말고 어서 댁으로 나가시요.
 
97
    나는 못 나가겠네 못 나가. (間) 무슨 낯으로 자식들을 본단 말인가? 인제는 꼼짝 못허고 굶어죽게 되였는데 (間) 차라리 나는 이대로 자네 선고 어룬의 산소에 나가서 이 설운 사정이나 설파허고 죽어 바리겠네. (間) 여보게 한번만 더 생각해 보게.
 
98
    (버럭) 글쎄 못된대도 그러시는구려. (間)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다시 와서 말씀을 해도 다시 당신 논을 줄 수는 없어요.
 
99
    (멍하니 앉아 강을 바라보다가 실진(失眞)한 사람같이 한번 허허 웃고 나서 방백)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응 허허. (間, 운다) 이 일을 어쩌면 존가. (일어서서 강더러 혼연히) 나는 가네. (토방으로 내려와서 비틀거리며 소리를 내어 아이고 아이고 울면서 우수로 퇴장)
 
100
    엣 성이 가시어!
 
101
    미치지 안했소?
 
102
    생각허면 미치기도 허겠지.
 
103
성서방   (우수로 등장, 토방에 서서 강에게 허리를 굽히며) 안녕허십니꺼.
 
104
    응 어찌?
 
105
    (머뭇머뭇하다가) 농량(農糧)이 하나도 없어서 벼 한섬만 더 주시면 가을에 가서……
 
106
    (쌀쌀하게) 없어. (間) 자네가 내 논은 짓는다고 허지만 모를 심으게 될지 못 심으게 될지 모르는데 무엇을 믿고 벼를 준단 말인가?
 
107
    (고개를 숙이고 무언(無言))
 
108
    그러고저러고 간에 내가 지금 벼를 내어놓을 게 없어. (間) 그리 알고 어서 나가게.
 
109
    (잠깐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며 우수로 퇴장)
 
110
    아이구, 어서 이놈의 땅을 모다 팔어가지고 서울로 가버리든지 해야지 원.
 
111
일동   (묵묵)
 
112
    (좌수로 등장. 토방에 선 채) 좋은 구경이 있었는데 와서들 보지 않고 무얼 허우?
 
113
일동   무슨 구경?
 
114
    (올라가서 전과 마주 평상에 걸터앉으며) 날이 몹시 더운걸.
 
115
    무슨 구경이 있었어요?
 
116
    (비꼬아서) 농민연합회 총회석상에서 일대 활극이 일어났어요.
 
117
    거참 내가 구경을 좀 헐걸 그랬군.
 
118
    어때요?
 
119
    이야기 좀 해라.
 
120
    어떤가? 허고 가밨지. (이때부터 무대가 아렴풋이 어두워 가다가 서의 말이 끝이 날 때에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나도 늦게 가서 처음 시작헐 때는 보지도 못했고. (무대 회전)
 
 

 
121
제2경
 
122
농민연합회 총회회장. 후면으로 헙수룩한 칠판이 걸려 있고 그 앞으로는 송판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교단과 교탁. 교단에는 의장, 교탁 위에는 몇가지의 문부(文簿)와 서류. 무대의 좌우 양편은 전부 열어젖힌 유리창이나 성한 놈보다도 깨어진 놈이 더 많다. 좌수에는 우수로 향하여 서기 한(韓), 임석경부(臨席警部) 사복, 정복, 약간의 회원이 앉아 있고 중앙과 전면으로는 약 7,80명의 회원이 아동용 책상에 거북스럽게 박여 앉았다. 회원은 대개가 의관을 하지 아니하였고 약간은 상투에 갓을 썼거나 혹은 깎은 머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모자는 벗어 손에 들고 있다. 우수 방청석으로는 구경꾼들과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회원들이 빡빡히 늘어섰다. 강생원은 회장에 홀로 우쭐하게 교단에 올라서서 손에 긴 담뱃대를 들고 왔다갔다 한다. 무대는 처음에 어두웠다가 점점 밝아진다.
 
 
123
의장   (무대가 완전히 밝아진 뒤에) 그러면 임원개선은 이것으로 마치었읍니다. (한두 사람의 박수 소리) 다음은 표준임금 제정문제를 토의허겠읍니다. (서류를 뒤적거려 종이쪽을 찾아 들고) 거기 대해서 한희열 군의 초안이 있으니까 참고삼어 한번 읽어드리겠읍니다. (읽는다)
124
1. 고지는 최저를 4원으로 할 것. 단 모 심으기로부터 등짐까지 여닯번(주) 또 작업일에 술과 담배와 겸심은 주인측에서 부담할 것.
125
2. 날삯(日傭임금)은 최저를 팔십 전으로 정하되 겸심과 담배와 술은 주인측에서 부담하기로 할 것.
126
3. 부인노동자는 전기 임금의 9할 소년노동자는 7할로 할 것.
127
4. 노동시간은 매일 9시간으로 하되 연장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한 시간에 15 전의 비례로 할증할 것.
128
5. 새경은 최저 150원으로 할 것……입니다.
129
(일동을 둘러보고 나서) 이것을 표준으로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다같이 토의 협정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130
회원의 대부분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말이 없다)
 
131
강생원   (빈정거려 방백) 거 안될걸. (間) 도조가 겁나게 비싼데다가 인제 고지까지 그렇게 올려노면 남의 논을 얻어서 농사지어 먹을 놈이라구는 없지.
 
132
회원 일동  (무언)
 
133
    (일어서서) 의장.
 
134
    지금 열두시가 지났는데 촌에서 멀리 들어온 회원들은 아마 몹시 시장헌가 봅니다. 기왕 일찌기 마치지 못헐 것이니까 준비해 두었다는 음식을 지금들 자시도록 허는 것이 좋을 듯헙니다. 긴급동의요. (앉는다)
 
135
회원중   그 말이 참으로 좋소.
 
136
회원중   배가 고파서 못 견데겠소.
 
137
회원중   먹고 헙시다.
 
138
회원중   좋은 말이요.
 
139
의장   (뚜렛뚜렛하다가) 그러면 달리 준비헌 것은 없고 겸심요기로 술이나 한잔씩 잡수시기로 하겠읍니다.
 
140
회원일동  (웅얼웅얼하는 중에서) 좋소.
141
방청석과 회원석에서는 일어서는 사람, 기지개를 쓰는 사람, 밖으로 나가는 사람, 서로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는 사람, 마루청에 담뱃대를 털어 담배를 붙여 무는 사람……해서 동요가 생긴다. 조금 뒤에 방청석에서 “빗겨 빗겨”소리가 들리며 커다란 자배기를 든 사람이 앞을 서고 뒤이어 넘실넘실 넘치는 막걸리를 담은 생철통을 든 사람이 들어온다. 그 뒤에는 개다리소반에 마늘과 고추장과 나무저깔과 주발을 놓아가지고 따라들어온다. 자배기를 교탁 앞에 놓고 술을 붓는다. 뒤이어 또 한 동이가 들어온다. 회원 중 읍내 간부 몇 사람이 나와서 주발로 술을 떠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골고루 권한다. 받아먹은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입을 싹싹 씻으며 마늘에 고추장을 찍어먹는다. 연해서 술동이가 들어온다. 술은 두세 사발씩 돌아가고 그중에는 한 주발씩 떠 들고 와서 의장에게 혹은 서기나 한에게 또는 임석경관에게 권하는 사람도 있다. 서기와 경관 이외에는 다 받아먹는다. 웬만하여 먹기가 끝이 나고 각기 자리로 돌아간다. 웅얼거리는 소리도 전보다 더하고 활기가 떠돈다.
 
142
의장   (일동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지금부터 다시 계속해서 의사를 진행허겠읍니다. (동요가 진정되기까지 잠시 기다려) 아까 여러분에게 읽어드린 한군의 표준논금 제정문제인데 거기 대해서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요.
 
143
모자 쓴 회원 A  (일어서서) 거 그러면 고지나 품삯이나 새경을 올리자는 것입니까?
 
144
의장   네, 그렇습니다.
 
145
모자 쓴 회원 A  무슨 필요로 그럴까요?
 
146
의장   네, 그것은 그동안까지 우리 농군들의 임금 즉 품삯이 너무 헐해서 그것을 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을 해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47
모자 쓴 회원 B  거 안될 말이지요. 그러찮애도 지금 와서 농사짓는 이문이 없는 것인데 고지나 품삯을 올린대서야 농사를 지어먹을(농업경영) 놈이 어데 있겠소? 지주한테 비싼 도조 치루고 고지나 품삯을 가외로 더 주고 (間) 그래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산단 말이요?
 
148
갓 쓴 회원  (일어서서) 나는 그저 상일이나 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라 그런 문투가 모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소마는 듣자니 고지나 품삯을 올리자는 말인가 분데 그렇게 되면 오즉이나 좋겠소마는 주는 사람이 올려주어야 말이지요.
 
149
회원석에서  (소리만) 올릴 수만 있으면 올립시다그려. 무얼 믿고 올려! 올릴 테거든 한 십 원씩으로 올립시다. 그 제기럴 것.
 
150
강생원   (교단 앞으로 나서며) 거, 안될 말이지 안될 말이야. (間) 아까도 어떤 사람이 말을 했지만 비싼 도조를 치루기도 힘이 찬데 게다가 또 고지나 품삯을 올린대서야 말이 되나! 안되지 안되야.
 
151
    (일어서서) 의장.
 
152
의장   네.
 
153
    지금 표준논금을 제정하자는데 이와같이 두 가지 의견이 대립헌 것은 우리 농민연합회의 조직이 철저허지 못헌 탓인가 헙니다. 거기 대해서 잠깐 말씀허겠읍니다. 조선의 농촌을 직업적으로 구별하면 대개는 지주와 소작인과 농업노동자의 세 가지가 있읍니다. 지주는 토지를 가지고 앉어서 소작료만을 받어먹는 사람이고, 소작인은 지주에게서 토지를 빌어다가 농업노동자를 고지나 품삯을 주고 사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요, 농업노동자는 단지 품삯이나 고지만 받어 먹고 일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소작인으로서 즉접 농업노동을 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예외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선의 북부보담도 남부지방이 더욱 현저하고 더구나 이 우리 지방에서는 농업노동자로서 소작인이 되는 사람은 백 명 중에 하나가 있거나말거나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이유는 더 말하지 아니하더래도 농업노동자에게는 지주들이 토지를 빌려주지 아니하고 금융기관에서는 농업자금을 빌려주니 아니하는 때문입니다. 그 대신 소작인들에게는 지주측에서 정실관계로 혹은 운동의 힘으로 토지를 빌려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이나 개인대금업자들도 농업자금을 잘 빌려줍니다. (잠깐 목을 가다듬어) 그런데 우리 농민연합회에는 아까 말한 소작인인 얼치기 농민과 농업노동자인 정말 농민의 두 가지 종류의 회원이 섞이어 있읍니다. 소작인, 다시 말하면 양반농민들은 지주에게서 논을 열 마지기면 열 마지기를 빌립니다. 그러고 금융조합이든지 또 지주에게 가서 농사지을 밑천을 얼마간 빌립니다. (일동들을 둘러보며) 여러분은 이 말씀을 자세히 들으십시요. 그래 가지고는 그 돈으로 품삯도 주고 고지도 주고 해서 농업노동자 다시 말하면 정말 노동자를 시켜서 농사를 지읍니다. 그 양반들은 명색만이 농사를 짓네 자기가 소작인이네 하면서 실상은 흙 한줌 쥐어보는 일이 없고 모 한폭시 심으는 일이 없고 김 한줄기 매는 일이 없읍니다. 그래 가지고는 가을에 가서 그 논에서 벼가 가령 스무 섬이나 추수가 된다고 하면 스무 섬 가운데 여달 섬쯤은 지주에게 도조를 치루고 네댓 섬은 팔어서 농사짓느라고 얻어쓴 빚을 갚고 나머지 일곱 섬이나 여달 섬은 온꼿 자기네가 먹습니다. 자, 그러면 그 일곱 섬이나 여달 섬을 무슨 턱으로 그 사람들이 먹어야 허겠읍니까? 농사를 지어놓은 사람은 실상 농업 노동가가 아닙니까? 먹을 테면 농업노동자가 먹어야지요. 더 나아가서 말하면 지주에게 주는 여달 섬의 도조도 모다 농업노동자가 먹어야 헐 것이지만 그것은 지금의 정세로 보다 다음의 문제이고 (잠깐 회석을 둘러보고 나서) 그래서 소작인인 양반농민이 공짜로 먹는 일곱 섬이나 여달 섬 중 실상 일을 많이 한 농업노동자가 좀더 먹겠다는 것이 즉 고지나 품삯을 올리자는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한꺼번에 다 달라고 했자 내어놓지도 아니헐 것이니까 위선 품삯을 올려서 조곰씩조곰씩 빼서 드리자는 것입니다. 이만허면 여러분도 소작인인 양반농민과 농업노동자 사이에 크나큰 이해상관이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따러서 멫사람의 양반 농민이 고지나 품삯을 올리지 아니허려고 아등아등허는 속을 아시겠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씀입니다. 우리 농민연합회의 조직을 그와 같이 이해가 서로 어긋나는 두 가지 종류의 분자를 가지고 조직하였다는 것이 애초의 조직에 참간한 분들의 크나큰 실책이라고 생각헙니다. 어떻게 이해가 서로 어긋나는 두 개 계급이 한 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가 있겠읍니까? 진부헌 말 같지만 부자간에라도 이해가 서로 다르면 한 집에 살지 못허는 것이 아닙니까? 적어도 우리 농민연합회라 하면 농민이라는 무산계급을 위한 투쟁단체.
 
154
경부   주이.
 
155
    (어이없다는 듯이 멍하고 경부를 바라본다)
 
156
강생원   (틈을 타서 방백) 거, 무슨 소린지 나는 한마디 모르겠는걸. (회원들을 보고) 여러분 여러분은 알겠소? 모르지? 그렇다니 글쎄 (間) 우리 농민연합회라는 것이 우리가 다같이 친목을 허고 남의 소작료를 잘러먹지 아니허고 다 양민이 되자는 것인데, 우리가 회를 한번이나 헌다면 경관 여러분이 많이들 오시고 그러니 그것이 모다 저런 사람들이 모다 뛰여들어서……
 
157
    (강의 말을 듣고 있다가 흥분이 되어) 의장.
 
158
의장   네.
 
159
    언권이 아직 내게 있는데 어찌 다른 회원이 말을 헌단 말이요? 내가 계속해서 말을 허겠소. (냉랭하게)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농민연합회의 본래 사명을 다허기 위해서 표준임금을 제정을 헐 필요가 절대로 있읍니다. 표준임금을 제정허면 즉 고지나 품삯을 올리게 될 터인데 그것은 우리가 주는 사람더러 올려줍시사고 애원허는 것이 아니라 투쟁방식으로 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농업노동자와 이해가 충돌이 되는 양반농민들은 제절로 탈퇴를 허게 되겠고, 그럼으로써 우리 농민연합회도 비로소 완전허게 계급적 조직체가.
 
160
경부   주이.
 
161
    (경부를 노려보다가 방백) 이나까노 오마와리상와 무쨔데 쇼우가나이나! (시골 순사는 무식해서 형편없어!) (목소리를 고쳐) 그러고 더구나 아까 우리 농민협회가 양민이 되느니, 친목을 허너니, 경관의 미움은 받는 것이 안 되였느니 하고 어느 회원이.
 
162
강생원   (싸움투로) 어느 회원이라니?! 응? 어느 회원이라니?! 아모리 말세가 되였기로니 그래 존장도 없고 그래야 옳단 말인가?!
 
163
    의장!
 
164
의장   네.
 
165
    언권이 내게 있으니 잡담은 좀 제지해 주시요.
 
166
의장   (강생원을 보고 무어라고 이야기를 한다)
 
167
    그런데 우리 농민연합회는 결코 그러한 반동단체는 아닙니다. 어데까지든지 무산계급인 농민대중을 위헌 투쟁단체인만큼.
 
168
경부   (일어서며) 주시(中止).
 
169
    (악의있게 경부를 노려본다)
 
170
경부   (목소리를 크게) 고노 가이꼬우와 후온노 기자시 아루소 미또메 까이산오 메이스. (이 회합은 불온하니까 해산을 명령한다)
 
171
장순사   (일어서서) 이 회합은 불온의 조가 있다고 인정하고 해산을 명함. 임석경관 일동은 일어서서 회원들을 밖으로 몰아낸다. 회원들은 눈이 동그래가지고 몰리어나간다. 경부는 팔찌를 끼고 식식거리며 섰는 한의 옆으로 와서 ‘동행’을 요구한다. 강생원은 혀를 끌끌 찬다. 무대는 어두워지며 돌기 시작하고 한은 경관을 따라나간다.
 
 

 
172
제3경
 
173
제1장과 동일. 암흑에서 점점 밝아지다가 완전히 밝아진 때에 이야기를 하고 섰던 서가 자리에 앉는다.
 
 
174
    그래서 한가는 주재소로 붙잽혀 갔겠구만?
 
175
    응.
 
176
    꼴 좋다.
 
177
    이 더우에 유치장에 가서 콩밥 먹고 모기 빈대 벼룩 으음.
 
178
    사회주이자의 말로야.
 
179
    자식이 잠자코 자빠져 있지 않구 공연히 내대다가…… 그런 고생은 사서 허는 게야.
 
180
    사회주의자가 되여가지고 사회개조를 헐랴 말구 저의 가정부터 개조를 해서 저의 어머니 치마나 하나 해주지. (間) 저도 제 집안 꼴을 보면 사회주의 헐 생각이 천리나 만리나 달어나겠더라.
 
181
    허기야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라니까.
 
182
    사회주의가 무슨 놈의 위천하야? 그놈의 속을 알고 보니까 맨 그저 도적놈의 속이든걸.
 
183
    사회주의고 무엇이고 나 같은 놈은 아무 세상에 가서라도 살 수가 있을 테니까 사회주의 세상이 되여봤으면 싶어.
 
184
    나도 사회주의 세상이 되면 약간 토지 좀 있는 것 얼른 내놓아바라지. 죽이고 뺏어가기 전에 자진해서 내노면 그만이겠지.
 
185
    자, 그런 소리는 소용없는 이야기고 기생이 왔다는데 불러다가 선이나 보자.
 
186
    이 가뭄판에 그것들이 무얼 먹자고 기어들어왔나?!
 
187
    저의 바닥에서도 먹을 것이 없으니까 굴러온 게지.
 
188
    주상(朱樣) 덕에 기생 구경 좀 헙시다그려.
 
189
    아무렴 데려다가 구경을 시킬 테니까 술은 내요.
 
190
    허허 그야말로 쌍무주의(雙務主義)로군. (間) 하여간 데려다가 구경이나 헙시다그려.
 
191
    누구야? 왔다는 게?
 
192
    (일어서며) 은옥이허고 옥란이허고.
 
193
일동   (의미있게 웃으며 강을 바라본다)
 
194
    (일동의 웃는 속을 알기는 하나 시치미를 따고) 왜들 웃어요?
 
195
일동   (역시 웃는다)
 
196
    자, 내가 춘향 잡으러 가는 방자였다. (두루마기와 모자를 떼어 쓴다)
 
197
    춘향이 못 잡어오면 볼기 맞는다.
 
198
    저놈은 예수쟁이라면서 기생이라면 제 할미보담도 더 반가워허더라.
 
199
    하나님도 암놈 수놈이 있고 또 그럴 줄도 알고 허니까 하나님의 자제들이 웨 아니 그렇겠소!
 
200
    옛 불량소년들이로군!
 
201
    (흥에 겨워 적성가(赤城歌) 한마디를 부르며 우수로 퇴장)
 
202
장순사   (정복 대검(帶劍) 우수로 등장. 마루 앞에 와서) 여러분 안녕허십니까?
 
203
일동   (일어서서 각기 인사를 한다)
 
204
    올라오시지요.
 
205
    고맙습니다.
 
206
    한가는 어떻게 되였어요?
 
207
    본서로 데리고 갔어요.
 
208
    저도 속으로는 후회헐걸?! 이 더운 여름에 가서 경을 치게 되면.
 
209
    그래도 본인은 이쯔고 헤이끼 (태평하다) 야요. 도리어 경부를 막 닦어세고.
 
210
    웨?
 
211
    사노 오마와리상와 무쨔(無茶)라고 그저 함부루 대고 집회를 중지 해산시킨다고.
 
212
    자식이 건방져서 그래. 그 따우는 잡어다 가두고 생전 내어놓지를 말어야지.
 
213
    어데 그럴 수야 있나요. (間) 그런데 오늘은 웬 싸흠이 그리 많소?
 
214
    웨?
 
215
    저기 사는 판돌네라든가? 허는 여편네허구 김선생 부인허고 아주 대판거리로 싸흠이 나서.
 
216
    (놀래어) 응? 웨 싸워?
 
217
    나두 잘 알 수 없는데 하여간 꽤 요란했든 모양이야요.
 
218
    허, 저런! 지금 김선생도 본댁에 가시고 안 계신데 저게 무슨 꼴이야! 허, 그거 원 참! (입맛을 다신다) 판돌이 계집을 쫓아내야 해. 그 계집이 아주 요물이야. 그꼴에 당목적삼에다 남색 끝동을 달어 입고 됫박같이 분이나 바르고 다니고. (間)
 
219
    흥 그래도 이골에서는 ‘아름다운 여성’ 인걸.
 
220
    판돌이가 아마 처시하에서 지내고 있지?
 
221
    판돌인가 그놈이 삼십이 넘어서 겨우 계집을 얻었기 때문에 꼭 자식 귀애허듯 해요. 그년을 (間) 그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아무래도 그저 두어서는 안되겠고.
 
222
    허기야 전주댁인지 김선생 소실인지 허는 부인도 약간 맹물은 아니드군.
 
223
    그렇다고 판돌이 계집이 그럴 법이 있오? 상하가 유별헌데.
 
224
    (부른다) 석순아!
 
225
석순   (우수에서 대답) 네. (등장. 손님들에게 제가끔 공순히 인사를 한다)
 
226
    지금 당장에 가서 판돌이놈 좀 불러오느라. (間, 일동에게) 판돌이는 그놈을 내가 부리던 하인이고 김선생은 애초에 내 주선으로 여기를 왔고 또 친허기도 헌 처진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김선생을 본단 말이요?!
 
227
    뭘 김선생도 그것쯤은 이해허겠지. (막)
 
 

 
228
제2막
 
 
229
제4경
 
230
제1, 제3경 동일, 인물도 동일한 외에 기생 재인(才人)이 섞이었고 큼직한 술상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먹는 중이다.
 
 
231
    (전을 보고) 저 하나님 새끼는 웨 술을 아니 처먹어? 네가 이저석 영영 아니 먹고 배길 줄 아니?
 
232
    (빈들빈들 웃으면서) 못배기지 안허면 어쩔 테냐?
 
233
    강제로 먹여.
 
234
    술로 알고 먹을 게 아니라 중놈들처럼 곡차라고 허고 먹어라.
 
235
은옥   왜 예수 믿는 사람도 술만 잘 먹읍데다.
 
236
    누가?
 
237
옥란   먹어도 상짜로만 연속 포도주만.
 
238
    그거야 세례받을 때 말이지?
 
239
    흥 세례받을 때만이 아니라 주일날마닥 먹읍데다. 나도 동경 가서 있을 때에 포도주 얻어먹는 맛으로 주일마다 예배당에를 다닌걸!
 
240
    어린놈아 그러지 말고 오늘만 훼절을 해라.
 
241
    (잔에 술을 부어 가지고 전에게로 가서) 강제로 먹일 테야.
 
242
일동   (달려들어 먹인다)
 
243
    (억지로 먹고 나서 상을 찌푸리며) 에, 테테.
 
244
    자, 인제는 기생 소리 들을 차례다.
 
245
    좋소.
 
246
    은옥이, 단가 하나 부르게.
 
247
은옥   잘 부르지도 못허는 단가는 웨 밤내 부르라우?
 
248
    다뿍 백량헌다.
 
249
    (재인더러) 백작, 저 방에 가서 가야금 가져와.
 
250
재인   (건넌방으로 가서 가야금을 가지고 온다)
 
251
    가야금은 은옥이 주고 자네는 장구 치고(은옥이를 보고) 자, 단가는 그러면 그만두고 병창을 허지.
 
252
은옥   (가야금을 받아 무릎에 놓고 줄을 고른다)
253
(석순, 판돌이 우수로 등장)
 
254
    (앞마루로 나선다)
 
255
판돌이   (토방에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256
일동   (놀기를 멈추고 주의를 전부 판돌이에게로 향한다)
 
257
    (갑자기) 이번은 내가 이러라저러라 허지 않을 테니까 자네가 생각해서 허게. (間) 자네 안해를 내어쫓든지 그렇지 아니허랴거든 둘이 다 나가든지.
 
258
판돌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죽을 때라 그랬읍니다. 이번 한번만 더……
 
259
    듣기 싫여 글쎄. (間) 네 주변에 네 안해를 내어쫓지는 못헐 것이고 그러면 다같이 나가거라. 너 따문에 내가 행세를 헐 수가 없으니까. (間) 그러고 나가되 사람이 세음은 분명히 해야 허는 법이니까 작년에 도조 남은 것이 두 섬이었으니까 장리까지 치면 석 섬이고 금년 봄에 넉섬 가져간 것이 있으니까 장리까지 치면 엿 섬 도통 아홉 섬이야. 그리고 돈으로 가져간 것이 십삼 원이니 이당장에 내어놓고 네 계집 데리고 나가.
 
260
판돌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못한다)
 
261
판돌네   (조그마한 봇짐을 꾸려들고 우수로 보이는 문간 차면 옆에 나타나 무대를 살펴보고 섰다)
 
262
판돌이   댁에 갚어 올릴 것도 올릴 것입니다마는 제가 선영감 때부터 모시고 있다가 (목이 메인다) 지금 이렇게 나가게 되면 (말을 맺지 못한다)
 
263
    응, 네가 선영감을 모시고 지냈단 말을 허니 말이지, 그래 내 집에서 두 대 째나 있던 놈이 내 체면을 그렇게도 돌아보지 않는단 말이냐?
 
264
판돌네   (우르르 쫓아와서 판돌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여보!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못생겼소? 실컨 집에서 잘 이야기를 했는데 또 이래요? 당신이 이 집에서 두 대나 종살이를 했으면 그래 공으로 놀리고 먹여살리우? 뼈가 바스라지게 일을 시켜먹었지! 당신이 일을 아니 해주었어 바요? 두 대는커녕 단 이틀이라도 두어두는가! (잡아끈다) 잔말 말고 가요.
 
265
    (성이 나서 발을 구르며) 저런 요망스런 계집! 이년! 예가 어데라고 당돌스럽게 들어와서 응 이년!
 
266
판돌네   왜요? 내 남편이 당신에 종놈이면 나도 종년입데까? 웨 괜히 이년저년 허고 호령이야요 호령이? (판돌이를 잡아끌며) 가요 어서! 이 집에서 이따우로 천대를 아니 받으면 어데 가 이만 못살겠소? 안갈 테야?
 
267
    (더욱 성이 나서) 응 저런 괘씸헌 계집년! 저년을 그대로 두어! 석순아 저 년 잡어꿇려라.
 
268
석순   (두리번두리번한다)
 
269
판돌네   흥 웨 잡어 꿇려요? 나는 당신네 종년이 아니래두 그래요! (판돌이더러) 안갈 테요 그래?
 
270
판돌이   (나무라듯이) 가고 무엇이고 이놈의 여편네가 어데라구 이렇게 버릇이 없어! 죽으랴구 환장이 됐어?!
 
271
판돌네   (아니꼽게) 흥 늙어죽을 때까지 종놈의 버릇은 못 놓을 모양이구나. 안갈테거든 나 혼자 갈 테야.
 
272
판돌이   (손을 내어밀고 따라가며) 같이 가.
 
273
    판돌아, 네가 그러구 갔겠다.
 
274
판돌이   (돌아서서 우는 소리로) 아이구 나리님!
 
275
판돌네   (돌아보며) 안갈 테야?
 
276
판돌이   가, 같이 가. (강을 보고 애원하듯이) 나리님!
 
277
판돌네·강  (동시에) 몰라.
 
278
판돌네   (문간 밖으로 나아간다)
 
279
    (술자리로 돌아간다)
 
280
판돌이   (안해에게로 쫓아가며) 여보소! (돌이켜 강에게) 나리님! (펄씬 땅에 주저앉아 어린애같이 엉엉 운다. 급속히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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