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잿빛으로 흐린 하늘에서 잔 눈발이 분주히 내린다. 내리는 눈발을 타고 어두운 빛이 소리도 없이 싸여든다. 다섯시도 다 못 되었는데. ─
3
동무가 다 돌아가고 없는 사무실방은 태고와 같이 고요하다. 등 뒤에 새빨갛게 단 난로불만은 보는마다 매력이 있다…… 꽉 그러안고 싶게.
4
그래도 눈이 왔노라고 유리창 바로 앞에 섰는 전나무 바늘잎에 반백로(頒白老)의 머리같이 눈발이 쌓여 있다.
5
마당을 건너 판장 울타리 밖으로 두부장사가 울고 지나간다.
7
가는눈 내리는 황혼에 가장 알맞은 구슬픈 소리다.
8
마당 옆에 잊어버리고 놓아둔 듯이 따로 놓인 생철지붕 굴뚝에서 파르스름한 연기가 시장스럽게 솟아오른다.
9
남산은 감감하여 봉우리만 희미하게 내어다보인다.
11
문자 그대로 알몸만 남은 앞마당의 은행나무 가지에 참새가 한 마리…… 단 한 마리 오도카니 앉았다.
13
재작거리지도 아니하고 새촘히 앉았다가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호르르 날아 건넌집 지붕 너머로 사라진다.
15
눈발이 좀 굵어진다……굵은 놈이 잔눈발에 섞여 내린다.
17
눈도 더욱 바쁘게 내리고 난로불도 더욱 새빨갛게 달아간다. 사람의 마음도 그침없이 깊이 들어간다.
18
이 모양 이 자태가 변함이 없이 영원으로 이어진다면!
19
이 ‘비극의 표정’ 을 이대로 영원히 두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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