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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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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1
채만식
1
다 듬 이
 
 
2
때가 마침 가을이겠다 제하여 다듬이 소리라 했으니 혹이 서늘한 가을밤 여기저기서 한참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에 무슨 운치라도 탐낼 요량인 줄 호의로운 곡해를 하기 십상이겠는데, 실상인즉 그와 정반대요, 다듬이 소리 저준문을 초하는 참이다.
 
3
집안에 들어낮아 있을 때, 한데 그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날이 한 달이면 30일 이상이다. 애기 우는 소리와 다듬이 소리 이 두 가지는 나에게 천하 무서운 대적(對敵), 아니 대적(大賊)이다.
 
4
울지 않은 애기와 다듬질 않는 여자가 있다면 나는 없는 포켓이나마 있는 대로 털어서 두 개의 송덕비를 종로 인경전 앞 한복판에다가 세워 주리라고 하늘에 맹세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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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방이 우리에게는 소용되지 않는 채 비어 있길래, 식구가 내외와 젖먹이뿐이라길래, 그것도 도시는 내가 일금 2원의 방세나마 아쉬워해야 하겠그롬 궁한 소치기는 하지만, 아무렇든 세를 놓았더니 궁즉달(窮卽達) 이란 말도 내게는 통용이 되지 않는 것인지, 무척 순해서 당최 울기를 않는다던 애기가 이사해 오던 그날 그 시각부터 둘이 울어댄단 말이다.
 
6
밤중에도 울고 새벽에도 울고 아침이고 낮이고 그저 육장 울음인데, 울음이 울음이나마 여느 울음이 아니라 몹시 보채는 울음이다.
 
7
저 애기 저러다가 자라서 이동백(李東伯)이나 고 샬리아핀이 될 염려가 없지 않군! 쯤의 두런거리는 소리로는 나의 참상이 위로되지 않고, 애기가 울음을 우는족족 나도 원고 쓰던 것을 내던지거나 여리게 겨우 든 잠을 깨거나 추어울린 상(想)을 다 잊어버리거나 하고서 애기 못지 않게 보채야만 한다. 명색이 어른이니까.
 
8
물론 애기처럼 응애응애 울고 보채진 차마 못하고 속으로 은근히 곯는데 그러자니 하마 내종(內腫)이 들 지경이다.
 
9
한번은 하도 답답하다 못해 아이를 시켜 애기를 먹이는 연유통을 좀 가져오래서 코를 대보았더니 아 ! 세상에 이렇게도 고약한 냄새가 있을꼬 !
 
10
 모유가 부족해서 미음에다가 연유를 섞어 먹인다는 게 연유 한 통을 따놓고서 10여 일씩 쓰니 썩을 거야 정한 이치지만 아무리 농통하기로니 그 고약한 냄새가 어머니의 코에 닿지 않았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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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꾸중(옳아 ! 나는 단연 꾸중을 했다) 덕으로 그 마뜩찮은 연유 먹이기는 걷어치웠지만 그 다음에는 애기가 귓속을 앓느라고 울음은 여전하다.
 
12
이렇듯 여름 내내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만 매삭 2원야라의 가의 수입이 죄다짐으로 죽은 성화를 받았느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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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다듬이의 감각은 귀뚜라미보다도 더 예민해서, 처서? 백로? 하니까 안방 뒷마루에서 그 또드락딱딱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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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째 벌써 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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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갈찌에, 가만히 듣고 앉았을 리는 없는 것이고, 다듬이를 하지 말라는 엄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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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나는 평생 양복만 입고 지내니 다듬이를 한대도 내 옷은 아닐 것, 결국 집안 여편네의 옷인데, 그러니 첫째 살림하는 여편네가 옷 곱게 다듬어서 입을 필요가 어디있느냐? 또 어느 한귀퉁이에 필요가 있다손 치더라도 여편네의 필요로 대주(大主)의 일과 수면과 안정을 방해할 법은 없는 것이다. 하니 썩 걷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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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대해서 진정이 들어오는데 내용은, 옷을 다듬이를 함은 모양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듬이를 해야만 때가 덜 타고, 때가 덜 타야 자주 빨래를 않고, 자주 빨래를 안해야 경제가 됩니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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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못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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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광당목(廣唐木) 없어져가게 된 것을 나는 속으로 춤을 추는 자다. 요새도 순면제품이 미구에 절종이 된다고, 두고 버선만 해 신게 한 필 끊어달라고 애걸하는 것을 나는 다듬이를 한다는 이유로 단연 각하를 시키곤 한다.
 
20
“돈 없단 말은 못하구 !”
 
21
이런 구누름 소리에 낯이 좀 간지럽기는 하지만, 강한 자는 거짓말을 하고서도 까딱 않고 시치미를 뚜욱, 배짱을 쑤욱 내밀어야 강자다운 관록이 나타나 보임을 나는 히틀러며 믓솔리니에게서 배웠으니까……
 
22
여자를 방정맞은 것이네 요망스런 것이네 하는데 그야 인간 모욕이니 경청할 바 아니로되, 다만 한가지 다듬이질하는 것만은 방정맞다는 비방을 들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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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드락또딱, 또드락또딱, 또드락똑딱…… 어쩌면 고렇게도 닮았는지! 게다가 한 셋쯤 한 다듬돌을 가운데 놓고 여석 개의 방치를 한참 내리 다듬어대는 포즈와 그 소리란 이 세상 제일 보기 싫은 동작과 제일 듣기 싫은 음향을 제가끔 대표하는 자이기네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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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다듬질을 거의 않는 신가정의 신여성에게는 대고 하는 말이 아니니까 아예 노여워하지는 마실 것. 아뿔싸 ! 그러고 본즉 ‘다듬질 않는 여인’ 송덕비를 너무 낳이 해 세워야 하겠으니 ‘식주내각(食走內閣)’이 있다더니만 ‘식비(食婢) 무엇’이 생길까 보다.
 
 
25
나는 한학(漢學)에 능치 못해 그 시를 여기에 옮기지 못하고 뜻만 말하는데, 가을 신곡도 나고 바람도 선선하니까 저기 산중 절의 중이 바랑을 걸머지고 장안(長安?)으로 나왔겠다……
 
26
한데 처억 거리에를 들어서니까 만호 장안 이집 저집 어디 할것없이 뒤집히듯 다듬이 소리가 요란해, 그 고요한 산중에서 조용하게 살던 스님은 다듬이 소리에 그만 정신이 아득, 어쩔 바를 몰라 손가락으로 귀를 꽈악 막고서 담 모퉁이에 가 가만히 숨어 섰더란다고.
 
 
27
시는 시의 맛으로 어떠한지 모르겠어도 이야기만도 그럴 듯한 정상이다. 나는 가엾은 그 스님을 위해 절대의 동정을 아끼지 않는다.
 
28
하나 중은 다듬이 소리가 귀찮으면 도로 절로 달아나기나 하지, 나는 달아날 절도 없고 이 성화를 먹으니 오히려 그 스림한테 동정을 이자 쳐서 받아야 할까보다.
 
29
어려서 부터도 나는 다듬이 소리라면 아주 비상(亞砒酸)이었었다.
 
30
해서 나의 다듬이 소리와의 투쟁사도 이만저만찮다.
 
31
다듬이를 한다고 어머니와 싸웠다. 조금 자라서는 형수들이 다듬질하는 것을 훼방을 놓았다. 그리고 시방은 이렇다.
 
 
32
아마 앞으로 늙으면 며느리와 딸하고도 다듬이로 해서 싸워야 할까보니, 진작 알아차려 며느리는 서양 며느리를 얻든지, 죄선치라도 양장만 하는 놈으로 택하고 딸은 기저귀부터 양장을 시키고 해야 하겠다.
 
 
33
그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나는 가을에 시주 걷으러 인가에 내려오는 소임만 맡지 않는 중이 되리라. 빈말이 아니다. 인제 두고 보아라.
 
 
34
저 소리 ! 저 양백스럽게 또드락딱딱거리는 다듬이 소리 ! 날이 선선해 모기도 없어 다듬질하기에 좋기까지 한가 보지?
【원문】다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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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듬이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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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