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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팔호실(東八號室) 잠입기(潛入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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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4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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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八號室[동팔호실] 潛入記[잠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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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異常男女[이상남녀] 40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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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 말로 하면 총독부병원 동팔호실이요 지금 말로 하면 대학병원 정신병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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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팔호실…… 정신병실…… 미친 사람을 잡아 가두는 곳…… 이러한 이름이 결코 우리의 귀에 달게 울리지는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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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는 사람이 어찌 즐겨 미치며 또한 즐겨서 동팔호실…… 정신병실…… 미친 사람을 가두어 두는 곳……에를 갔으랴 ! 생각하면 아무리 미쳐 정신이 없다 하더라도 ── 아니 미쳤음으로 해서 이 세상과 떨어져 외롭고 고달피 살아가기 때문으로 해서 더우기 그들은 불쌍하고 가엾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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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평화를 가득 안고 인간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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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평스럽고 즐거운 봄을 화평스럽고 즐겁게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중에도 정신에 이상이 생기어 우리들 성한 사람과는 딴 생각 딴 마음으로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한번 찾아봄도 떳떳지 아니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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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갔을 때는 사정이 여의하지 못하여 내부를 자세하게 보지 못하고 두번째 갔을 때에 비로소 고비샅샅이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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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서도 맨 뒤 늙은 소나무가 우거진 속에 앞뒤로 두 채의 붉은 벽돌집이 즉 옛말로 하면 동팔호실이요, 지금 부르는 정신병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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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남자 병실을 먼저 보기로 하고 안내하는 의사를 따라 뒤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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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 소리를 따라 편지 넣는 구멍만한 곳으로 눈 두 개가 나오더니 자물쇠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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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생각에는 별 이상한 세상이 나타날 줄 알았더니 웬걸 그저 병색이 얼굴에 박혀 있는 그저 병자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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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고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고 때리고 싸우고…… 이러한 일이 대번 눈앞에 나타나리라는 생각은 어그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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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척 들어서서 그 안의 공기를 들이마실 때에는 비록 요란스러운 야단법석은 없으나 무엇인지 모를 바깥세상과는 다른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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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다다미방 한편 구석에 댓 사람이나 둘러앉았다. 요전에 잠깐 창밖으로 볼 때 그 방에서는 바둑을 두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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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가 바둑을 두어! 나는 그때에 이렇게 놀라고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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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둘러앉은 다섯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마주 붙어앉아 화투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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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어다보느라니까 화투 중에도 가장 복잡한‘록백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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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힐 일이다. 미친 사람이 바둑을 두고 화투를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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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치는 옆에 얼굴이 도렴직하고 예쁘장스럽게 생긴 소년 하나가 앉아서 굽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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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니 전간 즉 지랄병이라고 한다. 아직 꽃 같으면 채 봉오리가 벌어지지도 아니한 시절인데 그렇듯 모진 병에 걸리다니! 석가여래가 아니라도 인생의 생 · 노 · 병 · 사(生老病死)의 인간고(苦)가 뼈에 박이도록 느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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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편으로 문에 쇠빗장을 해놓은 방을 굽어다보니 꿈에 보면 가위라도 눌릴 만큼 험상궂은 친구 하나가 단정히 앉아 무어라고 혼자 웅얼거리고 있다. 생긴 것으로 보아 문에 철창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들으니 지금 있는 환자들 중에 제일 난폭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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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굽어다보고 돌아서려니까 한 친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이 내 앞으로 걸어온다. 그러나 아무 말도 아니하고 지나친다. 요전에 갔을 때에 “게이사쓰부노 지도샤와 기마셍까”(경찰부 자동차 아니 왔소?) 하고 묻던 친구다. 경찰부 자동차를 찾는 그 사람의 머리속에는 어떠한 세상이 들어앉아 있을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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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에서 일본 사람 하나가 침대에 올라앉아 무엇이 그다지 즐거운지 연해 싱글벙글 웃으면서 손가락을 꼽아 무엇인지 수를 세고 있다. 온종일 그러고 앉았다니 청승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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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조발성치매(早發性癡呆’ 라는 이름의 정신병으로 얼마 전에 남의 집에 불을 놓았다는 사람이 있다.(정신병의 대부분이‘조발성치매’라고 의사가 설명하는데 그렇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사람은 세상에 아무것도 즐거운 것도 괴로운 것도 재미있는 것도 슬픈 것도 없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놀고 해도 도무지 참견을 아니하고 온종일 부처님같이 앉아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진리를 깨달은 철학자도 같고 도를 얻은 생불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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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를 다니다가 미쳐서 금년까지 팔 년째 이곳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일본말을 아느냐고 물으니까 “알겠지요” 하고 남의 말같이 대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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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고 섰는데 외양으로 보아 도무지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생긴 사람 하나가 설명해 주는 의사 옆으로 와서 씩 웃으며 “선생님, 장가 좀 들여주시렵니까?” 한다. 그러니까 의사는 “네…… 아주 미인으로 하나 골라서 중매를 해드리지요” 하고 역시 웃는다. 이 속에 들어오면 의사도 미쳐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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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를 들어준다는 의사의 말에 그 사람은 “미인은 해서 무얼 합니까? ×××면 그만이지 히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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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까 요전번에 왔을 때에 영어로 쓴 책을 보고 있던 사람이다. 미국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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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옆에 섰다가 “미국 갔다 오셨소” 하고 물으니까 씩 웃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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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오줌 마려워” 하고 변소로 간다. 가면서 하는 소리가 “흥 미국?! 흥 미친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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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아니라 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미친놈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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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으로 올라가니 얼굴도 아주 미남자로 생긴 이십 안팎 되어보이는 사람이 있다. 종교서류를 보는데 의사의 말을 들으니까 많이 나아서 지금은 완인(完人)이 되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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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십 안팎 되어보이는 일본 사람 하나는 자꾸만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침대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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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병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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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들어서니까 인물도 그다지 추하지 아니하고 한 스물대여섯 되어 보이는 여인인데 의사를 붙잡고 무엇 셋집이 어떻고 장모가 어떻고 한참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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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니 요전에 갔을 때에 나를 웃기던 여인이다. 그때에 같이 간 친구하고 막 문안으로 들어서니까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말이 “××전문학교 다니는 정××라고 아세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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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압니다” 고 그 친구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을 하니까 “그러면요 그이가 오거던요 꼭 나를 좀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신신부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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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일본 여자 하나가 그 옆으로 오니까 히히 웃으면서 “이거 보세요. 이 일본 여편네가 미쳤어요. 그래 밤낮 웃겠나요 히히. 그래 나도 동무삼아서 같이 웃지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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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엇이 그다지 우스운고! 하고 나는 탄식하였다. 그랬는데 오늘도 여전히 웃으면서 종알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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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다다미방으로 들어가니까 묻지 아니하여도 평안도 태생인 것 같은 노파 하나가 의사를 반가이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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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돈은 어찌 되었소?” 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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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저 차용증서를 썼지요.” 하고 주머니를 뒤진다. 들으니까 밤이나 낮이나 돈타령을 부른다고 한다. 미상불 돈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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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乾坤[별건곤] 6권 4호, 1931년 4월호>
【원문】동팔호실(東八號室) 잠입기(潛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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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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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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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