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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처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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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9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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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처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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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은 불후의 고전이다. 잊었다가도 문득 우러러보고 그 아름다움에 새삼스럽게 탄복하는 것이다. 달밤의 화단은 그 운치가 또한 격별하니 달빛을 입은 화초의 색채는 확실히 현실 이상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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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름다운 자연도 인물의 반려 없이는 거의 무의미한 것 같다. 하염없이 거닐다가 방에 들어온 후 등불을 끄고 창에 비치는 월광의 위치를 따라 달빛을 얼굴 위에 담뿍 받도록 잠자리를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끌면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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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과 K 두 처녀의 뒷 일이 한결같이 생각나는 것이다. 달빛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자태가 기억 속에 있는 까닭인지 마치 악보와 노래같이 월광과 그들의 자태는 기억 속에서 밀접히 관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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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욕에 눕게 된 것을 기연(機緣)으로 답장을 게을리하고 있는 동안에 M과도 K와도 편지가 끊겨 버렸다. 다시 편지를 쓸 정회도 없으므로 책상 서랍 안에는 다만 그들에게서 온 옛 편지의 묶음이 여름을 지난 해변의 조개껍질과도 같이 버려져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늘 신선한 것은 지난 가을에 두 사람에게서 공교롭게도 같이 보내온 두 장의 사진이다. 삭막한 속에서 이것이 그들을 생각하는 추억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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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마미꼬 ─ 의 것은 중형의 전신상(全身像)이다. 등뒤에는 ‘19의 봄에 박힘’ 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는 그의 열아홉 때였다. 그는 편지마다 액년인 19의 탄식과 걱정을 나에게 피력한 것이었다. 19의 처녀 ─ 처녀로서 마지막 계단까지 발육할 때로 발육한 육체가 화면을 무겁게 압박하였다. 짧게 베어서 목 앞으로 넘긴 벽실벽실한 머리, 빼뚜름하게 얹은 베레모, 기름한 투피스, 어색한 하이힐의 구두, 그 위에 한편 손으로 자연스럽게 허리 위를 고인 날씬한 양자, 그것까지가 처녀와 여자와의 마지막 경계선에 선 선숙(善熟)한 신선미를 암시한다. 가뜬하게 죄인 허리 위로 젖가슴이 둥글게 휘어 나왔고 옷섶을 죄인 조그만 단추가 가뜬하게 긴장된 그의 젖꼭지의 위치를 방불케 한다. 발밑에는 화분이 여럿 놓여 있으니 처녀상의 배경으로는 가장 적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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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의 액기(厄期)를 앞둔 풍만한 처녀상을 나는 줄 타는 광대를 보는 것과도 같은 일종의 괴롬과 아기자기한 위험감을 가지고 시름없이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필연코 무엇이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으려니까 지난 가을에는 터놓고 의사에 없는 연담(緣談)에 걸려 궁경에 빠져 있음을 호소하여 왔다. 완고한 골육 무지한 주위를 비난한 후 다시 도회로라도 나갔으면 하는 은근한 뜻을 비추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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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넘었으니 지금엔 그도 20이라 일신이 어떻게 낙착되고 감정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해를 넘은 가을 달밤에 몹시도 궁금하다. 처녀의 마음이란 파도같이 쉴새없이 수물거리다가도 커다란 현실에 눌리우면 신기하게 양과 같이도 그 경우에 순응하여 여리게 주저앉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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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장의 사진 K ─ 김 ─ 의 소형 반신상. 가는 손가락으로 턱을 가볍게 고인 측안(側顔)의 클로즈업이 모나리자의 미소를 띠고 있다. 바른편 볼에 일부러 찍은 듯한 뷰티 스폿, 영화배우같이 옆 볼에 길게 드리운 머리카락, 사치한 팔 시계, 영자(英字)의 서명 ─ 이런 것이 웬일인지 처녀의 한계를 넘어 일종의 무르녹은 교태의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그 미소 ─ 놀랄 만큼 표정이 능란한 것이다. 사진 뒤에 ‘3월 8일 서울에서 만 18의×’ 이라고 적혔으니 그 역 M의 경우와 같이 그때가 19의 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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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난 봄 그는 편지로 동요하는 심사를 말하며 출분(出奔)의 의욕을 암시하였다. 내신(來信)은 잠깐 중단되었다가 계절을 지난 늦은 가을 돌연히 편지가 있어 그간 동경에 갔다 왔다는 것을 간단히 고백하고 마음은 여전히 적막하다는 것을 덧붙여 길게 하소연하였다. 나는 그의 동경행의 용단을 놀라는 한편 의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 “누가 그를 동경까지 꼬여 가지고 갔었을꼬.” 그의 평소의 소원이 성악 공부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불여의한 경제 형편과 그 외 뭇 사정의 난관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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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 이른봄까지도 편지가 잦았다. 편지마다 나의 무신(無信)을 책하여 왔다. 와병 이후 너무도 무심하게 지내는 동안에 그도 지쳤는지 문득 편지가 끊어져 버린 채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도 올에는 19의 난관을 지난 20의 연대에 들었으니 일신이 어지간히 침착되고 생애의 운명이 결정되었으려니도 추측은 되나, 그러나 또 아직도 미정의 운명의 파도에 휩쓸려 미지수의 길을 암중에서 모색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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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새삼스럽게 붓을 갈아들고 그의 현재의 소식을 물을 용기도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달밤을 기회삼아 창으로 새어드는 월광에 젖어 가면서 그를 생각하는 정회에 잠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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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나는 M이나 K와 공교롭게도 19의 액년까지를 일기로 멀리 마음의 교섭을 가진 셈이었다. 앞으로 그들이 어떠한 인생의 길을 밟아 나갈는지 그것을 관찰함이 나의 흥미일 뿐더러 의무의 일부분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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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처녀상을 오래도록 보장하여 둠도 멋쩍은 일일 것이다. 그것을 찢어 버리거나 태워 버려야 할 운명에 있는 나로서 한때의 그들과의 기억을 살려 두려는 ‘수우베닐’ 의 한 조각으로 이 일문을 초하여 두는 터이다. 그들이 다음 보고의 글을 쓰게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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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이 맑다. 오는 달의 십오야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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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매신 1934. 9
【원문】두 처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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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처녀상 [제목]
 
  이효석(李孝石) [저자]
 
  # 월간매신 [출처]
 
  193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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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