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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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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7. 10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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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
 
 
2
호화로운 저택의 객실 같기도 하고 만 톤급 기선의 살롱 같기도 한 커다란 사치한 방이나 손님이 아닌 나는 어떻게 하여 그 속에 뛰어 들어갔는지 물론 모른다. 괴이한 것은 방 한편 벽이 전면 거울로 된 것이다. 거울이면서도 맞은편 벽과 방안을 비취어 내는 법 없이 일면 희고 투명한 거울 ⎯ 그러면서도 사람의 자태만은 비취어 주는 일종 무한의 세계로 통하는 야릇한 문과도 같은 그런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 뚜렷이 솟아 선 자신의 자태를 눈부신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그 넓은 스크린 속에는 돌연히 한 사람의 소녀가 어디선지 나타났다.
 
3
그는 비취어진 그림자가 아니오, 정체 없는 그림자만의 그림자였으니 나는 아무리 방안을 휘둘러보았어도 그의 정체를 찾을 수는 없었다. 물론 얼굴조차 알 바 없으나 그러나 희랍 신화 속의 사이키와도 같이 아름답고 귀여운 그 소녀는 거울 속에서 나에게 손짓하며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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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유혹이었다. 그러나 정체 없는 그를 거울 밖 현실 속에서는 잡을 수 없는 노릇이므로 거울 속에서 그를 붙드는 수밖에는 없었다. 거울 속에서 붙든다는 것은 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두려워하면서도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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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한결같이 부른다. 나는 거울 가까이 가서 몸을 바싹 대어 보았다. 그러나 거울은 기체도 아니오, 액체도 아닌 이상은 방패와 같이도 굳은 뜻으로 나의 몸을 거역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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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신과 똑같은 또 하나의 전신이 앞에 와 딱 붙어 서서 나와 똑같은 시늉과 표정을 하는 것이다. 두 육체 사이에는 투명한 백지 한 장이 놓였을 뿐이다. 나는 그 백지를 뚫고 건너편 육체와 일치하여야 된다. 먼 저편에서는 소녀가 한결같이 손짓한다.
 
7
네 활개를 펴고 거울에 붙어 서서 맞은편 육체를 바라보며 나는 힘을 썼다. 이상한 일이다. 딸깍 소리가 나며 나는 거울을 넘어 맞은편 육체와 합하였다. 물과 물이 합치는 것 같은 감쪽같은 일치였다. 거울이 부서지는 법도 없고, 내 몸이 상하지도 않고 마치 일광이 투명한 유리를 뚫고 들어가듯이 나는 거울너머 세상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구멍을 뚫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일광같이 비치어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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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기가 바쁘게 들어온 뒷 자취를 돌아볼 여유도 없게 사이키의 손이 날쌔게 와서 나를 붙들자 두 몸은 쏜살같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 거울너머 세상은 발붙일 곳 없는 무한한 허공의 세상이었다. 눈 부시는 새파란 창공을 두 몸은 날개를 얻어 지향없이 훨훨 날았다. 자유의 혼이었다.
 
9
바람이 가슴 아래 채이고 전신이 물같이 비었는데 오금이 녹을 듯이 근실근실한 아래로 멀리 바라보이는 것은 바다였다. 바다와 하늘이 한빛이어서 두 눈이 뚫려 패일 듯이 푸르고 차고 아물아물한 ⎯ 그 무서운 단조를 깨트리는 것은 가끔 발아래를 스치는 흰구름의 떼였다. 구름은 안개같이 싸늘하게 몸을 둘러싸고는 하였다.
 
10
이윽고 해변이 보였다. 구불구불 뻗친 모래톱이 바다와 육지와의 사이에 외줄의 흰 선을 그었다. 갈매기의 무리가 우리보다도 훨씬 얕게 해변을 날았다. 연해를 항해하는 장난감 같은 조그만 기선이 가는 연기를 뽑으며 움직이는 운치도 없이 벌레같이 슬금슬금 기어간다. 확실히 사람 사는 세상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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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으늑한 해변의 한 곳을 점치고 내리기로 하였다. 낙하산으로 떨어지는 것같이 사뿐하고 가볍게 모래 위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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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것은 내려서 보니 몸에 감았던 옷이 없어졌음이다. 날으는 동안에 옷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져 모르는 결에 발가숭이가 된 것이었다. 더 이상스러운 것은 옷을 벗었음에도 부끄러운 생각이 조금도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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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며칠을 지냈는지 몇 달을 지냈는지 헤아릴 수 없다. 첫째 그곳의 하루는 결코 이 세상의 하루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지낸 며칠이 이곳의 몇 십년 맞잡이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는 시간도 무한 속에 녹아 버려 분명한 관념과 구분이 없다.
 
14
해변 생활에 흡족한 우리는 다시 날개를 얻어 날기 시작하였다. 거울 이쪽 세상으로 돌아오자는 것이다. 물론 무한의 세상이므로 길표도 없고 장승도 없는 왔던 길 같기도 하고 첫길 같기도 한 창공을 날고 날아 거울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사이키는 거울 이쪽 사람이 아니므로 나는 눈물의 작별을 짓고 혼자 거울에다 몸을 붙였다. 들어갈 때와 같은 요령으로 나오려는 뜻이었다. 몸이 무슨 조화로 광선같이 감쪽같게 거울을 새어 나오나를 아울러 관찰하려고 정신을 차리고 몸에 힘을 주었으나 거울은 그런 관찰을 거절하는 듯이 몸의 힘을 못 이겨 와싹 깨트려지고야 말았다.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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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영혼과의 지경은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비밀이요, 현실과 무한과의 접촉점은 열리지 않는 신비의 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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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36. 7. 10
【원문】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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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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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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