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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부(馬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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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5
계용묵
1
마부(馬夫)
 
 
2
응팔은 한 손에 고삐를 잡은 채 말을 세우고 부러쥐었던 한 켠 손을 또 펴며 두 눈을 거기에 내려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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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하고 나타나는 오십 전짜리의 은전이 한 닢, 그것은 의연히 땀에 젖어, 손바닥 위에 놓여져 있는데, 얼마나 힘껏 부러쥐었던지 위로 닿았던 두 손가락의 한복판에 동고랗게 난 돈 자리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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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응팔은 그 손질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이제야 겨우 발이 잡히기 시작하는 거치른 수염 속에 검푸른 입술을 무겁게 놀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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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레 이 이렇게 까 깎 부러쥈는 데야 어디루 빠 빠져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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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돈을 잃지 않은 자기의 지능을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해하는 미소를 빙그레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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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은 오늘도 장가드는 신랑을 태워다 주고 돈을 얻어선 여기까지 십 리 길을 걸어오는 동안, 아마 다섯 번은 더 이런 짓을 반복했으리라. 그러니 아직도 집까지 닿기에는 또한 십 리 길이나 남아 있다. 몇 번이나 또 이런 짓을 되풀어야 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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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나 귀한 것이면 응팔은 두 개의 주머니가 조끼의 좌우짝에 멀쩡하게 달려 있건만 넣지 못한다. 손에서 떠나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살에 닿는 그 감촉이 있어야 완전히 그 물건이 자기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다고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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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응팔의 이런 의심증은 결코 그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그때도 역시 사람을 태워다 주고 오십 전 한 닢을 얻어, 손에다 쥐고 오다가 문득 말을 세우고 줌을 펴 보았다. 손에는 돈이 없었다. 조금 전에 오줌을 누며 허리춤을 뽑을 때 그만 쥐고 있던 돈을 깜박 잊었던 것이 뒤미처 생각키었다. 그리하여 돈은 그때에 떨어졌으니 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그래도 그는 그 후부터도 돈을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줌에 부러쥐기를 의연히 잊지 않으며 그저 펴 보는 그 번수만을 자주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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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그는 또 사람을 대해서는 이상히도 의심을 못 가지는 것이 특색이다. 사람이라면 그는 누구나 믿으려고 한다. 자기를 해치려는 말에까지도 넘겨짚을 줄을 모른다. 자기의 마음이 곧으니 남의 마음도 곧으려니 맹신을 한다. 이것이 또한 그에게 이로움을 주지 않았다. 아내까지 남에게 빼앗기고 의지 없이 이렇게 남의집살이를 하며 말을 끌고 떠돌아다니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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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까지도 응팔은 남의 집에 쌀 꾸러는 다니지 아니하고, 비록 몇 날갈이의 발뙈기에서 더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가 물려준 것을 받아가지고 제 손으로 벌어서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에는 그리 군색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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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가를 들자부터 생활은 차츰 쪼들러 오게 되었고. 그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 그야말로 꿈 같게도 하루아침에 아내도, 세간도, 다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알몸만 댕그라니 돌리워 한지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니, 속살 모르는 아내를 아내로서만 믿고 돈을 벌어다는 의심없이 맡겨 오던 것이, 그 근본 불찰이었다. 남 같은 지혜를 못 가졌다고 보이는 그 남편을 아내는 형식으로서밖에 섬기지 아니하고 은근히 따로이 정부를 두고는 돈을 솔곰솔곰 뒤로 빼어돌리다가 나중에는 도장까지 훔쳐내어 남편의 이름에 있는 밭날갈이, 아니 집까지 옭아가지고 어디론지 뺑소니를 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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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생계가 어려워진 응팔은 거지처럼 이리저리 밀려 돌다가 이 진 초시네 머슴을 살게 되기까지의 쓰라린 경험이 이미 있었건만 그래도 그는 사람을 믿기에는 의심이 없었다. 오직 자기를 해친 그 사람만이 대하지 못할 사람이라 욕을 해 넘길 뿐, 그 사람의 마음에 비취어 다른 사람까지도 의심할 생각은 조금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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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이상히 사람을 믿는 그라, 주머니에도 못 넣고 손에 쥐고 다녀야 안심할 수 있는 그런 돈이었건만 마치 지난날 아내를 의심 없이 믿고 돈을 맡기듯, 주인 진초시에게도 돈을 벌어다가는 이렇게 맡기기를 잊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의 손에 있는 것보다 더 튼튼하다는 듯이,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마음을 턱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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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일 일천칠백 낭(百七十圓)에 꼬 꼬리가 다 달리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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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은 이미 초시에게 맡긴 일백칠십 원에 지금 그 오십 전을 또 가져다 맡기면 일백칠십 원 하고도 또 오십 전이 붙는 것을, 그리하여 또 그렇게도 불어만 나가 큰 돈이 자꾸 뭉쳐지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돈이 아내를 또 얻어 주리라는 것을, 은근히 생각해 보며 부러쥐었던 줌을 금시에 다시 펴서 손바닥 위에 나타나는 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쯜쯜쯜 혀를 까리며 다시 혁을 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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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닿기까지에는 해도 저물었다. 마굿간에 들어서니 마지막 숨을 쉬는 그날의 붉은 노을 줄기가 용마루에 길이 쏘아져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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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얼마 얻어옴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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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 밀리는 밀창 소리와 같이 언제나 찡기지 못하는 초시의 풍안한 얼굴이 쑥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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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단 낭(五十錢)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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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구유에 매고, 사랑으로 들어간 응팔은 초시의 앞으로 나가, 벌떡 줌을 폈다. 그리고 열병 환자같이 땀에 뜬 돈을 즈르르 삿자리에 미끄러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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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눈에 익은 응팔의 행동이라, 초시는 그 태도를 이상히 여길 것도 없이 돈만을 당기어 장부에 기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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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색을 눈치챈 초시는 또한 맞방망이로 응팔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묻기도 전에 장부에 기입을 하고 나서는 인제는 얼마가 된다고 미리 알리어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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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초시는 붓대를 놓자 응팔의 말이 건너오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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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칠십 원 오십 전이 됨메. 꽃 같은 색씨가 이제 차차 돈 속에서 왔다갔다하눈.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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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팔을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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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 주디 않아두 다 다 알아요. 일 일천 칠백 단 낭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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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은 말을 끌고 오는 동안 도중에서 벌써 그 액수를 외어 넣었던 것이다. 자기가 먼저 다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 삼아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줄은 알면서도 입버릇으로 중얼중얼 일천칠백단 낭을 입안에다 다시 굴려 보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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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는 응팔이가 그 돈의 액수를 똑똑히 아는 것이 마음에 키었다. 그것을 그가 알므로 그의 입은 뭇 입에다 다리를 놓아 온 동네가 다 알게 되면 재미없으리라는 것이 자못 근심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응팔이가 행여 이것을 잊어 주지 않을까 며칠만큼씩 초시는 그것을 따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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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잰 글을 모르니 머릿속에다 단단히 치부를 해두어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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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르는 듯이 말을 하면 응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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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잊어요. 일 일 일천 칠백 단 단 낭을 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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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거침없이 쭉 뱉아놓는다. 그러면 초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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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잊어선 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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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르는 듯이 말은 하나, 실은즉 속으로는 너무도 똑똑한 그의 기억에 ‘하하아!’ 하고 탄식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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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는 여기에 한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비로소 세운 계획이 아니라, 이미 계획하여 오던 것을 급히 다가놓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안 심부름 감으로 길러 오던 종의 새끼 삼월이를 그와 맞붙여 줌으로 장가 비용을 빙자해서 액수가 밝아진 그 돈을 우선 흐려 버리자는 심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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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흔히는 길러내면 서방을 얻어 뺑소니를 치는 버릇이 있는 종의 습성이라, 삼월의 발목도 붙드는 수단이 되고 삼월의 인물이 또한 깨끗하니 그러지 않아도 제법 수작을 붙이고 다니는 눈치인 응팔이라, 흡족해하지 않을 리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서 마음은 더욱 가라앉을 것이니 그렇게하는 것이 그들 둘을 다 영원히 붙들어두게 하는 수단도 될 것임으로써였다. 그러면 종이라는 것은 딸을 낳아서 그 딸이 시집을 갈 만한 나이가 아니고는 임의로 그 집을 떠날 수가 없는 법임은 이미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설사 그들이 나갈 의향을 혹 가졌다 하더라도 거연히 염을 못 내고 딸을 낳아서 십여 살 까지의 성장을 기다려 그 딸을 바치고야 나가게 될 것이니 그 적에는 나가지 않아도 걱정이다. 오십이 넘게 될 응팔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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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는 이런 이해타산을 일단 세운 다음, 어느 날 응팔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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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님재 색씨감을 참헌 걸 하나 골라놨음메. 날레 당개를 드르야디, 늘 홀라비루야 적적해서 어떻게 살갔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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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고로므뇨, 당 당개 가가가 가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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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은 그러지 않아도 인제 모은 돈이 장가 밑천은 된다고 속으로는 은근히 색시의 물색을 하던 참이었다. 눈이 번쩍 띄어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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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작년부터 색씨감을 골라 왔디만. 암만 두구 골라 봐야 그저 고년만큼 참헌 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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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메 있소? 색 색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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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삼월이 말이야, 내 참 고년을 뉘가 얻어가노 했더니 그년이 님재게로 감메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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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응팔은 말없이 잉큼 놀라며 눈이 둥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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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를 얻어 준다면 입이 헤 하고 벌어질 줄 알았던 초시는 까닭을 몰라, 더 말을 못하고 응팔의 태도만 이상히 바라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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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머시오? 삼 삼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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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팔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이 재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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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년 참 오즐기 똑똑헌 년인가, 사람은 그저 인물이 밴밴해야…… 남재두 늘 지내 보디만 고년 참 얌전허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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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삼 삼월이 말이디요?”
 
52
“글쎄 삼월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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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요, 삼 삼 삼월인 시시시 싫에요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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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니! 삼월이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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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 그렇기 곱 곱게 생 생긴 걸 누 누구레 얻 얻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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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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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히도 사람을 믿는 그였지만 삼월이 같은 애교 있고 반반한 계집은 생각만 해도 이에 신물이 돌았던 것이다. 이미 자기를 옭아먹고 달아난 그 아내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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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밤마다 모여서 시시덕거리는 걸 그저 놀기 좋아 그러거니 했더니 후에 알고 보니 고년의 애교에 모두들 반하였던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근덕시니 요년은 휘여져서 자기를 돌려 따던 것이다. 그러면서 없는 정을 있는 체, 속으로는 딴전을 펴는 그것은 그 여자의 밴밴한 데 숨어 있는 요염이 시키는 짓이라 하여 저 여자가 이쁘다 하고 눈에 띄는 여자면 그는 장래 아내로서의 대상을 삼자는 데는 마음에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좀 못난 듯 하면서 입이 무겁고 상판이 좀 넓적지근하고 두터운 가죽에 털색인 두미두미한 여자가 아내로서의 영원한 대상 같았고, 그리하여 그런 여자를 꿈꾸어 왔던 것이다. 응팔이가 삼월에게 눈치를 달리 가졌다는 것은 그것은 다만 홀아비로서의 여자이므로서 대하는 그러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지 결코 삼월에게 마음이 쏠렸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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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이 상 좀 내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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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상히 재끗하는 삼월의 그 감기는 듯한 눈초리는 웃지 않아도 웃는 것 같은 옛날 아내의 그 사내들을 호리는 그 맛보다 어덴지 더 힘센 매력이 있어 보였고, 그것은 그대로 거짓말 같았다. 이제 그 아름다움으로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삼월이를 응팔이는 아내로 얻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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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초시님! 난 그 그 서마울 댁 행낭 영감 딸 닌 닌네가 마 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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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은 이 동네의 처녀들 가운데서 그 닌네를 제일리라고 눈여겨보고 점을 쳐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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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그걸 아, 그 믹째길! 그년이 임재 왜 시집을 못 가구 스믈이 넘도록 파묻혀 있는 줄 알마? 어찌면 색이라니 계집이란 첫째 인물이야, 아, 게다가 눈을 두다니! 아여 생각을 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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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어서 하는 말만이 아니라, 초시의 실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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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난 난 이 이미네(아내) 고 고훈 건 시 싫에요. 재 재미있게 대리구 살내기 이미네디 보기만 고 고흠은 머 멀 허갔소 그까짓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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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렇대두 그래. 어서 내 말을 들으시? 내 말이 그저 옳슴머니. 내이 봄으루 아여 성례꺼지 시켜줄 터인데, 머, 날 받아서 삼월이 머리만 얹음은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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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는 누가 듣기나 하겠다는 듯이 혼자 이렇게 단정을 하고 문갑위에서 역서를 집어들고 손마디를 짚어 돌아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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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보름이 대통일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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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인제 작정은 다 되었으니 다시 더는 여기에 이의를 말라는 듯이, 그리고 위엄으로 응팔의 마음을 누르려는 듯이 애햄 하고 시침을 따며 되사리고 앉아 재떨이에다 담뱃대를 타앙 탕 뚜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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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응팔은 손에 일이 오르지 않았다. 가복(家覆),개바주, 담뜸, 이런 것들이 어서 치워져야 또 자롱 논에 거름도 실을 터인데 초시는 삼월이를 기어이 붙여 주게 차부이니 도무지 일에 기운이 탁 빠졌다. 그러면서 삼월이야 무슨 죄련만 그년은 보기만 하여도 머리칼이 오싹거리고 눈꼴이 가로서 볼 수가 없었다.
 
72
삼월이 귀에도 이런 말이 벌써 들어갔는지 전에 달리 자기는 대하기를 수줍어하며, 그러는 태도에 나타나는 그 얌전한 듯한 가운데 마음을 끄는 매력엔 천하에 있는 간사와, 요염과, 표독이 다 숨어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데 얼크러져 꼬리를 두르는 날에는 영락없이 자기는 옛날의 그 아내쩍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만 같았다.
 
73
그러니 삼월에게 대한 홀아비로서의 마음조차 삼월에게는 느껴지지 않고, 무슨 못 볼 요물을 보는 때와 같이 삼월은 먼발치에서 빛만 보여도 등어리에 찬물이 와닿는 듯이 오싹거렸다. 그러면서 자연히 나가지는 말에도 삼월을 대해서는 밉게만 쏘아지는 것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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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한 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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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이 새 좀 뽑아 디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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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삼월이가 이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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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구 구무 여우 같은 년, 넌 넌 손 손목재기가 부러졌네? 쌍 쌍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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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팔은 저도 모르게 욕을 쏘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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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삼월이 감정이 또한 좋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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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좋다! 꼴이 꼴 같지두 않은 게…… 누구레 욕 주머닐 달구 다니나! 야하, 참!”
 
81
하고 응팔을 능멸히 보는 삼월은 가늣하게 감기는 눈이 새침하게 흰자위만을 반득시며 코웃음이다.
 
82
그러면 응팔은 또 약이 오른다.
 
83
“요 요 패 패라한 년 머 머시 어드래?”
 
84
“욕 안 허구 말 못 허나?”
 
85
“요 요 요년 봐라! 요 요 요 마 마주 시는 꼴!”
 
86
“아이구 저것두 머 수커라구 계집을 없우리 여기나……”
 
87
“아, 아니 요 요년이 누 누 누굴 보구……!”
 
88
“어서 새나 뽑아 거리라우? 잔말 말구?”
 
89
그러니 응팔이가 참나, 삼월이가 지나, 마주 서 입론만 되게 되면 흔히는 둘이 다 볼이 부어서 하는 씨근씨근, 하나는 쌔근쌔근 걸려댄다.
 
90
이럴 때면 초시는 화해를 붙이노하고.
 
91
“닭쌈 또 하나 머? 내외 쌈은 칼루 물 베긴 걸......”
 
92
하고 이미 부부가 다 되었다는 뜻으로 이렇게 능청스럽게 사이에 들어서 중재를 시킨다.
 
93
그러나 아무리 삶아야 응팔은 삼기지 않았다.
 
94
초시의 속살을 넘겨짚지 못하는 응팔은 초시가 자기를 그처럼 생각하고 인물이 깨끗하고 된 품이 얌전하다고 삼월이를 얻어 주려 싫대도 우기는 초시의 그 자기를 위하는 정성에는 이심으로 감사하나 백년해로를 눈앞에 놓고 일생을 바라볼 땐 아무리 마음을 지어서 먹으려 하여도 삼월이와는 살 수가 없었다.
 
95
그리고 그 반면으로서 서마울 댁 행랑 영감의 딸 닌네만이 자꾸만 잊혀지지 아니하고 알뜰하게 마음을 붙들었다. 프르둥둥한 살빛, 넓적한 상판, 웃을 때 헤 하고 있는 대로 벌어지는 커다란 입, 비록 그것이 색으로 마음을 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한 모습에 담기운 순진한 마음은 조금도 사람을 속일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러한 계집이 언제든지 자기의 짝이리라 생각하면 그저 그리운 것이 닌네뿐이었다. 그래서 그 닌네를 만일 얻는다면 하고 장래의 살림 배포까지 짬만 있으면, 아니, 일을 하다가도 문득 손을 놓고는 머릿속에다 베풀어 본다. 그러면 그것은 몇 번이라도 전날의 그 아내쩍 살림보다는 순조로, 그리고 단란한 가정이 웃음 속에서 깨가 쏟아져 보였다.
 
96
 
97
“내 내 거돈 거 일 일 칠백 단 단 낭이디요?”
 
98
응팔은 사월 보름이 오기 전에 그 돈을 초시에게서 찾아내어 닌네를 살려고 액수를 다시금 단단히 따지었다.
 
99
“그래 거 잊어선 안 됨매.”
 
100
“이 잊다니요! 나 이전 거 거 다 달라구요?”
 
101
초시는 뜻밖의 돈 채근에 눈을 치뜬다.
 
102
“돈 내 돈 이전 다 달란 말이우다.”
 
103
“아니 머시?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원! 삼월이 몸값을 이백 원으로 친대두 삼십 원 돈이나 부족헌데 거 무슨 말이야?”
 
104
“자 이 이건! 걸 누 누구레 삼 삼월일 머 얻갔대기 그르우?”
 
105
“아, 머시? 아 사월 보름으루 날까지 받아놓지 않었나?”
 
106
“난 난 삼 월인 글쎄 시 싫어요. 다 다른 데 난 당 당갤 갈래는데 머 멀그루우?”
 
107
“아아니 건 안 될 말이야. 천부당 만부당두 푼수가 있디. 내가 님재 장갤 보낼라구 오륙 년을 힘써 왔는데 또 이건 동네에서두 다 아는 일이웨, 그러니 님재가 장갤 잘못 들었다면 그래 남들이 누굴 욕하겠나? 날 욕할 테야 날, 그래서 내가 여지껏 똑똑한 계집을 고르누라구 힘을 써 왔는데 삼월일 마대구 다른 델 가겠대면 난 그 돈 못 줘, 못 주구 말구, 돈 주구 욕 얻어먹으려구? 바루 내가 삼월일 싫대면 또 다른 데얻어 볼 법은 해두. 그렇지 않아? 생각을 해보시.”
 
108
“글세 난 닌 닌넬 얻을래는데 머 멀 그르우? 일 일천 칠백 단 단 낭다 달라우요?”
 
109
응팔은 날마다 졸랐다. 그러나 초시는 종시일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110
이러는 가운데 갈 줄만 아는 세월은 사월 보름도 며칠밖에 앞으로 더 남겨놓지 않았다. 이 며칠 안으로 성공을 못 하는 날이면 삼월은 꼬리가 떨어질 것이요. 그러므로서 자기는 행랑방으로 옮아앉아야 될 판이다. 그러면 삼월은 명색이 아내, 그렇게 밴밴한 계집이…… 생각하면 뒤에 올 것은 이를 악물고 다한 머슴살이 육 년의 결정이 삼월이 요염속에서 제멋대로 놀아나는 밑천밖에 더 될 것이 없을 건 빤한 일 같았다.
 
111
응팔은 생가하다 못하여, 한 방도를 생각했다. 받을 수 없는 돈을 받자면 돈을 훔쳐낼 수밖에 없다는 어리석은 지혜가 그것이었다. 훔쳐 낸다고는 하지만 내 돈이기에 내가 임의로 하는 것이니 죄라기보다는 당연한 일일 것 같았고, 또 훔쳐내서는 곧 그 뜻을 알릴 것이니 죄랄 것이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112
일단 이런 계획을 세워놓고는 응팔은 날마다 밤이면 돈을 훔쳐낼 그 기회만을 엿보는 것이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었다.
 
113
오늘 밤도 사랑 윗목에서 그렇게 억센 일에 종일을 지친 피로한 몸이었건만 깊이 잠이 들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초시의 드는 잠만을 엿보기에 온 정신을 모으고 있었다.
 
114
원체 한번 잠이 들면 깰 줄을 모르고 내자는 습성이 있는 초시인 것은 예전부터 알아 오는 일이지만 그래도 하고 용단을 못 내 오던 것이, 오늘 밤은 거기에 콧소리까지 높이 들려 아주 잠이 깊이 들었다는 것이. 용기를 돋구게 했다. 그런데다가 벽장문 열쇠를 열어야 할 것이 늘 근심이던 판에 오늘 따라 낮에 벼 판돈이 그대로 초시의 조끼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은 응팔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115
응팔은 마침내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숨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어둠 속을 두 다리 두 팔로 짐승같이 조심조심 초시의 머리맡으로 기어가 낮에 보던 그 불룩한 누런 봉투를 조끼 주머니에서 그대로 들어 냈다.
 
116
이튿날 아침 봉투가 없어졌다는 것은 곧 탄로가 되고, 한 방에서 잤다는 이유로 혐의의 화살은 응팔에게 쏘였다.
 
117
응팔은 자기가 가져야 할 액수만을 갈라 가지고 나머지를 미처 들여놓지 못한 것만이 미안했다. 초시의 눈앞에서 봉투를 가르자니 초시가 그 봉투를 보고는 그대로 있지 않을 것 같아 주위의 화살이야 오건 말건 그 돈을 가르기까지 넣어두리라 사랑 부엌 아궁에 불을 지피고 있는 동안, 뜻밖에도 시꺼먼 그림자가 문 앞에 마주 선다. 순사였다.
 
118
“난 난 죄 죄 없어요. 일 일천 칠백 단 단 낭을 내구, 디 디리놓문 회 회계가 되요. 일 일천 칠백 단 단 낭은 다 내 돈이에요.”
 
119
응팔의 목소리는 부지깽이를 잡은 손과 같이 떨렸다.
 
120
“정 정말이에요. 일 일천 칠 칠백 단 단 낭은 다 다 내 내 돈이에요.”
 
121
그러나 순사는 그의 팔목을 묶는 데만 열심이었다. 그리고 꽁꽁 묶어서 뒤로 늘이운 포승의 끈을 말고삐처럼 붙들고 끌어냈다.
 
122
응팔은 분명히 자기가 주재소로 끌리어가고 있는 것은 현실인 줄 알면서, 왜 끌리어가는지, 무엇이 죄 될 것인지를 똑똑히 분간할 수 없는 것이 그저 꿈속 같았다.
 
 
123
〔발표지〕《농업조선》(1939. 5.)
124
〔수록단행본〕*『한국문학전집』제12권(민중서관, 1959)
【원문】마부(馬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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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부 [제목]
 
  계용묵(桂鎔默) [저자]
 
  193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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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부(馬夫)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