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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빈민굴에 사는 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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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8.18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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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빈민굴에 사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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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에 대한 작가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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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창작상으로 보다도 먼저 한 사람의 현대인으로서 현대에 대하여서 과연 얼마나 참다운 매혹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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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 말하면 커다란 세계적 빈민굴 속에 처하여 있는 셈이 아닌가. 겉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겹겹의 고난의 빈민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옷을 헐벗었을 뿐이랴, 마음도 헐벗고 품격조차 남루한 것이다. 이 누굴(陋窟) 속에서 대체 무슨 매혹을 느낄 수 있을까. 감수적 순시적 매혹일까. 수난적 비극적 쾌감에서 오는 통절한 매혹일까. 아울러 다 병적이요, 역설적 아이러니에 지나지 못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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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빈민굴 위에도 달빛은 비치니 찌그러진 지붕 차양 아래에 누더기를 떨쳐입고 웅크리고 앉은 빈민의 자태는 월광이 그 위에 비낀 까닭으로 소주관인(小主觀人)만이 아니다. 누구의 눈에도 속일 수 없이 아름답게 어리우는 것은 사실이다. 월광 아래에는 회화가 있고 목가가 있으며 도시 밤은 요술적이어서 아무리 초라한 뒷골목에라도 새빨간 상화(想華)가 피고 검줏한 신비가 둘러치고 야릇한 요지경이 엿보인다. 술에 취한 피에로는 찡그린 얼굴 위에 일부러 웃는 면을 쓰고 가짜로 즐거운 춤을 추어 보이는 그 사이로 악의 꽃이 새빨간 버섯같이 점철하고 있는 것이 빈민굴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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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굴에는 월광면이 있을 뿐이랴. 가혹한 일광면이 있는 것은 물론이니 날이 밝아 대낮 아래 드러난 굴 안의 풍경은 앙상하고 참혹한 것이다. 뼈 가상이만 남은 현실에 지쳐 사람들은 노여워하고 울고 싸우고 들볶으면 보기에 딱한 구세군은 몇 소대씩 거리에 흩어져 북을 울리며 대도(大道) 연설을 하다가는 도리어 퉁방을 받고 말을 빼앗긴다. 구세군 가운데에는 자칫하다가 자기 인식을 과대히 하고 민심을 계산한 나머지에 헛되이 수다한 말만으로 ─ 참으로 말만으로 구세군이 아니다 ─ 메시아의 구세주로 자임하는 소극(笑劇)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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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빈민굴의 현실과 빈민굴의 도덕에서 무슨 매혹을 느낄 수 있으랴. 일광면이나 월광면이 다 같이 답답하고 침침하여 참된 매혹의 대상에서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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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할 것 없이 큰소리도 하고 잠꼬대도 하는 것은 ‘있는 말 못하면 밸나는 노릇’ 이므로요, 그것조차 안하면 문화활동이니 무엇이니 조차 없어질 것이므로요, 또 한 이유로는 간행물의 학예면이 백지가 되어서 재미가 없어지므로이나, 그러나 따져 보면 지금으로서는 참말이라는 것은 없을 수 없는 형편으로 차라리 거북같이 침묵함이 가장 어진 방책인 것이다. 우매한 뭇사람에게 꼭 알려야 할 말 그것을 알리지 않으면 뭇사람이 큰 손실을 입을 진리, 그러면서도 누구나가 말할 수 있는 흔하고 허름하고 진부한 말이 아니다. 꼭 자기만이 발견하고 독창하여 알고 있는 진리 ─ 가 있을 때면 차라리 실명씨(失名氏)의 희사(喜捨)로서 뭇사람 앞에 던짐이 찬앙(讚仰)할만하고 수긍한 일이지 누구나와 같은 이름을 크게 내걸고 단조한 연설조를 되풀이한다면야 열정보다도 제2심진(第二心進)의 계산이 들여다 보여 결국은 오십보백보이다. 한 주막에서 두 동무가 한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계집을 희롱하다가 한 걸음 거리에 나서자 별안간 옷깃을 세우고 한 사람은 일광면을 고함치고 한 사람은 월광면을 우러러보았을 때, 두 사람의 행동을 적청(赤淸)으로 가를 수는 없는 것이니 일광면을 고함친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생활태도의 전제가 이미 같은 이상 고함은 다만 수입된 감정일 뿐이지 그 속에 절실한 감동과 엄숙한 지도성이 있을 수 없는 까닭으로다. 그래도 그 편이 무위보다는 낫다면 문제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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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빈민굴적 성벽과 도덕률의 범람 속에 무슨 매혹을 느낄 수 있으랴. 빈민굴이 세계적으로 개조되고 이러한 성벽과 도덕률이 없어지는 날 참으로 매혹의 대상은 구석구석에 충만함이다. 그 개조는 항상 걸인낭을 턱에 걸고 부질없이 제목을 찾아서는 사람을 분류하는 오미질하는 독존적 연설쟁이의 말에 의하여서 성취된다고 생각한다면 하늘을 흙탕물 속에서 빼어 냈다고 오인함과도 같이 어리석은 것이며 참으로 마음 있는 모두의 손에 의하여서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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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37. 8. 18
【원문】마치 빈민굴에 사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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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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