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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있는 남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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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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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있는 남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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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편지 어제 잘 받았읍니다. 감기가 드셨다니 걱정입니다. 동경 날씨는 늘 흐리터분 하다는데 빨리 낫지 않으면 큰일이지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따뜻한 온돌방이 아니니 누을맛 없을까봐 걱정입니다. 잘 조리하도록 하세요. 여기도 오늘은 새벽부터 가는비가 보슬보슬 내립니다. 새로 돋은 화초잎에는 기름을 친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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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세요? 植[식]이는 요즈음 너털웃음을 웃고 갈강이가 났답니다. 당신이 가실때 이리저리 뒤집기만 하더니, 어제부터 조금씩 기어가는 모양인데 꼭 헤엄 배우는 노릇 같아요. 낑낑 용을 쓰며, 기를쓰며, 올라가는 꼴이란 최대의 노력이지요. 오늘 아침에도 물그릇을 엎질러 왠통 야단이 났지요. 이렇게 날마다 저지래가 늘어가나 더 귀엽기만 해가니 큰일이지요. 지금은 편지 좀 쓰느라고 재켜놓고 사과 한쪽을 주었더니, 그 뽀족뽀족 나온 이로 아작아작 깨물어 보는군요. 당신이 사주시고 가신 딸랑이도 빨아 먹기만 하더니, 이제는 제법 흔들고 가지고 놀줄도 안답니다. 그래도 곧 실증이나서 집어 팽개치기가 일쑤지요. 벙글벙글 웃는 얼굴과 귀염이 똑똑도는 모든 동작들 나만 보기에는 너무도 아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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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植[식]을 제일 사랑하는가 봐요. 그 까닭은 영순이를 잃어버린 공허와 비참으로 상처가 너무 컷기 때문이어요. 어린애가 귀한것을 가슴이 저리도록 느낀탓도 있지만. 이제 나이로는 철이난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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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이들을 나보다 너무 사랑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지금 생각하니 철없는 마음이었음을 알겠어요. 이것이 솔직한 내 고백이랍니다.
 
6
英[영]이, 철이는 식이에 비하면 어른들이지요. 건강하게 학교에 열심히 가지만 저녁이면 좀 쓸쓸해 보여요. 그야 당신이 언제나 사들고 오시는 과일 꾸러미 생각이 더 나겠지만, 오래도록 당신의 애무를 못 받아서 그럴법도 하지요. 요사이는 달걀을 삶았다가 오면은 하나씩 줍니다. 밤에는 여전히 꿀물을 타먹고 또 과일도 가끔 사다 먹지만, 당신은 혼자서 동그라니 앉았거나 누었을 생각을 하면 미안합니다. 철이는 병정을 수 백명씩 그려놓고 빙글빙글 웃으며 중얼거리는 양이 더 심해졌다우. 어제는 제 외삼촌이 목도(木刀)를 둘 갔다 주었지요. 하나는 제 동무거라고 ─ 두 놈은 어둡도록 그 큰칼을 휘두르며 대장 부대장 노릇을 하고들 논 모양이얘요. 잘적에는 머리맡에다 목도를 세워 놓으며, 도적놈이 와도 걱정 없다고요. 아닌게 아니라 밤이 돌아오면 공연한 공포중에 걸려 단잠을 놓쳐버리기가 일쑤고요. 양(羊)이란 놈이 덜거덕거려도 소스라치게 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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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니 아무리 약해도 당신을 얼마나 굳세게 의지하고 살았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결혼이후 혼자있기가 처음이라 그런지요. 덧문을 걸고도 가위로 단단히 빗장을 질러야 좀 마음이 놓여요. 호호호, 빨리 오셔야지 내가 말라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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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그저께 새끼를 오글보글 일곱놈이나 낳은 모양인데 잘 안보여요. 꼭 쥐새끼같이 빨간데 ‘털도 아직 안 난것이’영이 철이는 못 만져봐 엉덩이가 들썩거려 큰일입니다. 그것도 제 새끼는 대단히 중하게 여기는가 봐요. 양(羊)은 여전하지요. 억년 처녀로 늙을 작정인지 새끼 낳을 생각도 않고 비지만 먹어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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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豊川) 조카에게서 문안 편지가 왔고요. 문학청년들에게서 세통. 한글, 文章[문장], 朝光[조광], 女性[여성], 朝鮮文學[조선문학]이 어제 오고요. 주문편지 열 댓장이 왔는데 오늘 다 처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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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방궤장수, 떡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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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떠나실 예정이얘요. 퍽 오래된 듯하고 어찌 사는 듯 싶지 않은게 이상해, 아마 당신이 일년만 안온데도 큰일, 제일 아이들이 사랑에 굶주리고 나혼자 또 다 거두기 힘들고, 쓸쓸하군요. 미인이 발에 걸린다는 동경서 괜히 바람나리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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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번에는 선물 대신에 건강을 지고 오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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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착실한 남성으로 보다좋은 아버지요. 현부형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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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얼마나 사셨어요? 이브가 볼책도 좀 안 사오시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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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위하여 「キスクイサジ」만든 답니다. 참 이건 정말이야요. 공연한 ‘드라이브’는 스톱. 그리고 아이들도 먹을것보다 입힐것을 염두해 두세요. 비상시 아니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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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방 미다지 앞에는 등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어제부터 물들기 시작 했답니다. 대추나무도 기름진 잎이 뿔돋고, 작약도 봉오리가 여덟개. 해당화는 수많개 맺었는데 오실때 쯤은 피겠지요. 목국수도. 지금은 노란 장미의 한 철이랍니다. 집안에는 향긋한 냄새로 가득 찼어요. 빨리 오세요. 최 스피드로 일을 보시고요. 그럼 안녕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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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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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내 淑姬[숙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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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서간집 「나의 花環[화환]」에서
【원문】멀리있는 남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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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영(盧子泳) [저자]
 
  1939년 [발표]
 
  서한문(書翰文)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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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