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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산예술운동의 별고(瞥顧)와 장래의 전개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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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10~
권환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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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예술운동의 별고(瞥顧)와 장래의 전개책
 
 
 

1. 1929년의 별고(瞥顧)

 
 

A. 우리 운동의 일반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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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을 방향 전환기, 1928년을 프롤레타리아 수난기라 하면 1929년은 계급분석기, 소부르조아 청산기라 할 수 있다. 벌써 우리가 협동 투쟁하기에 너무도 이해가 괴리되는 부르계급은 더욱 그 두각을 높이 들어 ××[일본] 제국주의자와 야합하기를 공연(公然)히 하며 중간에서 동요하는 소부르 또 일시적으로 우리 진영에 부기(付寄)해 있던 소부르는 추풍에 낙엽같이 부르 진영으로 몰락해 따라갔다. 이것이 1929년 우리 조선 프롤레타리아운동의 과정(過程) 현상이었다.
 
 
 

B. 국민문학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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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과정 현상을 당면할 때에 알아야 될 것은 어떠한 사물이든지 그 자체가 강화되고 발전이 될수록 그 자체와의 대립물은 극히 과장적 공허 방대(尨大)한 형태로 출현하며 자체내의 불순물, 부기물(附寄物)은 점진적 혹은 급속적으로 이탈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된다고 추호도 비관하거나 기우할 필요가 없다. 하고(何故)냐 하면 그것은 우리 자체의 위축과 퇴보를 의미한 것이 아니고 발전, 강화, 건전의 증거가 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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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의 우리 예술운동도 역시 그러한 과정 현상에 있었다. 그래서 광란같이 닥쳐오는 반동적 파도 가운데 소위 국민문학 ─ 민족문학 ─ 국수문학이 풍선같이 방대(尨大)한 기치를 들고 왔다. 또 동시에 반동문학의 창작집, 시집, 잡지가 미증유하게 거량적(巨量的)으로 가두에 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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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소위 국민문학의 정체란 무엇이냐. 민족의식 국민문학, 또 국민문학과 무산문학 외(外)의 차이점, 그것은 거년(去年) 여러 동지들이 누차 논파한 것이니 또 새삼스럽게 갱론(更論)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만 일반 부르조아 문학의 특징에 대해서 약론(畧論)하므로 그것의 설명을 대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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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조아 문학작품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주의와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많이 발견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그들의 일관적(一貫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즉 ‘개인주의 사상’이다. 그들도 새로 사회를 관찰한다. 그들도 민중의 기아를 보고는 개탄도 하고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자기 예술을 위함에는 그것이 모두 한 이용물 또 포막(布幕) 위의 필름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순사자(殉死者)이요, 예술의 순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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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민중의 규호(叫呼)와 기아를 듣고 보더래도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대책을 강구한다든지 헌신적으로 노력하기는 전(前)에 먼저 그 현상을 자기 예술의 필름으로 섭취한다. 극히 냉정한 태도로, 그래서 그들 예술 작품은 의조(擬造)하며 민중의 환심을 사매(詐買)한다. 말하자면 사회의 현상, 민중의 생활 ─ 민중의 기아, 규호(叫呼)도 오로지 그들 예술작품의 한 소재와 가미제로 이용할 뿐이다. ─ 아 그들의 위대한 고만(高慢)이여!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문예작품에 나타난 주의와 사상은 결코 그들이 그 주의와 사상을 민중에게 고취 선전하며 사회를 ××[변혁]시키며 민중을 구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문예작품을 쓰기 위해 그것을 이용한 따름인 것은 그들도 자만삼아 시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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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우트만의 『직장(職匠)』도 직장들의 동맹파업을 선동하여 쓴 것이 아니고, 입센의 『인형의 가(家)』도 부인 행방운동의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님은 누구라도 부인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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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중(其中) 전자는 하우트만이 자기 조부의 직장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쓴 것, 후자는 어떤 날 많은 부인들이 입센에게 감사드리러 가니까 입센은 “당신들은 조금도 감사할 것 없다. 나는 다만 이 사회를 진실하게 묘사하였노라” 하였음을 보아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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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문예가가 그 작품을 어떠한 주의 사상으로 가장하는 의의와 목적은 대개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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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이 생활하는 그 사회의 의식 ─ 사상이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유설(流說)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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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히 작품의 소재나 내용으로 이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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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의 사조 경향을 부정확하게 혹은 왜곡하게 간파하고는 민중에게 아유(阿諛) 부용(附容)하려고 그것 ─ 주의, 사상 ─ 을 가면적 장식으로 이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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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떠한 진보적 주의, 사상을 가진 문단을 극히 보수적 심리로 시압(猜壓), 또 대항하려고 일부러 어떤 반동적 기치를 세우는 것, 요약해 말하면 어떠한 주의, 사상을 고취 선전하려고 문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정반대로 어떠한 문예를 창작하기 위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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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광수씨의 『무정』, 『개척』을 민족주의를 위해, 다시 말하면 그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썼다고 스스로 한 말은 의심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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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모든 일체가 자기와 자기 예술을 위함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개인주의적 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상이 민중의 머리에 침투됨을 따라 그 운명은 자결(自決)될 것이고, 그것이 아직 머리를 들고 민중에게 무한한 해독을 끼치는 한에는 우리는 그것과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C. 소부르조아의 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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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본질, 의의, 역할을 가진 소위 국민문학이 우리 전선 앞에 대치했었던 일편(一便) 또 한가지 우리 운동을 착란케 한 것은 우리 진영 안에 있는 소부르조아의 반동이다. 우리는 반동적 소부르조아가 어떠한 동기로 어떠한 야욕으로 우리 진영 안에 유입하여 안연무치(晏然無恥)하게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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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한 문예의 유파적 견지로 재래의 문예엔 압증(壓症)을 감(感)하고, 형식내용이 새로운 프로문예에 일종의 모던 탐기심(耽嗜心)을 느끼고 들어오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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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층계급 생활에 헐가적(歇價的) 동정심 그것을 글로 쓰면 곧 프로문예인 줄 오인하고 들어오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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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중의 주조(主潮)사상이 무언가를 간파하고, 자기와 자기 예술도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고 들어오는 이(간파하는 머리는 부르문사보다는 다행히 영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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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문예운동도 부르 문예의 그것과 같이 극히 ‘화려’한 줄로 오상(誤想)하고 일종 허영심으로 우뚝 들었다가 맹혹(猛酷)한 탄압에 감내치 못하여 각각으로 몰락해 가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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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동기와 야욕으로 들어온 소부르조아 분자가 우리 진영내에 많은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그들의 의식정도는 극히 저천(低淺)하여 아무 이론적 파악도 없고, 의지는 극히 비겁하며 생활은 전형적 소부르 생활을 하면서 사회주의의 숙어(熟語) 몇만 기억 활용함으로 민중을 기만한다. 그래서 그들은 내로는 우리 진영을 착란시키며, 외로는 부르문예가의 외모(外侮)를 산다. 그러면 그들의 갈 길과 말로는 어느메냐. 물론 물을 것도 없이 부르문예가와 타협 야합, 그렇지 않으면 진퇴유곡의 딜레마 길에서 영원히 몰락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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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이여 소적(小敵)이라고 경시하지 말고 외적(外敵)과 같이 내적(內敵)을 경계할지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모든 반동 문예가와 같이 추구 배격하자.
 
 
 

D. 과거 1년간의 총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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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객관적 주관적 정세에 있는 외(外)에 또 어느 나라 어느 식민지에도 볼 수 없이 가혹한 ×××[탄압 속]에 있는 우리 무산 예술운동은 우리 동맹의 1, 2지부를 예외로 하고는 결코 활발히 전개 되었다 할 수 없다. 물론 끊임없이 왁자지껄하게 투쟁은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체를 강화시키고 외적(外敵)을 추격하는 투쟁이 되지 못했다.
 
31
첫째, 평론은 부르 잡지 신문을 통해 다수(多數)히 나왔지마는 형식이니 내용이니 하는 공론(空論)을 반복하기에 어떤 새 이론을 전개할 여유는 없었으며, 창작도 역시 다수히 나왔으나 그것은 거진 다 소부르 문학청년이 탐독함에 적의한 작품이고 우리 근로대중의 요구하는, 다시 말하면 노동자 농민을 아지 프로하여 ××[투쟁]의 길로 지도할 만한 작품은 2, 3편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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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경성(京城)에 있는 우리 프로예술동맹 본부를 중심으로 한 우리 예술운동의 과거 1년간의 회고이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비교적 유리하고 소부르 분자가 적은 프로예술동맹 일본 동경(東京)지부에서는 활발한 투쟁으로 많은 전적을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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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지인 《무산자》가 모든 테러와 모든 반동이 격류와 싸워가며 2호까지 발간하였다. 그 가운데 기재된 작품의 대부분은 기교는 아직 숙련되지 못한 감이 있을지언정 오로지 노동자 농민을 아지 프로하기 위한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도 우리가 특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당]과 문학과의 관계에 대한 이론전개이었다. “문학은 ×[당]에 소속 한 것이다. 예술가도 ××[전위]라야 한다.”는 말은 수십년 전에 우리 일리이치가 계시해 준 이론이지마는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구체적으로 전개하지 않았나. 또 많은 노력과 활동으로 우리 조선서는 아직 효시인 프로연극을 공연하려 경성까지 왔다가 ××의 물결에 밀려서 묵묵히 돌아간 것도 기억해 둘 일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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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총결산적으로 본 1929년의 우리 프로예술운동은 어떠한가. 결코 침묵하지도 않았고 퇴보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의 몸에 붙어 있던 ‘풋살’이 빠지고 나니 다소 ××[왜소]해졌다 할 수 있고, 또 우리 자체 강화의 필요를 더욱 통감할 뿐이다.
 
 

 
 

2. 금후의 전개책

 
 

A. 우리의 투쟁목표는 부르조아 예술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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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고한 우리는 그러면 장래의 우리 운동은 어떻게 전개할까. 문제를 추상적으로나 관념적으로 생각하면, 그 문제는 영원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구체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생각하여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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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프로 예술은 관념형태의 무기이다. 그러나 이 무기의 목표는 결코 관념세계만이 아니다. 환언하면 우리의 투쟁 대상은 부르조아 문단만이 아니고 부르조아사회 전체일 것이다. 부르조아 예술은 부르사회 하층구조를 토대로 한 관념형태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토대되는 하층구조를 ×× 또 ××하기만 하면 그 상층 구조의 일부인 예술은 필연적으로 그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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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르조아 예술은 그 자체의 지위와 역할이 전연 우리와 다르다. 왜 그러냐 하면 부르조아 문예가의 대개는 부르조아가 아닌 소부르 계급에 속한 자로 사회와 민중에 극히 무관심, 냉정할 뿐 아니라 문예란 사회정책에 이용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물건으로 아는 문예관을 가졌으므로, 그들은 결코 문예로써 부르조아 사회를 근위(近衛)하는 무기를 삼으려고는 않는다. ─ 이것도 역시 극단적 개인주의의 일례(一例)이다. 그들은 다만 자기들의 신성한 천국인 예술을 사수 보호코자 하여, 또 그들 천국의 거괴(巨怪) 가공할 대립물인 우리 예술을 극히 시압(猜壓)하는 심리로 우리와 사광적(死狂的)으로 투쟁하는 것이요, 결코 전 프로 사회를 대상으로 투쟁할 용기와 위공심(爲公心)은 가지지 못하였다. 그들의 유일한 투쟁 대상은 오직 우리 프로문예이다. 그래서 그것을 목표로 하고 맹진(猛進)해 온다. 그러므로 그들의 형식이 무어니 내용이 무어니 기교가 어떠니 하는 말류(末流)문제만 이론(理論)삼은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 프로 문예가는 그러한 말류 문제만으로 장황하게 그들과 싸울 시간과 지면은 없다기 보담 너무나 아깝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실로 3등 병졸에 지나지 않는 그들만이 아니고, 전 부르조아 사회일 것이다. 요약해 말하면 우리 프로예술은 관념의 무기이다. 그러나 우리 투쟁대상은 부르 사회의 한 관념세계에 지나지 않은 부르 예술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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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구구하게 말한 것은 과거의 우리 프로문단을 보면 우리의 투쟁목표를 부르사회 전체에 두지 않고, 부르 문단만에 두지 않았는가 한 감(感)이 있는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중대한, 또 전체적 문제이지만 우리에게는 말류적(末流的) 문제밖에 안되는 설세(屑細)한 문제를 가지고 장황한 시간과 지면으로 처리해 가면서 싸우지는 않았는가 한 까닭이다. 우리는 투쟁목표를 부르조아 예술에만 두지 말고 부르조아 전체에 두자.
 
 
 

B. 독자대상은 노동자 농민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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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은 이상에 말한 것 같이 결코 부르조아 예술만이 아니고 부르조아사회 전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술작품의 독자대상은 부르조아도 아니고, 소부르조아도 아니다. 물론 다소는 반동적 소부르조아와 중간에서 동요하는 소부르조아들을 아지 프로하여 우리 진영으로 유도시키는 효과는 없지 않지마는 그것은 아주 적은 부목적이다. 유일한 주요목적은 우리 노동자 농민계급을 아지 프로하여 미조직된 그이들을 조직시키고, 조직된 그 조직을 더 강화케 하는 데 있다. 우리가 부르나 소부르의 정체를 폭로하는 논박문을 쓰더라도 그것은 결코 그이들을 조직시키고, 조직된 그 조직을 더 강하게 하는데 있다. 우리가 부르나 소부르의 정체를 폭로하는 논박문을 쓰더라도 그것은 결코 그이들을 충고하여 반성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 아니 우리는 충성(衷誠)으로 그들의 반성을 구해도 우이독경(牛耳讀經)과 같이 추호의 자성(自省)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우금(于今)까지의 경험으로도 아는 바가 아니냐. ─ 그들의 오류를 발적(發摘)하고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여 전(全) 우리 프롤레타리아와 같이 성토하는 동시에 또 우리 프롤레타리아는 그것을 은감(殷鑑)으로 하여 자숙자계(自肅自戒)하여 의식을 더욱 고양시키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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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우리 문예의 독자 대중은 부르·소부르가 아니고 우리 노동자, 농민인 것을 강조해 말한 것은 과거의 우리 프로문예를 보면 독자 대중을 소부르조아로 한 작품이 많지 않는가 한 감(感)이 있는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임화군의 시에 「어머니」, 「우리 오빠와 화로」같은 것은 어떤 센티멘탈한 여성을 머리에 두고 쓰지는 않았는가 한 생각이 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억추(憶推)에 지나지 않지마는 적어도 노동자 농민의 감정으로 그들을 얽히기 위해 쓰지 않은 것만은 어느 독자이든지 다 동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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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작품은 어떤 소부르 문사로 하여금 헐가(歇價)의 감상적 동정의 눈물은 짜내게 하였지만 노동자 농민으로 하여금 주먹을 부턱 쥐고 이(齒[치])를 갈며 전투의 불꽃 속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의 대부분도 거진 다 부르 문사와 소부르 문사를 독자대상으로 하고 쓰지 않았는가 한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 즉 현재의 소부르 심리를 다분(多分)으로 가지고 있는 프로문사들은 아직 재래의 소위 문단의식이 머리에 농후하게 잔재하여 그들이 어떤 작품을 쓸 때는 반드시 기교와 구조밖에 비판하지 못하는 소부르 문사들을 머리에 두고 그이들의 감상을, 그이들의 탐독을 구하기 위하여, 또 그이들의 호평을 얻기 위하여 쓰는 이가 많은 때문이다. 물론 전연(全然)히 노동자 농민의 예술을 위한, 즉 진정한 맑스주의적 문예비판가가 우리 문단에 많이 있다 하면 그러한 작품은 도리어 냉평(冷評)과 배척을 받을 것이니까 필연적으로 그 그림자가 희소해지겠지마는, 우리는 그러한 비평가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우리 문예의 비평은 소부르 비평가들의 깨바래지 말고 오로지 노동자 농민들에게 구하여 그들의 감정으로 그들의 일용 언어로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들이 잘 감동하게 써야 한다. 그래서 그이들이 잘 이해하고 그이들이 잘 감동되면 그리될수록 그 작품은 우리의 요구하는 작품이요, 우리가 높게 평가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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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부르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리는 대신에 전위들을 독자대상으로 하고 쓴 듯한 작품도 많이 있다. 그러한 경향은 《무산자》에 실린 창작들 중에 많이 보였다. 예를 들면 최성수군의 「봄」과 서상호군의 「피」같은 것이다. 그 두 편은 노동대중의 착취 실상과 단결적 투쟁 생활을 쓴 것이다. 보담 ‘정식’이와 ‘진수’란 두 지도가의 개인적 투쟁 생활을 중심으로 하여 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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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의 예술은 지도가들의 희생적으로 영웅적으로 악전고투하는 생활 역사를 여실하게 묘사하여 그들에게 얽히면 그들은 다대한 감동과 격려를 얻어 그들의 가슴에 끓는 ××[혁명]적 열혈(熱血)은 배가(倍加)로 끓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예술은 그것보다도 극소수 전위들을 감동 격려시키는 것 보다 그들 전위 …(중략)…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문예 독자의 주요대상은 노동자 농민대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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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는 대중화 문제를 다시 운운할 필요가 없다. 왜 그러냐하면 우리 문예의 주요 독자대상이 노동자 농민인 이상 문예가는 자기 나라의 노동자 농민의 생활 감정을 잘 포착하여 그들이 잘 감동되게 그들이 잘 아지프로되게 제작만 하면 되는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본래적 프로문예나 대중적 프로문예를 운운할 필요는 없지 아니한가.
 
48
본래의 예술은 노동자 농민의 것이다. 노동자 농민을 본위로 하는 예술을 제작하자. 그래서 그들에게 감상과 비평을 구하자.
 
 
 

C. 우리는 어떻게 탄압의 격류를 소항(遡抗)할까?

 
50
우리는 언제든지 노동자 농민을 본위로 하는 예술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은 상론(上論)한 바와 같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작품을 제작 하더라도 그것을 임의대로 발표하여 노동자 농민에게 읽히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큰 문제이다. 제작해도 읽히고 보일 수 없으니 제작을 중지한다. 제작을 중지하고 있으니 못 움직이던 기계에 녹(錄)피는 것처럼 제작의 능력과 에네르기도 감퇴해진다. 그래서 원래부터 고양된 의식과 확호한 의지를 가지지 못한 이는 필연적으로 소부르층으로 몰락해간다. 뿐만 아니라 극히 비굴한 소부르분자는 이 탄압을 구실로 하여 스스로 안일 도피의 나라에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51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과정(過程) 시대에 있는 우리 프롤레타리아운동에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부하린이 말하는 것 같이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조아가 봉건사회 안에 있을 때와 달라서 부르사회 안에 있을 그 동안은 항상 문화적으로 압박받는 때문이다.
 
52
(9행삭제)
 
 
53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좌익소아병자인 트로츠키처럼 과정 시대의 ××[귀족]문화를 부인하고 말 것인가. 또 어떤 좌익 사회민주주의자의 말과 같이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붓대를 돌려 ××××[부르사회] 비위만 맞춰줄 것이냐, 또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을 궤상(机上)의 두뇌와 사고만으로 해결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예술을 제작하는 동시에 또 ×[사]력을 다해서 우리 운동을 저해하는 모든 ×××[저해자]와 ××[조직]과 ××[투쟁]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도의 합법성을 득취(得取)하여야 할 것이다.
 
54
(19행삭제)
 
 
55
여기 대해서는 거년(去年) 《무신자》안에 동지 김두용군이 상론 한 바 있으므로 다시 구구히 췌론(贅論)치 않지마는 우리 언제든지 노동자 농민의 조직을 강화시키고, 또 ××의 격류와 싸우는 과정에서 진정한 과정 시대의 ××적 문학이 나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D.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보이고 읽힐까

 
57
우리가 예술품을 제작하여서 노농 대중에게 읽히려면 첫째는 검열 문제일 것이고, 둘째는 방법 문제일 것이다. 출판, 공연, 배포 등의 방법이 교묘치 못하면 현재의 검열제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도 경비 부족, 능력 불급(不及) 기타 이유로 노농 대중의 것이 되기 불능(不能)할 것이다.
 
58
첫째, 우리의 기관지, 창작집같은 것을 출판할 때, 부르조아의 그것과 같이 반드시 훌륭한 표지, 미려(美麗)한 지질, 선명한 인쇄, 풍부한 매수만으로 하여 된다고 하지 말고 5, 6매로나 2, 30매로나 또 등사로나 원고 초본 그냥 그대로나 하여 가성적(可成的) 무료로, 그렇지 못하면 지렴(至廉)한 책가(冊價)로 배포 혹은 회독(廻讀)을 시킬 것이다. 물론 우리도 부르조아와 같이 훌륭한 양식을 다 완비하여 그들께 주면 좋지마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늘 경비문제가 있고 또 사실 그 안에 기재된 작품만이 반동적이 아니면 어떠한 소박한 양식으로도 노농 대중을 아지 프로함에 조금도 그 효과를 감소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리 노농 대중은 그들의 생활과 일치한 그렇게 소박한 양식을 더 친밀한 감(感)으로 볼 것이다.
 
59
그러나 형태 양식이 그렇게 소박한 대신에 내용은 엄선주의로 하여 암만 세련된 기교이나 조금이라도 반동적 경향이 있는 것은 절대로 그들을 읽히지 말고, 그리고 배포는 각 노동조합과 유기적 연락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것이 소부르 문학청년의 손을 떠나 노농 대중들 속에까지 민활하게 투입할 것이고, 또 그들도 그것이 소부르 문학청년의 소일물이 아니고, 오로지 자기네들의 유일한 독물(讀物)이라고 할 것이다.
 
60
잡지 외 창작집도 역시 그러한 소박한 양식과 엄선한 내용으로 하며 배포도 가두서점보다 각 조합을 통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연극, 음악 같은 것도 그러한 방법으로 할 것이다. 부르들의 그것과 같이 반드시 세련된 기술, 굉대(宏大)한 규모로 사치한 장소에 하여야만 되는 줄로 알지 말고 질소(質素)한 장소, 소박한 기술로 하되 그것의 내용이 되는 각본과 가사만은 엄선으로 하고, 또 그것을 담당하는 기술자는 의식이 어느 정도까지는 고양된 자아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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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극, 음악, 미술은 ─ 아직 그 방면의 기술자가 많이 나지 않음은 우리 프로예술운동을 위해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반면에 반동예술은 전성시대다, 무슨 회의 공연이니 무슨 단의 가극이니 무슨 양의 무도이니 무슨 악성(樂聖)의 독창이나 무슨 회의 전람이나 하여 다투어가며 민중을 마취 미혹시키려 가두로 나오지 않느냐. 우리는 소인극(素人劇) 한번하고 ─ 그들은 요태괴영(妖態怪影)으로 자행 발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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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프로예술가는 어서 우리의 기술을 양성하고 조직을 굳게 하며 우리의 전람회, 우리의 음악회, 우리의 연극을 민중의 앞에 내어놓자.
 
63
그래서 우리의 ××[혁명]적 문화 ─ ×××[노농자]예술을 창조하자.
 
 
 

E. 우리 진영내의 소부르를 정리하고 조직을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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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과 같은 모든 계획을 실천적으로 전개하려면, 먼저 우리 진영 내의 모든 소부르조아들을 정리시켜야 할 줄 안다. 그들은 전장(前章)에도 말한 바와 같이 참으로 우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것보다 다른 여러 가지 이기적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가면을 쓰고 안연(晏然) 유입하여 두터운 가무연치경(假無然恥京)해서 있는 그들이다. 그래서 그 가면만 박취(剝取)하면 음아간(陰兒奸)한 소부르조아 정체가 요물같이 나올 것이고, 또 기회 보아 조만간 반동진영으로 귀화할 그들이다. 그래서 그이들은 진영의 무해무이물(無害無利物) 뿐만이 아니라, 첫째 우리 진영을 착란시키고, 둘째는 민중의 유혹을 사게 하여, 셋째는 부르들의 외모(外侮)를 사게 하는 큰 장애물이다.
 
66
우리는 그러한 불순분자를 다 폐청(廢淸)시키는 동시에 또 우리 재래의 조직을 고쳐야 할 것이다. 조직에 대해서는 달리 상론하겠지마는 첫째 우리 조직을 순전한 기술자만으로 하자.
 
67
그리고 우리들의 개인적 침퇴(沈退) 원인은 진정한 생활을 하지 않은데 있는 줄 안다.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 함은 우리가 뉘보다 잘 아는 맑스주의의 ABC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의 예술은 그 사회의 물질적 생활의 반영인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창작 예술은 역시 그 개인 물질적 생활이 반영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이 ×××[노농자] 예술을 창조하려면 그들은 반드시 생활을 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만일 그이가 소부르·부르 세계에 소요하면서 프롤레타리아적 예술을 창조하려면 망령이 인간의 일을 하려는 것처럼 너무 잠월(潛越)하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예술가도 될 수 있는 대로 노농대중과 같이 ×××[노농자]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며 또 그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생활을 실제로 관찰해 보아야 힘있고 생기 있고 피끓는 산 우리의 예술작품을 지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그들의 생활이라든지 ─ 같은 것을 전연히 머리 속 상상만으로 날조하면 그야말로 순 관념적 환영적 작품밖에 짓지 못할 것이다.
 
68
그러면 정치가의 역할과 예술가의 역할을 혼동한 말이 아니냐고 할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정치가의 역할은 어떤 사회를 지도, 운전, 통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회 안에서 사회적 생활을 하는 모든 대중을 다 정치가라 할 수 없는 것이다.
 
69
그래서 우리 예술가도 반드시 정치적 지도가 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정한 프로계급의 생활을 하기로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프로계급의 생활은 무엇이냐
 
70
(이하 5행 략)
 
 
71
그러면 또 어떤 이가 우리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또 그것을 읽히고 무대에 올려 보이고 노래해 드리고 그려서 보이는 그것이 즉 ××[노농] 생활이 아니냐고 할 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한 ××[노농] 생활이다. 훌륭한 ××[노농] 생활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술은 관념형태의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 정치의 물질적 생활이 빈약하면 상층구조인 관념 형태도 역시 빈약할 것이다. 부르예술가도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그렇지 못한 주로 19세기말의 예술가 즉 자신의 사회적 생활과 자신의 창작하는 예술에 모순과 거리가 있는 예술가(소부르 계급에서 생장하여 부르 계급의 예술을 창작하려니까)또 자신이 생활하는 사회에 부조화와 절망을 느껴 멀리 도피한 예술가들의 창작 내용이 극히 빈약함을 볼 수 있다.
 
72
우리 프로예술가도 내용이 풍부한 예술품을 창작하려면 역시 프롤레타리아의 물질적 생활을 흡족히 체험하여야 된다. 예술이라는 의식 세계에만 국한해 살면 의식은 빈약할 것이고, 또 결국 부르 사회의 말기 예술과 같이 사회생활과 모순 유리된 예술이 되기 쉬울 것이다.
 
 
73
나는 우리 무산예술 운동의 장래 전개책에 대한 이상 소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동지들 앞에 부르짖고자 한다.
 
 
74
1. 우리는 목표를 부르 문단만에 두지 말고 ××××[부르 사회]에 두자
 
75
1. 우리는 문단의식을 버리고 독자 대상을 노동자 농민으로 하자.
 
76
1. 우리는 작품을 제작하는 동시에 그것을 노동자 농민에게 읽힐 최대한도 의 합법성은 ××[전취]하자.
 
77
1. 우리는 우리의 잡지와 창작집을 기어이 부르들의 그것과 같이 완비(完備)한 형태로 간행하려 하지 말고 끊임없이 내자.
 
78
1. 그러나 간행물을 노동자 농민에게 배포할 때 가두서점으로 하지 말고 각 조합을 통해 하자.
 
79
1. 작품 평가의 표준은 아직 프로적 효과의 여하에 두자.
 
80
1. 우리 진영 내에 아주 여망(餘望)없는 ─ 의식적으로 반동하는 소부르 분자를 정리해 버리자.
 
81
1. 동맹의 조직을 ×××××[볼세비키화]하도록 개(改) 조직하자.
 
 

 
 

3. 해결된 문제 몇 가지

 
 

A. 예술은 과연 ××가 못되고 예술운동은 프롤레타리아 계몽운동이냐?

 
84
“예술의 ××로 ××의 예술에로”하는 말은 우리가 벌써 묵게된 슬로건이다.(이하 3행략) 예술도 적으나 크나 우리의 (중략)가 되는 줄은 누구나 다 이의없이 인정하는 바이다.(이하 5행략)
 
85
또 어떤 동지는 우리 예술운동을 일종(一種) 프롤레타리아의 계몽운동으로 아는 이가 있다. 이것도 역시 시인할 수 없다.(이하 7행략)
 
 
 

B. 예술작품과 삐라의 차이

 
87
예술은 아지 프로의 ××[실현]이다. 아지 프로의 작용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 작품에 많은 평가를 주며 아지 프로의 작용이 있으므로 인(因)하여 우리 예술운동이 ××[혁명]운동에 한 차륜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술작품과 삐라가, 다시 말하면 그들의 본질 아지 프로의 작용 및 그 효과에 어떠한 차이점을 가졌느냐.
 
88
첫째 삐라는 어떤 ×××××××× 그 사실을 그대로 들이 ××××××××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케 함에 대해서 예술작품은 그러한 사실이 없더라도 ─ 어떤 사실을 모델로 하여 쓴 것도 있지만, 그것도××××××××하는 것이 아님 ─ 객관성에 타당한 사건을 구상하여 ×××××하는 것이다.
 
89
둘째는 삐라는 사실의 기록이 간약(簡約)하여 구체성이 없고, 아지프로가 노골적임에 대하여 예술품은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기록하나 아지 프로는 은유적이고, 삐라는 그 작용이 일시적이나 효과가 강렬함에 대하여 예술품은 그 작용이 시간적 제한은 없으나, 효과가 완만하다. 그리고 삐라의 행동적이고 직각적(直覺的)임에 대하여 예술작품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90
요컨대 어떤 삐라를 훨씬 구체화시키고, 형태화시키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 삐라보다 구체성을 가졌다고 그 효과가 후자보다 다대(多大)하다는 것은 아니다. 효과작용은 각기 장단처(長短處)를 가졌으니 그것의 다소(多少)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C. 프로문학의 기교에 대하여

 
92
부르 문예가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유일한 무기는 형식 ─ 기교론이다. 우금(于今)까지 부르 문예가들이 우리에게 무수히 던진 화살은 실상 이 형식론 한 가지 뿐인 것을 부르 문단의 평단을 보면 알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충고는 조금도 감사를 느낄 것이 없다. 왜 그러냐하면 그들은 자가(自家)문학의 형식 기교에 대해서만 논급할 자격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들이 아무리 창작의 기교에 능숙하고 형식이론에 박학이라도 그것은 부르 문예에 국한한 것이고, 프로문예에 대한 그것은 전연 몰이해한 까닭이다. 망건 쓴 도학자와 같이 전기, 산소에 대해서, 생황금고(笙黃琴鼓) 가진 아악사(雅樂士)와 같이 피아노, 바이올린에 대해서 여언(與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조금도 그들의 두뇌가 저능한 허물이 아니다.
 
93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모든 것을 비판, 논의할 자격을 가졌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의 예술은 몰락되어 가는 과거의 예술이고, 우리의 것은 그들보다 진보한 미래의 예술이니까. 현재와 미래는 과거를 논의할 수 있지마는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다.
 
94
형식 ─ 기교는 종미(種美)의 문제인데 두 계급의 미의 관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알면 그들이 그렇게 유유하게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르 사회의 미에 대한 관념은 유연 섬약의 표현을 미라 했다. 그들이 월(月), 화(花), 여성을 많이 찬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 관념의 극단화한 데카당 사상은 병쇠 퇴폐까지를 미의 상징이라고 알았다. 그러나 프로사회의 미에 대한 관념은 그와 전연 달라 건전, 강대(强大), 즉 생성 발전의 표상을 미라 한다.
 
95
그러면 어떠한 물질적 근거로 미의 관념은 그렇게 정반대로 수이(殊異)한가. 그것은 물을 것도 없이 전자는 퇴폐 몰락하는 사회에서 생긴 관념이고, 후자는 생성 발전하는 사회에 생긴 관념인 때문이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한다는 원리도 여기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프로문예의 형식은 내용이 그러함과 마찬가지로 부르 문예의 그것과는 전연 수이(殊異)한 형태로 발전한다.
 
96
환언하면, 프로문학의 내용을 부르 문학의 형식으로 구성, 표현하지 못한다. 생, 거문고로 피아노와 기타의 곡조를 탄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프로문학은 과정시대에 있는 것만치 아직 소박한 형태로 정돈 세련이 되지 못한 것은 우리도 자인(自認)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라 또 우리 문학의 내용의 발전을 따라 정돈 또 발전되는 것이요, 결코 과거 사회에 있는 과거 문학자들에게 교시와 충고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D. 실천적 객관주의에 대하여

 
98
우리 사회주의자는 일체의 비과학적 주의 ─ 주관주의를 배척한다. 우리는 엄정한 과학주의자 ─ 현실주의자 ─ 객관주의자이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역시 그러한 태도로 창작하며 감상한다.
 
99
그러나 우리의 소위 ‘객관주의’는 재래 - 맑스 이전의 모든 소박 유물론자들의 말하는 객관주의, 즉 주관과 통일 없는 비실천적 객관주의와는 엄정한 대립을 해야 한다. 우리의 객관주의는 주관과 통일한 실천적 객관주의이다.
 
100
그러면 주관과 통일한 객관주의는 무엇이냐. 가령 사람이 어떠한 기계를 제작하려면 그는 반드시 모든 것을 과학에 절대 복종하여 일개의 나선이나 일개의 치차(齒車)이나 일체를 물리학적 원리에 복종하여 제작할 것이다. 그 원리에 추호라도 반역하면 그것의 제작은 벌써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학의 원리에 절대 복종하여 제작한 기계는 결국 인간의 이용물이다. 환언하면, 그 기계를 제작할 시(時)의 엄정한 과학적 태도 안에는 인간의 주관이 순연(純然)히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인간의 주관이 과학적 원리를 임의로 견제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인간의 주관이 과학적 원리에 절대 복종함에만 가활성(可活性)이 있는 것을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마는, 그래서 그 기계가 인간에 아무 이용이 못된다면 그 기계를 제작하는 인간적 의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기계는 인간이 제작 아니한 천연물과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101
또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이니 ‘의식한다’의 말을 쓰게된다. 어떤 것을 의식한단 말은 결코 어떤 것을 이상(理想)한다든지 우주에 없는 비과학적 원리를 인간의 두뇌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존재해 있는 과학적 원리 ─ 필연성을 인간이 다시 의식한다는 말이다. 의식해서 실감한다는 말이다.
 
102
그러므로 어떤 사회 평론학자가 이때까지의 사회(원시사회, 봉건주의사회, 자본주의사회)와 미래의 사회(사회주의 사회)를 대분(大分)한다. 전자를 생성적 사회 ─ 비의식적 사회(개개의 의식은 있었지만), 후자를 구성적 사회 ─ 의식적 사회라고 하는 것이 정당한 말이라 할 수 있다.
 
103
우주에 있는 만유의 과학적 원리 ─ 필연성 ─ 객관성은 인간이 의식하고 또 실천한 후에야 인간의 주관이 통일한 후에야 인간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예술의 창작과정도 그러하다. 예술도 반드시 과학적 ─ 현실적 ─ 객관적으로 창작하며 감상해야 한다.
 
104
그러나 그 철두철미한 객관주의 속에는 인간의 주관이 통일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 현실주의적 ─ 객관주의적으로 창작한 예술품은 결국 인간에 이용됨에만 그것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마치 인간의 제작하는 기계가 인간이 그것으로 발명을 한다든지 인조면을 짠다든지 하여 직접 간접으로 이용함에만 그것의 제작의 의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장래 과정 시대의 인간 사회의 ×××은 ××××××이고, 또 우리 자신이 ××××××× 인고로 우리의 과학적 ─ 현실적 ─ 객관적으로 창작한 예술작품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관이 자연적으로 통일될 것이고, 또 통일된 후에야 우리의 의의 있는 예술이 될 수 있다.
 
105
물론 전에도 누언(屢言)한 바와 같이 전 사회의 현실성 ─ 필연성 ─ 객관성이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의 주관을 제한, 통제하는 것이고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의 주관이 전 사회의 현실상 필연성 ─ 객관성을 제한 통제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마는, 그래서 우리는 예술작품을 창작할 때에 사회의 현실성 객관성을 수유(須臾)라도 잊지 아니하지마는 또 반드시 우리 프롤레타리아운동에 ─ 우리의 성장 발전에 이용되게 유리하게 쓰는 것을 수유라도 잊지 아니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아무 이용 안되는 아무 의의 없는 모든 예술을 배척하며(설령 그것이 우리 운동에 어떤 방해를 주지 않더라도) 그러한 것은 일지일구(一字一句)라도 지면과 시간을 낭비해 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소녀가 어떤 청년에게 실연을 당해 자살을 하였든지 말았든지, 어떤 검은 개 한 마리가 하얀 눈 속으로 달아나든지 말든지, 이형식이가 구취(口臭)를 걱정하며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보든지 말든지 병옥이가 붉은 줄수건을 가졌든지 말든지(이광수의 『무정』에서) 어떤 촌사람이 서투른 1, 2, 3, 4숫자로 수첩에다가 여비를 기록하든지 말든지 또 어떤 곁에 있는 사람이 단 수박 하나를 4분(四分)으로 짤라 먹는 것을 보고 침을 꿀떡꿀떡 삼키든지 말든지(채만식씨의 「세 길」에서) 우리에게는 아무 관계없는 아무 필요없는 사실은 일언일구(一言一句)라도 공연(空然)하게 쓰지 않는다.(그리고 과대적(誇大的)으로 공상적으로 1930년 초 조선의 현재에 있어서 연전 연승한 ××상황을 쓴다든지 벌써 ×××××××××××××× 사실을 쓰지도 않지마는).
 
106
이것이 우리의 소위 객관주의와 재래의 - 맑스 이전의 객관주의가 수립된 결정점(決定點)이다. 우리의 객관주의는 주관과 통일된 객관주의이다. 실천적 객관주의이다. 여기서 또 재래의 소위 사실주의에 대한 비판이 절로 결정될 것이다(과거의 소위 사실주의자는 사회를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관찰치 못하므로 그들의 작품을 사실적으로 쓰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나는 우리 맑스주의 문학이라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하는 소이(所以)이다.
 
 

 
 

4. 결론

 
 
108
우리는 과거를 회고하고 도연(徒然)히 참회만 한다거나 장래를 바라보고 막연히 좌대(坐待)만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진로는 유일의 도(道)에 있다. 즉 ××[투쟁]의 길이 있을 뿐이다. ××[투쟁]도 막연한 ××[투쟁]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아지 프로적 효과가 많은 작품을 많이 제작하는 동시에 그것을 노동자 농민에게 읽히고 보일 합법성을 전취하도록 맹렬히 ××[투쟁]하며 또(이하 1행략)
 
109
그러나 이상과 같은 영웅적 ××[투쟁]은 오직 예술가 개인이 소부르 의식을 근절적(根絶的)으로 청산하며 또 우리 진영 내에 타락된 소부르들은 정리한 후에야 가능할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이하 20행략)
 
 
110
─《중외일보》(1930. 1. 10-31)
【원문】무산예술운동의 별고(瞥顧)와 장래의 전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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