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무상의 낙 ◈
카탈로그   본문  
1935.3
백신애
1
무상의 악
 
 
2
억지의 말 ─ 청춘(靑春)을 너무나 아끼는 반동(反動)으로 생겨난 자위(自慰)의 말 같지마는 나는 나이가 먹어간다는 것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 또 모─ 든 것이 조락(凋落)해 간다는 것을 슬퍼하거나 애처로이 한탄을 하거나 아깝다고 바둥바둥 헛 애를 써 보거나 해본 적은 암만 생각해 보아도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斷言)한다.
 
3
어릴 때는 나는 언제나 아주머니만치 커서 바느질을 맘대로 곱게 해볼까.
 
4
조금 더 커서는 언제나 나도 오빠처럼 어려운 책을 배우나.
 
5
학교에 다닐 때는 언제나 나도 선생이 되어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놓고도 걱정 없이 천연스럽게 앉았을 수 있을까.
 
6
학교를 나와서는 어서 훌륭한 소설가(小說家)가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모양으로 나는 오늘까지 한 번도 내 맘이 만족(滿足)하여 이만하면 되였으니 언제까지든지 이대로만…… 하고 가는 세월이 안타깝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언제든지 늘 오늘과 다른 내일(來日)이 어서 왔으면 하고 苦待[고대]할 뿐이었다.
 
7
항상 앞날에 살고 내가 서 있는 오늘이라는 것에 미련(未練)이 없다. ‘투르게네프’의 〈명일(明日)〉이란 산문시(散文詩)를 사랑하면서도 근본(根本)에 있어 나는 그와 반대(反對)이다. 그는 모 ─ 든 삶의 뜻이 앞날에 있는 것이다. 앞날은 죽음의 무덤뿐이라고 했으나, 나는 모 ─ 든 이 삶을 앞날에 걸어 두었을 뿐 아니라, 그 앞날이 무덤만 보는 것인 줄도 알면서 도로이 무덤이 고대(苦待)되어 못 견디게 한다.
 
8
이것은 死○[사○]을 바란다는 것이 아니다. 무덤으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瞬間)에라야만 나는 나의 삶을 완성(完成)시킨 결론(結論)의 마지막 자(字)를 쓰게 될 것인 동시(同時)에 적거나 크거나 옳거나 그르거나 비로소 세상(世上)에 나왔던 나라는 일개 인간(一個人間)으로서의 역할(役割)을 다─ 한 종결(終結)의 만족(滿足)을 느끼게 해줄 것인 까닭이다.
 
9
우주(宇宙)에 무상(無常)이 없고 늘 청춘(靑春) 뿐이라면 나는 나의 삶의 의의(意義)를 모를 것이며 끝없는 우울(憂鬱)에 빠지고 말 것 같다. 조락(凋落)이 있는 까닭에 신생(新生)이 있으며 무상(無常)을 아는 까닭에 희망(希望), 용기(勇氣), 정열(情熱), 진취(進就)가 있는 것이니까…….
 
10
노망(老妄)을 노망(老妄)인 줄 깨닫지 못하는 고로 늙은이다운 것이며 철없음을 철없음인 줄 깨닫지 못하는 곳에 참 젊음이 있다.
 
11
내가 잔뜩 점잖해지리라고 주의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不拘)하고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어린 아이들과 철없이 들판에 뛰어다니다가 ‘언제나 철이 들겠나’라고 어른에게 놀리움을 받으면 깜짝 ‘아이쿠 점잖해져야지!’ 하고 후회하는 것도 가(假)짜 아닌 나의 청춘(靑春)이 용솟음치고 있다는 증명(證明)이다. 일부러 청춘(靑春)을 아끼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이미 청춘(靑春)이 신발한 때일 것이다.
 
12
나는 아직 젊은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항상 花[화]○春城[춘성]에만 매달리려고 무리(無理)한 애를 쓰지 않는 뜻은
 
13
‘일만화초(一萬花草)가 방창(芳暢)하는 춘광(春光)에 나도 함께 피어나지 못하면 성하(盛夏)의 해당화(海棠花)를 동모하지. 그렇지도 못 해지면 구추상강시(九秋霜降時) 향기로운 국화(菊花)와 같이. 그렇지도 못하면 만년청춘(萬年靑春)의 송백(松柏)으로 백설(白雪)의 꽃이라도 기어코 피게 해 볼 것이다.’
 
14
라고 꽃이 못 핀 이 오늘에서 덧없이 제 맘대로 가 버리는 봄만을 구태여 무리(無理)를 해 가며 붙잡으려 헛 애나마 쓸 턱이 없다.
 
 
15
봄이 가 버리던, 늙음이 닥쳐오던, 무슨 상관이리요, 즐거운 내일(來日), 희망(希望)의 내일(來日), 내 삶의 나뭇가지에 꽃 피는 내일(來日). 그 날만이 나에게 고대(苦待)될 뿐이다.
 
16
이 고대(苦待)가 참된 나의 청춘(靑春)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청춘(靑春)을 굳게 잡고 놓지 않으리라…….
 
17
2월 10일
 
 
18
─《삼천리》(1935. 3).
【원문】무상의 낙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5
- 전체 순위 : 6139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392 위 / 1803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무상의 낙 [제목]
 
  백신애(白信愛) [저자]
 
  193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무상의 낙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