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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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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1.28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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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
 
 
 

1

 
3
인간이 생활하여 나아가는 태도에는 창조적인 것과 추종적인 두 가지가 있다고 구별되는데 요사이 청년들의 기개와 태도를 통틀어 보면 대개는 이 침 뱉을 만한 절망과 무기력에서 나온 추종의 생활을 이읏게 되어 그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영영 그칠 줄 모르는 현실의 악으로 굴복하게 되었다. 굴종 그것은 무언중에 그 상대방을 지지함이다.
 
4
“그는 시인이다”와 “그는 인간이다” 하는 둘찌간에서는 어느 것이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나는 “인간이 되겠다”라고 맹세를 할 것이다 또 참다운 인간이 되려 노력을 할 게다. 시라든가 노래 혹은 춤 이러한 것은 우리 인생에서 떼일 수 없는 생활에의 한 태도이나 또한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나는 정상한 인간의 행로 가운데 문학의 길을 밟으려 한다.
 
5
우리는 문단에 있어서도 신문학을 제창하고 나온 몇 사람 선배와 그들의 지나간 행동을 볼 수가 있다. 문학에 뜻을 둔 청년으로서 누구나 새로움을 찾고 향상되기를 바라며 그 만만한 의도에 패기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무거운 전통과 습속에 눌리며 모진 괴로움을 맛보고 싸워나왔다.
 
6
이 점까지는 얼마나 눈물겨운 보람이겠느냐! 하나 다시 그들의 업적을 돌이켜볼 때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싸워온 게냐고 깊이 추궁할 때에 다만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어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7
그들은 어떠한 목적으로 신문학을 제창했는가! 문학의 출발점이란 방탕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는 말이 지금에는 가장 세력 있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방탕에서 방탕으로…… 헤어나지는 못하며, 그들은 그래도 신문학을 제창하였다. 글 쓰는 사람의 이름과 의복이 다르다고 새로운 것은 아닐 터인데 그들은 새로운 문학이라고 자처도 하였다.
 
8
신문학을 찾으면서도 신문학이 되지 못하고 그 생명력까지 잃는 치명적인 결점은 그들의 신문학이란 결국 형식에서 발전을 그치었기 때문이었다. 있는 집 자식들이 비단의 종류와 의복의 스타일, 섬단하는 방법, 이러한 것으로 새것을 찾고 유행을 시키려 들며 그것을 자랑하려는 심리와 같이 그들은 베니를 어떻게 바른다든가 매니큐어는 어떻게 한다는 외화의 충동만으로 창작(예술)에 대한 태도를 하여왔기에 주요한 가장 주요한 인간의 본질과 창작의 내용을 잊어버렸다.
 
9
그들의 생활 태도란 결국 현실에 대한 맹종이나 굴종이나 두 중간이었으니까 그들로서 한껏 용단을 한다면 그것은 겨우 조그만 습관과 형식을 깨뜨리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생존 방법을 하는 그들의 투쟁 목적이란 결국 옛날의 양반들이 관리 노릇을 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듯이 그들은 문단에 오르기 위하여 하는 수단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은 이기적 수단 이외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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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목적이란 이처럼 천박하고도 비루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신문학에 대하여서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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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문학이란 무엇이냐! 나는 그것을 형식만으로서 신(新) 자를 넣어주고 싶지 않다. 습관과 생활이 그러하여서도 그랬겠지만 대체의 인텔리라는 작가들은 모조리 창작 방법에서 내용을 잊은 것 같다. 진정한 신문학이란 형식은 어떻게 되었든지 우선 우리의 정상한 생활에서 합치 될 수 없는 문단을 바숴버리고 진실로 인간에서 입각한 문학 즉 문학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문학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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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문단이 생긴 지 근 30년에 신문학이 어느 것이었느냐! 하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지용을 찾을 것이요 또 기림을 찾을 것이요 이상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나 이분들의 작품을 들어 나는 신문학이라고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이분들이 신문학을 세우려 함에 많은 노력과 공헌을 남기었으나 그 의도만으론 신문학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다.
 
13
조선에 새로운 문학이 수입된 지 30년 가차운 동안 어느 것이 진정한 신문학이었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백조≫ 시대의 신경향파에서 ‘카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그룹이 가장 새로운 문학에 접근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2

 
15
오랜 동안 육체 노동과 지적 노동의 분리 분업은 불선(不善)한 인간들에게 그 약점을 이용당하였고 내종에는 그것이 습관화하여 이용하는 것이 잘난 것처럼 여겨졌었다. 물론 그 영향으로 소위 문단이란 것도 그러한 방향으로 쏠리고 또 그것이 절대의 세력까지 잡았던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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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이 벌써 이와 같은 모순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이 새로운 문학의 주창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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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이 물속에 살면서 물을 모르는 것과 같이 인간도 인간을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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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지식인이라는 것은 대개가 인간의 의무를 모르거나 또 그 의무를 숨기려 하는 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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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또한 다른 동물과 같이 기아와 추위에서 죽지 않기 위하여 불가불 일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그래서 저를 기르고 황천(皇天)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이 활동은 타 동물과 다름이 없이 인간에 있어서도 또한 본래는 고통이 아니라 기꺼움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생활을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제 대신으로 남을 뚜들겨 부리어, 저는 무엇을 해야 옳을지도 몰라 심심해지고 그 결과는 제 심심풀이를 하기 위하여 닿는 데까지 우열(愚劣)한 짓과 고약한 것을 고안해 내고 또 한편 그 사람들의 대신으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제 힘 이상으로 맹렬히 일하게 되어 저 때문이 아니고 남 때문에 일하게 되는 것으로 그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고 톨스토이는 그의 일기 속에 이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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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막연하나마 인간의 의무에 대하여 저촉되었다. 인간이 직업을 분리, 분업하게 된 원인은 첨은 서로 편의를 도웁기 위한 일이었는데 일면의 교활한 지혜는 이것을 뒤집어놓았다.
 
21
인간의 사회란 각자의 편의를 위한 집단 생활일 것인데 어찌하여 인간들은 자기의 의무를 이행치 않는가! 그리고 대체의 인간(그 당시 당시) 지배자들은 인간을 위한 즉 자기가 집단 생활을 하는 의무상의 행동을 잊어버렸나! 그것은 결국 우리의 눈앞에 이기의 근성이 떠나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22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지혜란 제 의무까지 무시하며 가면서 그릇 해석된 쾌락을 느끼기 위한 수단은 아니리라고. 그것은 우리가 모두 보고들은 게 그러한 완곡된 관념이요 지혜이었기 때문이지만 이러한 것은 하루바삐 버릴 필요가 있다.
 
23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에서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24
인간의 의무! 즉 자아만을 버린 인간 전체의 복리를 위하여 문학도 존재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내가 말하는 신문학이란 과거의 잘못된 근성(지말적인)을 버리고 널리 정상한 인생을 위한 문학이 신문학인 줄로 생각된다.
 
25
“현실―자연과 사회의 모든 현상―은 예술의 제재로서 선택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인이 어떠한 제재를 선택하여 오든가 또는 어떻게 그것을 처리하는가 하는 설혹 무의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시인이 현실에 대한 태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모리야마(森山啓)는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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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것은 우리가 생활하는 속에 그 문학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
 
27
작가들 중에는 흔히 순수한 예술적인 작품을 찾고 무당파적(無黨派的)인 것을 주창한다. 하나 이것은 직업의 기술화로 인하여 생겨나온 오류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요 따라서는 그들의 좁은 의견과 굴종은 현실에 모순과 합류하기에 가장 쉬운 것으로 되어버린다.
 
28
우리는 터무니없이 중압되는 현상에만 어지러워 실망, 아니 나아가서 절망 이외에 희망과 반성을 가질 겨를도 얼마 있지는 않았다. 절망! 그곳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굴종이나 자살이다.
 
29
나는 이 기회에 말하고 싶다. 이때까지의 나는 절망과 심연의 구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뜻 모를 비명을 부르짖는 청년이었다고, 하나 나는 다시 희망을 갖는다.
 
30
그것은 내가 나의 습관 속에서 벗어나 참으로 인간의 의무를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기꺼이 인간의 의무를 이행하기에 노력하겠다. 내가 이제부터 쓰려는 문학은 나의 의무를 위한 문학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진정한 신문학이라고 생각되고 또 이 길을 밟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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