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문예평가(文藝評家) 함일돈(咸逸敦) 군(君)의 기극(奇劇) ◈
카탈로그   본문  
1931.12
채만식
1
文藝評家[문예평가] 咸逸敦[함일돈][군]의 奇劇[기극]
 
2
─ 그의 小人的[소인적] 편견과 무지를 폭로함
 
 
3
『문예월간(文藝月刊)』 10월 창간호의 「9월 창작평」에서 동(同) 필자 함일돈 군은 졸작 「사라지는 그림자」(東光[동광] 9월호)를 평하고 그 결론에 이르되 “이 인원(仁源)이(작중의 일 인물 - 蔡[채])의 의식이야말로 곧 작자 자신의 의식일진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작품 급 작가가 프롤레타 리아의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단언한다”고 하였다.
 
4
이 일절로 보아 적어도 『문예월간』에 의한 함일돈 군의 「9월 창작평」 을 통하여서는 채만식이라는 작자와 및 그 작품 「사라지는 그림자」와는 완전히 반(反)프롤레타리아 작가요 반프롤레타리아 작품으로 규정이 된 셈이다.
 
5
프롤레타리아 문예이론의 A B C도 알지 못하는 ‘박쥐’류 평자의 아희적 (兒戱的) 독단으로 기존의 엄연한 사실이 좌우될 리는 만무한 것이다. 그러 므로 통히 일소(一笑)에 부칠 것이요 족히 탄할 거리도 되지 못한다.
 
6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작품은 작자 개인의 ‘사사(私事)’에 그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이 계급투쟁의 ××로 제공되는 것인지라 만일 전기(前記)와 같은 ‘박쥐’류의 평자의 손으로 중상이 되어 대중에게 역선전이 되고 그들로 하여금 미혹케 한다면 그것은 계급적 견지로 보아 단연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우기 그 평자가 작자에게 대한 含怨[함원]의 ‘앙탈’로 그리하여 ‘고의’ 로 또는 賣名[매명]을 위한다든가 학생에게 작문 한 개 借作[차 작]하여주듯이 무책임하게 妄筆[망필]을 휘두른다 하면 그것은 광인에게 利 劍[이검]을 맡긴 이상으로 우리와 및 우리의 작품을 害[해]하고 毒[독]하는 것이다.)
 
7
내 잔인하나마 붓을 들어 두 번째 함일돈 군의 소인적 편견과 무지 ─ 문예평자(文藝評者)란 가면을 쓴 그 기극(奇劇)의 내면 ─ 를 폭로하는 소이 (우리는 계급적 ×으로부터 우리의 작품을 옹호함이 우리의 임무의 하나이 다)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8
지나간 1월중인 듯하다. 동아일보 지상에 함일돈 군의 「1930년 창작 총평」(표제가 꼭 이대로이든가는 미상이다)이 발표되었고 그 서슬에 졸작 「산동이」와 「앙탈」도 그 속에 낀 바가 되었다.
 
9
그러나 함군은 전기 이작(二作)이 하나는 부르조아에서 또 하나는 인텔리의 구직청년에게서 제재를 취하였다는 이유(이 밖에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로 다같이 부르조아 작품으로 규정을 하여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평자가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혹은 작품을 잘 읽지도 아니하였다는) 무지를
 
10
‘자, 이렇습니다’고 고백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작자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일이로되 전기 이작을 일일이 해설하여 전도다망(前途多望) 할 함군에게 가르쳐준 일이 있었다. (이것이 함군으로 하여금 나에게 함원케 한 근본 원인인 듯하다)
 
11
명색 평가(評家)로 나선 사람이 어느 작품을 평하였다가 그 작품의 작자로 부터 작품해설을 듣고라야 비로소 깨닫는다는 포복할 기현상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 아니요 어디까지든지 자기의 오류를 발견치 못하였다 하면 승벽(勝癖) 많은 함군은(함군의 승벽이 많다는 것은 다음에도 말하려니와 문제의 「9월 창작평」(문예월간)에 보이는 ‘아직도’의 세 글자에서 속일 수 없이 표명되었다) 그때 바로 붓을 들어 나의 반박에 대한 반박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영영 아무 소리가 없었다. (내가 혹 못 보았는 지는 모르겠으나)
 
12
그러다가 이번 『문예월간』의 「9월 창작평」에서 비로소 졸작 「사라지는 그림자」를 붙잡고 함군은 큰소리를 한번 질렀다. 즉 듣기에도 애처로운 비명이었었다.
 
13
그 평 중의 일절에 가로되 “작자는 아직도(방점 - 蔡[채]) 프롤레타리아 작가적 기분을 고집하는지 알 수 없으나……”라고 하였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아직도’ 라는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14
이 말을 쓰자면 과거에 있어서 함군은(혹 다른 사람이라도) 채만식이를 ‘프롤레타리아 작가적 기분을 가진 작자’라는 규정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없었다.
 
15
전기 1월중의 「1930년대 창작총평」에서 나의 이작(二作)을 부르작(作)이 라고 평하였으니까 혹 내가 부르작가인 것으로 암암리에 규정이 되었을지 모르나(그에 대한 나의 반박에 함군의 반박이 없었으니까 이것도 성립이 아니 되지만) 나를 프롤레타리아 작가적 기분을 가진 작가라고는 한번도 비친 적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작문시간에 그러한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또는 꿈에 이를 갈며 그러한 잠꼬대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6
그러니 함군은 여기에서 먼저 실수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이 ‘아직도’의 세 글자에는 그대로 간과한다면 함군으로서 매우 섭섭히 여길 함군의 서리치는 원한과 뼈에 스미는 눈물이 머금어 있는 것이다.
 
17
함군은 금년 1월중의 창작총평 때문에 말하자면 평가(評家)로서 당하지 못 할 큰 창피를 당하였다. 그러나 반박에 대한 반박을 하자하니 본래 평 그것이 글렀는지라 승벽 많은 함군으로도 감불생심(敢不生心)의 격으로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다만 이를 갈고 눈물을 뿌리며 연해 나의 작품을 여살펴오기만 하였던 것이다.
 
18
그리하다가 「사라지는 그림자」가 발표되자 평안(評眼)이 도시에 없는데 다가 복수의 일념에 성급해진 함군은 아마 전후를 불고하고 예의 만용으로 내부린 것인 듯하다.
 
19
그러나 어찌하랴! 「사라지는 그림자」가 함군으로 하여금 나에게 설원(雪 怨)을 하기에는 적당한 재료가 아님에야!
 
20
운명은(객관적으로 보면 필연이지만) 함군으로 하여금 또다시 그의 눈물로 베개를 적시게 하다!
 
 
21
이제로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자.
 
22
나는 독자의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서나 또는 함군으로 하여금 말귀를잘 알아듣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서나 「사라지는 그림자」의 경개를 먼저 설명할 것이나 너무 지리한 감이 있어 약하고 만일 필요가 있으면 『동광』 9월호의 원문이나 혹은 10월중 조선일보에 발표된 「9·10월 창작평」 중에서 참고하도록 미루고 여기에서는 다만 골자만을 뽑아보기로 한다.
 
23
1. 조선에는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그들은 날로날로 사라 져가고 있다. 이것은 사라지다 남은 구××의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그림자 다. 그리하여 그것이 객관적으로 보면 무가치하다 하더라도 주관적으로는 가장 그들에게 서러운 현실의 하나이다. 그들은 울며 부르짖되 그러나 사라진다.
 
24
2. 이 사라지는 그림자의 ─ 자취에 이미 자본주의가 이식되어 있고 또 자체의 속에서도 초기 자본주의의 싹이 움돋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그것이 충분히 발전되기 전에 전자에게 짓밟힐 운명에 있는 것이다. (전자 즉 외래 자본주의의 얼굴과 표정을 보이지 못한 것은 아무리 특수정세 밑에서 발표 하는 우리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몽롱하게나마 보이지 못한 것은 확실히 나의 실수요 이 작품에 대한 큰 험이다. 함군이 차라리 이러한 점에나 착안하 였더면 고맙기도 하고 설원도 되었을 것을!)
 
25
3. 외래세력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한다 하면 아직은 그리 강렬한 것이 없을 터인데 외래세력이라는 특수관계로 계급투쟁이 강화되어 있다. 이것 역시 충분한 ‘사건’을 가지고 보이지 못하였으나 그 이유는 오로지 우리의 작품이 특수정세 밑에 발표되는 때문이다.
 
26
이상의 세 가지 세상(世相)을 대표하는 ‘김선달’ ‘종식(宗植)’ ‘인원(仁源)’ 세 사람과 그 외에 종속적 인물이 선산(先山)이 팔린다는 한 사실을 중심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사건’으로 한 것이 즉 「사라지는 그림자」다.
 
27
이것을 가지고 함군은 평하되 ─ 아니 평이라는 것보다도 함군의 말을 빌어 하면 “작자가 아직도 기분적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몽(蒙)을 열지 못하고(방점 - 채) 한 식으로 나를 계몽을 시켜준 것이다. (함군이여 사람을 웃기되 이다지도 돈 끼호떼 역을 아니하고는 못하는가!)
 
28
첫째의 칭탈은 함군이 수고스럽게도 인용까지 한 인원의 “애초에 잡혁먹 지를 말든지 또 잡혀놓고 못 찾게 되었으면 그만이지(선산 말이다 - 채) 지금 세상이 모다 그렇게 된 것을 그 따우 녀석 하나를(월수쟁이 - 채) 붙잡고 시비를 캐고 때리고 하면 그야말로 모기를 보고 칼을 뽑는 세음이지 요” 라고 한 대사다.
 
29
이것은 함군의 말에 의하면 봉건적 잔상(殘像)인 그의 부형(父兄)의 의식과 별다른 차가 없고(함군의 말대로 하면 ‘비록 노동복을 몸에 붙이고 (방점 ⎯ 채) 온 인원의 意識[의식]을 가리킴) 아주 간디식 도덕론(이것은 무저항주의를 이름인 듯하다)을 듣는 듯하다고 함군은 말하였다.
 
30
그러나 아무리 대치(大痴)가 눈에 색안경을 끼고 보기로니 사회운동자인 인원이가 공연히 가산을 탕진한 그 형이 헛기운을 내어 월수쟁이를 때려주지 아니하였다고 나무라는 말에 대하여 “애초에 잡혀먹지를 말든지 또 잡혀놓고 못 찾게 되었으면 그만이지”……라고 선산쯤 없어지는 데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 것이나 “지금 세상이 모다 그렇게 된 것을” (부르조아 자유주의)이라고 말한 것이 어쩌면 봉건적 이데올로기로 보인단 말인가?
 
31
또 한개 부르조아의 싹(芽)인 대금업자(貸金業者)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 (더구나 개인적으로)은 “모기를 보고 칼을 뽑는 세음이지요” 한 것이
 
32
‘조직을 통하여서만’이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전술인 줄은 알지 못하고 엉뚱하게 봉건적 이데올로기라고 함군은 ‘단언’하였으니 이 어인 무지인가!
 
33
그래도 자기의 무지 고백이 오히려 부족하였든지 인원이의 대사 전부를 인용하고 나서 가로되 “이와 같이 가장 의식적 인물로 배치한 인원의 말을 전부 들추어보더라도 우리는 어느 구석에나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찾지 못한 다” 고 하였다. 그러니까 인원이도 봉건적 인물이요, 따라서 인원이의 의식이 즉 작자의 의식일진대 작자인 채만식이도 기분적 프로작가다……는 기상 천외의 결론이 나왔다.
 
34
그러나 그 인용한 네 개의 대사는 황가(黃哥)를 백가(白哥)라고 부르는 색맹식의 망발을 한다 하더라도 결코 봉건적 이데올로기로 보기를 허할 아무런 빈틈도 보이지 아니한다. 더구나 상원이가 “언제 왔느냐?”고 묻는 말에 인원이가 “방금 왔읍니다”고 대답한 것까지 인원이의 봉건적 이데올로 기를 보인 것이라는 함군의 주장이야말로 절창이다.
 
35
또 인원이가 그 어머니를 위로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것을 함군은 울었다고 인용했다)은 그가 그 형에게 대하여나 선산 등에 대하여 냉랭하고 무관 심한 것뿐인 목석이 아니요 ‘사람’ 인 것 ─ 어머니의 서러워하는 ‘눈물’에 움직여지지 아니치 아니하는 역시 한 ‘사람’임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군은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이 역시 가정의 비극에 동감되어 운 것으로 본 모양이다. 그렇게 보지 아니하였더라도 복수를 위한 함군은 그렇지 아니한 양으로 썼을 것이다.
 
36
다시 한가지가 있으니, 함군은 누가 보든지 이마를 찌푸릴 만큼 악의와 사감이 흘러넘치는 붓끝 ─ 이것이 과연 평자의 태도인가 하고 의심할 만큼 냉정을 실(失)하였으니 소위 전문의 경개설(梗槪設)을 보라.
 
37
“왕년 수천 석 하던 한 부호가 육십이 넘은 현재에 있어서는 삼순(三旬) 에 구식(九食)조차 못하는 구차한 처지에 빠졌다. 그런 중 어려서부터 자기 집에서 길러내인 차인(差人)이 현재에 있어는 다소 축재한 결과 구주(舊主) 에게 그들의 선산을 저당잡고 대금을 하였으나 기한이 지나도록 이자조차 지불치 아니하므로 전주가 그것을 매각코자 할 때에 소유주는 과거의 봉건 사상을 내두르며 열화같이 분노하여 추상 같은 질책 호통을 뺀다는 일편의 활극이다.” ( ‘질책 호통을 뺀다는 일편의 활극이다 ’ 가 과연 절창이다 - 채)
 
38
만일 「사라지는 그림자」를 원문으로 보지 못한 사람이 함군의 경개 설명만 본다 하면 미상불 함군과 동감일지니 그러한 사람에게나마 채만식이를 중상한 것만은 함군의 성공인지 모르겠다.
 
 
39
끝으로 함군은 9월 창작의 전체에 대한 색조를 말하되 “사회의 소극적 현상만을 취급한 것뿐이요 적극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추진할 그런 내용이 없다” 고 장탄하였고, 또 “─ 아지 프로의 가장 효과적인 표현을 해야 할 것이다” 고 주문하였다.
 
40
그러나 함군의 주문과 희망대로 되도록 우리의 객관적 정세가 되어 있다면 그때에는 함군류의 존재는 그것을 허(許)하도 아니할 것이요, 구태여 앙탈을 한다 하면 ×××의 이슬(露)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 다. 차라리 솔직하게 부르면 부르로 그 방면에나 잠자코 전심할 일이지 헛되이 프로 평자인 체 가면을 쓰고 횡행하려 하지 말 것이다. 좀 들이켜서나 말이지 1931년의 오늘에 어디를 감히 나서서 소인적 편견과 무지에서 나온 기극(奇劇)을 연출하려 하는가! 재삼 삼가함이 있으라.
 
 
41
<批判[비판] 1권 8호, 1931. 12>
【원문】문예평가(文藝評家) 함일돈(咸逸敦) 군(君)의 기극(奇劇)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8
- 전체 순위 : 2580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28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채만식(蔡萬植) [저자]
 
  # 비판(잡지) [출처]
 
  1931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함일돈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문예평가(文藝評家) 함일돈(咸逸敦) 군(君)의 기극(奇劇)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