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문장·허구·기타 ◈
카탈로그   본문  
1937.4
김남천
목   차
[숨기기]
1
문장·허구·기타
 
 
 

1. 문장

 
3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문장이 나쁘고 상허, 노산 등의 것이 명문장이라는 말은 이즈음 흔히 돌아가는 말이며 대단히 상식화된 화제인 듯 싶어 이에 대하여는 좌우 신구를 막론하고 의심을 가져보는 분조차 드문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소설이나 수필을 쓰기 시작하는 분들 중에서 상허 등의 문장을 모방하려고 들고 추수하려 애쓰는 이도 대단히 많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젊은 작가들이 이같이 이미 대성하여 있고 그러기 때문에 늙어 가려는 과정에 있는 이의 문장을 따르려고 하는 데 나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자의 한 사람이다.
 
4
프로 작가들의 창작 태도는 전혀 새로운 문학적 정신과 그것의 내용에 의하여 규정된다. 이 문학적 정신과 정열이 판이한 이상 이것의 세계를 그려내는 문장을 이것에 들어맞는 새것이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내용을 표현함에 가장 적당한 문학어로 가장 알맞은 문장으로써 일가를 건설하는 날까지 그는 소박하고 미숙한 문장을 써나갈 것이다. 이 고난을 회피하는 작가는 예술을 여기로 생각하는 자이다.
 
5
그러므로 프로 작가는 악문장가라는 피상적인 비방에 떨리지 말고 자기의 독특한 문장의 길을 내용과 떠남이 없이 닦아나가야 할 것이다.
 
6
동경 문단을 보아도 대정계월( 大町桂月) 등식의 명문장은 지금은 겨우 교과서 속에서 그 형해를 찾아 볼 수 있을 뿐 확실히 어떤 현대적 문학가의 수필이나 기행문에서도 그의 추수자를 찾아 낼 수는 없다.
 
7
그들이 시대의 반영하는 새로운 내용에 상응하는 문장과 문학어를 기르기 위한 고난에 찬 험준한 행로를 헛되이 회피하였다면 그들이 오늘날 쓰고 있는 문장은 여전히 「자연과 인생」이고 「불여귀」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항상 읽고 보는 바 지금의 일본 문학이 가지고 있는 문장은 그런 것들은 아니다.
 
8
이곳에서는 아직도 노산의 수필이 중등학교 교과서 아닌 대평론가의 입에서 젊은 작가들이 배워야 할 명문장으로 추대되고 있다. 그것과 이곳의 연세의 차이라면 또한 모르거니와 그만 것을 분간치 못할 분도 아닌 이들이 악매(惡罵)와 비방을 거듭하여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문장의 연마를 방해함은 개탄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2. 허구

 
10
무영의 창작집 『취향』속에서 있는 「나는 보아 잘 안다」를 읽으며 나는 반년 전에 본 르네 크렐의 「서쪽으로 가는 유령」이라는 영화를 연상하였다.
 
11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는 보아 잘 안다」는 죽어서 공동묘지에 간 지 석 달이나 되는 남편이 그의 아내의 행장을 기록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크렐의 영화는 성 속의 유령이 영국으로부터 미국으로 달려가는 것이 그려져 있다.
 
12
소박한 유물론자는 흔히 이것을 가지고 그의 예술적 가치판단에 이르기전에 ‘엉터리 없는 헛소리’라는 단정을 내리기 쉽다. 죽은 송장이 말을 하고 산사람의 뒤를 따른다면 그것은 영혼의 불멸을 시인함이요 유령이 매매되는 것 역시 이것의 존재를 전제치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비유물론적이요 동시에 민중에게 해독을 주는 작품이므로 예술적인 작품이 못된다고 한다.
 
13
물론 예술에 있어서 리얼리즘은 어떠한 것을 이해하는 이는 이러한 황당한 판단은 조소의 대상으로밖에 안 될 것이나 나는 뜻밖에도 많이 이런 것에 의심을 가지는 이를 보고 있으므로 이곳에 잔소리가 되는 줄을 알면서도 이야기해 볼 필요를 느낀 것이다.
 
14
요(要)는 예술적 진실이란 허구에 의하여 구현되다는 것을 이해하면 족하다. 그러므로 유령이 매매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허구 위에 폭로되는 영미 자본주의의 리얼리스틱한 양자(樣姿)만이 문제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송장이 혼이 있어서 세상에 남아 있는 처자의 뒤를 따를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 허구 위에서 내다 보는 ‘눈’이 객관적 진실을 파고 들어 갔는가, 그리고 그의 ‘눈’이 독자 앞에 펼쳐 놓아주는 아내의 행장이 리얼한가 아닌가가 문제인 것이다.
 
15
그러므로 나는 무영의 「나는 보아 잘 안다」의 속에서 공동묘지의 세계를 가끔 묘사하는 것을 대단히 눈에 거슬리게 생각하였다. 공동묘지에 카페가 있느니 그곳에서 술을 먹고 연애를 어떡하느니 하는 구절이 간간이 기일 때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것은 처의 행장을 따르고 있는 리얼리스틱한 관찰을 흐리게 하고 둔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3. 영화

 
17
영화의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나는 이즈음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이것의 노력과 문학의 장래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버릇같이 되었다. 문학예술의 역사는 2천 년에 가까우나 영화예술의 내력은 40년 미만이다. 그러나 영화 상설관이 도시에만 있는데 불구하고 영화의 감상자는 문학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외국 영화감독의 말과 같이 “문학의 독자를 영화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전부 빼앗고 말 것인가”라든가 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려면 주야로 읽어도 3일은 걸리지 마는 피엘슈날과 피엘무란살은 한 시간 반이면 수천 군중에 보일 수 있었다” 등등의 호언장담이 하등의 진실미 없는 말이라고 한다 쳐도 한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봄에는 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8
영화는 지금 음향의 몽타쥬를 제것으로 함에 의하여 대화와 음악을 마음대로 구사하고 있다. 문학이 하는 미묘한 성격의 묘사를 아직 미숙은 하지만 어렵지 않게 해 내치고 있다. 2천 년간 세련된 문학의 독자가 읽고도 이해하기 힘들던 문학에 나타난 인물의 심리와 성격이 영화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똑똑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가끔 볼 때마다 이대로 진보해 나갈 영화의 장래를 경솔하게 예언치 못할 듯이 생각키이는 것이다.
 
19
영화는 문학의 영역을 ‘문학적 시나리오’(혹은 읽히우기 위한 각본)으로 침범하고 있을 때 문학은 ‘영화소설’이라는 추락된 문학적 장르에 의하여 영화의 밑을 씻어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사정은 명료하다. ‘문학적 시나리오’는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하여 진세(진지?)한 문학 독자를 약탈해 버릴 때에 영화소설의 시대지(遲)한 삼류 잡지 위에서 소녀 소설의 일부분을 형성함에 그칠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하는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이 영화 소설로 표현되는 것은 적지 않은 불행이다.
 
 
20
(『조선문학』, 1937년. 4, ‘단상’)
【원문】문장·허구·기타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8
- 전체 순위 : 2610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38 위 / 1835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노인과 꽃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문장·허구·기타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문장(文章) [출처]
 
  # 조선문학 [출처]
 
  1937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허구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문장·허구·기타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