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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文學)과 영화(映畵) - 그 실천(實踐)인 도색록(圖生錄) 평(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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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6.16~
채만식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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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映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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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實踐인「圖生錄」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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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흥미와 기대를 가지고서 유치진(柳致眞) 씨의 시나리오「도생록(圖生錄)」을 읽어보았다. 많은 흥미와 기대의 이유는 작금 조선에 있어서도 영화라는 것이 신흥예술로서의 본격적인 비약의 체세(體勢)를 보임을 따라 일반 문학인들의 거기에 대한 관심이나 지향이 주목되는 시기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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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는 시방 문학과 영화와의 교섭에 관하여 여러가지 문제에 당면을 해서 있다.——가령 영화가 가지는 문학적 요소의 새로운 검색이라든지 문학의 개성과 영화의 성격과의 비교 연구라든지 문학이 영화에 의해서 획득할 그의 제이차 가치의 상모(相貌)와 그 평가라든지 또 이미 전초적으로 저널리즘에 오르내리고 있는 시나리오 내지 오리지날 시나리오(或曰 영화소설)의 방법론이며 그들을 맞아들일 문단의 좌석 문제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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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바야흐로 정당히 규정을 해야 할 터이요, 그리함으로써 문학이 문학 독자(獨自)의 개성과 프라이드를 말살하거나 상하는 면이 없이, 지도적인 입장에 서서 영화와의 교섭을 유유히 행동할 기준과 원칙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흔히 문학과 영화와의 교섭을 무조건코 거부하는 섹트적인 고답주의며, 반대로 영화에 의한 제이차적 가치를 문학 본래의 가치와 혼동, 과대평가한 나머지 문학을 자살하면서까지 영화에 아첨하려는 망발이 간간 눈에 띄는 것도, 한편으로는 문학이 가질 바 행동의 기분이 서지 못한 대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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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문제가 제기되었을 뿐 이론의 규정이 아직 되어 있지 않은 이 때를 타서 돌연 그리고 맨 처음으로 시나리오「도생록」이 한 개의 실천으로서 이론의 전면에 뚜렷이 등장을 했다. 작자는 유치진 씨, 현 문단 의 중견의 한 사람이요 더우기 소설에 비하면 영화와는 더 많이 가까운 극문학(劇文學) 내지 무대 실지에 있어서 상당한 지반을 가진 그 유치진 씨다. 여기에 문학의 영화에 대한 신천으로서의 선봉장「도생록」의 문벌과 관록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도생록」은 유치진 씨 개인의 작품인 동시에 시대가 시대요 문벌과 관록이 홀란한 만큼 일방으로는 문학 전체를 대표하여 영화‘국(國’)에 파견된 절사(節使)라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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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효석(孝石) 같은 이는 오래 전에(발표 도중 중단은 되었지만) 장편의 시나리오를 쓴 일도 있었고 모지(某紙)에서는 영화소설이라는 것을 공모하여 신인 중으로부터 한 개의 작품을 얻은 일도 있고 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시기와 관록으로 보아 이번 유치진 씨의「도생록」과 같은 페이지에 올려놓고 같은 붓으로 가치평가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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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도생록」도 유치진 씨의 작품은 작품이더라도 그가 어느 영화 제작인의 주문을 받고 영화대본을 제공한 데 그친 것이라면 그것 은 결코 이 자리에서와 같은 가치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을 터이다. 않을 뿐 아니라 나는 세상과 한가지로 유치진 씨가 그러한 영화대본을 만들 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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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요는「도생록」이전에 혹은 이뒤에 영화대본이 되겠는지 어쩔는지는 몰라고 그가 한 개의 문학으로서 활자에 의하여 지상(誌上)에 발표되었다는 데 결정적 ‘약점’ ( ? )이 있는 것이다. 또 유치진 씨 자 신도 그것을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을 각오와 자신을 가지고서 활자화를 시켰음에 틀림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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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문학의 영화에 대한 실천으로서의 문벌 있고 관록 있는 선봉장「도생록」을(그는 적실코 풍운아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많은 흥미와 기대를 가지고서 접하는 외에 다시 다른 한가지의 이유로 해서 나의 기대는 더욱더 긴장이 되었었다. 즉 금년 정원 유치진 씨는 리얼리 즘을 울면서 메별을 했다. 리얼리즘을 메별한 유치진 씨는, 그 뒤의 첫 작품인만큼「도생록」에서 그의 새로이 체득한 바 ‘문학하는 태도’를 보여줄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의 녹록치 않다고 하는 작가가 기왕의 모 럴을(意) 의식적으로 파기했을 대 그 작가의 그 뒤의 태도를 주시하 는 것은 노상 개인적인 흥미의 소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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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으로 가볍지 않은 기대 밑에 시나리오「도생록」을 읽던 나는 혹 기대가 과분했던 소치인지는 모르겠어도 몇번이나 잡지를 내던지려고 했고 급기야 다 읽고 나서는 가졌던 바 기대를 완전히 실망과 바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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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작자의 지성의 빈곤에서 유래한 듯싶은 작품의 예술적 성격의 결핍,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집어다 쓰고는 돌아보지 않은 무책임한 용어와 문장, 그리고 이미 주어진 바 인물의 성격과 결정된 현실을 무시 하고서 다만 극적 씨인을 장만하기 위한 스토리의 무리 강조와 이 스토리의 무리로 해서 장면마다 바꾸는 인물들의 성격(으로 인해 성한 사람이 미친 놈이 되고 미친 놈이 성한 사람이 되고), 진실로 유감없이 원만 하게 문학가치 제로인 것이 시나리오「도생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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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상식적인 우리의 일상생활이 예술적인 성격을 갖추어가지고 재현이 되자면 날카로운 감각을 통하여 작자의 머리속으로 들어가서 그 작가에게 특유한 그러나 상식 이상인 인텔리렉트의 여과를 거쳐 문자와 문장으로 기록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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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나리오「도생록」은 스토리를 무리하기 위하여 머리를 쓴 외에는 ‘상성도후야(相成度候也)’라의 면서기식의 공문이지 이상 아무것도 들어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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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봉(姜再鳳)이는 딸 순이(順伊)를 그의 상전 영건(榮健)의 소실로 주기를 강경히 거절하는 교양 있는 종이다. 그것도 일조일석에 된 종이 아니라 3대째의 종이다. 대체 3대째 남의 종살이를 해내려오는 강재봉 이에게 그와 같은 교양이 어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뭏든 그렇듯 교양 이 있어 자식을 상전의 소실로 주기를 단연 거절을 하고 있던 그가 당 장 그 자리에서 “영건이가 착실한 마음으로 순이를 소실로 맞겠다”는 한마디에 선뜻 승낙을 해버린다. 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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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생(圖生)’키 위하여 종이 상전에게 딸자식을 소실로 팔아먹음직은 한 일이지만 강재봉이의 교양으로는 거기에 상당한 주저와 고민이 있어 야 할 것이요, 급기야 승낙을 하고 나서도 더 큰 고민과 가책이 있어야 할 것인데 도무지 그러한 형적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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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의 목적 앞에 성격의 통일과 인간성을 박탈당하고서 로보트와 같 이 움직이는 인물. 그것도 과거 프로문학의 목적의식 시대와 같은 한 개의 사회적 정열 때문이었다면야 일방으로 용서할 점도 있다 하겠으나 유치진 씨의「도생록」에 있어서는 그런 게 아니고 다만 값 헐한 극적 씨인을 무리하기 위한 짓이니 사태는 더욱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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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부모에게 졸리어 일단 영건의 소실이 되기로 승낙을 했다가 석주(石柱)의 자극도 있고 해서 드디어 자살을 하려고 했으나 마음을 돌려먹고 평양으로 가서는 창루에 몸을 팔아, 5백여 원의 돈을 선술집 밑천으로 부모에게 보내준다. 그러니 자살을 마음 돌렸을 바이면 삼척동자더러 묻더라도 이미 영건에게 천 원의 돈을 받은 줄까지 알고 있은즉 고즈너기 집으로 돌아와서 영건의 소실이 될지언정, 남의 소실만 못하면 못했지 나을 건 없을 창녀가 된다는 것은 가량도 닿지 않은 소리다.이것도 작자의 데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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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봉이는 딸 순이를 상전의 소실로 주기로 하고서는 태평이던 위인이, 순이가 평양으로 가서 창녀가 되었다고 하니깐 마치 천하 역적직이라도 했다는 듯이 미쳐 날뛴다. 망녕도 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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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건이라는 인물을 유치진 씨는 “사십 세의 돈 많고 지벌 높고 점잖고 뽐내고 하나 철없고 죄없고 뚱뚱한 호한(好漢)”이라고 소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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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건의 실지 행동은 조금도 그렇질 않다. 여기에도 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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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작자가 소개한 대로 그러한 인물이게 되면 3대째나 부리는 하인 강재봉이의 대가리에다가 양치물을 뱉는 따위의 실없은 짓은 할 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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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많은 손님으로 더불어 잔치를 베풀고 노는 자리에서 하인에게 술을 먹여 동락(同樂)을 할 리도 없고, 황차 무엄하게도 취해 떨어진 하인의 이마에다가 인형(人形)을 그려놓고 손에다가 버선을 신기어, 데리고 장난을 하다니, 제 얼굴에 침을 뱉는 짓이다. 하인의 자식이라서 직접 제 입으로는 순이를 소실로 달란 말을 내지 못할 만큼 체면을 보는 영건이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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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만한 신사면 어느 정도까지는 감식안(鑑識眼)이 앉은 뒤에 비로소 수집할 취미가 생기는 게 골동품 도락심리의 순서이지, 그러니까 그대도록 바보같이 속을 리도 없거니와 중가(重價)의 물품이면 전문가의 감정을 받기를 잊을 이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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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나리오「도생록」을 문학가지 제로라고 전언(前言)을 해둔 이 상 좀 과한 천착일는지 모르겠으나 세부의 무리와 용어 ‧ 문장에도 대강 언급치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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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건이가 첩 계향(桂香)을 사랑방에서 데리고 사는데 참으로 옹색스 런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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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쫌보가 아니면 두집살림을 배포할 형세가 못되지 않는 이상 처첩을 한 집에서 거느리고 살진 않는다. 본처가 있게 되면 딴살림을 차릴 것이고 만약 영건의 경우에 본처를 쫓아냈다면 (이 점이 매우 모호한데) 첩 계향이가 응당 안채에서 거처를 하지 사랑방에서 자고, 더우기 먹고 있다는 것은 모를 소리다. 하룻밤의 오입이라도 모를 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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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봉이가, 영건이가 사랑에서 첩 계향이로 더불어 먹고 물린 밥상을 받아가지고 나와서 제가 먹는데, 도무지 이런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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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다리소반에 몽당숟갈에 이지러진 그릇에 그리고 그 집의 개새끼보다도 더 끽소리도 않고 눈에도 안 띄고, 안채의 부엌 뒤꼍에서 밥을 먹는 게 하인이다. 어디를 감히 상전——상전하고도 대주(大主)의 밥상을 제가 받아가지고는 그 자리에 돌아앉아서 상전의 소중한 밥그릇에다가 넣다께. 하인을 그렇도록 대접도 않거니와 하인이 만약 그를 범하는 날이면 단박 물고(物故)가 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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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 3대를 내려오는 하인이면 자기네 내외기리 부를 때에 사내가 아낙더러 ‘당신’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리고 아낙이 자식더러 남편 을 지칭할 때에 ‘네 아비’라고도 않는다. 영남지방에서는 흔히 있어도 서울서는 없는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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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봉의 아낙은 신구를 겸한 귀부인인 듯이 ‘친형제와 같이’라든가 ‘무어라고 말할 바가 없네’라는 말을 곧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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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의 집 대문을 싸리문이라고 했으니 경성시내에 싸리문으로 대문을 단 집이 있다고야 금시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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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세속에 어둔 유치진 씨가 어떻게 극작(劇作)을 했으며 어떻게 연출을 했는지 진실로 궁금함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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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결코 일시의 부주의나 실수가 아니요, 그러한 세속 사정에 유치진 씨가 전연 지식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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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면 일반 수금(水禽)이 아니라 천선(川蟬)이라는 새인가 본데 역시 물새임에는 틀림없으나 비둘기는 몰라도 천선이라는 그 물새는 암놈수놈이 쌍지어 오는 일도 없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유유히 입을 맞추는 습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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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봉이가 집에서 나갈 때에는 분명 고물상에서 사가지고 온 고무장화를 가지고 나갔는데 정작 순이를 만나 그놈을 신길 때에는 고무 덧신이다. 단 그 장면이 강재봉이가 요술을 하는 장면이라는 작자의 주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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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건에서 쫓겨난 홍주사(洪主事)를 골동품장사로 더불어 무슨 필요 가 있어 위정 강재봉네 선술집에다가 등장을 시키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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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父)의”라고 했길래 부친(父親이라는 친(親)자가 낙자(落 字) 된 줄 알았더니 “……때리는 부(父)의”가 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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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 씨로 앉아서 부친을 설마 ‘부(父)’라고 쓸까마는, 그러니까 그것은 작자의 작품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무책임했던가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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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봉이와 같은 체질과 신경은 생리학상으로 보아 광인(狂人)이 될 소질이 없다. 또 가령 그가 미쳤다고 하자. 그렇다면 미친 이상 석주에게 딸 순이의 후사를 부탁할 정신이 없을 것이요, 만약 그만한 정신이 있다면 기껏 전당포 중방 밑을 뚫고 들어가(갔는지 말았는지는 몰라도)신문 뭉텅이를 가지고 와서는이게 돈이니 몸 팔린 순이를 찾아오라고 석주한테 내줄 이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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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순진하던 순이가 창녀로 팔린 지 불과 1주일에 ‘교태(嬌態)를 지어 객을 끌 만큼’ 무신경했었다거나 매춘부의 타입이 박혔으리라고는 믿지 못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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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작자 유치진 씨가 세상에다가 대고 순이란 계집애를 데마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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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의한 현실의 데마 이것은 진실로 졸연치 않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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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 씨는 금년 정원 리얼리즘을 몌별했다. 그 이유는 평론가 모씨의 중계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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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은 현실을 현실대로 그려놓는 게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실은 너무도 너무도 참담하다. 일방 예술은 즐거워야 할 것이다.그런데 리얼리즘의 길을 가자면 너무도 너무도 참담한 그 현실을 그대로 그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려도 그려도 현실과 한가지로 참담할 뿐 즐거워야 할 예술은 즐거운 대신 도리어 고통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얼리즘을 버린다.(필자의 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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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자다가도 웃을 노릇이다.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현실대로 그려만 놓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변증법적 발전의 상모(相貌) 즉 ‘진(眞)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그리고 현실을 현실대로만 (실상은 정지된 표상의 세계를 사진 찍듯이) 그려놓고 마는 것은 사실 주의(寫實主義)의 기계적 모방이라는 것쯤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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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을 유치진 씨는 현실을 현실대로만 그리는 것이 리얼리즘이라서 그를 버린다고 공언가지 했으니 망발(妄發)도 이만저만찮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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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망발은 했어도 그 덕에 현실대로만 그려놓고 마는 기계적인 사실주의를 청산한 것은 유치진 씨의 횡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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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일껏 횡재를 한 기계적인 사실주의의 청산을 잘못 이용했으니 시나리오「도생록」에서 보는 바 현실과 개성의 부정확한 나열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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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3대째의 종이 딸자식을 상전의 소실로 주기를 펄펄 뛰다가 당장에 승낙을 했다가 또 딸이 창녀가 되었다니가 미친놈매니로 미쳐 날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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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란 계집애는 괜히 평양으로 갔다가 창녀가 되었다가 불과 1주일 에 능란한 매춘부의 기교를 부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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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건은 돈 있고 지벌 있는 신사가 무식한 상한(常 漢)이 되었다가 쫌보가 되었다가 바보가 되었다가 목록방꾼 행세를 했다가 물론 악당 짓도 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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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이 영남 사람이 되기도 하고 경성 한복판에 싸리문으로 대 문을 단 집도 나오고 고무장화가 고무덧신으로 요술도 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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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도생록」을 그대로 영화화해 가지고서 주의해 들여다본다면 인물을 전부 정신병실에서 데려온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현실을 현실대로 그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현실을 몽환(夢幻)의 세계로 만들어놓았고 그를 가리켜 나는 유치진 씨가 현실을 데마했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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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지지리 못난「도생록」이 다만 문벌과 관록과 시대가 좋아서 영화의 나라에 사절(使節) 노릇을 갔으니 작자 유치진 씨의 망신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짓밟힌 문학과 문단의 체면이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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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장차 그것이 영화가 되어서 문학과 문단의 이름을 빙자하고 민중의 앞에 선전이 되는 날 유치진 씨는 삼중사중의 불명예를 무엇으로 사(謝)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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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이 ‘시나리오’니까 희곡이 무대효과를 옳은 효과로 치듯이, 시나리 오도 카메라를 통해 필름에 올려서 스크린에 비치어 놓아야만……이라 고 변명을 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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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왈, 세상이 셰익스피어가 좋다고 하지만 극을 보고서 좋은 줄 안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대개는 희곡을 본 것만으로 셰익스피어의 좋은 줄을 알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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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극이 문자로 된 희곡을 배우가 행동으로써 번역을 해서 그 희곡의 내용을 무대 위에서 보이듯이, 영화는 문자로 된 시나리오를 그림으로 써 번역을 해서 그 시나리오의 내용을 스크린 위에다가 보이는 것일진대, 아무리 영화화를 한다고 그 내용이 딴 걸로 바뀔 이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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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집에서 가지고 나간 고무장화가 막상 신겨질 때에는 고무덧신이 되는 수는 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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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미리서 해두었으니 중복을 피하고 끝으로 한마디 사족(蛇足)을 붙인다.
 
66
솔직이 말하거니와 나는 유치진 씨의 작품 가운데서「자매(姉妹」와 또 오래 전 내가 모 잡지의 편집원으로 있을 때에 원고로만 본「시인선 (屍人船)」과「개골산(皆骨山)」의 일부분과 그리고 이번의「도생록」이렇게밖에는 읽지를 못했다. 그런데 혹시 나의 눈이 무딘 탓인지는 모르겠어도(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이번의「도생록」이「자매」나「시인선」보다 진경(進境)을 보였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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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오늘 해전에 똘스또이가 발자끄가 고리끼가 또는 지드나 발레리가 나와야 한다는 고집불통의 소리는 아니다. 우리가 이 대(代)에 마땅히 도달했어야만 할 것임에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 부족으로 해서 떨어져 있는 그 수준에의 전진, 나는 조선의 문단에 대해서 최대한도로 이것을 요구한다. (妄言多謝)
【원문】문학(文學)과 영화(映畵) - 그 실천(實踐)인 도색록(圖生錄) 평(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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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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