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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8.21~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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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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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의 문제의 작 『인형의 집』이 발표되고 나서라고 한다. 각 방면으로부터 반응이 컸음은 물론이었지만 그런 중에서도 소위 여권론자들이며 부인해방운동자들 일파의 찬양과 감격은 자못 호들갑스런 바가 있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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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례로 어느 아낙네 중심의 상당히 유력한 부인해방 운동단체 하나에선가는 하도 그 힘겹고 아슴찮은 나머지(그게 가령 조선 같은 곳이었다면 제가끔들 두툼한 솜버선이라도 한 켤레씩 해다가 주고 싶은 심경이었으렷다!) 그래 다변(多辯)하고도 사교와 허겁떨이를 좋아하는 구라파의 아낙네들이라 하룻밤 입센옹을 청해다간 그의 지대한 공로와 호의를 치하하는 찬하칭양회(攢賀稱揚會) 비슷한 것을 개최했더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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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히 귀가 따가왔으리라고 상상되는 그 회석상에서 주최자측으로 부터 다 참 그와 같은 위대한 작품을 내놓아 우리 부인해방운동에 커다란 힘이 되게 해준 것을 못내 감사하노란 의미의 인사를 받은 예의 입센옹, 시침을 뚜욱 따고 앉아서 대답이, 이 사람으로 말하면 무어 그런 여권문제니 부인해방이니 하는 걸 고려하거나 그러한 운동을 위하여 작품을 쓴 건 천만 아니노라 하고 수염을 쓰다듬었다든가 어쨌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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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은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자기의 문학에 있어서 당세의 선구적인 시대정신을 파악했던 작가요 시종일관 작품을 통하여 그 정신을 구현시킨 사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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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상기 여권운동 마나님패에게 천만 아니노라고 대답을 했다는 그 말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니면 겸사라고 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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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혹시 만약이라도 그것이 진정엣 소리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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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코 그가 여권문제니 부인해방이니 하는 당세대의 선각적인 정신 아래서 『인형의 집』을 쓴 것이 아니고 단지 예술적 감흥만이 주장이었다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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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억지의 가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아무렇든 그러한 가정을 해놓고 반다면, 우리는『인형의 집』의 『인형의 집』인 소치를 발견한 자 넓은 의미의 독자들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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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것은 문학사가(文學史家)가 『로빈슨 크루소의 표류기』 가운데서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표착(漂着)을 하자마자 무엇보다도 침몰하는 파선(破船)으로부터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을 꺼내온다, 적당한 위치를 골라 거처할 움막을 이룩한다 하는 것을 가지고 거기에서 진작엔 없었던 것으로 ‘생활의 문학’ 또는 ‘리얼리즘의 문학’의 배태(胚胎)를 발견함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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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인형의 집』가운데 담겨진 부인해방의 시대적 정신이란 그 작품의 근본된 테마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입센 자신으로도 실상은 그것을 의식치 못했을 이치가 없는 것이라 이 자리에서의 화제로는 흥미가 덜한 것이지만 ‘생활의 문학’ 또는 ‘리얼리즘의 문학’의 배태를『로빈슨 크루소의 표류기』에서 근본 테마 이외 것으로서 제삼자가 발견을 한다는 것은 실없이 재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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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와 같이 문학작품의 제삼자에 의한 새로운 가치의 발견은 비단 인형의 집』이나 『로빈슨 크루소의 표류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일반으로 선인(先人)의 유명한 작품이면 흔히 그러한 에피소드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되 발견한 새로운 그 가치로 말하면 모두가 플러스만은 아니고 더러는 마이너스일 경우도 노상 없잖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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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형용 문학작품이랄 것은, 그리고 하필 이름난 세계적 명작이 아니라도(오히려 버젓한 세계적 명작이 아니고 아무렇게나 처리를 해도 무방할 명색 없는 문학, 명색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에 따라 보기 나름이요 경우에 따라 해석할 탓인 동시에 그 결과로는 애먼 작품을 도옹동 쳐들어올리기도 하고 묘한 약점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하여 의외의 심심찮은 화제거리를 빚어주는 수가 종종 가다가 있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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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상인즉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그리자 우연히도 근일 2,3의 직접 내 작품에 관련하여 몸소 느끼고 당하고 한, 그러느라고 착실히 적면(赤面)을 한 적이 있는 이야기가 몇 토막 있기로 여기에 만연(漫然)히 그것을 피로(披露)하기로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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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 「순공(巡公) 있는 일요일」을 읽은 독자 가운데 맨 끝으로 가서 한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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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오정 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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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얼씬, 자정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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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 줄의 대화가 있었음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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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루하겠지만 편의상 우선 그 대화의 내력을 약간 설명해 두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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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기 어디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가령 영영 아주 패를 찬 방탕객은 아니지만, 아뭏든지 늘 친구들과 어울려 매일같이 밤 늦도록 술을 먹고 돌아다니면서 놀기에만 골몰하여 가정엔 자못 등한한 그런 어떤 젊은 샐러리맨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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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러자 마침 어느 일요일을 당해서는 일이 그만 어떻게 꼼짝 못하고서 안해와 어린 놈을 데리고 역시 거기 어디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단가(單家) 살림짜리 샐러리맨네 가정의 일요일답게 창경원이야 화신(和信)의 외식이야 영화관이야 이렇게 소위 가정봉사란 걸 해야만 하게 된 방금 그 출발 전의 느직한 아침이었었다. 싫기도 하고 능(能)도 아닌 노릇이어지만 면할 수 없이 된 계제라 당하기로 각오는 했으면서도 제일(第一)에 연일 술에 녹아난 몸이 딱 아주 꼼짝할 수도 없이 고되어 그래 아예 기신이 나지를 않아서 지질한 넉장을 부리며 주춤 음충그려댔고 그러다간 겨우 나갈 채비를 차리기 시작했다는 게 또다시 실없은 소리를 늘어놓아싸면서 해망을 부리던 그 끝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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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 옆에서는 아낙이 거기 섭쓸려 연해 말대껄을 하곤 했고, 그러다가 문득 또 시간이 더디어간대서 그래 ‘하마 오정 돼와요? 하고 재촉을 하는 것을 남편은 종시 꿈마안하게 ‘훠얼씬 자정이랬으면 좋겠다!’고 다뿍 하품이라도 뱉는 듯싶은 대답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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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경위가 대체로 그러했고 하되 원문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고서 단지 그 두 줄이 대화(對話)로만 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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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오정 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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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얼씬, 자정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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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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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줄의 그 대화가 가령 이헌구(李軒球) 씨 같은 분의 의견을 들을 것 같으면 대단히 좀 재미스럽지가 못한, 그리하여 매우 불쾌한 대문이라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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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신변에 재료가 없고 하여 이헌구 씨의 말한 바 그대로를 여기에 인용은 하지 못하거니와 여하튼 내용인즉은 그 말이 규방(閨房)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그래 점잖지가 못하다는 그런 뜻인 듯싶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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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로서는 천만 심외(心外)이었으나 우선 그 당장 화끈하니 얼굴이 뜨겁지 않지 못했고, 그러면서 얼른 돌이켜 생각을 해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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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 그러나 사(私)를 두지 않더라도 ‘규방암시설’은 너무 지나친 천착과 부회(附會)가 아니면 무심한 오해인 성불렀고, 그뿐더러 도시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서 거기에다가 그 두 줄의 대화를 넣었던 게 아닌 이상 어심(於心)에 조금인들 부끄럴 일은 없는 노릇이거니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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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헌구 씨로도 작품 전체에 대한 주된 이야기는 다 마치고서 다만 끝에 가서 여백삼아 한마디 비치고 지나가던 말이었기 때문에 구태라 그를 깊이 괘념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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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나는 이내 그 ‘규방암시설’은 갖다가 감감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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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바로 최근 얼마 전인데, 그 「순공 있는 일요일」을 어느 화역(和繹) 출판의 등재에 제공할 일이 있어서 처음 발표 때 중간의 한 부분 파손된 자리가 있던 것을 꿰매기도 할 겸 오식과 낙자(落字)의 교정도 할 겸 첫머리에서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정독을 할 기회를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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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제에 또 그 ‘규방암시설’도 생각이 나서 각별히 그 점에 대하여 주의를 하면서 읽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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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결과 혹은 일종 선입주견의 소치이었던지 또 너무도 그것을 유념하고서 읽은 탓이었던지는 딱이 모르겠으되 과연 거기에 족히 그럴성싶은 맥락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을 내 스스로 인정치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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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혼자서 새삼스럽게 다시금 적면(赤面)을 않지 못했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차탄(嗟歎) 비슷하게 참으로 문학작품이란 보기 나름이요 해석할 탓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되풀이하지 않지 못했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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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하마 오정 돼와요!” “훠얼씬, 자정이랬으면 좋겠다!” 라는 그 두 줄의 대화보다 조금 앞에 가서는 남편이 아낙더러 “노파가 이뻐졌네!“하고 구슬러 주는 대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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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처박혀 아이를 기를라 살림살이를 할라 출입이라곤 통히 해보지 못하다가 모처럼 즐거운 일가 단란의 나들이를 하는 참이라서 머리도 좀 지진다 화장도 좀 베푼다 하여 오래간만에 훠언해진 아내의 얼굴에 주의가 문득 끌렸던 것이고, 그래 그네들 부부간답게 지날말로 무심코 나온 농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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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보다 앞서 맨 첫머리쯤 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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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수면 부족으로 몸이 하도 피곤하여 부디 목간이라도 푸근히 한탕 하고 나서 얼큰한 국물에 서너 잔 해장이나 하고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누워 푹신 한잠 자고 났으면 제발 살 것 같다고 혼자서 생각하는 대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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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양으로 자 우선 자리에 누워 자고 싶다는 한 장면이 있어……그 다음에 가서는 아낙이 화장을 한 것을 보고 “노파가 이뻐졌네!” 하면서 새삼스럽게 매력을 느낀 것같이 되었어…… 그러다가 필경 마지막엔 “하마 오정 돼와요!” 하고 아낙이 재촉을 하는 것을 “훠얼씬, 자정이랬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해놓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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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진실로 그 자정 두 글자가 말썽의 초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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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맥락이 그쯤 미묘하게 되었고 그러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조목조목 맞추어 가면서 꼬박꼬박 따지자고 들면 꼼짝 못하고서 ‘규방암시설‘을 승인하는 외에 무어라고 발뺌을 할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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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학에 “알지 못했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진 않는 원리”라는 게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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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작자로서 고의는 아니었을값에 세상이 만약 다같이 이헌구 씨의 ‘규벙암시설’에 동감이었더라도 그 책임은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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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보기 나름이요 해석할 탓이었던 것으로는 이헌구 씨의 월평과 동시기에 이원조(李源朝) 씨의 월평도 있었는데, 이원조 씨 또한 그 대화에 언급을 했었으나 이헌구 씨와는 정반대로 그 대문의 진의를 잘 지적을 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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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작자가 의상(意想)한 이상의 것까지를 실상인즉 이원조 씨는 발견했다고 해야 할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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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원조 씨와 더불어 회남(懷南)도 (사담으로만 이야기지만) 자정의 해석을 같이했었다. 그 덕에 아무튼저으기 덜 미안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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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여 작자로서의 소위그 진의라는 것은 무엇이었더냐고 묻자는 사람도 있겠으나 위에서도 말한 대로 이야기의 본지(本旨)가 남을 반박하기 위함이 아닌 터라, 더욱이 뒤삐어지게 작품을 땜질하기 위한 노릇이 아닌 터라 제(題) 이상의 것을 범하지 않기로, 따라서 그것은 부답(不答)에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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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공 있는 일요일」로 해서는 그와 같이 심외(心外)의 적발을 받고서 적면을 했었지만, 이번엔 반대로 애먼 이용가치의 발견을 당하고서 역시 적면을 하지 않지 못한 일석(一席)의 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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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되 「순공 있는 일요일」에서는 부분적인 것이 말썽이었지만 이번 것은 작품의 테마가 그만 물구나무를 선 맥이었어서 약간한 적면으로는 무사할 계제가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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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서 떠나게 된 무렵이었은즉 아마 5월 중순 그 어림인 성싶다. 상경을 하여 2,3일 묵다가 내려갔더니 서궤 위에 여러 장의 서신이 놓여 있는 가운데 언뜻 보아도 장히 미심스런 봉서가 한 장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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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성부 운운이라고 쓰고 색다른 딱지가 붙은 것쯤은 그저 그러하고, 좌편 여백에 가서 무어라곤지 번호 비슷한 것이 씌어 있는 것이 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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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뒤집어보니 ‘안동성 공서(安東省公署)’의 다섯 자가 뚜렷하니 박혀 있었다. 그리고는 단지 그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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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데없이 안동성 공서로부터 온 공문이었었다. 공용봉투를 사용했더라도 사신이었다면 그 옆에다가 발신인의 서명을 했어야 할 것인데, 그게 없을 뿐만 아니라 우인(友人)으로 안동성 공서에 가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곤 있지를 않았었다.
 
59
하니 이건 마침내 외수없는 공문이요, 공문이로되 또 안동성 공서의 공문인데…… 참으로 모를 일이었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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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이 어떻게도 알량한고 하면, 1년을 가야 관청의 공문이라곤 받는 일이 없고 또 받을 일도 없는 심히 딱한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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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여지껏 나라에 세납(稅納)이라는 것을 바칠 수 있는 재산적인 그 어떠한 수준에 들어보지를 못했으니 부나 면에서 발행하는 납입고지서 한 장 받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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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의 왕래만은 부질없이 많아 아무 이러저러한 편지는 어김없이 잘 배달이 되었더냐고 묻는 우편국 발행의 통신사무라는 것이 간혹 있기는 하나 그역 십년일득(十年一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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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누구하고 송사질을 한 적이 없으니 승소 혹은 패소의 판결문인들 한번이고 받아본 적이 없고, 빚은 많으나 ‘채무자의 최대의 반항은 무‘이어서 그런지 또는 모두가 선비같이 점잖스런 채권자들이어서그런지 아무려나 아직껏은 예의 만일 갚지 않는 경우엔 솥단지와 숟가락 몽댕이에 집행딱지가 붙느니라는 징그러운 신탁 같은 내고(內告)격으로 지불명령의 영장…… 이것 역시 불행중 다행이랄까 한번도 받을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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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내 나이 열 팔구 세 적 집안이 이윽고 몰락하기 시작하던 그 무렵해서 방학때고 귀성(歸省)을 했다간 가친이나 그 어른의 가독상속인인 장형의 이름으로 푸뜩푸뜩 날아들던 그 추상 같은 지불명령장이며 혹은 가차압(假差押)을 나온 집달리들을 맞이하여 집안이 온통 상가와도 같이 우수스럽고 침울한 가운데 날과 밤을 쭌득히 지우곤 하던 기억만은 시방도 새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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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집행딱지를 붙인 뒤에 1주일인가가 지나고 난다 치면 그제는 집달리가 경매꾼들까지 주렁주렁 데리고 달려들어 차압한 물건들을 (우리 집의 뒤주를, 큰 농짝을, 숱한 유기들을) 함부로 모두 끌어내다가는 제걱처럼 척척 실어가고 팔아넘기고 하던 일이라니! 하도하도 안타깝고 분하여 그자들을 몽둥이로 마구 두들겨 주고 싶어서 몸부림이 나던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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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어느덧 그만 탈선이 되었지만, 기왕 말이 났으니 말인데 한 시절 들이껴서는 이 고장의 문학―소설이 드세게도 그 가차압이니 경매처분이니 하는 것을 많이들 울궈먹어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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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이서방이 김주사한테서 빚을 썼는데 그걸 갚지 못해 필경은 솥단지와 숟가락 몽댕이를 차압을 맞고서 경매를 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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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다른 이서방도 어떤 다른 김주사한테서 역시 빚을 썼는데, 역시 그걸 갚지 못해 역시 솥단지와 숟가락 몽댕이를 차압을 맞고서 경매를 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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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이서방도 그러했고, 또 다른 이서방도 역시 그러했고. 그러하되 그 숱한 이서방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전부가 남의 소작인에 극빈농이요 차압 맞을 것이라곤 한결같이 솥단지와 숟가락 몽댕이밖엔 가지지 못한 ‘궁일색(窮一色)’의 인간들이었었다.
 
71
빚을 주었다가 차압을 하는 김주사라는 인물 또한 한 특에 박아낸 듯 약삭빠른 소자본의 대금업자이었었다.
 
72
약간의 제 토지낱이나 가진 중산의 지방 소지주로서 그 당자가 혹은 도시의 물깨나 마신 그의 자제가, 토지의 순전한 농업적인 생산만으로는 의식주를 비롯하여 자녀의 교육이며 교통이며 교제며 범백(凡百)이 현대화했음으로 하여 ‘벼값’보다도 몇곱이나 ‘비싸진’생활을 도저히 지탱할 바이 없고, 해마다 적자만 늘어가 부득이 토지를 저당하고 빚을 얻어 그 돈으로 (서투른) 장사를 하네 소공업을 해보네, 혹자는 어장이나 미두 같은 투기에 투족(投足)을 하네 하며 한동안 엄버엉하고 난다치면 어느 귀신이 잡아간지도 모르게 자본은 툴툴 없어지고서 빈손만 남아, 따라서 저당한 토지는 떠달아나고 그 다음엔 살던 집마저 내놓게 되고 하느라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자작소롬한 채무가 너도나도 퉁겨져 나와서는 지불명령이 빗발치듯 집안 세간엔 연달아 집행딱지가 붙으면서 경매를 당하면서……
 
73
이렇게 해서 집행도 맞고 경매도 당하고 하는 박진사(朴進士)니 안초시(安初試)니 등의 인물과 사건은 일찍이 이 고장의 문학이 돌려다보지도 않았었다.
 
74
시방이라도 상당히 근량 나가는 미개척 부분이 아닐는지, 가족사적인 소설의 중요한 ‘사건’을 삼아도 좋고 혹은 그 반대의 각도에 서서 모모 농장의 대토지 획득의 전말(顚末) 같은 기록문학 비슷한 것도 좋을 것이다.
 
 
 

5

 
76
공문이라는 것과는 하여간 그렇듯 인연이 먼 나에게 황차 국내도 아니요 만주국에서 안동성 공서로부터 공문이 날아오다니, 이건 참으로 천하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일변 또 죄진 일은 없으면서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지 않지 못하면서 이윽고 개봉을 하고 보았더니, 피봉(皮封)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역시 공문은 공문이었었다. ‘만주제국정부(滿洲帝國政附)‘라는 자호(字號)가 박휜 용전(用箋)에가다 타이프라이터로 깨끗이
 
77
“안도성 관서기발(官庶企發) 제 52호
78
강덕(康德) 7년 5월 8일
79
안동성 차장 XXXX"
 
80
이렇게 타자한 그 밑에는 공인(公印)이 꾹 찍혔고, (용전의 꼭대기에는 巭印이 찍혔었다)
 
81
공문의 내용인즉은 자못 단순한 것이어서 「동화(童話)」라고 하는 졸작 단편소설 하나를 한문(漢文)으로 역하여 그곳 한자신문에 등재하고 싶으니 승낙을 해달라는 교섭이었었다.
 
82
하나 그 문면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얼굴 표정의 변화는 가히 볼만한 바가 있었을 것이었었다.
 
83
“귀하의 원작 「동화」일편(조선소설대표작집 申肂 씨 역편 제 115항 이하 소재)를 일전에 경성으로 출장했을 즈음 구독을 하고 크게 감명을 받았노라“까지는 그래도 얼굴이 근질근질했으나 그다지 무엇하진 않았는데 그 다음 “--―우기 「동화」를 한문으로 번역해서 한자신문에 등재하여 써 만주인에게 여자노동사상을 보급시키고자―--“에 이르러서는 그만 하! 하고 실소를 하지 않지 못했고, 동시에 손은 절로 올라가 뒤통수를 긁적긁적할밖에 없었다.
 
84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나는 하마 옷깃을 다스릴 듯 곰곰 앉아서 생각을 했다. 과연 문학, 문학작품이란 건 사람 따라 보기 나름이요 경우에 따라 해석할 탓이라고.
 
85
참으로 방직공장의 여공으로 뽑혀가는 촌 계집아이가 더욱이 얼굴이라도 매초롬한 계집아이일 때엔 그애네들의 그야말로 비단결같이 곱고도 순박스런 꿈과는 전연 반대로 그애네들의 십중팔구가 종말에 가서는 얼마나 딱한 운명에로 전락이 되는가를 그와 같은 실지적 현실을 짐작치 못하고서 「동화」라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면, 과연 그 작품은 단지 어린아이들의 동화세계처럼 그저 곱기나 하고 그저 아름답기나 하고 할 것이었었다.
 
86
따라서 일변 그것을 가지고 한 위정자로 앉아서는 치하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근로하고 싶은 생각을 길러주는 재료로써 이용을 하고자 했음도 노상 무리는 아닐 것이었었다.
 
87
하찮은 작품 한 개 등재하라고 빌려주지 못할 까닭은 없었으나 좀 딱했었다.
 
88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단 발표한 작품 대 작자와의 관계란 마치 깎짓손을 뗀 화살과 사수와의 관계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쇄하는 판권이나 작자에게 남아 있을까. 그 작품을 가지고 어떠한 해석을 하기론 그것은 전혀 독자의 자유로운 권리에 속하는 것이어서 말이다.
 
89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과분하게끔 그만큼이나 공무적으로 정중한 교섭인 것도 교섭인 것이지만 남의 작품을 갖다가 번역 출판하면서도 작자에게는 일언반구 말이 없는 그 어떤 얌전스런 분네에 비하여 사전에 원작자의 양해를 구하는 것쯤의 인사성이 또한 고마와 마침내 승낙을 하기로 했었다.
 
90
그리하여 막상 회답을 쓰자 한즉 세상 화문(和文)으로 편지를 만들 줄을 알아야 않는가.
 
91
미룸미룸 하던 끝에 정인택(鄭人澤) 씨의 수고를 빌어 저편의 청대로 학예사(學藝社) 판 원문 일부와 더불어 겨우 회답을 띄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읽을 줄은 아나 모르나 발표가 되거들랑 어디 그 신문이나 게재분을 좀 보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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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셈인지 그후엔 아무 소식이 없어 노동사상 보급의 선량스런 사명을 떠짊어지고서 만주국으로 국제진출을 다 한다던 「동화」는 그러나 이내 감감 소식을 알 길에 없었다.
 
93
십상 너무 회답이 늦으니까 또는 다시 생각하고서 그 적당치 못함을 발견하고 계획을 파의했는지도 모른다.
 
94
그러기라도 했다면 작자로서는 차라리 다행이겠다.
 
 
95
이상 「순공 있는 일요일」이나「동화」말고서 『냉동어』에 관해서도 그 비슷한 이야기거리가 없지 않으나 자꾸만 내 작품을 꺼들어내다가는 결국은 평에 대한 항의와 작품해설이 되어버리고 말겠기로 이만큼 할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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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0년 [발표]
 
  # 문학평론 [분류]
 
  # 평론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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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