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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에 렘네라 하는 유명한 문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나라의 미움을 받아 쓸쓸하고 외딴 곳에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불행히 목병이 크게 나서 고생을 하던 때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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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동네에 이 렘네 선생을 몹시 좋아하고 따르는 조그만 소녀가 한 사람 있었는데, 하루는 이른 아침에 오늘은 목 아프신 것이 좀 어떠하신가 하고, 렘네 선생이 혼자 있는 쓸쓸한 집에 와 보니까 그 때 마침, 아침 면보(빵)와 우유를 잡수시는 중이었는데 소녀가 보니까, 그 우유가 불에 데우지를 않아서 차디찬 대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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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선생님! 이 우유가 얼음같이 찹니다그려. 가뜩이나 목병이 나셨는데, 왜 우유를 데우지 않으셨습니까? 목병에 해로운 일을 왜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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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우유 그릇을 집어 들고 일어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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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난로가 있는데, 난로에 불을 피우고 올려 놓으면 금방 더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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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난로 옆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렘네 선생은 손짓을 하며 말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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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만두어라. 인제 내 목병은 좀 나았으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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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불만 피우면 잠깐 더울 터이니까요. 선생님은 그렇게 게으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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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게을러서 찬 것을 그냥 먹는 습관이 되었단다. 불은 피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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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리었으나 벌써 소녀는 난로 아궁이를 열고, 불쏘시개를 넣고, 성냥을 들었습니다. 선생은 그만 벌떡 일어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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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이 애야, 불은 피우지 마라. 이 난로에 불을 피우면 안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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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녀는 찬 우유를 목병 앓는 선생님이 그냥 잡수시는 것이 해롭겠어서, 굳이 안 듣고 성냥불을 드윽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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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피우지 말아다오. 응! 내 소원이니, 제발 피우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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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불만은 피우지 말아라. 내가 정말 이야기를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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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죽게 된 사람이 목숨이나 살려 달라는 것같이 애걸애걸하는 것을 보고, 소녀도 매우 이상스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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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저, 내 이야기하마. 저 조그만 새가 이 집 지붕 위로 뚫린 굴뚝 구멍에다가 집을 짓고 새끼를 깧단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엊그저께야 알았어요. 내가 불을 피우든지 연기를 내든지 하면…… 그 새 새끼들은 결딜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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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렘네 선생의 얼굴에는 보드라운 웃음이 떠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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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그 날부터 모든 새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뿐 아니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렘네 선생 댁 지붕 위에 있는 새들이 잘 커 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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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2권 2호, 1924년 2월호,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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