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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 건설의 태도 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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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8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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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 건설의 태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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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서 해방 1주년을 맞이하는데 이 1년 동안 문화운동이 걸어온 성과를 돌이켜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계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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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8ㆍ15 직후 문화의 각분야에 걸쳐 인민각층의 문화적 요구를 실천하기 위하여 문화운동의 자발적 자주적인 전개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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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째론 이 자발적인 운도잉 차츰 각자가 내걸었던 목표와 방향이 설정을 검토하고 동일한 기본노선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기본적인 문화노선의 발견과 결정은 가장 중요한 운동 전개의 획기적인 계단에 속하는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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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셋째는 이 기본노선의 결정에 기하여 조직의 통일태세가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문화운동의 각분야는 동일한 목표의 방향 위에서 하나의 통일적인 기관을 가짐에 이르고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 통일전선 결성에 있어서 문화부문에 통일태세가 그 투쟁의 중요한 일익(一翼)을 형성함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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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서상(敍上)의 모든 태세를 갖추는 데 거의 1년 가까운 세월이 소비되었다. 이 태세를 갖추고 이제 이것을 토대로 하여 문화운동은 하나의 거대한 전환 앞에 그의 임무를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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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문화를 인민 대중의 가운데로 가지고 들어가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과 활동의 전개를 위한 계획이다. 앞으로의 운동은 이 방향 위에서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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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이상과 같은 몇 개의 계단을 넘어온 것을 우리는 1년 동안의 운동을 회고하여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하여 지나친 노력과 오랜 귀중한 시일을 쓸데없이 소비한 것 같다. 지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문화운동의 추진력의 문제이다. 만약 우리들의 정부가 섰다면, 민족문화의 자유로운 발전을 보장하는 옳은 정부가 섰다면 그것은 우리 문화운동의 하나의 주체적 조건이 되었을 것이요 더 나아가 그 추진력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 우리들에겐 아직도 이러한 좋은 조건이 구비되어지지 않았고 특히 남부 조선에 있어서는 모든 문화운동의 분야에 있어서 그 환경은 일제시대와도 방불한 상태였었다. 한 사람의 원조자도 못 가지고 가끔 진정한 운동의 전개에 있어 일제시대보다 못지 않은 장애물을 발견하는 일조차 없지 않았으니 이렇게 생각할 때에는 지난 1년간의 성과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요, 또 각분야에 걸쳐서 활약한 문화전사의 싸움 역시 결코 적게 평가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환경과 약한 조건하에서 제 노선을 발견하고 제 태세를 정비하고 그리고 그것 엇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는 문화의 일반 대중에의 보급화를 위하여 지금 문화운동은 유사이래 가장 중대한 임무 앞에 자기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30만 대다수의 자각과 민주주의적 훈련이 가져오는 성과에 대해서 겁을 내고 공포와 협위를 느끼는 일체의 반동적인 소수특수계급과 그 이익을 대변하여 준동하는 진영을 향하여 맹렬한 공세를 전개할 모든 계획과 준비가 이루어진 것이다. 새로운 8ㆍ15의 제2년은 이 역사적 투쟁의 눈부신 전개에 의하여 그 첫 날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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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한 시일 동안의 일본총독 통치가 쓴 조선문화 억압정책으로 인하여, 특히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으로 진전되는 전기간을 통하여 조선문화 발전에 해한 전면적인 탄압과 말살정책에 따라, 조선의 각 문화영역에 걸쳐서의 암담한 칩거상태는 민족의 장래와 문화의 다음 역사를 위하여 아무런 희망도 광명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기에 충분한 형편이었으나 그러나 8월 15일이 가져온 역사적 순간이 우리에게 보여준 바는 비록 연약하고 추세에 밝아 우유부단하고 회의준순(懷疑浚巡)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항거하는 실전장리(實戰場裡)에 있어서는 문화지식인이 하등의 바람직한 혁명적 투쟁을 가지고 민족해방운동에 기여하지는 못하였으나 세계 진전에 대한 과학적 투시력과 역사 발전에 대한 사상적 신념에 있어서는 다른 어느 나라 지식인에 못지않게 언제나 새날을 위하여 근심하고 생각하고 은근히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8월 15일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기반(羈絆)의 철쇄가 그의 마지막 고리를 끊기우자 예술, 과학, 학술에 긍(亘)하는 전문화 영역은 때를 놓치지 않고 준비하였던 구상력을 가지고 각각 자발적인 자주적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니 해방 익일인 8월 16일에는 조선문학술원이 결성되었고 이것과 시일을 같이 하여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위시, 미술, 연극, 영화, 음악, 무용의 결성을 보고 동 18일 심경(深更)에는 이의 협의기관으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성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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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화운동의 자발적인 전개는 일방에 있어서는 정치노선에 적응하려는 당연한 움직임이면서 또 타방에 있어서는 해방과 함께 인민 각층의 문화적 요구를 재빨리 실현하고자 하는 가장 옳은 방향에 대하여 문화 학문에 종하사는 지식인의 식견이 결코 옅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였다. 다시 말하면 정치와 떨어진 분야에서 몰교섭하게 이루어지는 운동 같으면서 결국에 있어서는 그것이 조선의 자주독립과 민족의 완전 해방이라고 하는 목표를 세우고 민족통일전선 결성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정치노선과 전혀 기본이념을 같이 하였다는 적응의 태도에 있어서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타방에 있어서는 해방과 새로운 국가 건설에 있어서 문화영역이 점하는 비중의 중요성과 문화와 과학에서 격이되었던 인민 대다수에게 문화를 주어 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한편 그들의 문화적 요구를 자극계발하는 사업이 얼마나 중차대한가에 대하여 해방된 일반 인민 대중 앞에 그들의 민족적 욕구를 조직적으로 제시한 데 거대한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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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문화활동의 조직적 전개가 충분한 이론적인 투쟁과 실천과정을 통하여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데서 오는 약점은 얼마 아니하여 곧 폭로되었으니 제종의 종파주의와 극좌적인 내지는 극우적인 편향의 발생으로 인한 제종의 혼란과의 투쟁에 대하여 그것은 가릴 수 없는 무력을 표시함에 이른 것이다. 요컨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결성대회 석상 선언에서‘문화의 해방’‘문화의 건설’‘전선의 통일’이라는 단적인 행동강령의 제시에 의하여 출발하였고 8월 31일 산하 각 본부에 대한‘문화활동의 기본적 일반방책’의 제시에서 그것을 상세히 규정하고 사상내용을 부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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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의 야만적 기만적 문화정책의 잔재 소탕과 문화반동에 대한 투쟁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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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화의 철저적인 인민적 기초의 완성을 기하여 봉건적, 특권계급적, 반민주적, 지방주의적 문화의 요소와 잔재의 청산을 위한 투쟁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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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문화의 일환으로서의 민족문화의 계발과 앙양을 위한 건설사업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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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화전선의 인민적 협동의 완성을 기한 문화통일 전선의 조직 등등의 기본이념의 정당한 구체적 표현을 보였음에 불구하고 어떤 부문의 우익적 일탈을 방지하지 못하는 한편 계급문화 수립을 기본적 임무로 한다는 극좌적 이론과 편향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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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9월 17일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결성을 위시하여 동22일 프로미술 프로음악 등의 결성에 이어 드디어 동31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의 결성을 봄에 이른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과학, 교육 각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학술원으로부터의 원심작용이 구체화되어 10월 18일 조선교육혁신동맹의 결성 동21일 조선과학자동맹의 결성을 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전선의 분해작용을 거쳐 문화노선의 기본방향에 대한 구심적인 욕구는 치열하였고 그것을 위한 이론투쟁 역시 활발히 전개되어 나간 것은 물론이다. 이것이 강력한 재차의 통일전선 결성에 중대한 이론적 실천적 계기가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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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건설의 기본노선이 발견되기까지에 나타난 제종의 편향 중의 하나로 극좌적 공식주의적 경향을 들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조선문화건설의 기본과제가 민족문화의 수립에 있다는 것을 반대하고 민족문화를 위한 건설이론을 가리켜 민족 재벌의 문화적 대변이라 공격하는 한편 이들은 문화운동의 당면한 기본임무가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화의 수립 혹은 사회주의적 무화의 수립에 있다고 주장함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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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극좌적 이론의 토대가 된 것의 하나가 조선 혁명의 현계단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의 착오에 있음은 물론이다. 즉 조선혁명의 기본적 당면임무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과제에 있음을 이해치 못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니 사회주의 혁명이니 하는 극좌적인 이론이 성(盛)히 횡행하였는데 이것이 문화이론의 극좌적 공식주의적 편향을 낳은 하나의 직접적인 이론적 기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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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1925년에 시작된 프롤레타리아예술운동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서 오는 역사의 평가에 대한 혼란이다. 다시 말하면 1925년 이미 문화의 기본 임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화라고 규정이 되어 예술운동의 주체는 10년간 혁혁한 투쟁을 역사 위에 남겼고 그 노선이 그대로 8월 15일까지 내려왔다. 8월 15일 이후의 문화노선은 당연히 이것의 연속이어야 할 것이라는 이론이 곧 그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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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이 8월 15일이 가져온 혁명적 계기의 몰이해로부터 유래한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8월 15일을 계기로 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정치적 기반이 없어진 사실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문화적인 사정의 변화에 대해서 옳은 이해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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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전이나 지금이나 문화혁명의 과제가 해결되어 있지 못하는 한 문화건설의 기본임무는 민족문화의 수립에 있는 것이다. 이를 영도할 담당 계급이 1925년대를 전후하여 민족부르주아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넘어온 곳이다. 동시에 반일 문화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당시의 민족문화의 수립을 위한 투쟁내용은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족해방운동이 점차 농민의 봉기와 노동자의 파업 학생의 맹휴 등 계급투쟁의 형태로 전개되어 온데 따라 계급적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 앞에 당면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1925년대로부터 부패한 시민문화의 일제와의 타협을 반대하고 민족문화의 수립을 당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구체적인 슬러건을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때와는 전혀 변화된 8월15일 이후의 사정 밑에서 1925년대에 구호를 그대로 기본과제화하려는 이론이 기계론에 빠질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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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극좌적 공식주의적 기계론이 대두하는 타방으론 우익적 탈락자가 속출하여 드디어 반민주주의적 문화집단의 결성을 결과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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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든 극좌적인 혹은 우익적인 편향으로 인하여 문화전선은 일시 혼란을 극하였으나 이론적 극복과 정당한 노선의 발견을 위한 구심적인 노력이 조직적으로 차츰 새로운 통일의 기운을 지었고 객년 12월말에서 금년 1월에 걸쳐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의 각 산하 단체가 합동을 구현함에 이르러 이에 문화건설의 기본노선으로 반제, 반봉건, 반국수의 민주주의민족문화의 수립이 당면한 기본과제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합동과 조직통일의 원칙으로 이 기본노선이 제시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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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동일한 문화 기본노선의 수립을 계기로 차츰 문화 각 분야의 지도이념이 확실히 서고 이 기초 위에서 착착조직의 민주주의적 정비가 이루어졌다. 예술, 과학, 언론, 교육, 체육의 각 부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츰 동일한 민주주의 민족문화건설의 기본방향으로 집결되었고 이것은 복잡을 극한 정치적 정세 가운데서 당면하고 해결하고 투쟁하는 실천적 과업을 거쳐 다시금 통일적인 기관을 가지려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표현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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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화건설의 기본과제를 결정하는 투쟁은 광범한 범위에 걸쳐 충분한 실천과 토의를 거듭한 것이니 2월 8, 9일에 서울에서 소집된 전국문학자대회에서의 결정서는 이 의미에서 실로 획기적인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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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싸우는 문화 각 부문을 한 기관 밑에 통일 정비하려는 노력은 드디어 구체화되어 2월 24일 24개 단체로써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이 결성되었으니 이것은 민족문화건설사상 특기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몇 개의 반민주주의적인 단체가 제외되는 외의 전 분야의 문화단체가 집결이 된 것이다. 조선학술원, 조선과학자동맹, 조선과학기술연맹, 조선공업기술연맹, 조선생물학회, 조선산업의학연구회, 조선법학자동맹, 조선사회과학연구소 등등의 학술, 과학, 기술가의 조직은 물론이요, 조선문학가동맹, 음악동맹, 연극동맹, 영화동맹, 조형예술가동맹, 국악원, 미술가동맹 등의 예술가의 조직, 조선교육자협회, 조선체육회 등 교육 체육단체, 조선신문가지회, 언어학회, 국어문화보급회 등 실로 예술, 과학, 체육, 교육, 언론의 각 분야갸 이에 완전한 통일전선을 완성함에 이른 것이다. 이제 그 강령을 소개하면 “민주주의 민족문화의 건설을 위하여 고유문화의 정당한 계승과 세계문화의 비판적 섭취와 특히 진보된 과학의 수입 연구와 그 이론의 확립과 인민의 민주주의적 문화경향의 배제를 기함”으로 전기한 민족문화의 기본노선이 구체화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연맹규약에 규정된 사업에는 일제잔재와 봉건적, 국수주의적 요소의 청소를 위한 행동이 맨처음 제시되어 문화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한 것이다. 국민문화 정도의 향상을 위한 과학적 계몽활동과 문화의 인민적 기초의 확립을 위한 대중활동이라는 조목과 함께 이제부터 전개할 문화투쟁의 기치를 선명(宣明)할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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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통일 전선의 결성이 결코 탁상에서 백지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님은 이 혼란한 정국에 처하여 문화단체가 싸운 비중의 거대하였음을 돌보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민주주의 민족문화의 수립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의 건립을 선행조건으로 한다는 옳은 인식 밑에 이에 대한 참가투쟁은 상당히 높이 평가할 만큼 과감, 신중, 침착하였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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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4월 15일부터 문련은 산하단체를 총동원하여 5일간에 긍하여 민족문화건설전국회의를 소집하였으니 이 성과와 의의는 지극히 큰 것이었다고 빋는 바이다. 이밖에 각 부문은 각기 자기 분야에 있어서 각종의 행사와 활동을 전개하면서 기본노선의 실천에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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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우리 문화운동이 가지는 약점이면서 또 동시에 해결하여야 할 큰 과제는 통일된 장비 태세를 가지고 여하히 인민의 가운데로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다. 실로 지난 1년간의 활동은 이것을 위한 하나의 기본적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초적 공작은 앞으로 전개하여야 할 문화 대중화 계몽화의 과제를 해결하는 마당에서 일층 견고히 될 것이며 이 실천을 통하여 문화운동은 새로운 성장을 맞이할 것이다. 이것이 아마 해방 제2년의 중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 믿어진다.(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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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1946년 8월호,‘해방 후 문화운동의 방향’특집)
【원문】민족문화 건설의 태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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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