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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 때만 되면 어느 길을 어떻게 빠져 나오는지 거리를 나와 마을길을 거쳐 먼 사무실에까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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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들어오기가 바쁘게 코를 쭝긋거리고 꼬리를 흔들며 사람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책상과 책상 사이를 샅샅이 돌아다닌다. 점심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치면 난로 앞에 가서 몸을 휘젓이 펴고 누워 하품을 하면서⎯따라서 눈물을 게슴츠레 흘리면서 사람들의 움직이는 눈치만 살핀다. 무료한 듯이 눈을 검실검실 감으면서도 기실은 신경이 날카롭게 일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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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그릇이 책상 위에 올라 수저 부딪치는 소리가 덜그럭덜그럭 나기 시작하면 ‘치로’ 는 소리도 없이 민첩하게 사뿐히 일어나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코를 훅훅 울리면서 쏜살같이 눈앞에 보이는 책상께로 달아난다. 이때부터 그의 싸움과 벌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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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옆에 가 쭈그리고 앉아서 끈기있게 사람의 처분만 기다린다. 언제까지든지 기다리다가도 소식이 없고 무시를 당할 때에는 주의를 끌기 위하여 기묘한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정 대꾸가 없으면 앞발을 넘춧 쳐들고 재주를 해보이다가 그것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마지막으로 들었던 발로 양복바지를 쥐어 뜯는다. 요행 선심을 입어 고기저름이나 국수오리나 빵조각을 얻게 되면 게눈 감치듯 먹어 버리고 다음 것을 기다린다. 그러나 오래도록 소식이 없을 때에는 벌써 그곳은 단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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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책상으로 가서 같은 계제로 같은 거동을 되풀이하나 처음에는 재롱을 보려고 귀여워하던 것이 요사이 와서는 어느 책상이나 퍽 냉정하게 된 것을 느낀다. 무시만 하는 책상이면 오히려 수치는 아니나 어떤 책상에서는 처음부터 꾸중을 하여 붙이지 않거나 심하면 구두 끝으로 차서 쫓는 곳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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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면서도 냉정한 사람의 마음을 느끼면서 ‘치로’ 는 하는 수 없이 주인 책상 옆으로 가나 주인은 더한층 무동작하며 때로는 성가스런 마음에 으레 문밖으로 내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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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기르는 짐승이 동관들 앞에서라도 멸시를 받고 귀찮게 여기움을 보는 것이 면괴스러운 것이다. 집에도 당부하여 두고 낮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발을 금하는 것이나 짐승은 어느 틈으로 어떻게 묘하게 빠지는지 오정 때면 으레히 사무실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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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는 벌써 대여섯 살이 넘었으나 나무로 치면 악마디 솔같이 작고 잔망하고 마디차다. 마을에는 그의 소생도 많이 퍼졌건만 언제나 노티가 없이 장난감 같은 몸뚱어리에 부글부글한 털을 바르르 날리며 꽃술 같은 꼬리를 휘저으면서 사무실을 찾는다. 주인은 한다하는 포수다. 따라서 여러 마리의 사냥개를 기른다. 늠름하고 허울좋은 사냥개에 비하면 잔망한 발발이는 보잘것없는 장난감인데다가 실제로 말하더라도 사냥개가 더 긴하므로 주인의 사랑은 그 편으로 더 많이 기우는 모양이다. 자연 ‘치로’ 에게는 끼니때의 차지도 적음이 사실인 것 같다. ‘치로’ 는 그 벌충을 학교에서 대려는 것이다. 한가한 산보가 아니오, 엄숙한 양식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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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는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인의 책상을 바라본다. 마음이 송구스러운 까닭일까. 그날은 그때 요행히 주인의 자태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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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는 즉시 점심이 시작된 한편 책상께로 가서 코를 울리며 발을 들고 늘 하는 자세를 하였다. 그러나 책상 임자는 홀홀히 그의 수단에 걸리지 않을 뿐더러 개굿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두어 마디 호되게 꾸짖고는 옆 동관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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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짐승─꼬락서니하구 똑 무엇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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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관은 가련한 짐승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띠고 같이 얕은 목소리로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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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똑 떼붙였지. 잔망한 것이며, 암팡진 것이며, 발발한 꼴이 주인아씨를 붓으로 그려 놓으면 그렇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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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와 발발이가 어쩌면 그렇게도 감쪽같이 주인 양주의 모습을 서로 닮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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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짐승을 기르자면 보람 있게 그렇게 기를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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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결에 깔깔깔깔 웃음이 터진다. 떨어져 있는 동관들에게도 급기야 웃음이 옮아 버렸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은 짐승의 주인인 동관 양주의 체격과 성격의 희극적 대조에서 오는 것이었다. 물론 양주의 간특한 사교가 평소부터 동관들의 미움을 사고 있었던 것에도 원인은 있다. 웃음이 수습되기도 전에 문제의 주인공인 짐승의 주인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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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치로’ 를 보고 웃음을 들은 순간 거의 직각적으로 민첩하게 그 자리의 공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검도 삼단의 이십 관에 가까운 유들듀들한 몸집에 피가 솟아 짐승의 목덜미 같은 얼굴이 금시에 시뻘겋게 질렸다. 불쑥 돋아난 두터운 입술이 떨리고 조그만 눈이 살기를 띠어더니 기어코 고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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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풀이는 ‘치로’ 에게로 쏠렸다. 겁에 떠는 짐승은 엉겁결에 책상 아래에 숨어버렸다. 주인은 분이 머리끝까지 뻗쳐 재차 소리를 치며 책상을 차니 짐승은 하는 수 없이 그곳을 빠져 발발발발 문께로 달아가 구르는 방울같이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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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성은 좀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뚜벅뚜벅 책상 앞으로 걸어가 의자를 드르륵 끌고 풀썩 주저앉는─그 모든 거동이 거칠고 퉁명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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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여 할 것이 있소. 애매한 짐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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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거북하여 동관의 한 사람이 말을 걸었으나, 위인은 들은체만체하고 입술만을 불쑥 내밀었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 야단과 단속이 심하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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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는 다음날부터 잠시 동안은 사무실에 까딱 자태를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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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에게 대한 애증의 심리는 기르는 짐승에게까지 흔히 비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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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는 주인에게 대한 동관들의 미움의 감정의 희생을 당한 셈이다. 집에 가 분풀이로 흠뻑 얻어맞았을 애매한 짐승의 꼴이 가엾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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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는 시계같이 정확하지 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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