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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원(百萬圓)의 원탁몽(圓卓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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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3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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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萬圓[백만원]의 圓卓夢[원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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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명세서는 잊어버렸읍니다
 
 
3
“꿈꿀 기력이 없는 인생은 살 기력도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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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카이저의 이 일구는 노상 빈말도 아니겠다. 가뜩이나 ‘시대의 빈민굴’에 쫓겨들어 세태와는 인연 미미하게 꼼틀거리고 살아가는 자에게 만약 꿈조차 없을진대 그는 따라지 목숨이 아니면‘숟갈질의 노예’일 따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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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변 세상은 너무도 밝아 꿈도 시비가 붙는 시절이니 말은 해 무얼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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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라는 폄(貶)을 받아도 할 수 없고 할 일 없이 얼뜬 꿈이나 하나 공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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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백만 원이 생겼다. 피천 한푼 없던 내가 어떻게 해서 백만원이나 적잖은 돈이 생겼는지 출처는 미상하다. 그렇다고 남의 집 중방 밑을 뚫은 건 아니고 금광이나 주식을 한 것도 아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크리스마스날 밤에 어느 실없은 산타클로스 영감이 제 할 일은 젖혀놓고서 밤새도록 술을 먹고 비틀거리다가 날이 휘엿이 밝으니까 어마지두 내 주머니 속에다가 백만 원의 지폐뭉치를 틀어넣어주고 달아났을게 분명하다. (하느님한테 명세서를 무어라고 써서 바쳤는지 잘못 어물어물하다가 면직이나 당하잖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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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나는 백만 원이 생겼다. 그래 그놈 백만 원을 한가운데 수북이 싸놓고는 우리 문단인 몇몇이 둘러앉아 뎀뿌라 잡채에 배갈을 마시면서 백만 원을 요긴하게 쓸 상의를 한다.
 
 
9
그런데 공돈이란 냄새가 풍기는 건지 오십만 원만 내고서 중등학교 하나 세우자는 유지 한 분이 찾아왔다. 그러잖아도 푸달진 백만 원을 가지고 쓰자니 간에도 안 차서 심란한 판이라 화를 버럭 내어 그런 건 인제 백억 원 생기거들랑 오십만 원쯤 잔돈으로 쓸 때나 만나자고 쫓아보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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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에는 삼십만 원만 내고서 신문사 하나 하자는 낭인이 찾아왔다. 연달아서 십만 원짜리 계획, 오만 원짜리 사업, 만 원짜리 마구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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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송영(宋影)을 시켜 내객(來客)을 접대하게 했다.(면회 일체 사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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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 우리의 회담 진행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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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金南天)은 동인지를 다섯 종만 발행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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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구(李軒求)는 소극장을 장만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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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섭(嚴興燮)은 출판사를 시작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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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李無影)은『조선문학』만은 기어코 속간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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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집(金文輯)은 문학상 자금으로 십만 원만 내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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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李石薰)은 문학감상도 스피드화해야 하니 문학방송국을 사설(私設)하고서 작품 방송을 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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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金起林)은 아인시타인을 청해다가 이야기를 듣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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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훈(咸大勳)은 문단인의 협동조합촌(村)을 만들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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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영(安夕影)은 영화회사를 만들어 작품을 모조리 영화화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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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李箕永)은 돈 없어도 맘대로 치료받을 병원 하나는 불가불 있어야 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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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서(崔載瑞)는 식이치료소(食餌治療所)를 설치하고서 앉은뱅이 식이치료를 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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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白鐵)은 백두산 순례를 전 문단인이 함께 떠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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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도 의견이 많고 그런데 그게 대개는 버리지 못할 의견이어서 돈 백만 원쯤 가지고는 한강투석(漢江投石)일 모양이다. 그러니 차라리 생길테거든 일억 원이라도 생기잖구서 겨우 백만 원이라니 사람 감질만 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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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질끈 감고서 자선남비 속에다가나 집어넣을까 하고 생각한즉 자선남비는 벌써 철거한 뒤라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27
답답증이 나서 옆에 놓인 배갈잔을 쭉 들여마시니까 목구멍으로 바람이 와락 쏟쳐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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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 하고 소스라쳐 깨니까 머리맡에 신문 신년호가 아까 그 돈 백만 원 무더기처럼 흐트러져 있다.
 
29
금년 연수(年數) 그다지 길(吉)치 못하겠다고 군입맛을 다시고 도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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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8.1.3>
【원문】백만원(百萬圓)의 원탁몽(圓卓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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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만원의 원탁몽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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