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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날이 그날그날 가고 있읍니다. 금년도 이제는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세상이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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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식(6개월된 아들)이도 잘놀고 당신도 무고 한지요. 나의 병은 일진일퇴로 낳았다 더 하였다 할 뿐이요. 별 차도가 없습니다. 아, 생사조차 알수없는 이 길고 긴 병! 이 무서운 병을 머리에 쓰고 금년도 마지막 보내게 되는 이 심사야 당신도 짐작하겠지요. 사랑하는 영이도 떠나고 못잊는 당신도 떠나서 이렇게 적막한 절간에서 그날그날을 보내려니, 아무리 운명이라 하지만 너무 악착하지 않는가 합니다. 어린애 같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 질때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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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보내준 英[영]이의 스케치는 잘 보았읍니다. 그 처럼 크고 똑똑하고 복실복실 했읍니까? 그 스케치를 보고 英[영]이를 생각하면 당장에 당신이 있는 친가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아, 날개라도 있으면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 원수의 병이 허락하지 않는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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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랑하는 英[영]이! 英[영]아 너는 애비도 없는 틈에 엄마하고 잘놀고 잘커서 그처럼 복실복실 해졌는가? 네가 보고 싶다. 나의 사랑이요, 나의 보물인 英[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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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온다고 이 절에서도 야단 들입니다. 떡치는 소리, 빈대떡 지지는 소리. 세상은 좋아라고 환성이 쌓인듯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오려는 새해를 기다리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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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구를 붙여놓고 그날그날을 지낼 뿐입니다. 새해가 오면 무엇합니까? 윷놀이 한번 할수없는 이 몸이라 그저 눈물에 가슴을 적실 뿐이지요. 그러나 걱정 말아요. 신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면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가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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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이라고 갈비 한 짝, 밀감 한 궤짝을 보냅니다. 요사이 돈이 잘 통용되지 않습니다. 대금인환으로 온 유성기도 아직 찾지 못하였읍니다. 시계는 고쳐 보내니 받으시요. 새해나 지나서 몸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장인께 세배 겸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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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서간집 「나의 화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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