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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여잡기(病餘雜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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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4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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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餘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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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세안, 마악 초동 그 무렵이었는데, 본시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라 장차 닥쳐오는 겨울이 지레 무섭고 걱정스러워서 곰의 팔자가 부럽다는 둥 이 겨울일랑 양서류(兩捿類)처럼 제발 동면을 했으면 좋겠다는 둥 좀 실없은 이야기를 모지에다가 쓴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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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 상말따나 고만 입살이 보살이더라고 짜장 그 동면 못지아니 생명의 정식(停息)을 겪었고, 한참은 엽서 한 장조차 구술대필(口述代筆)을 시키던 적에다 대면 제법 시방은 사람이 도로 다 된 꼴이라지만, 그래도 제대로 몸이 소성할 날은 아직 까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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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가격정지령에 매앤 내 생리가 자겁을 했던 셈인지 아뭏든 그 말 이란 것은 아예 함부로 지망지망할 게 아닌가 보다고 혼자 가만히 미신(菋信)을 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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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으로 전남으로, 한 1주일 여행을 하고 놀아온 것이 섣달 26일, 그때부터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정초이자 필경 자리에 누워서는 이 내 꼼짝을 못했고, 시방 오늘이 2월 12일 그러니 이럭저럭 50일이요 장근 2삭이다. 그러고 본즉 병으로 고생이야 했거나 말았거나 제풀에 소원대로 추위의 핍박만은 심히 받지 않고서 방안에 꼬바기 드러누운 채 매앤 그 추운 고패를 넘겼으니, 과시 새옹마지득실(塞翁馬之得失)이로다고 한번 고소를 할 것인지 원 어떨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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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의(漢方醫)에서는 통틀어 담(淡)이라고 일컫고 신의학의 소위 늑간신경통(肋間神經痛)이란 자로 그 앓기에 싱겁고도 고약스런 품이, 그리 고 한번 얻어만 걸리는 날이면 평생 고질이었지 좀처럼 근치가 되기 어려운 품이, 아마 치질(痔疾)이나 꼬노리아 따위의 다음은 가게끔 악질(惡質)의 악질(惡質)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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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 이 병이 발병되기는 지나간 을해년이니 그럭저럭 6년 전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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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朝鮮日報)에 있을 때요 섣달인데, 저기 함경북도 회령(會寧)의 계림탄광(鷄林炭鑛)으로 신년호 기사 채집을 갔다가 한 5, 6일 모진 추위와 여행에 지친 몸을 돌아오던 그날 밤이야 말고 마침 어떤 악우에 게 붙잡혀 술로 밤을 밝혔고 그리고는 이튿날 사에 나가서 하루의 일을 제대로 마치기까지는 무사했으나 오후이자 막 퇴출을 하려고 앉았던 걸 상에서 무심코 일어서는데 별안간 그때 끄먹 바른편 젖가슴 밑께가 맞히더니 당장 그저 숨이 탁탁 막히게 뻐근히 걸리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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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붙었다고 할까. 실상 그때까지도 나는 신경통이란 이름만 들었지 대체 어떻게 생긴 병이며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인지는 통히 모르던 터라 그 급작스럽고 영문 모르겠는 것이 참말 귀신이 붙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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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래 정신없이 쩔쩔매다가 겨우 손에 잡히는 대로 전화를 끌어당겨 종로 민중의원(民衆醫院)의 유석창(劉錫昶) 씨를 청해 대관절 이 게 무슨 놈의 병이길래 증세가 이러하냐고 짓우는 소리로 원정을 했더니, 이 양반 껄꺼얼 한바탕 웃고 나서는 늑간신경통인 듯하다면서 곧 병원으로 오면 곧 안 아프게 해주마는 대답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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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인력거에 떠실려가서 주사를 맞았고 그러면서 비로소 그 신경통에 대한 병리학의 설명을 갖추 들었고 특히 병원(病原)은 냉(冷)과 습(濕)한 처소에서 오래도록 거처를 하는 데서 흔히 생긴다고 하는 데는 스스로 수긍됨이 없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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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근 20년 경성을, 주로 객지의 하숙생활을 하였고, 그러노라니 늘 겨울이면 찬 구들장과 여름이면 눅눅한 방바닥에서 딩굴며 몹시도 몸을 함부로 거천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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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뭏든 그리하여 며칠 동안 주사를 맞는다, 일변 찜질 같은 것을 하면서 누워 몸조심을 한다 했더니 오래지 않아 낫기는 나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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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발병 당일에 선고를 받은 대로 그 뒤부터는 조금만 실섭을 하든지 과로를 하든지 하게 되면 으레껏 병이 다시 도지고 도지고 하여 아닌게아니라 평생 고질일시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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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기 그중에서도 춘하간과 추동간 그 무렵이 가장 많이 도지곤 하는데, 그것도 경중이 있어 가벼울 적이면 약간 조금씩 결리기나 할 뿐 그래서 목간이나 푸근히 하고 아픈 자리를 찾아 송진을 붙이든지 사로메 칠을 바르든지 하면서 편안히 누웠은다치면 대개 2,3일 혹은 4,5일 있다간 씻은 듯이 낫곤 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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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간혹가다가 호되게 한번 도지는 날이면 약이니 치료니 별반 효험도 없고 제가 낫고 싶은 때까지 한동안을 그리고 단단히 신고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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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끝에 이번이야말로 전고에 없이 모질게 앓기도 했거니와 또한 기록적으로 시일도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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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만큼 몸은 무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된 여행을 한다 주석에 나아간다 그러면서 심화(心火)로 속을 많이 끓였고, 겸하여 어떤 까다로운 작품 하나로 지난 10월부터 석 달소수를 밤잠을 자지않고 줄창 철야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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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짐작컨대 그러한 직접적인 원인보다도 내 나이 인제는 불원 40··· 이른바 소모기요 노쇠기에 임했기 때문에 평소도 워낙이 건강이 부실한 몸이라 그렇도록 숙질이 도지는 도수도 잦고 또는 한번 도지게 되면 오랫동안 몹시 앓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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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내 마음이 병들었음은 자인을 하는 바이나 늙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마음보다 앞서 나이 미만 40에 이대도록 쇠한 것을 생각하면 어쩐지 한심스러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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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진원지가 일정치 않듯이 이번엔 등의 왼편 견갑골 밑이 처음 결리기 시작했고 그놈이 심하고도 오래 갈 징조로 궐자이 내 맥체(脈體)를 바로 좋은 부르바르나 만난 듯이 상하 전후 할것없이 제멋대로 만보를 하며 돌아다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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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누우면 그 자세를 뒤채기조차 힘이 들어 꼼짝달싹을 못하는 것이나 겉은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하여 언뜻 보기엔 가병(假病)을 앓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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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소위 겉은 멀쩡하다는 것도 잠시오 하루 이틀 닷새 1주 이렇게를 밤이고 낮이고 음나위 못하고서 가만히 누워만 있으련즉 차차로 여러 가지 딴 병이 따라서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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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증이 성하여 유동체만 조금씩 먹어도 내리지를 않고 늘 오목가슴 밑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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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대장이 태업을 하여 1주일 이상씩 배설을 못하니 장내엔 독소가 부글하글 고이고 자가중독으로 가지각색의 생리적 변조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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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없이 자리에 누워 있기 때문에 줄곧 이몽가몽하느라고 제대로 옳게 수면을 하지를 못해 나의 또 하나의 고질인 불면증이 와락 도지고 따라서 신경쇠약이 병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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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면증과 장내 독소에 의한 자가중독과의 상하 협공을 받아 머리는 빠개질 듯 아프고 멍멍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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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과 신진대사의 부조가 생리를 생으로 늙히게 하는 것은 일찌기 겪어보지 못함이 아니나 이번처럼 심한 피해를 입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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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시들부들 피부엔 탄력이 빠져 낡은 양피 같은 팔새라니 환갑진갑 다 지난 영감 모양이다. 한데다가 저 어설픈 머리하며 비죽비죽 함부로 자란 수염, 천하 빈약한 수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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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체중으로 해도 그동안 두 관은 실히 준 성싶다. 본이 도통해야 14관 반이 될까말까 한 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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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새옹마지득실(塞翁馬之得失)이란 당치도 않을 점(占)이요 밑진 이 본전을 어디 가서 누구더러 물라고 해야 옳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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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보다 더한 것은 그동안의 실신(失信)과 실인사(失人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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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엔가는 병휘(丙徽)가 승중상(承重喪)을 당했다는 부음이 온 것을 불과 10리도 안되는 상거에 문상도 가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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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을 하기로 한 스크랩을 정리해 주지 못한 게 한 가지 있고, 여러 군데 약조한 소설을 하나도 수응(酬應)치 못했을 뿐 아니라, 그중에는 계속고(繼續稿)를 신년호에 실리고서 뒤를 대지 못한 채 이제 2월호 3월 호가 다 지나고 4월호에도 미급일 형편이니 그런 낭팰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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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泰遠) · 남천(南天) · 영주(泳柱) 등 여러 우인네가 설도를 하여 학예사(學藝社)와 박문(博文)의 후원으로 발기해 준 출판기념회 거기엘 이 알량수런 주인자가 나가지 못하게 되었었으니 아무리 병중이라곤 하지만 그렇기론들 그 죄책을 내가지지 않고 금강산 X놈한테 떠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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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날 아침 배달로 영주에게서 재명(再明) 26일 오후 몇시 아무 곳에서란 기별의 엽서가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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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에 누누이 사양을 한 것은 한 것이지만 기왕 여러 우인네들이 정성껏 설도를 해준 정이 고마워서라도 조금만 우연만했으면 막대를 끌고라도 당연히 나갔어야 할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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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음이 아무리 태산 같은들 몸뚱이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데야 그리고 앞으로 하루가 남았은데야 그 하루지간에 도저히 기동을 하도록 될 것 같지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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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다 못해 즉시 전보를 치는 한편 구술로 간단한 사연을 엽서에다가 대필시켜 띄우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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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는 병이 중하여 졸연히 움직을 수가 없으니 아주 유회를 시켜 주면 행이요 그렇지 못하면 연기라도 시켜 달라는 내용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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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간단하나마 사연을 적은 이 엽서는 당일에 받지 못하는 터라 우선 전보만 보고서 영주에게서 되짚어 전명(電命)이 달려들었다. 연기는 안되겠으니 기어코 출석을 하라는 엄달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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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듯한 내력이 있은 것이 그동안 영주며 몇몇 친구들이 출판기념회 이야기를 낸다 치면 다 늙은 사람이 근천스럽게 그런 건 해선 무얼 한단 말이냐고, 암만 발기를 해도 오지 않을 테니 인제 두고 보라고 타앙탕 위협을 하던 게 있어 놔서, 아 그래 짜장 이 샌님이 정녕 탁병불출(託炳不出)의 꾀를 쓰나보다고 넘겨짚었던 눈치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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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그래서 이튿날 내 엽서를 받고야 비로소 꾀병이 아닌 줄을 알고 민첩히들 서둔 결과 큰 낭패는 없었던 모양이나 그래도 이향(邇鄕) 의 우인에게는 수배가 미처 미급했던지 누구는 축전을 쳤더니 배달 불능이라더냐 무어라더냐 하다는 이유로 국에다가 보관을 했노란 기별이 왔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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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듣기에 다시금 민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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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사온은 간데없고 근 20일 장간이나 꿈쩍없이 영하 15도니 16도니 하며 줄곧 기승스럽게 춥기만 하던 날씨가 입춘이 건듯 진자 비로소 확 풀리기 시작하여 엊그제부터서는 제법 d주 푸근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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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방안에만 누워 있고 조금 컨디션이 무엇해야 잠깐 일어나 앉아서 더러 이런 따위의 가벼운 필역(筆役)쯤 하다가 말다가 하는 터이며 바깥은 거기 어디만치 봄이 와서 있는지 알 길이 없으되 한갓 들창을 열어놓게 해도 별반 추운 줄을 모르겠어서 적실히 봄이거니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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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집 동편으로 다양(多陽)한 개울에 그새까지 꽝꽝 얼어붙었던 얼음이 거진 다 녹고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더 기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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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득 생각한즉 그 군색스런 봄의 감각이 한심했고, 십상 장님이 시방 나처럼 피부와 남의 시각을 차용하여 계절을 인식하려니 싶어 혼자 고소를 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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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러자 또 저녁 식탁에 지난해 작별을 한 진객 달래란 놈이 향긋하니 올라서 나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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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를 듣잔즉 내 집의 촌부(村婦)가 봄 햇볕이 따사한데 꼬임을 받았던지 혹은 궐녀 역시 오랜 병여에 입맛 없는 입이 궁금했던지 석양 때 바로 집 뒤의 돌밭에 올라가서 허실삼아 들여다보았더니 벌써 고놈들이 다문다문 한 놈씩 솟아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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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그동안 앓으며 겨울을 보내며 하는 사이에 추위는 물러갔고 이럭저럭 봄도 당해오고 그리고 병도 웬만큼 병줄은 놓았고 하니 어서어서 기운을 차려 훨훨 좀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고가 싶어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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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신 사나운 봉발(蓬髮)도 보기 싫은 빈수(貧鬚)도 말끔 다스리고 가벼운 춘복(春服)을 거뜬히 떨쳐 입고서 거리로 산야로, 그리고 서울도 가고, 가서는 오랜만에 벗들도 만나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또 그리고 될 수만 있으면 온천이라도 가서 며칠 푸근히 잠겨 있고······ 두루 이랬으면 꼬옥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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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면 역시 공상이요 분에 없은 호강스런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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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몸이 종차 앞으로 한 달이 지나서라도 제법 고만한 원기가 소성이 될까 싶질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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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령 인제 차차로 기운을 차린다손 치더라도 얼마나 많은 일이 밀려 있느냔 말이다.
【원문】병여잡기(病餘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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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병여잡기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4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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