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부전(不傳) 딱지 ◈
카탈로그   본문  
1936.11
채만식
1
不傳[부전]딱지
 
 
2
다 죽어가는 기꾸에를 이곳 S의 병원으로 떠싣고 온 것이 우연한 일 같기도 하나 실상 그렇지도 않다.
 
3
밤 한시가 지나 홀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서다. 기꾸에가 독약을 먹고 죽어간다는 기별을 듣고 달려온 그의 동무며 홀의 지배인은, 병원을 생각할 때에 그들은 다같이 S가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4
무엇보다도 거기서 제일 가깝고, 그리고 S는 아직도 기꾸에를 못 잊어(하고 있는 듯) 하고.
 
5
그래서 그의 동무 안나는 어쩔 줄을 몰라 울고불고 하고만 있는 기꾸에의 어머니더러, 왜 병원으로 데리고 가든지, 의사를 불러오든지 그걸 먼저 안했느냐고 핀잔을 주면서 인력거에다가 기꾸에를 떠실어 데리고 온 것이다.
 
6
S는 자기가 그렇게도 공을 들이던 여자요, 필경은 허탕을 친 여자요, 그러던 차에 독약을 먹고 죽어가는 여자요 하기는 했지만, 얼굴빛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의사로서의 할 일만 기계적으로 하고 있다.
 
7
물론 처음 그 꼴을 본 때의 그의 얼굴은 알아보게 질렸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부터는 그런 내색은 하나 보이지 않았다.
 
8
기꾸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눈을 감고 검정 타르칠을 한 진찰 침대에 모로 눕혀 있다. 입에는 나무쪽과 고무줄을 물고서……
 
9
나무쪽은 처음 입을 벌리지 않으려고 악문 이빨 틈으로 고무줄을 집어넣으니까 곽 깨물어서 고무줄 구멍이 막히기 때문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10
독약이 위에 남은 것은 다 씻겨 나왔음직해서 세척을 그만두고 주사를 왼편 팔과 가슴에 한 대씩 다시 논 후에 간호부에게 환자를 맡겨놓고 S는 옆 방 응접실로 나온다.
 
11
“어떻게 된 일이야?”
 
12
S는 하얀 가운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 붙여 물고 비로소 안나더러 묻는다. 처음으로 하는 말이다.
 
13
안나는 머뭇머뭇 대답을 못하고 있고 기꾸에의 어머니가 뒤늦게 치료실에서 나오더니 S에게 매달리듯 찔끔찔끔 운다.
 
14
“죽지나 않을까요?”
 
15
“글쎄요?”
 
16
S는 대답을 꺼려하면서 혼잣말같이
 
17
“위출혈이 좀 된 모양인데……”
 
18
하다가
 
19
“왜 바루 알리잖았어요?”
 
20
하고 온순히 나무란다.
 
21
“알았어야지요. 어떻게 할 줄을 알아야지요. 나는 그냥 눈이 뒤집혀서…… 그런데, 죽지나 않겠어요?”
 
22
“글쎄요…… 괜찮을 듯두 합니다만, 아뭏든지 오늘 저녁은 지나 봐야 알겠읍니다.”
 
23
노파는 연해 넋두리를 하면서 울면서 안절부절을 못한다.
 
24
“대관절 초산은(硝酸銀)은 어디서 났누?”
 
25
S가 안나더러 묻는다.
 
26
“모르겠어요, 저두……”
 
27
안나가 괜히 뾰롱해서 어금니에 밤알을 문 대답을 한다.
 
28
“녀석은 누구야?”
 
29
“아니예요!”
 
30
“아니라니? 그럼 여급 센시 된 걸 비관 자살인가? 흥! 신문거리가 좋군!”
 
31
“그것두 아니예요…… 괜히 자꾸만 그렇게 비꼬시지 마세요!”
 
32
“내가 비꼬나? 당자가 비꼬인 인간머리지…… 그럼 생활난인가?”
 
33
S는 인제는 의사라는 입장을 떠나 몹시 내력이 궁금했던 것이다.
 
34
실연도 아니고 직업에 대한 비관도 아니고, 그러면 무엇이냐? 생활난이냐? 고 물어보았으나 그것도 번연히 아는 속이지,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35
기꾸에는 그 동무 몇과 한가지로 카페 오로라의 소위 스타다.
 
36
그래서 아무리 세월이 없다고 해도 그의 팁 수입은 단 모녀가 사는 형편에 생활난을 일으킬 지경은 아니다.
 
37
신세를 비관한다는 것도 당치 않은 말이다. 기꾸에의 성품이나 행동은 절대로 명랑한 타입이지 그러한 티는 바로 엊그제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실연도 할 턱이 없다.
 
38
기꾸에는 오로라에 삼 년이나 있으면서 그날 그 시각까지 염문이라고는 퍼뜨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
 
39
그래서 험구들은 기꾸에더러 카페를 수도원으로 잘못 알고 와서 있느냐고 비꼬곤 했다. 혹은 고녀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40
그리고 S가 그렇게 애를 썼어도 넘어가지를 않았다.
 
41
안나가 실토정을 하기는 꺼리어하면서 연해 묻는 말을 부인해 간다.
 
42
“그럼 왜 그랬어? 정말 고년가? 그래서 시집도 못 갈 테니까……”
 
43
여기까지 말을 하다가 S는 노파가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입을 다문다.
 
44
“강간을 당했다우, 강간을! 자아, 시언허슈?”
 
45
필경 안나는 홱 내쏘아버리고 만다.
 
46
“가앙─가안─”
 
47
S는 얼굴빛이 복잡하게 변하더니 혼잣말로
 
48
“못생긴 것!”
 
49
하고 콧방귀를 뀌다가
 
50
“거 누군지 호걸인걸!”
 
51
“선생님두 천당 가실랴거던 제발 그러지 좀 마시우.”
 
52
“내가 어쨌길래 그래? …… 대관절 그 사람이 누구야? 술 한잔 사주구 싶은데……”
 
53
“옳지! 복수, 해주었다구?”
 
54
“복수? 안나두 말을 조심해. 복수란 어디 당한 말이기에?”
 
55
안나가 보기에는 S가 앙심을 먹고 비꼬고, 그리고 통쾌해하는 것으로 밖에는 더 보이지 않았다.
 
56
그러나 S의 나무라는 말이 너무 순절해서 더 성구지를 못하고 만다.
 
57
S는 침실로 돌아와서 자리에 누웠으나 분한 생각에 잠이 오지를 않았다. 안나에게 들은 P라고 하는, 고 얄밉도록 멋장이요, 예쁘장스럽게 생긴 고 녀석을 당장에 쫓아가서 쳐죽이고도 싶었다.
 
58
눈을 감으면 안나가 이야기한 대로 사실이 머리속에서 필름같이 나타난다.
 
59
고 녀석을 무심코 따라가는 기꾸에, 오류장의 으슥한 방, 차그릇, 기꾸에 몰래 차그릇에 집어넣는 마취제, 그리고 그러고……
 
 
60
S는 수면이 부족해서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 새벽녘에 기꾸에의 병실로 올라가 보았다.
 
61
어머니 되는 노파가 침대 옆에서 꼬불트리고 자고 있고 기꾸에는 문소리에 힘없이 눈을 떴다가 다시 스스르 감는다.
 
62
초산은으로 입술과 턱이 새까맣게 타고 껍질이 벗겨졌다.
 
63
얼굴은 핼끔 야위고 눈언덕이 폭 가라앉아 여러 날 중병을 치른 것 같다.
 
64
S는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한참이나 서서 기꾸에를 내려다보다가 침대 옆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65
“기분이 좀 어때?”
 
66
기꾸에는 눈을 뜨고 S를 한참이나 올려다보다가 별안간
 
67
“왜 나를 살려놓았어요?”
 
68
하면서 없는 힘을 들여 악을 쓴다.
 
69
“정말 죽고 싶나?”
 
70
S는 침착하다.
 
71
“한번 죽자던 년이 두번째 못 죽을까?”
 
72
“대관절 왜 죽자고 들었노?”
 
73
기꾸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S를 다시 한번 거듭떠보더니 외면을 하고 대답을 않는다.
 
74
“누구 꼭 맘 두었던 사람이 있었나?”
 
75
“듣기 싫어요! 내가 있기는 누가 있어? 번연히 알믄서두 남 골을 올려주려 들어요!”
 
76
“글쎄, 그러게 하는 말이야…… 임자는 시방 누구 위하는 사람이 없지? 응? …… 가령 있다구 하더래두 불가항력으로 그리 된 것이니까 괜찮을 일인데, 더구나 시방 아무한테두 애정이나 정조를 약속하지도 안했으면서 그런 일을 당했다구 죽으려구 드니 그런 넌센스가 또 있나?”
 
77
그래도 기꾸에는 대답이 없고, 분통이 난 숨소리만 거칠다가 어느결에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78
S는 상관치 않고 말을 계속한다.
 
79
“글쎄, 서루 좋아하는 상대자가 있는 터라면 애정이나 몸을 요즘 국제간의 보호무역처럼 보호하는 것이 옳고, 또 그리하구 싶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것을 침해를 당하면 분하기도 할 것이요 하겠지만, 이건 시집도 안 간 계집애가 그러나마 미스 쇼바이로 나선 터수에…… 그런 걸 왈, 아니껍다는거야! 주제넘다는 거야! …… 그래 무엇이 어째서, 또오 누구 때문에? 자살을 하랴는 거냐 말이야! 참말 가관이다…… 어때? 그래두 죽구 싶어?”
 
80
S의 조롱 섞인 말이 기꾸에는 귀에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그냥 눈을 감은 채 꼼짝도 않는다.
 
81
“그러니 결국……”
 
82
S는 다시 말을 잇는다.
 
83
“임자가 자살을 하려던 것은 좋아하던 보석반지나 잃어버리구서 그래 자살하려던 거나 조꼼도 다를 게 없어…… 그 말 알어듣겠지? 그러니까 임자는 황천에서 자살할 권리가 없다구 부전딱지를 붙여서 이 세상으로 돌려보낸 거니까 불복이 있거들랑 한 오십 년 지나서 다시 한 번 초산을 집어삼키라구……”
 
84
S는 돌아서서 나간다. 그는 문을 닫으면서 두런두런
 
85
“그 일에 자살을 하기로 들면 내가 조건이 더 상당하지!”
【원문】부전(不傳) 딱지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7
- 전체 순위 : 2742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378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부전 딱지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6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부전(不傳) 딱지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