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요. 오장환(吳章煥)이요. 나의 곁을 스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요. 검은 먹구렁이요. 당신이요.
3
외양조차 날 닮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한 신용하리요.
5
비명조차 숨기는 이는 그대요. 그대의 동족뿐이요.
6
그대의 피는 거멓다지요. 붉지를 않고 거멓다지요.
8
당신이요. 충충한 아구리에 까만 열매를 물고 이브의 뒤를 따른 것은 그대 사탄이요.
9
차디찬 몸으로 친친이 날 감아주시요. 나요. 카인의 말예(末裔)요. 병든 시인이요. 벌(罰)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능금을 따먹고 날 낳았소.
10
기생충이요. 추억이요. 독한 버섯들이요.
11
다릿 ── 한 꿈이요. 번뇌요. 아름다운 뉘우침이요.
12
손발조차 가는 몸에 숨기고, 내 뒤를 쫓는 것은 그대 아니요. 두엄 자리에 반사(半死)한 점성사, 나의 예감이요. 당신이요.
13
견딜 수 없는 것은 낼룽대는 혓바닥이요. 서릿발 같은 면돗날이요.
14
괴로움이요. 괴로움이요. 피흐르는 시인에게 이지의 프리즘은 현기(眩氣)로웁소.
15
어른거리는 무지개 속에, 손가락을 보시요. 주먹을 보시요.
16
남빛이요 ── 빨갱이요. 잿빛이요. 잿빛이요. 빨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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