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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가의 문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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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2. 24
고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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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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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문학사를 잠깐이라도 뒤져본 일이 있는 사람에겐 아래와 같은 의혹이 반드시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신체시와 신소설이 오늘날의 소위 현대시와 현대소설로 하여 상당한 추이를 보인데 반하여 유독 비평만은 자가약롱적(自家藥籠的)인 형투에서 조금도 가시어지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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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야 육당 춘원시대의 계몽문장과 오늘의 전문비평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바뀌어진 내용에 대하면 수긍할 수도 있는 일이되 시와 소설이나 비평이「무엇」을 담았는가를 따지는 것만큼 경솔한 문학관은 또 존재치 않는다는 시정이 있어야겠다. 아직도 우리들의 머리는「무엇」을 읊고 적었는가에 관심할 뿐「어떻게」읊고 적었는가에 대해서나「무엇」을「어떻게」읊고 적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무안 하다시피 되어 있다. 이렇게 문학을 방법과 떠나서 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 설익은 실험을 억지스럽게 적용함으로써 첨단을 걸으려는 다른 분류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 눈만 뜨고 있는「문학의 애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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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하여 신체시와 소설이 내용, 형식의 양면에서 상당히 추이된데 반하여 정치성과의 설전에 급급한 우리나라의 비평공식과 문학적 슬로간의 그만큼 비평가의 양식이「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의지하면서 「무엇」의 적용만을 표방하였음에 자연 병폐된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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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는 있어도 비평가「자신」이란 흔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맛본 비평의 이와같은 주의 사항만을 미끼로 한 개념설정의 비애를 언제까지라도 전승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비평가의 발판과 생리가 한 번 이라도 굳어보지 못한데도 비평가의 입술만이 조조(躁躁)하여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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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적는 비평가보다「어떻게」적는 비평가를, 「무엇을 어떻게」 적는 비평가를 요청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의 방법을 질적으로 확대하여 「무엇」과 동시동화를 실현할 수 있는「비평가의 문체」를 요청하는 입장이라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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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 못한 비평가「자신」이란 흔치 못한 비평가의「문체」를 말한다.「비평가의 기능」을 논하면서 T. S. 엘리어트는 아래와 같이 적었다. “실제로 한 작품을 적는 일의 태반은 비평하는 일이며 음미, 조합, 구성, 삭제, 퇴고, 검토하는 노력이란 창조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비평적인 것이다.” 이어서 그는 작가의 자기 작품에 대한 숙련성을 가장 고도한 비평기능이라고 구가하였다. 여기에서의 엘리어트는「무엇을 어떻게」적느냐의 기능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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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나 비평의 창조성에 대한 논급은 때때로 있어 왔지만 그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과「어떻게」가 십분 숙련되지 못한 까닭이라고 하겠으며 참으로 동시동화된 기능이란 내용(보편)과 형식(개체)을 통일하는 문체를 말한 것이다. 이러한 통일된 기능을 가진 비평가란 문체를 가진 비평가일 것이며 부폰의「문체적 인간」에 좇아 비평가의 문체란 비평가의 인간(상)을 나타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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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통일된 기능으로서의 문체를 비평가「자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또한 비평에 나타나는 비평가의「자기투입」이란 의미와도 상통할 줄 안다. 하니 한편의 비평속에 얼마만한 열도로서 비평가의「자기투입」이 실현되었는가가 크나큰 문제이다. 사뭇 비평가 자신이 비평내용과의 동시동화를 기피한다는 것은 비평내용인「무엇」에 대하여 자기내용인「무엇」의「무엇」, 즉 「어떻게」를 동시동화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참으로 방법이란 내용의 내용이라고 규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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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비평가는 비평내용을 자기내용과 상관시켜야 하므로 긍정적인 비평 내용에 대하여 부정적인 자기내용을 수립하는 것은 모두 훌륭한 태도라고 본다. 이렇게 비평내용과 자기내용을 구성통일하는 기능을 나는 비평가의 문체라고 보는 것인데 그것은 여간한「자기투입」이 아니고선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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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보오테가“개적 형체를 갖지 않는 정신을 일컬어 비평정신”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개체를 처음부터 말소함이 아니라 개체가 말소될 때까지 지속투입하여 마침내 그의 형체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정신을 역설한 것이라고 본다. 가장 완전한 매개는「무」라는 것을 기억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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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비평가의 문체수립에 있어 또한 장애되는 것은「무엇」을 위한 꿈에 나타나는 객체적이며 문헌적인 비평의 준비단계가 그대로 노정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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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보이는 몇몇『신문학사』가 재료사의 별명인가 의구하는 것은 나 개인 뿐인가? 이러한 도로(徒勞)를 시비하기 전에 하여간『단테론』을 적은 엘리어트의 다음 구절은 매우 함축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 난해한 대상을 다룬 끝에“나는 약속과 같이 단테연구의 절차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하여 단테를 읽게 되었는가를 적었던 것이다.” 단테의 내용을 자기 내용과 관련 매개함으로써, 즉 「무엇」인 단테를 「어떻게」인 자기와 동시동화함으로써 얻은 결론이 바로 그의 고전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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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란 통일된 기능이면서도 기능인 저편에 언제나 광범한「구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엘마팅겔에 . 의하면 이러한 구상력은 “어떤 유기적이며 생명적인 그리고 다이나믹한 새로운 형상과 가치를 창조하는 것으로써 반드시 그 속엔 「동경」이라는 충동이 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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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은 모든 세계 내 존재가 과거와 현재만을 위한 존재가 아닌 것과 같이 문체는 과거 현재를 통한 미래적인「동경」으로 그의 구상을 언제나 확충할 것이며 그의 기능을 통일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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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스」와「로고스」의 절정에「동경」은 있는 것이다. 비평가들에게 눈이 있어「무엇」을 보고, 손이 있어「어떻게」적는다면 이「동경」을 위하여 동시동화하는 자기투입의 시간만이 남아 있다.「동경」이란 문학과 인간의 절대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비평가는 끊임없이 이 가능성을 포효하며 전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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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빈사한 비평을 다시 지속케 하는 힘이란 비평내용을 내용화하는 비평가의 문체가 아닐까. 비평적인 너무나 비평가적인 어둔 권위용(權威容)들에게선 바랄 수 없는「자아투입」의 문체를 획득하는 일이 이제 솟아 오르는 우리세대의 극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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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2. 24. 국제신문》
【원문】비평가의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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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가의 문체 [제목]
 
  고석규(高錫圭) [저자]
 
  # 국제신문 [출처]
 
  195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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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평론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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