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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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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7
백신애
1
빈곤
 
 
2
“네까짓 것이야 단 주먹에 박살이 난다. 속히 내놓아라.”
 
3
“……”
 
4
“이년 못 내놓을까?”
 
5
“……”
 
6
“이년아, 네 이년아, 이년아, 이년”
 
7
“……”
 
8
“아, 저년이 귓구멍이 멕혀 빠졌나? 이년아, 글쎄 돈 오십 전만 내란 말이다.”
 
9
“……”
 
10
“오십 전이 없거든 이십 전만 내놓아.”
 
11
“……”
 
12
“당장에 뱃대지를 푹 찔러 죽여 버릴 년, 돈 십 전만 내 놓아라 응.”
 
13
“……”
 
14
“이년이 그래도, 벼락을 맞지 않아서 근질근질하구나, 돈 오 전이라도 내놓아라.”
 
15
“……”
 
16
“이런 빌어먹을 년이 단돈 오 전도 안 내놓는다? 헛 이년이야…… 에라 이년……”
 
17
후닥딱……하며 마누라의 몸은 뜰 가운데가 큰 대자로 엎드러졌다.
 
18
“이년이 돈 오 전도 없다고 사람의 속을 이렇게 썩인단 말이지. 에이 네 이년.”
 
19
연달아 박차고 밟고 두들기고 하다가 나중에는 기운이 빠졌는지 방안으로 뛰어들어가다 떨어져 가는 노란 장롱문을 뚝 잡아떼고 그 안에 든 의복을 되는 대로 방안에 펼쳐 놓으며 그중에 한 가지를 골라잡고 밖으로 뛰어나와 아직껏 뜰 가운데에 자빠진 마누라를 보자 손에 쥔 의복으로 두서너 번 갈기고는 그대로 횡 사라져 버렸다.
 
20
마누라는 죽은 사람같이 쭉 뻗고 누웠다가 이윽고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21
“도적놈.”
 
22
그는 단 한 마디로 입안에서만 중얼거리며 일어나려 몇 번이나 애를 쓰다가 그대로 슬슬 기어 방으로 들어가,
 
23
“어-아이.”
 
24
하며 길게 한바탕 한숨을 쉬고 방안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한데 뭉쳐 농 안에 밀어 넣고 떨어진 농 문짝을 집어 농문을 닫으려다가 그대로 방 한옆에 밀어 놓았다.
 
25
“암만 생각하여도 할 수 없구나.”
 
26
마누라는 천천히 걸어서 김문서(金文瑞)의 농장(農場)으로 일거리를 찾으러 갔다. 벌써 그 먼 옛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만 그 행복스럽던 기억이 하나 둘 머리에 떠오르며 남편에게 얻어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두 뺨이 화끈화끈하여졌다.
 
27
“사람의 팔자라는 건 정말 무섭다, 내가 왜 그때 그랬을까……아이구.”
 
28
그는 자기 몸뚱이를 물어뜯고 싶을 만큼 안타까웠다.
 
29
“다-이년의 잘못이다.”
 
30
“그때, 그이는 그렇게도 애를 썼는데 이 못된 년이 무슨 개지랄병이 덮쳐서 달아났던고……”
 
31
“아이고, 오오……”
 
32
길 가는 사람이 웃을 만치 그는 혼자 중얼거리며 섰다가 걸어가다가 하며 발끝을 망설이고 있었다.
 
33
그는 올해 스물아홉 살이었다. 벌써 네 번째 임신을 하여 배는 바가지를 찬 듯이 불쑥 내밀었다. 첫째와 둘째는 사십 구일 만에 죽고 말았다. 그 죽은 것도 남편인 최가가 때려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셋째는 뱃속에 든 채 최가의 발길에 채여 죽어 나왔었다. 이번 넷째는 웬일인지 아무리 맞고 치어고 밟히고 하여도 그대로 펄떡펄떡 뛰며,
 
34
“엄마, 나는 기어이 살아 나가겠어요. 내가 나가면 엄마의 원수를 갚아줄게.”
 
35
라고나 말하듯이 좀처럼 낙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김문서의 농장에 일하러 가지 않고는 위선 당장에 목숨 보존을 해 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든 뒤부터는
 
36
“이년아 너는 전생이 죄가 너무 많아서 나를 배었는 것이다. 내가 나가면 아버지보다 더 골탕을 먹이겠다.”
 
37
라고 하듯이 자기 창자를 휘어잡고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이도 생각이 들었다.
 
38
“에이구 이 원수 놈의 씨(種)야……도대체 이번에는 왜 낙태도 되지 않고 남의 속에 들어 앉어 나를 괴롭게 구노 이렇게 배가 불러서 어떻게 그이를 대할고……”
 
39
그는 눈앞에 그 옛날의 김문서를 그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40
그가 열일곱 살 때이었다. 그때 마침 한 동네에서 자란 김문서가 상처를 하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문서는 동네 앞 샘터에 물 길러 간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41
“옥남아, 너 내게 시집오지 않겠니?”
 
42
하고 달려들던 김문서였다.
 
43
“아이구머니, 놓아요”
 
44
소리를 빽 지르며 물동이도 집어던지고 그대로 달아나던 그이였었다.
 
45
“이 계집애야, 네만 허락하면 그날부터 너는 조선에 둘도 없는 호강을 할 것인데, 얘야, 내가 정말 싫으냐?”
 
46
김문서는 간절히 그에게 사랑을 요구하였으나,
 
47
“아이구, 더러워라. 누가 상처한 남자에게 시집갈까”
 
48
하고 한없이 달아난 그이였으며 자기 부모도 같은 값이면 첫 장가오는 총각에게 자기 딸을 내어주려고 곧이듣지 않는 까닭에 근 이 년이나 끌다가 하는 수 없이 김문서는 다른 곳으로 장가를 가게 되고 그는 지금 최가에게 시집을 왔던 것이다.
 
49
얌전한 총각이요 자기 집도 굶지는 않으며 더구나 동경까지 갔다 온 사람이고 좋다고 시집간 것이 불과 일 년도 못되어 최가는 갈보궁둥이에만 따라다니며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하는 알부랑자가 되더니 그의 부모가 죽고 난 후는 집 안에 있는 먼지까지도 들고 나가 팔아먹지 않으면 못 사는 인종지 말이요 잔인하고 무도한 비인간이 되고 말았다.
 
50
그와 반대로 김문서는 어떻게 된 셈인지 살림이 쥐새끼 일 듯 자꾸 불어서 지금은 동리 앞에다 큰 농장을 경영하며 봄철에서 가을까지는 매일 남녀 일꾼을 이삼십 명씩이나 부리게까지 되었다.
 
51
그러나 최가의 아내인 그는 아무리 굶주렸어도 이 농장에는 일하러 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생각은 간절하여도,
 
52
“아이구, 더러워. 상처한 남자에게 누가 시집가.”
 
53
하고 뿌리치던 그때가 생각이 나서 차마 거지같이,
 
54
“나를 좀 써 주세요.”
 
55
하고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56
그러나 오늘은 하는 수 없이 나섰다. 당삭이 되었으니 해산이 오늘 내일로 임박하였는데 남편은 집안에 단 하나 남은 솥을 들고 나간 지 사흘이 되어도 소식이 없고 입에 넣을 것이라고는 찬물밖에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굶주리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된 사정이라 죽을 용기를 다하여 집을 나선 것이다.
 
57
그는 농장 앞까지 갔다. 철망 저편 농장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뚝 서서 바라보다가 가만히 그중의 한 사람을 불렀다.
 
58
“여보소, 덕동댕이.”
 
59
“누구야? 아-옥계댁이요. 왜 불렀는가요?”
 
60
하고 불리운 여편네가 그를 바라보았다.
 
61
“좀 할말이 있어……”
 
62
그는 어물어물하며 조금 나와 달라는 듯이 말끝을 흐리어 버렸다.
 
63
“아이구, 지금 일을 하는데…… 주인이 보면 야단을 하니까 할말이 있거든 당신이 이리 와서 하소.”
 
64
하고 덕동댁이란 여편네는 다시 허리를 굽혀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공연히 입을 삐죽하며 앞뒤를 휘이 한번 둘러본 후 허리를 조금 굽혀 부른 배를 감추듯이 하며 한 손으로 멍든 뺨을 가리고 농장안으로 달음질하듯이 급히 들어갔다.
 
65
다행히 주인인 김문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얼른 덕동댁이 엎드려 있는 고랑으로 갔다.
 
66
“무슨 말인가요?”
 
67
하고 덕동댁은 고개를 돌렸다.
 
68
“아이고, 하는 수 없어 일 좀 할려고 왔는데 내가 할 일이 있을까요? 주인에게 말 좀 해주소.”
 
69
그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와들와들 떨며 겨우 자기 뜻을 말했다.
 
70
“아-그 말 뿐인가요? 그렇지만 지금은 안돼요.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 넘었는데 내일 다시 오도록 하오 내가 말해 줄 테니.”
 
71
덕동댁의 이러한 말에 그는 금시에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았다.
 
72
‘설마 그이가 봤으면 좀 늦게 온 것쯤이야 어떨라고.’
 
73
하는 생각이 들자 덕동댁에게 부탁하는 자기가 가소롭기도 하여 그대로 돌아서며
 
74
“주인은 어디 있는가요?”
 
75
하고 물었다.
 
76
“저기 배추밭에 엎드려 있는 게 주인인가 싶어요”
 
77
하고 덕동댁은 농장 서편을 가리켰다.
 
78
그는 달음질을 하여 그 자리로 갔다. 사람의 기척이 나자 배추벌레를 잡는 여편네들을 감독하고 섰던 사나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틀림없는 김문서였다. 넓적한 얼굴, 뚱뚱한 몸집, 찢어진 입, 그때나 틀림없는 김문서였다.
 
79
무턱대고 가깝게 다가선 그의 가슴은 쿵덕하며 내려앉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전신이 떨리며 가슴이 시끄럽게 벌덕거렸다. 말문이 탁 막히고 두 귀가 팽하며 정신이 재르르하여 그대로 선 채 두 눈만 멍하게 뜨고 있었다.
 
80
“어째서 왔소?”
 
81
김문서는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82
“일하러 왔는가?”
 
83
발골에 엎드렸던 한 여편네가 벌떡 일어서며 그를 바라보았다.
 
84
“네.”
 
85
그는 간신히 대답을 하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86
“아이구, 그 마누라 배를 보니 일하겠소.”
 
87
여편네는 문서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88
‘아-저 사람이 이 사람의 마누라로구나. 그때 내만 허락했더면 나도 저렇게 복스럽게 되었을걸.’
 
89
하는 생각이 나며 그 자리에 더 섰기가 괴로웠다.
 
90
“좀 늦게 오기는 했지만 일이 바쁘니 여기서 배추벌레를 잡소 늦게 온 대신 일이나 많이 해.”
 
91
하고 김문서는 그를 그 예전의 어여쁘던 시악씨 옥남인 줄을 알았음인지 몰랐음인지 싱긋이 웃으며 돌아서서 저쪽으로 가 버렸다.
 
92
“아이구, 배를 보니 일도 많이 할 것 같지 않은데!”
 
93
문서의 마누라는 눈을 험상스럽게 치떠 남편의 뒤를 바라보더니 그냥 잠잠하며 자기도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94
그는 멍하니 서서 문서의 뒷모양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축 늘이고 밭고랑에 가 앉았다.
 
95
“아이고, 옥계댁이 웬일인가요?”
 
96
일하던 여인부들은 모두 그와 한동리에 사는 터이라 서로 인사를 하며 이런 농장에 일하러 온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97
“일하러 왔지요.”
 
98
그는 고개를 내려뜨린 채 간신히 대답하였다.
 
99
그날 아침에 냉이나물 한 죽을 소금에 찍어 먹고 왔을 뿐인 그는 해가 점심때 가까이 되자 등줄이 당기며 두 눈은 목구멍으로 삼키려는 듯이 들어가고 배껍질은 배가 고프면서도 찢어질 듯이 따가웠다.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그래도 열심히 일을 계속 하였다.
 
100
점심시간이 되자 다른 일꾼은 제각기 밥 꾸러미를 들고 밭 이곳저곳에 둘러앉아 먹기 시작하였으나, 그는 가지고 온 것이 없어 슬그머니 밭 깊은 고랑에 가 숨어 앉아 남들이 밥을 먹기를 기다렸다.
 
101
“아이구, 이를 어째…… ”
 
102
그는 조금 전부터 자기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끼기는 했으나,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두고 갈 수가 없어 참으랴 참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래도 억지로 참고 있었던 것이었다.
 
103
만일 일을 그대로 두고 돌아가면 어떻게 해산을 할까, 벌써 세 끼니를 나물로만 채운 속인데 해산 후에도 입에 넣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또 김문서가 고맙게도 일자리를 주었는데……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104
점심시간인 한 시간 반을 그는 고랑에 끼어 앉아 머리를 높은 고랑 위에 얹고 각각으로 밀려오는 고통을 진정하려고 이를 악물고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오그려 흙을 박박 그러쥐었다
 
105
“아이구, 암만해도 안되겠구나.”
 
106
그는 허리가 척 무너지는 듯한 아픔이 자꾸자꾸 더하여지자 벌떡일어섰다. 지금 당장에 입에 무엇이든지 넣어 주지 않으면 깜박 자지러질 것 같음을 느꼈던 것이었다. 희미한 그의 눈에 아직 채 굵지 않은 봄 무가고랑을 지어 있는 것이 눈에 띄자 번개같이 달려가 한 개를 뽑았다.
 
107
이리저리 흙을 닦고 나서 복판을 둑 잘라 입에 대며 다시 고랑으로 들어가 앉으려고 하였다.
 
108
“아이구, 저기 무를 뽑는 게 누구야?”
 
109
누구인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는 무를 빼앗으러 오기 전에 삽시간에 목구멍으로 씹지도 못하고 삼켰다. 무 꽁지, 무 잎사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씹어 삼켰다.
 
110
“무를 뽑아 먹었지?”
 
111
하는 소리가 들릴 때는,
 
112
“으아-”
 
113
하고 빨간 새 생명 하나가 이 세상 속에 쑥 나오는 순간이었다.
 
114
어린 새 생명은 배추 고랑에 엎드러진 그의 속옷 가랑이에 끼인채 연달아 울고 있었다.
 
115
밭 가운데서 어린애를 더구나 사내를 해산했으니 그 밭 임자에게 무한한 복이 올 징조라 하여 김문서의 마누라는 친히 산모를 일으키고 태를 끊어서 아기는 자기 치마에 움켜 싸았다. 쌀 한 되, 미역 한묶음, 명태 다섯 마리를 사가지고 일꾼에게 산모와 아기를 업히여 그들의 집으로 돌려 보내주었다.
 
116
그는 희미하나마 모든 경과를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117
봄이라고는 하지마는 냉돌에 그냥 드러둡기에는 전신이 떨렸으나 하는 수 없이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 혼미한 잠 속에 빠져 버렸다.
 
118
이제는 쌀이 있고 미역이 있으나 그것을 익혀 낼 솥이 없었다. 이것을 안 문서의 마누라는 냄비 하나와 나무 한 짐까지 지워 하인을 보내 밥과 국을 끓여 먹이게 하였다.
 
119
“아이구, 고마워라.”
 
120
그는 밥과 국을 받아 놓고 겨우 이 한 마디를 하고는 목이 메이고 말았다.
 
121
한 이레 동안은 김문서집 덕으로 무사히 지냈다. 그러나 어느 때까지 이러한 행복이나마 계속되지 못했다. 해산한 지 여드레 만에 그의 남편인 최가가 비틀거리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122
“이년, 또 아이새끼는 왜 내질러 놓고 당장에 뒤여지지 않고”
 
123
하며 덜석 주저앉았다.
 
124
“이년, 그래 소문을 들으니 김문서란 놈이 쌀을 보냈다더구나. 어디 나도 배고파 죽겠다. 밥 좀 지어내라.”
 
125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려쳤다.
 
126
그는 와락 겁이 나며 애기를 벽 쪽으로 누이고 자기가 남편 앉은 쪽으로 누우려고 일어나 앉아 자리를 바꾸려고 하였다.
 
127
“이년, 왜 밥 지으라는데 또 자빠져 누워?”
 
128
하며 헝클어진 그의 머리채를 잡아 젖히며 일변은 한 발로 애기를 걷어차며,
 
129
“이것이 다 뭐냐.”
 
130
하고 소리를 질렀다.
 
131
“아이구, 맙소, 곧 밥을 짓겠으니, 네에 곧 밥을 가져오겠어요”
 
132
“이년, 이년, 아무리 이년, 남편이 못됐기로니 오래간만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 배때기만 부르면 그만인가 빈드럿이 드러누워……”
 
133
“네에 곧 밥을 가져오겠어요. 네에 곧 밥을 가져올 테니.”
 
134
그는 일어섰다. 그러나 그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애기를 치마에 싸안고 난 후 방을 나섰다. 떨리는 다리로 부엌에 내려가 냄비 뚜껑을 열고 보니 아침에 문서의 집 하인이 지어 두고 간 밥 한 그릇과 국이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방안으로 옮기고 난 후 자기도 들어가 앉았다.
 
135
“이년, 이것뿐이야?”
 
136
하며 단번에 밥과 국을 휩쓸어 삼켜 버렸다. 그는 차마 그 밥과 국을 먹는 양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의 산후에 오는 맹렬한 식욕은 혓바닥이 뚫어질 듯이 침이 삼켜지는 까닭이었다. 그는 눈을 돌려 애기에게 젖꼭지를 물리려 했다 그러나 애기는 젖꼭지를 물지 않았다.
 
137
조그마한 입에서 뽀얀 젖을 뽈쪽 내놓으며 두 눈은 연달아 뒤꼭지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138
“아이구-”
 
139
그는 알았다. 이미 첫째와 둘째가 죽을 때 모양이 지금 애기의 모양에 복사(複寫) 되었던 것이다.
 
140
“이년이, 소리는 왜 질러?”
 
141
하며 남편은 벌떡 일어서며 얼빠진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142
“이년, 벌써 죽은 지가 오래다.”
 
143
하며 횡 밖으로 나가버렸다.
 
144
얼마 전에 자기 머리채를 잡고 애기를 찰 때 애기는 그 몹쓸 발길에 채여 죽었고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145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호미를 들고 가서 공동묘지에 애기를 묻을 것과 동네 구장에게 가서 죽었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146
* * * * *
 
 
147
그날은 이 동리 XXX를 신축하므로 상량식(上梁式)을 하는 날이었다.
 
148
이날 음식을 장만하는데 그도 불리워갔다.
 
149
“자-모다 내 말을 듣소 성동댁, 영동댁, 성남댁은 고기를 장만하고 명동댁, 매꼴댁, 옥계댁은 남새를 장만하소 그런데 누구든지 장만할 때 간을 맞추느라고 맛을 보든지 남모르게 집어 먹든지 하면 당장에 큰일이 날 터이니 미리 그렇게 알고 각별히 주의를 해야 되오.”
 
150
하고 구장인 김영감이 단단히 부탁을 하였다.
 
151
“네에.”
 
152
하고 모두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하였다.
 
153
“이년.”
 
154
하는 소리가 어디서인지 우레같이 일어나자 그는 깜박 잊고 나물 국물을 푼 숟갈을 입술까지 가져가다 말고 돌아다 보았다.
 
155
“아이구 나으리님, 먹은 것이 아니올시다. 잠깐 맛을 보려고 하였으나 입에는 넣지 않았어요.”
 
156
하고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157
“이년.”
 
158
“요망스런 년.”
 
159
하는 소리가 나며
 
160
“제(祭)에 쓸 음식이라고 맛을 보지 말라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이년이 맛을 본단 말이야.”
 
161
후닥딱 몇 사람의 손길이 그의 뺨으로 어깨로 가슴으로 내려 덮쳤다.
 
162
“아이쿠~ 아야. 나으리님, 나으리님.”
 
163
“이년.”
 
164
“꼬라!”
 
165
왁자지껄하던 소리가 이유고 끊어지자 그는 가마 옆에 쓰러졌다.
 
166
“아이구, 무서워라.”
 
167
“글세, 그저께 최서방이 들어와 김문서 집에서 가져온 밥과 국을 다 먹고 부엌에 들어가 남은 쌀을 가지고 나간 채 들어오지 않아서 오늘까지 사흘째 굶었는가봐요.”
 
168
“글쎄 내가 그런 줄 알고 여기로 데리고 왔는 거 아니요. 돈벌이는 못하더라도 제사인가 상량식인가가 끝나면 좀 배부르게 얻어먹기나 할까 했더니……”
 
169
같이 일하던 여편네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요란스럽게 떠들 뿐으로 누구 하나 그를 위해 변명하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170
“제(察)에 쓸 음식에 입을 댄 까닭에 지신(也神)과 목신(木神)에게 벌을 받아……”
 
171
라고 하였다.
 
 
172
(『비판』,193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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