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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벗이 앞에 잇을 때, 나는 기탄없이 내 졸렬한 多辯[다변]을 농할 적이 잇다. 이때 나는 智囊[지낭]의 허실을 알아볼 여지도 없이 斷末魔的[단말마적] 발악으로 내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끄집어낸다. 그러나 벗은 紅茶[홍차]의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종시 미소하지를 안는가? 때로는 처녀처럼 도취의 홍조를 낯에 띠기까지 한다.
4
벗은 내 아는 것을 사랑하고, 내 아는 것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내 모르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5
“어 ― 이제부터…”하고 말을 시작한 적이 없는 나는“아 ― 이것으로 말이 끝났읍니다.”하고 말을 맺을 필요가 없다. 얼마나 상쾌한 일인가? 무준비에서 나온 무체계에서‘생’은 비로소 움즉이엇다. 우리는 작별의 악수를 하고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애처럽게 아까 가젓든 ‘헛튼수작’의 삼매경을 못 잊어한다. 이때 나는 “체계란 대개‘프럭코 ― 트’입힌 인형에게나 당한 오리지날’향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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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벗 때문(이 ‘때문’의 의미가 자못 심장하다)에 나는 여간치 안흔 자부로 이 글을 쓸 생각이다. 내 벗이 나만치 혹은 나 이상으로 유식햇으면 조켓다. 그는 가장 은근한 구석으로 나를 다리고 가서 기도나 하드시 나를 께웃처 주리라. 내 벗이 나보다 훨신 무식햇으면 나는 참으로 더 조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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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誤謬[오류]와 橫竪說[횡수설]에 당목하는 그 ‘이반’적 천재가 얼마나 더 포옹·오열하고 싶도록 정다워질 것인가? 2전짜리‘유리비녀’가 끝끝내 翡翠簪[비취잠]의 행세를 한다면 내 상식이하의 상식이 진주로 빛날 수도 잇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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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6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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