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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思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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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4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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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思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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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사자니 제비가 그립다 봄 삼월이면 해마다 잊지 않고 내 서재(書齋) 문 [窓(창)] 앞 처마 밑에 들어와 깃을 들이고 새끼를 치던 그 제비가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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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있을 땐 음력 이월 그믐이 접어만 들면 나는 제비가 들어와 둥지 틀 자리를 나무 판지라든가 그러한 것으로 적당한 곳에 마련을 해 놓고는 맞아들이곤 했다. 그리고는 그놈이 아무 지장도 없이 고이고이 새끼를 쳐 내가 기를 이심으로 바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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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무슨 제비가 들어와 새끼를 쳐야 그 집에 운이 든다는 그러한 전설을 염두에 두어서가 아니라, 나를 찾아들어와 내 방문 앞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는 그것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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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참으로 내 가족과 같이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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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제비였건만 서울 와서 살게 되면서부터는 아주 소원하여졌다. 나를 찾아 들어오는 놈이 있기커녕 공중에 날아다니는 그것조차 찾을 길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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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 살림을 이제 처음 하여 보는 것이 아니요, 학생시절로부터 통산을 하여 보면 십유여 년은 살았을 것이다. 그때는 집이라는 것이 없었고 남의 집 한 칸 방을 빌려 기숙을 하는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니까 특별히 그러한 관심이 없었던 것이나 집을 잡고 살림이라고 살게 되니 가족과 같이 여기던 그 제비라, 그 제비가 안 들어오니 가족이 안 들어오는 듯이 그 제비가 그리운 것이다. 실로 나뿐이 아니라, 선조대대로 봄이면 맞아들이고 살던 그 제비였다고 생각하니 제비 없는 집에 살기가 더욱 쓸쓸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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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선 제비가 안 들어오는 집이면 흉가라고 한다. 그놈이 참으로 이상한 짐승이기는 한 것이었다. 안 들어오는 집은 영 안 들어온다. 시골이라도 읍 (邑)이라든가 그런 고층건물이 번화한 거리에는 으레 들어오지 않는 것이지만 농가로 떨어져서도 안 들어오는 집이 있다.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 집이 그 집이나 마찬가지인 초가이로되 집이면 집마다 다 들어오면서도 빼어놓는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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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집의 그 해의 운은 나쁜 것이라고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 농촌 일반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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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무슨 흉수(兇數)를 말할 만한 것이라는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니 그놈이 번화한 도시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이 어딘지 그 집에는 그놈의 비위에 맞지 않는 그 무슨 점이 필시 있을 것이라고 알 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일을 직접 한 번 내 집에서 지나 본 일이 있다. 십여 년 전 내 집이 파산을 당할 때 내 서재에는 물론, 건넌방 큰방 사랑방 할 것 없이 방이면 방마다 그 방문 앞 처마 밑 도리 짬에다가 세 쌍, 네 쌍, 심지어는 다섯 쌍, 여섯 쌍 그 수도 모를 만치 들어와 다투며 둥지를 틀던 것이, 이 해 따라 어느 방문 앞에나 깃을 들이지 않고 그저 들어와서는 처마 밑에 그 무슨 무서운 것이 있기나 하는 듯이 기웃하다가는 달려나가서 지붕 위를 빙빙 돌아가는 나가고 하면서 간혹 가다가 마당에 건너 맨 빨랫줄에 앉아 보되, 그것도 못 앉을 데를 앉은 듯이 날름 하니 앉았다 가는 곧 날아 나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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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기를 삼사 쌍이 들어와서 봄내 하더니 여름철을 접어들면서 겨우 한 쌍이 내 서재 문 앞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 한 배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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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이듬해에도 역시 그 전해 모양으로 제비란 놈이 들어와서는 지붕만을 빙빙 돌다 나가고 나가고 하다가 또 한 쌍이 남아서 깃을 들이고 하더니 설레는 집안이 조용해지자 삼 년째 되던 해 봄에 이르러서야 방문 앞마다 쌍쌍이 들어와 이른봄부터 예전대로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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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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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제비란 놈이 사람의 집 문전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려는 그 이유는 오직 사람을 믿고 자기를 해할 고양이라던가, 이런 모든 짐승을 돌보아 주리라고 믿는 데 있다고 추측되는 것만은 사실 같으니, 가령 그놈이 새끼를 치려고 하던 집에 불안한 빛이 보이게 되면 자기의 신변까지 보호하여 줄 그러한 성의가 그 집에 없으리라는 것을 엿보는 데서가 아닐까 하고 그 원인이 어디 있을 것인가를 한동안 생각해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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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제비가 대답을 하지 않는 한, 영원한 숙제로 남을 그러한 성질의 것밖에 더 되는 것이 아니어서 다시는 더 그것을 생각하려고도 아니하고 있는 지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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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내가 제비를 못 잊어 하는 것은 다만 나를 찾아 해마다 들어오던 그 귀여움을 못 잊어서고, 또 내 집이 있게 된 후부터 몇 백 년을 맞아 오던 그 제비를 맞지 못하는 섭섭함이 늘 마음에 남아 있는데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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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 제비가 들어오기만 한다면 내 서재 문 앞에 틀던 그 제비가 와 주기를 바라기나 하련만 내가 없으니 그 서재에 둥지 틀던 그 제비 필시 자리를 옮겨 뉘 집 문전에 깃도 들이고 그 집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라 아니 다시 그 시골집의 서재로 돌아가 그 제비를 불러다 놓고 책을 들고 앉아 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간절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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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금융조합신문》 (193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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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상아탑』(우생출판사, 1955)
【원문】사연(思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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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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