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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삯방아를 찧어 죽 한 그릇을 들고 부지런히 어린 자식들에게로 돌아가던 한 여인이 고개 밑에서 범을 만났다. 그리하여 이 여인은 애중히 여기는 죽을 빼앗기고 왼쪽 팔에서 바른쪽 팔로 왼쪽 다리에서 바른쪽 다리로 다만 살고 싶은 마음에 이처럼 그 범에게 주어오다가 야금야금 베어먹던 범에게 마지막에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빼앗기고 마는 고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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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다만 고담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약한 자의 어찌할 수 없는 사정과 체념에 가까운 운명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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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해서 그리해서 그다음은 어찌 됐어요가 아니다. 소위 소화 11년 이해는 1936년이었지만 나는 동경에 있을 때 고향에서 오는 신문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 서울 어의동 공립보통학교 일인 교사가 이제부터는 조선어 교과서의 교수를 할 필요가 없다고 곧 이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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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에 이 일인의 의견에 대해서 누구 하나 공공연히 반대를 표시한 사람은 없었다. 나 같은 자는 객지에서 공연히 화만 내며 이 일에 대하여 불쾌함을 참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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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라는 것을 생각해 본 것도 그때였다. 아직 사건이 좀더 크게 벌어지기 전에 그 교사놈의 대구리를 커다란 돌멩이로 아싹 때려부수었으면……하고.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두 다 생각만은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아무 일 없이 지난 것은 내 앞에 섰는 범에게 우선 죽 한 그릇을 주기 시작하였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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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방아질을 하는 여인네의 신세는 그전만이 아니다. 이것은 약소 민족의 영원한 표증이다. 지금의 우리는 날마다 생겨나는 일에서 어떠한 것을 목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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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라고 말을 하랴. 자칫 잘못하면……이 아니라 우리의 앞에는 밑이 없는 배때기를 가진 범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내게 이익 하도록 삼단논법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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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파는 아낙네와 소화 11년도의 조그만 사건과 또 이마적에 하루도 쉴새 없이 꼬드겨 나오는 어슷비슷한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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