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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生命)의 고갈(枯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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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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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生命)의 고갈(枯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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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生命)은 「힘」이다. 「힘」이 있음으로 열(熱)이 있고 열이 있음으로 광(光)이 있고 「힘」과 열과 광이 있음으로 온갖 색채(色彩)와 온갖 음향(音響)과 온갖 형태(形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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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명에는 진(眞)과 미(美)가 있다. 자연(自然)에 있어서 굼실대는 바다가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는 또한 예술(藝術)이 있다. 철학(哲學)이 있다. 온갖 것이 있다. 이것은 다 생명(生命)의 표현(表現)이다. 살아 있는 까닭이다. 생명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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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藝術)이 생명의 표현일진대 문예(文藝)가 산 사람의 부르짖음일진대 그 소리는 산 소리여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든지 산 소리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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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명력이 _한 그 개인이나 민족의 나_ 높은 문예는 반드시 힘차고 굳세고 참되고 아름다울 것이며 생명력이 조잔폐멸(凋殘廢滅)하여 가는 그 개인이나 민족의 문예는 또한 달라서 힘 없고 약하고 거짓이 많고 억지로가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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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소위 문단이란 것을 내려다 볼 때 또는 그 사람들이란 것을 볼 때 또는 범위를 더 넓히어 민족 전체의 생명력을 볼 때 그 어느 편이라 말할까. 왕일(旺溢)한 편이라 할까. 또는 조잔(凋殘)한 편이라 할까. 또는 그 사람들이 장차 망한 집을 일으켜 세우려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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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보든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좋은 편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네의 하는 소리란 것은 너무나 힘 없고 열(熱) 없고 따라서 광(光)조차 없고 거짓과 작은 꾸밈새가 많은 것 같다. 그네의 하는 짓이란 것은 모두 패가(敗家)망_ 자손의 짓만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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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것이 한두 가지의 까닭이 아닌 줄은 안다. 과거의 역사적 또는 사상(思想) 생활(生活)의 배경 여하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요, 현재 정치상(政治上) 또는 경제상(經濟上) 파괴_(破壞_)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활과 생명력이 여지없이 무너짐도 그 원인의 가장 큰 것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깨달음이 있고 새로운 사명을 느끼고 인간으로의 자의식이 있다고 할 우리의 젊은이들이 _다만 생활 환경의 책임으로만 돌려보내고 말 것이냐. 지금 말 하나 하는 것은 다른 것은 그만 두고 먼저 문단이란 것을 말하려 한다. 그것은 문단 하나만 가지고도 민족 생명 발현 전체를 다 엿볼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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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과거의 생활이 변하지 못하였다. 참으로 미약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아무 생활의 표현이 없다. 아무 문화도 없다.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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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것이란 것이 오죽지 않았다. 그리 하던 것이 지금 신기운(新機運)에 처한 우리에게 당하여 우리도 사람다웁게 살겠다고, 살겠다는 것 뿐이 아니라 산 다음에는 저절로 무엇을 하지 않고는 아니 될 자의식과 생활의 욕구와 충동이 적으나 많으나 없지 아니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문예운동을 하느니 무슨 운동을 하느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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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신기운이다. 이 신흥운동(新興運動)이라는 초창시대에는 아무리 통일이 없고 _이 없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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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型式)은 비록 거치나 뻐개고 나오는 「힘」이 있어야 한다. 끓어오르는 열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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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열! 먼저 이것만 가지면 넉넉히 나아갈 수 있다. 형식(形式)과 기교(技巧), 이 따위 여기(餘技)는 다 저절로 세_(洗_)이 되고 _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대(大) 작가(作家)의 초년 시대나 대(大)문예를 산출한 민족의 초창 시대를 보면 그네는 무엇보다 먼저 「질(質)」을 숭상하였다.「문(文)」은 그 뒤의 일이다. 질이라는 내용의 「힘」과 열과 깊이와 넓이만 있으면 문(文)이라는 외형(外形)의 빛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땅에 박은 뿌리와 대궁이 있으면 잎과 꽃은 저절로 피는 법이니까. 땅에 박은 뿌리와 대궁이 없는 잎과 꽃은 잎과 꽃이 아니요, 가화(假花)요, 가엽(假葉)이다. 질(質)이 없이 내용(內容)의「힘」이 없이 형식(形式)과 말기(末技)만 숭상하는 문제는 가식(假飾)의 문예요, 기만(欺瞞)의 문예일 것이다. 그는 벌써 우주(宇宙)의 생명과는 인간의 영혼과는 멀리 떨어진 _이다. 마른 잎과 같이 시들은 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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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다! 열이다! 이 신흥운동에는 먼저 힘과 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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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의 문예운동이라는 것은 과연 어떠한가. 이것이 떠들기 시작한지가 벌써 과거 4,5년은 된 것 같다. 아무리 엉성한 초창시대이나 이 4,5년 동안의 일만 가지고도 앞으로 어떻게 자라나겠다는 「싹」은 넉넉히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싹」이라는 것이 어떠하냐. 무슨 묵은 밭에 솟아나오는 대순(荀)과 같은 싱싱하고 힘 있어 보이는 것이냐 또는 사래 북데기 위에서 간신 간신히 삐져나오는 노란 풀싹과 같은 것이냐. 어느 것이냐? 아무리 보아도 전자(前者)라고는 할 수 없다. 후자라는 것이 사실일 것 같다. 그러나 그나마 지금은 시들고 말라 들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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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렇게 되는가? 무슨 까닭인가? 이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생활 환경으로만 허물을 돌려보내고 말 것이냐.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 강한 의식(意識)을 가진 것은 인간(人間)이다. 우리도 인간이다. 이 강한 의식을 가진 인간일진대 이같이 비참한 생활 환경에 처할수록 더 한층 비통한 의식과 감정을 가질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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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인 생활을 들어 말하여 보자. 이 시대(時代), 이 제도(制度) 밑에서 자기 양심(良心)의 지도대로 자기 이성(異性)과 감정(感情)대로 아무 타협(妥協)없이 아무 비굴(卑屈)없이 살아가려는 소위 영웅적(英雄的) 낭만적(浪漫的)인 인물이 있다 하면 그가 나가는 곳은 곧 비극(悲劇)이다. 발자국마다 핏자국일 것이다. 만일에 그렇지 않다면 곧 비굴된 생활이 되고 타협된 생활이 되고 만다. 그래 양심을 가진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이 비굴을 행하고 이 타협을 행하고 이 영혼에 큰 범죄를 행하고 나서 그의 양심이 편안할까. 영혼이 온전할까? 자기 개인에 대하여는 이 땅을 디디고 해 밑에 서지 못할 만한 부끄럼과 아픔을 느끼지 아니 할까. 이 환경에 대하여는 지구라도 뒤집어엎고 싶은 분감(憤感)과 반항(反抗)을 느끼지 아니 할까. 이러한 침통한 자의식(自意識)이 있은 다음에야 어찌「힘」과 열이 없을 리 있을까. 힘과 열이 있은 다음에야 이와 같은 문예가 나오지 아니 할까. 그런 다음에야 어찌 이 문단(文壇)이라는 것같이 쓸쓸하고 말 것인가. 소설(小說)을 쓴다는 사람, 시(詩)를 쓴다는 사람, 그들 중에는 다만 몇 사람이라도 다소간 촉망과 기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보면 여지없이 절망이 되고 만다. 그네의 쓴다는 것은 힘이 없다. 열이 없다. 내용이 없다. 실(實)이 없다. 핏기가 아주 말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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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상한다는 것이 조그마한 기교(技巧) 뿐이다. 신문지 2면 기사보다 조금 나을는지 말는지 한 어느 생활의 국부적 설명, 감정의 진실한 체험이 없는 재담(才談) 부스러기. 이 따위 설명적 개념적 묘사가 소설이냐, 재담 부스러기가 시냐? ─ 아직까지 개척의 괭이가 몇발짝 들어가지 못한 우리 문학의 층계에서 이 따위 손 끝으로 호비작거리는 장난이 우리의 문예운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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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에 그네의 인격(人格)과 생활이 의심난다. 그네의 양심이 의심난다. 그네도 인간의 영혼을 가졌나 하는 것이 의심난다. 짐작하여 알 노릇이다. 그네도 인간인 이상 과거에는 반딧불만한 양심이라도 가졌을 것이요, 멱의 침만한 생명수(生命水)라고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으로 닥쳐오는 정복과 또는 자기의 불순한 까닭으로 온갖 허위와 비굴을 행하면서도 아무 반성도 없고 아무 침통한 자의식도 없음으로 말미암아 그 가련한 영혼이나마 그만 거꾸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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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죽지 못한 생명천이나마 그만 말라붙고 말았다. 그러한 중에도 그 쥐꼬리 만한 지혜는 남아 있는 까닭으로 그것을 가지고 재주 놀음을 하는 모양이다. 거의 불순한 요구를 더 채우려는 것이다. 나오는 소리란 것에 다 마른 샘에 빈 바가지로 밑바닥 긁는 소리다. 거기에는 아무 힘도 열도 광도 없다. 참된 것도 없고 아름다운 것도 없다. 송장의 헛소리다. 도깨비 장난이다. 생명의 고갈이다.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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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生命)의 고갈(枯渴)! 이 모양으로 모두가 다 그렇다 하면 우리는 아주 절망이다. 우리의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영영 죽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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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론 발랄한 기세로 신흥의 기운을 밟고선 흥하는 집의 원기(元氣) 좋은 자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망(亡)한 집을 일으켜 세우려는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조짐이 보여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은 무엇보다 침통한 인내의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로부터「힘」이 나오고 열이 나와야 한다. 예술이 나와야 한다. 고갈된 생명! 우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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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통한 자의식! 「힘」과 열! 우리의 회생(回生)! 우리는 이 사활로(死活路)에 서 있다.
【원문】생명(生命)의 고갈(枯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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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