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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문학(生産文學)의 전망(展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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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7.3
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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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産文學(생산문학)의 展望(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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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학은 결국 인간의 생활의식(生活意識)의 표현이다. 이것은 비록 어떠한 ‘예술을 위한 예술’일지라도 마찬가지로 부인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풍부하게 또 진실하게 표현되어 있나 안있나의 차이 뿐이다. 회화나 소설 등에 있어 일견 인간생활과 아무 관련 없는 순전한 자연물과 자연풍경의 묘사 그 속에도 인간의 생활의식이 표현되어 있으므로써 아무리 교묘하게 묘사해도 자연에 따를 수 없는 그것에 창작적 가치를 주는 것이다. 만일 교묘만을 위하여 가치를 준다면 그것은 실물의 화초나 산수에 비하여 반분(半分)의 가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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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떠한 화초, 산수 그것이 모두 인간생활에 직접적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것을 묘사하는 데는 인간의 의식을 통하지 않을 수 없고 인간의 의식이란 또 인간생활 과정에서 발효된 것이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생활은 문학(文學)의 원천(源泉)이며 자양(滋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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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물이나 생물이 그것으로 생장하고 발육하는 토양, 공기 등과 같이 그래서 그것이 좀더 풍부하고 진실하게 표현될 수록 그 문학은 좀더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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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그래서 문학의 형식, 내용을 물론하고 그것의 모든 원천이 되어 어떠한 작품에서든지 그 요소를 제거하고 난다면, 그것은 동생물(動生物)의 타고 남은 재(灰[회])와 같이 붉고 푸른 색채와 흐터진 문자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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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문학에 대한 관계는 서상(叙上)과 같거니와 그러면 생활의 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즉 생산이며, 생산문학의 의식도 실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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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한 바와 같이 인간의 태초의 생활은 생산이 대부분이었고 또 생산자가 즉 그때의 예술가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소위 예술은 대부분이 생산 장면 혹은 생산의 대상물이었다. 즉 수렵시대의 회화, 연극 , 무용, 시가는 모두 그들 수렵생활의 재현이며, 수렵 대상인 각종 동물들의 묘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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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차 인간생활이 생산생활 외의 다른 문화적, 정치적 생활이 발전, 복잡하여짐에 따라 또 그것보다도 예술 창작이 생산자의 손에서 떠나게 됨에 따라, 어느덧 인간 생활의 주체가 생산임을 거의 의식치 못하게 되고, 또 생활이 예술의 근원인 것도 인식치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은 갈수록 비생산자의 예술만으로 또 비현실주의적으로 발달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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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생산은 의연히 인간생활의 주체이며, 생활은 예술의 근원이다. 이것은 인간이 천상이나 지하에 살게 되기 전에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에서 생산을 그리자는 것은 인간 생활을 그리자는 것이다. 즉 생산 활동을 통해서 전개된 ‘인간의 생활’을 그리자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문학(生産文學)의 주요 관심은 생산을 그리는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을 그리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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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산문학에서 말하는 생산 생활은 공장, 농촌 등에 국한한 협의적(狹義的) 그것이 아니고, 광범한 의미에서 일반 생산 부문에서 종사하던 모든 인간의 노력 생활을 말한다. 그것은 의식주를 식(息)한 인간의 노동생활은 다 마찬가지로 생산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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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 일본문단에서 계획적으로 제작하는 생산문학이나 조선문단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가끔 제작되는 약간의 생산문학이 농촌문학에 국한된 감이 있을만치 농촌 생산문학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일본이나 조선이나 생산자의 최다수가 농민인것이 주인(主因)이겠지마는 다른 한가지는 생산의 각 부문에 대한 관심과 지식, 또 생산문학에 대한 인식이 풍부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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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산문학이란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공장, 농촌 더구나 농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생산 생활의 어느 부문에든지 관한 문학이며, 또 그것은 어떠한 계급의식으로 소극적, 부정적 방면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반대로 생산 생활의 적극적 방면에 주력하여 그들이 짠 땀을 흘려가며 노동하고 휴식하고 고뇌하고 환희하는 생산 과정에서 인간의 자태를 그려내는 것이 즉 생산문학의 소득, 계급문학과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말할 수 없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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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간 자태의 묘사에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 그 물건만 추구한다면 오이려 진실한 인간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인간의 생존 조건, 생활 과정을 추구하는 가운데 인간 자태가 진실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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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문학에 대한 생산생활의 중요성은 구보까와(窪川[와천])씨의 말과 같이 생산, 그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산이 인간 생활의 근본적 기초가 되어 있는 것에 있다. 즉 우리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며 문화의 단초(端初)를 창조하게 한 것은 생산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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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의 창작가들이 생산문학을 제작한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사업이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일반 창작가들은 대개가 생산에 대한 체험과 지식이 부족할 뿐 아니라 거기 대한 관심과 흥미도 결여되어 있는 까닭이다. 생산문학을 제작하려면 어떠한 생산부문에든지 거기에 대한 지식의 획득을 위하여 부단한 노력과 계획적 행동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는 인간의 성격·풍속 · 심리에 대한 적극적 연구, 주밀(周密)한 묘사도 필요하다. 그것이 결여한 문학이 될 것이며, 그것이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을수록 건전한 ‘리얼리즘’ 문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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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문단에서 성격·풍속·심리 등에 대한 관심이 깊어 진 것은 ‘리얼리즘’ 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추장(推獎)할 경향이다. 그러나 생산 생활의 연구, 묘사에 대한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 왜 그러냐 하면 생산 생활은 인간 생활의 근간이며 풍속·성격 등을 결정하는 기본이다. 때로는 풍속·성격이 생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풍속·성격 등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생산이다. 즉 성격·풍속이 농민·노동자·상인의 생활을 결정하는 것보다도 농민·노동자·상인의 생활이 그들의 성격·풍속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속·성격을 볼 때 생산 생활과 절연시켜 볼 수 없을 것이고, 또 그것을 묘사할 때에도 생산 생활과 절연해 그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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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생활은 인간 생활의 어떤 특수적 장면이 아니고 인간의 가장 광범한, 가장 중심적인, 가장 기본적인 생활상태이다. 그래서 인간 생활은 생산 생활만이 아니고 문학은 인간 생활의 모든 방면을 다 그려야 된다는 그것이 결코 생산문학의 제작을 기피하는 구실은 되지 못한다. 물론 인간 생활은 결코 생산 생활만이 아니고 그 외에 다른 여러가지 문화적, 정치적 혹은 소비적, 유희적 생활도 많다. 또 문학도 생산 생활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고 다른 광범한 인간 생활의 어느 것이든지 금지 구역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만일 우리가 문학의 대상을 생산에만 국한시키며 생산문학만이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으로 안다면 그것은 ‘생산주의’ ‘생산주의 문학’ 이 될 것이다.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은 그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 그러한 구실로서 생산문학의 창작을 기피한다면 그것은 밥 상식자(常食者)가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고 밥을 기피하는 거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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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산 생활 그것도 문학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추상적(抽象的)인 그것의 묘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장기로 밭을 가는, 공장 안에서 기계를 돌리는, 책상 위에서 장부를 꾸미는 등의 그것은 아무리 교묘·미려(美麗)하게 묘사(描寫)되어도 우리에게 아무런 흥미를 느끼게 못하는 상식적인 그것이다. 문학에서 요구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일반적인, 추상적인, 상식적인 그것이 아니고 소여(所與)한 시간과 장소에서 생기(生起)한 구체적, 특수적인 그것이다. 사실 생산 생활도 다른 생활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그것과 미국의 그것이 갖지 못하며, 이 시대 그것이 다른 시대의 그것과 갖지 못한 이상, 예를 들어 농민의 생산 생활을 그릴 때에는 어느 시대, 어느 지방의 농민 생활인 것이 확연하게 묘사되지 않으면 안되며, 그것을 ‘리얼리스틱’하게 묘사하면 필연적으로 그들의 특수한 성격·풍속·심리 등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이 창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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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반 창작가들이 생산문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적으며, 또 의식적으로 제작을 오히려 염기(厭忌)하는 경향을 가진 이유는, 전술한 바와 같이 일단 작가 자신이 생산 생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여 그 문학의 제작에 많은 준비적 노력이 필요하며, 또 준비 그것도 다른 것처럼 서적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현지에서 실제적 시찰 연구가 필요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리얼리즘’ 창작가는 그러한 안이성을 극복하며 광산·농(農)·산·어촌 등 모든 부문에 대한 생산문학의 연구, 제작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즉 ‘리얼리즘’ 문학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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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생산문학이란 반드시 소설에 한한 그것이 아니고 시·연극·회화·음악 등 어느 부분에든지 그러한 예술이 창작될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의 어느 부문이든지 생활의 예술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형식의 그것이라도 생산 생활의 묘사에 불가능한 소설, 회화 등이 없을 것이고 생산생활, 정서의 표현에 불가한 시, 음악이 없을 것이다. 다만 전술한 바와도 같이 생산문학만이 유일한 ‘리얼리즘’문학이란 것이 아니고 또 생산 문학이라고 반드시 생산 생활의 묘사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는 산과 물의 자연 풍경도 눈물과 웃음의 세태풍속도 종합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단순한 생산의 묘사는 생활문학이 아니고 그것은 ‘산업문학’ 혹은 생산 생활의 기록문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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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부연 언급하고 싶은 것은 대체로 보아 일반 평론가나 창작가들은 창작의 대상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것 같다. 문학 창작에 있어 ‘무엇을’ 과 ‘어떻게’의 어느 것이 더 기본적이고 더 중요한가의 논쟁은 지금 새삼스럽게 할 필요가 없거니와 어쨌든 그 두가지 중 어느 것이든지 모두 예술 창작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은 경론(更論)할 여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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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향문학(傾向文學) 퇴조 이후로 문단에서는 약속한 것과도 같이 모든 주의와 노력이 특히 후자 즉 ‘어떻게’에 일제히 집중되어 왔다. 그래서 ‘어떻게’에 과도한 주의가 집중되는 그만치 ‘무엇을’에 대하면 그만치 추홀(粗忽)이 하고 경원(敬遠)을 하였다. 따라서 많은 평론가가 일반적(一般的) 이론으로는 ‘어떻게’ 에만의 주의 집중을 배척하고 ‘무엇을’ 에 대한 주의를 부절히 요망하면서 구체적으로 소여(所與)의 작품을 논평함에 제(除)하여는 역시 ‘어떻게’에 대한 지엽적 논의만으로 시종(始終)해 버린다. 이러한 경향은 재래에 그러한 경향을 배척하던 일부의 평론가에 더 농후한 것 같다. 그래서 그 경향은 우리 문학을 기교주의(技巧主義) 혹은 ‘정신 빈곤’의 신학(新學)에로의 장족적(長足的) 발전을 위하여 박차를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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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소수의 일부로부터 가장 진지한 발전으로써의 ‘무엇을’에 대한 열론(熱論)을 간혹 듣는다. 그러나 그것의 대부분은 너무도 지당한 누구도 용훼(容喙) 못할 지도적(指導的) 이론이면서 너무도 추상적인 막연한 원칙적 이론에만 그치고 어떠한 구체적 이론의 전개가 없다. 그래서 일반론자는 그것을 읽을 그때에는 누구든지 이의 없이 수긍하면서 실제로 창작적 실천에 있어서는 그 처방전에 따라 조제하는 이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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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에겐 원칙적 이론이 무엇보다도 더 요구된다. 그것은 구체적 이론에 대한 그물의 ‘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원칙적 이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더구나 어떻게라도 해석할 수 있는 추상적 이론은 때로는 소기(所期)와 반대의 영향을 야기하는 일도 있다. 최근 안함광(安含光)씨의 〈純粹文藝是非[순수문예시비]〉란 논문 가운데 이와 동의(同議)의 논조(論調)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동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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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이 ‘만네리즘’에 빠졌다고 한다. 혹은 절망적 중증(絶望的 重症)에 빠졌다고 한다. 이러한 소리가 최근 날로 높아가며 또 사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구출할 처방은 첫째 ‘어떻게’뿐 아니라 ‘무엇을’에 대한 성의 있는 토의(討議) 전개가 필요하며, 또 그것은 원칙적인 그것도 필요하지만 좀더 구체적인 그것이 더욱 긴급하지 않는가 한다. 나는 지금 이 생산문학도 ‘무엇을’에 대한 한 구체적 논제로 문학평론가들의 진지하고 성의 있는 논의와 전개를 요망하는 바이다.
【원문】생산문학(生産文學)의 전망(展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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