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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을 구하는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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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9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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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b+;생을 구하는 마음
 
 
 

1

 
3
김준경 (金浚慶)은 그의 친우 최우(崔愚)를 찾으려고 호남선 T역에서 내렸다. T역과 같은 시골 정거장서는 일이 년 만에 볼는지 말는지 할 만한 외양이었다. 단발을 하였는지, 수발(垂髮)을 하였는지 분명히 알아볼 수 없게 어깨까지 내려 덮인 머리털을 다시 뒤로 잡아 넘기었다. 그는 맥고모자를 단단히 눌러쓴 뒤에 행구(行具)를 더듬더듬 거두어 들고 정류장 구외(構外)로 나와서 B군행 자동차에 올랐었다. 자동차가 조그마한 상점과 주막, 여관들이 즐비한 시가지를 지나 좀 넓은 길이 앞에 길게 보일 때에는 꽤 빠른 속력으로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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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이로부터 수삼 시간 후에는 우를 만나볼 것과 또는 자신의 금일 형편이며, 그동안 듣지 못한 모든 것을 들을 생각을 하매, 기쁨이 가슴에서 차오르는 듯하였다. 그러나 벗의 새살림과 그 화락한 분위기 중에서 몇 달 동안 지낼 일을 생각하고, 자기 생활에 현실을 돌아볼 때에 알 수 없는 고적을 느끼었다. 어쨌든 빨리 닫던 자동차도 오히려 더딘 듯하였다. 도로에 차륜(車輪)의 흔적과 요철 흉배(匈配) 가 너무나 많아서 낡아빠진 차체는 사정없이 장거리 여행에 피로한 준경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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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넓은 들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힘껏 마시면서 명상에 깊어 차체의 요동도 잊어버렸었다. 들 건너 B연산(連山)은 몽몽한 운하가 덮여서 그 윤곽의 둔하고 굵은 선만 보였다. 이삼 촌(寸)쯤 자란 보리는 산모퉁이와 언덕 밭을 줄기줄기 푸르게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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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들의 푸른빛에 반사되는 보드라운 광선은 준경에게 따뜻한 품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황해면(黃海面)을 씻고, 다시 B연산을 넘고, 또 다시 봄들의 파릇파릇한 어린 움과 싹으로 덮인 언덕을 밟고 맞은 연한 바람이 명상에 깊은 준경의 깊고 곱슬곱슬한 두발을 살살 날리며, 그 핼쑥한 뺨에다 고요한 키스를 주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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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그렇게 광막한 B평야를 어느덧 지나치고 산록(山麓)을 끊어 평탄하게 만든 신작로로 달아난다. 도로의 좌우편에는 왜송의 치림(穉林)이 있고, 그 수풀을 연(連)하여서는 암석과 적황토의 덩어리 같은 비교적 높은 산정이 보였다. 구릉과 송림 사이를 지나 꽤 큼직한 소지(沼池)의 언덕에 나왔다. 못에는 물이 가득하여 가벼운 봄에 놀라 못 가운데를 향하여 때때로 날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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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이름도 모르는 어떠한 동경의 나라를 향하는 듯하였다. S산록에 초가며, 와가(瓦家)며, 양철집들이 삼사백 호나 되는 B군읍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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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B군읍에서 인력거를 타고 다시 황해안을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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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조금 지난 봄 광선은 흐듯흐듯한 맛이 더하였다. 그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이슬처럼 열렸다. 여행의 피로를 새로이 개달았던지 눈이 절로 감기어 인력거 위에서 몇 번이나 꾸벅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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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읍을 뒤로하고, 서(西)로 서로 넓은 들을 건널 때에 준경은 등에 땀이 젖은 인력거꾼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굴러가는 바퀴 소리와 말소리가 어떠한 코러스처럼 광야에 흘러가는 봄날의 부드러운 공기를 그윽히 흔들었다. 솔잎상투에 흰 무명 수건으로 망건(網巾) 대신인지 이마를 줄근 매고 겹고의에 홑저고리를 입고 굵은 초화(草靴)를 맨발에 신은 것을 준경은 기이한 듯이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 사람은 인력거 끄는 것이 본업이 아닌 듯하였다. 검붉은 툭툭 굵어진 근육이며, 앞채를 단단히 쥐인 손마디와 심줄이 분명히 나온 주먹이며, 모든 씩씩한 육체를 준경은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12
준경은 소리를 높여 인력거꾼에게 물었다.
 
13
“당신은 언제부터 인력거를 끌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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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흘긋 뒤를 돌아보면서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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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지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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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속으로 이상한 물건이 다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껏 인력거 타는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존경하는 언어를 쓰는 것은 이 사람뿐이라 하였다. 그래서 도리어 정답지 못한 생각도 나고 황송스럽기도 하던지, 헐떡거리는 숨을 더욱 헐떡거리며 말을 이어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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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되어요. 작년에는 농사 마직이나 하였쥬. 그런데 금년에는 그것도 못하고 빼앗기고, 할 수 없어서 이 짓을 한답니다. 실상은 논을 준대도 도조(賭租)는 비싼 데다가 역량(力量)만 많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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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속으로 자기의 짐작이 맞은 것을 기뻐하면서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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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러면 집이 읍내가 아니요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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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서 한 오 리나 되는 데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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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처자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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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처는 어린 자식을 데리고 어느 아는 집에로 고용살이를 보냈구, 그리고 저는 큰자식만 데리고 읍내 주막 구석에서 그럭저럭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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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 꺼림 없이 시원시원하게 자신의 형편을 묻는 대로 고백하는 소박한 농부의 비참한 경우를 더욱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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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벌면 처자는 먹일 수가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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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이런 도련님 보아라 하는 듯이 허허 헛웃음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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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는 그만두고 이 몸뚱이 하나도 관장할 수 없답니다…….인력거도 자동차 없을 때에는 끌 만했더랍니다마는, 지금은 몇 푼씩 받고 외촌(外村)에만 다니니 무슨 벌이가 되어야지라우……. 인력거꾼들은 끌던 것도 다 그만 두고 농사나 짓고, 그렇지 않으면 철도판이나 다른 벌이 좋은데로 제각기 다 가버렸다우. 저도 제기나 뭘 하면 그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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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력거는 당신 물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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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또 허허 웃으며,
 
29
“인력거가 제 것 같으면 어떻게 되라고라오. B군 읍내 Y댁 것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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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댁이란 어떠한 집이오?”
 
31
“Y댁을 몰라요? 이 골 수부(首富)지요. 벼를 사오 천 석이나 받고, 어장, 산장, B군 안에 그 집 땅이 없는 데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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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의 눈에서는 이상스러운 빛이 번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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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밖에 없어, 이놈의 세상에는 돈이 제일이라오. 돈 없으면 죽은 목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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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떡거리며 앞채를 단단히 잡고는, 비스듬한 내림길로 정신없이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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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인력거꾼의 기색으로 그 부자가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짐작치 못함은 아니나, 일부러 말을 계속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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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주 고마운 이로구려! 인력거를 사주어서 벌이를 하게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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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허리에서 수건을 꺼내어 가지고 이마와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높은 소리로 히히 헛웃음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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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참 숫허시우 . 이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해가 서편에서 떠오르게요. 세(貰)가 단단하답니다. 일 원을 벌면 사십 전은 인력거세로 바치고, 그 남적이가 제 몫이랍니다. 그러고 구루마가 상하면 제 돈으로 고치고, 만일 인력거 주인이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아무리 천백 원 벌이가 있더라도 그 손님은 그만두고 공짜로 인력거 주인을 태워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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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더 할 말이 없었다. 한 사람은 끌면서 생각하고, 한 사람은 타고 가면서 생각하였다. 준경은 평일의 센티멘털한 기분이 왈칵 나왔다. 타는 사람, 태우는 사람? 자기의 생각의 천지와 실행의 세계와의 모순을 생각하매, 자기의 포켓에 있는 모든 것을 인력거꾼에게 내어주고, 어서 그대로 돌아갑지오 하고 싶었으나, 자기의 목전의 불안과 선천적으로 존재한 참혹성이 그 순간의 정열을 식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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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생각하였다. ‘이런 사람은 말하는 것으로 보든지 얼굴로 보든지, 인력거 삯을 깎을 이는 아니다! 달라는 대로 받아 가지고 가면 혼자 기다리는 어린 자식에게 과자나 좀 사주겠구나! 그러나 처와 유아는…… 오늘 제역에 볼갈까’ 모든 생각이 교착(交錯) 되었다. 그러고 오늘까지 인력거야, 인력거꾼아 하는 해라나 한껏 허재밖에 못 받았는데, 이 손님은 여보시오 저보시오 존경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는 공으로 태워주어도 관계없다고 생각하였지마는, 목전의 먹을 것을 생각하매, 삯을 많이 받을 듯한 것도 한 기쁨과 기대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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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은 미안에 못 이기어 흘긋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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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리! 그렇게 말씀 달으시게요! 저 같은 인력거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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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아니 웃을 수 없었다. 그러고 그의 몸에 단단히 매인 쇠줄이 보이는 듯하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하등의 반성이 없고, 인순(因循)과 굴종의 테 밖에 한 걸음도 나가보지 못하는 현금의, 아니 목전의 시달키는 무리의 슬픈 두호(阧呼)나 다름없이 들리었다. 자신도 그 인간으로서의 본의를 몰각한 무리를 그대로 맹인을 만들어 가지고 그대로 혹사 하는 특권을 잡은 무리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때에, 그의 그림자에도 일종의 증오를 느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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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은 무의식적으로 성낸 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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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라고 나에게 해라나 허게만 늘 받으라는 것이 어데 있겠소? 관계치 않소. 당신들이 우리 같은 사람에게 하래나 허게 할 때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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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의 가슴에는 여러 가지의 복잡한 감정이 물굽이 쳤다. 이러한 일시의 흥분이 지난 뒤에는 어떠한 고적한 감정이 떠돌았다. 다시 침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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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는 서해안의 방파언(防波堰) 위로 올라갔다. 이 언은 가장 원시적인 공사로 된 것이었다. 물론 석재나 목재를 써서 만든 완전한 것이 아니라, 점토와 뗏장으로 주섬주섬 치괴어서 된 언덕이었다. 간석(干潟) 한 땅이 언 앞으로 아득하게 보이고, 그 위에는 조수의 나드는 거구가 수지형(樹枝形)으로 흩어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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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연산맥이 그친 그 머리는 북편으로 깊이 해중(海中)에 집어넣은 것이 마치 괴수의 꼬리같이 보였다. 인력거는 B연산의 거친 해안의 높았다 낮았다한 길을 지내어 S촌을 내려다보는 산 고개 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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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촌락의 위로 일망무제한 황해의 파도가 높았다 낮았다 하는 것이 보이었다. 촌락의 앞에는 백사(白沙)가 덮인 해빈(海濱)이 길게 뻗질러 있고, 그 좌편에는 파릇파릇한 새움이 나온 수목이 총잡(叢雜)한 소구(小丘)가 섰다. 또 그 앞에는 초암(礁巖)이 기포(棋布) 하였고, 파랑(波浪)은 백사를 씻고는 다시 암초에 부딪혀 그 공중에 높이 흩어지는 비말(飛沫)이 연기 같이 보였다. K군도가 바로 앞에 누워 있다. 만조를 따라서 들어오는 범선들은 돛 허리에 바람을 흠씬 받아서 봄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듯이 닫고 있다. 해상에 흩어져 있는 포범(布帆)의 흰 빛과 물결의 푸른빛이 조화 되어 보였다. 해안에는 돛을 내린 어선의 상두(狀頭)가 우뚝우뚝 서 있었다. 준경은 고개 위에서 잠깐 쉬인 뒤에 동구로 향하여 내려왔다. 동리에서는 간수(干水)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이상스럽게 코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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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에서 내닫는 개들은 타국의 침입자나 온 것처럼 악착스럽게 짖고 나온다. 건어 말리는 간지(干支)와 젓 담그는 독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준경은 인력거꾼의 안내로 푸릇푸릇 나무 가만히 있는 소구의 중허리에 있는 비교적 높은 곳에 한 채의 따로 있는 우리 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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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문 기둥에 우의 필적인 문패를 볼 때에, 준경은 반가운 생각에 어찌할 줄 몰랐었다. 곧 앞으로 뛰어 들어갈 듯한 생각을 하며 잠깐 주저 하다가, 인력거꾼을 시켜서 자기의 온 것을 통기하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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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익은 우의 말소리가 들리며, 그 어글하고 씩씩한 벗의 얼굴이 사립문에 나타날 때에 준경은 힘껏 그의 손을 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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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지! 통기와는 하루가 늦어서……. 미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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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오늘쯤은 꼭 올 줄 알고 출입도 않고 기다렸네……. 자, 들어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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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머리털로 어깨가 덮인 준경과 짧게 깎은 머리털이 밤송이 된 듯한 우의 그림자가 봄 석양에 비쳐 서에 길게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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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 돌아가는 바퀴 소리가 고요한 어촌에 가늘게 들리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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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의 친우인 우는 삼십이 막 넘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십이나 된 것처럼 늙어 보였다. 준경과 우는 소학으로부터 중학까지의 학우이다. 그들의 성격상으로 대차(大差)가 있으나, 도리어 그것이 조화와 매개가 되었었다. 그래서 막역의 사이를 만들고 말았다. 우는 중학을 마친 뒤에 외국 등지로 방랑의 생활을 하다가, 삼 년 전에 황해안의 어촌에 와서 남국의 따뜻한 맛을 탐하다시피 맛보고 지내었다. 남국의 어촌에서 그 일생을 보낼 계획을 세운 것은 그의 사상의 변동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외국으로 방랑하는 동안에 어린 그의 가슴에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물질의 곤란이며, 사상의 착오로 무수한 파란이 젊은 우의 짧은 생애에 다부분(多部分)을 점령하였었다. 수차의 실연과 다년의 방랑 생활은 그의 정예발랄(精銳潑剌)한 성격을 서리바람에 핀 꽃처럼 무기력하게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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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타성적으로 계속하는 생을 여하히 할까를 생각하였었다. 어떠한 때에는 생이란 것을 극히 부인하였다. 그래서 괴로움을 계속하는 것보다도, 순간의 고통을 이기고 영원의 고통 없는 적멸의 세계로 가려고도 하였으나, 그러나 그는 살고자 하는 생의 애착, 생명의 힘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생의 뜻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내부에는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여하히 큰 것을 알았다. 어쩌든지 살려는 힘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깨달은 우는 자기의 생을 어떻게 충실히 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었다. 어떠한 때에는 모든 역사상의 훌륭하다는 사람처럼 일신을 바쳐서 분투할 것도 생각하였고, 극단의 자아를 위하여 일신의 영화를 얻어볼까도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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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것이 우의 생활에는 하나도 불합(不合)하게 생각하였었다. 아무쪼록 고통 없는 생애를 얻으려는 것이 우의 생각에는 점점 깊어졌다. 우란 이름도 본명이 물론 아니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우(愚)란 자(字)를 특별히 붙이게 되었다. 다년 방랑하는 동안에 약간의 유산도 탕진하였고, 자수(自手)로 벌지 않으면 입에 밥이 들어가지 못하게 될 때에, 그는 비로소 눈을 크게 뜨고 더욱 살려고 빠득거렸다. 그는 이러한 결과로 삼사 년 전부터 시골 소학교 교사로 다니게 되었었다. 선생님 노릇을 하면서 그 성격이 더욱 침착되어졌다. 삼 년 전에 S촌에 있는 사립 소학교로 온 뒤에 동리 사람들이나 학부모들의 신임을 얻어 동리 사람은 누구든지 최우 선생, 최우 선생 하고 부르게 되었다. 그 이가 한길로 나가면 동내 소동(小童)들도 선생님, 선생님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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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는 무사기한 아동을 접하는 때에는 항상 기쁨이 가슴에 차오르고 위안이 있었다. 그래서 자기는 이 어촌에서 일생을 보내려고까지 생각한 때가 많았었다. 갓이 없는 해빈을 춘하추동 어느 때를 말할 것 없이 뒷짐을 지고 두루두루 거닐면서 사색에 침감(沈憾) 하는 것이 자기의 생을 충실히 함이 아닌가 늘 생각하였다. 그리고 법열 삼매경에서 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실을 초월할 수 없이 그 환경에서 시시각각으로 첩생(疊生) 하는 사실에는 하나일지라도 그의 신경을 자격(刺激)치 아니하는 것이 없었다. 이러한 때를 당할 때마다 그의 평온을 열구(熱求)하는 가슴에 우수와 고뇌가 그 반대로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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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어촌에 처음 올 때에는 물질의 곤란이 더욱 심하였었지만, 근래에는 곤란한 것을 잘 인내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또 얼마만큼 지반(地盤)이 비교적 굳어서 여유는 없다 할지라도, 지금부터 식구가 한두 사람이 불더라도 관계치 않을 만큼 되었다. 그러므로 우는 항상 자기는 고등기생충이라고 하였었다. 권속(眷屬)은 우 부부 이외에 부엌 심부름하는 계집아이를 한 사람을 두었었다. 그의 처는 우 자신이 방랑 생활 하는 동안에 수차나 실연하고, 어촌에서 그 지방 처녀와 결혼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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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에는 무슨 특별한 사랑이란 것은 없을지라도, 그렇게 냉랭한 사이도 물론 아니었다. 그 처는 구식의 여자일 뿐 아니라, 궁벽한 어촌에서 생장하였으므로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 대신에 소박한 성격이 퇴영적인 우에게는 알 수 없는 존경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였다. 과도기에 있는 신여자들의 얼마만큼의 결점을 알고, 또는 그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받던 우에게는 천진인 아동을 대하는 생각으로 자기의 처를 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상생활에 그 처로 하여금 좀 더 자기를 이해할 힘을 가졌다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어떠한 때에는 자기가 너무 무리한 것으로 그를 압박하더라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순종하는 것이 도리어 비굴하여 보이었다. ‘좀 더 산 개성이 있는 여성이었다면…….’ 하는 불만족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내부의 생각이었고, 처의 소박과 또는 우의 처에 대한 동정이 아무 풍파 없이 부부 생활을 금일까지 계속하게 하였다.
 
64
우는 무엇보다도 그의 성격을 사랑하였다. 자기의 생을 충족하는 데에는 학문이니 기술은 일개의 조건에 지나지 못하고, 그 과학적 지식이라든지 기술이 생의 전부가 아님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처의 순진이 절대의 가치를 가진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처에게 구식 가정의 생활을 물론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함께 해안 산보도 하고, 내객(來客)이 있으면 응접도 처로 시키었다. 처 되는 이는 처음에는 변괴처럼 여겼으나, 금일에 와서는 의례(依例)의 일로 알게 되었다. 어쩌든지 우는 호배우(好配偶)처럼 생각하고, 외면에 나타나는 불평이라고는 없이 지내었었다.
 
65
그러나 가정생활이란 것이 얼마만 한 가치를 가졌는가 의심하는 우에게는 물론 절대의 위안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창공을 우러러보고, 표묘(漂渺)한 해양을 바라보며,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섞여 들리는 때의 사색하는 순간에만 참으로 만족과 감사를 느끼었었다. 어떠한 때에는 해가 저무는 것을 모르고 우두커니 해안에서 명상을 탐하다가, 맞으로 나온 처의 부르는 소리에 문득 놀래어 그때에야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66
그래서 구습(口習)이 좋지 못한 동리 젊은 어부들은 우를“얼빠진 선생님” 이라 별호를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또는 눈에는 그럴수록 알 수 없는 광채가 더하여왔었다. 멀겋고 영기(靈氣) 없는 어부들의 눈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 그래서 동리 아동들은 그의 안광(眼光)을 가장 저어 하였었다. 멀리 얼빠진 선생님이 보이면 좋지 못한 유희를 하다가도 그것을 중지하고 시치미를 떼고 서 있게 되었었다.
 
67
우는 항상 명상 중에 있으면서도 일생을 이 어촌에서 이렇게 마치는 것이 운명인가 하였다. 그러나 있게 되는지 않을는지, 그것은 생각지도 않으려고 하였었다. 그러고 가끔가끔 옛일을 추억할 때에, 실연의 상처가 다시 입을 벌리려 하였다. 지금 처에 대한 미안한 생각과 그 반감이 그것을 억제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할 수 없는 고적만을 느끼게 하는 일이 가끔가끔 있었다.
 
68
그러나 이것이 연(戀)에 대한 애착에서 나왔다느니보다, 증오와 저주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의 약한 성격의 소이라, 자주자주 이 아픈 상처를 만질 것을 한 운명처럼 생각하였다. 명상, 추억, 회한들이 우의 학구적 사색 생활의 전부이었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어떠한 진리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우리가 살아야 한다. 살려면 어떻게 살고자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자기의 생을 충실히 하자는 것이 근일 사색의 대상이었다.
 
69
우는 자기의 친우 김준경이 자기를 심방하겠다고, 또는 대단히 미안하지마는 군에게서 몇 달간 한양(閒養)을 하여야 할 터이니, 근처의 숙소를 정하여 달라는 편지를 사오 일 전에 받고 크게 기뻐하였다. 오래 못 본 친우를 만나는 것도 기쁨이 아님은 아니나, 그동안 울적한 생각을 하룻밤이라도 흉금을 열고 말할 것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기대였었다.
 
70
친구가 온다는 말을 그의 처에 말하고, 다른 숙소를 정할 것 없이 건넌방을 수일 전부터 새로 도벽(塗壁)도 하고, 침구 일습(一襲) 까지 장만하여 놓고 기다렸었다. 준경은 우의 부처에 대하여는 참으로 진객(珍客)이었었다.
 
71
처도 가끔가끔
 
72
“어찌 손님이 안 오시는가요?”
 
73
하면 우는
 
74
“글쎄요. 올 때가 되었는데? 그는 아이 같은 이니까, 오다가 읍내에서나 구경을 다니고 내일이나 올까 봐요.”
 
75
의심스럽게 대답하던 터이었다.(미완)
 
 
76
《신생활》, 1922년 9월
【원문】생을 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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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상(李益相) [저자]
 
  # 신생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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