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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괴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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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4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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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괴뢰
 
 
2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기를 ,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나더러 묻기를 “네가 왜? 하고 많은 것 가운데에서, 하필 붓대를, 들게 되었느냐? 그리고, 되지 않은 너의 대통만한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기를 강청(强請) 하느냐” 물을 것 같으면,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까를, 문필(文筆)에 뜻 둔 그때부터, 나의 생각이, 부채살 퍼지듯이, 외계(外界)로 향하여 방사(放射)하였다가, 혹은 고요한 밤, 혹은 적막한 기분에 싸일 때 ─ 곧 나의 모든 생각이 다시 내부로 향하여 집중될 때에, 아니 생각한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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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한 의문이, 나의 머리에 일어날 때에, 혹은 그러할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그러한 마음을, 돌이킨 일도 있었고, 어디까지든지, 자기를 변호하려는 억설(臆設) 같은 대답을 이리로 저리로, 끄집어 대인 적도 있었고 혹은 내일부터라도, 붓대를 내던지고, 호미나 망치 자루를, 쥐겠다고, 스스로 맹서(盟誓)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한 의문 중에서, 가장 많은 도수(度數)와 강경(强硬)한 힘으로, 그대로 붓대를 붙잡게 한 것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오, 나의 내부의 열렬한 요구가, 이것을 강요하는 까닭이오, 나의 감정이 그것을 버리고는, 아무 것도 요구치 않는 까닭이오, 나에게 울적한 고뇌가, 무엇을 그려내고 만드는 그 순간, 그것이 생각한 바 그대로 이루는 그 찰나에, 환희로 변하여, 어떠한 겁탈(怯脫)을, 느끼는 까닭이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 ─ 처지와 경우가 같은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한 바를, 어느 기호로 그려내어, 이것을 다시 뵈일 때에, 그들이 내가 생각한 바 그대로, 혹은 슬퍼도 하며, 혹은 기뻐도 하며, 혹은 분(憤)도 내며, 혹은 아프게도 생각하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에, 창조의 충동이 시키는 바 모든 의욕을, 혹은 안일(安逸) 혹은 태타(怠惰) 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억제한 다는 것은, 자기의 생활 ─ 정신의 생활에, 불충실할 뿐 아니라, 그만한 오뇌(懊惱)나 환희로 말미암아, 얻을 바 인인(隣人)의 위안을, 그대로 몰각(沒覺)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함이 아닌가, 두려워하는 까닭이오”라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이 과연 틀림이 없는 대답일까. 나의 양심에 물어 보고, 또는 천인(千人)이나 만인(萬人)에게, 물어볼지라도, 나의 양심이나 천만인의 대답이, 한결같이 그렇다 할까? 내가 나의 마음으로 생각한 바이므로, 적어도 나의 양심은 과연 그러하다고 대답할는지 알 수 없으나 다른 천인이나 만인 가운데서는,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줄을, 내가 확실히 아는 바이다. 내가 노 부 라는 대답을 , (否) 듣고 다시 나의 양심과 의논할 때에, 나의 양심은 반드시 자아(自我)를 주장하여, 내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어디까지든지, 굽히지 않고 세우라 질호(疾呼) 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맹서(盟誓)할 것인가? 맹서할 수 있을까? 네가 왜 붓대를, 주권 없이 잡았느냐 묻는 그 말에, 미리 대답하려 준비하여 둔 것 같이 이상과 같은 대답을 다시 되풀이 할 수 있을까? 더 좀 심각하게 들어가서 “네가 과연 그러한 천분(天分)을 가졌느냐. 네가 과연 너의 마음에 각각으로 움직이는 감정을, 네가 느낀바 그대로, 다른 사람 역(亦) 느끼도록 온전히 빈틈없이 나타낼 수 있겠느냐? 그리고 너의 느끼는 바 환희나 고민이, 반드시 너 이외인 제삼자 즉 일반 인인(隣人)의 환희나 고민이 될까를, 보장할 수 있겠느냐”라는 신소(辛疎)한 순문(盾問)을 발(發)할 때에 나는 또다시 무엇이라 대답할까? 내가 이 대답에 궁한 것을 볼 때에, 묻는 그 사람이 나에게 동정하는 바가 없다 하면 그는 더 일층 깊이 들어가서, “그렇게 대답에 주저할 것이 무엇인가. 나는 천분(天分)도 없습니다 하여라! 나는 나의 생각한 것을, 여실히 아무 허위 없이, 나타낼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하여라! 나의 환희나 고민이 반드시 만인의 환희나 고민이 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여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여도 내가 주저하며, 그래도 오히려 무슨 미련이나 남아 있는 것처럼, 아무 말도 없을 때에, 그가 참으로 아무 가리는 것 없이, 풍자하는 사람이라 하면, 반드시 명령적으로, 어서 붓대를 내버리고 호미나 괭이나를 ─ 잡아라 ─ 아! 분한(分限)을 모르는 자여! 라고 질호(叱呼)할 것이다. 그리고 자애(自愛) 깊은 소리로 나직이 말하리라.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나타낼 힘이 네게 있느냐”고 그러고 세상에, 붓을 잡은 모든 자들 중에 네가 생각하는 그와 같은 사람이 기하(幾何)나 있는 줄 아느냐, 그들 중에는 다른 사람이, 눈물 흘릴 때에, 가가대소한 자도 많이 있었다. 만인이 한결같이 희희낙락할 때에, 저 혼자 통곡한 자도 많이 있었다. 물론 네가 아는 바, 자고로 이름을 가진 사람 가운데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겠지마는 붓을 잡아라 할지라도 이름 없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는 참으로 인간으로서, 곧 만인이나 천인 고인(古人)이나 금인(今人)이 한결같이 울어야 할 일 한결같이 기뻐하여야 할 일에 기뻐하여 보지도 못하였고 울어 보지도 못하였던 사람들 뿐이다. 하물며 근일(近日)에 와서 붓대를 잡은 그 사람들이야 말할 것 무엇이냐. 아직도 미지수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에 단연코 주저 없이 말하리라. 과연 그러하다, 그들 가운데에, 참으로 인간성에 공통한 고민, 공통한 환희가 무엇인 것을 파악하였는지 아니 그들에게 그러한 것을 느낄 만한 소질이 갖추어 있는지! 모두 자기 향락에 빠졌다 그들은 자기란 외에는 .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라고 ─ 그때에 묻는 그 사람은 반드시 나를 조소하며 모멸의 시선을 던질 것이다. “왜? 너의 말을 물을 때에, 아무 말도 없이 불평한 얼굴빛이 보이더니, 다른 사람의 말을 끌어낼 때에, 그와 같이 쾌재라 규호(叫號) 하려는 듯한 얼굴을 보이는가.” 나는 다시 대면(對面)이 없을 것이다. 그가 다시 나를 추궁한다 하면 “나는 그러한 전통을 받아 내려온 까닭인가 한다. 또한 그러한 분위기 중에 있는 까닭인가 한다, 나는 아무쪼록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곳을 찾으려 한다 마는, 그리고 아름다운 곳을, 많이 찾아내어야만 할 줄 안다마는, 거의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 하는 일에는, 더욱 눈이 잘 뜨이는 듯하다, 그리하여 나의 열 가지 잘못 되는 것이, 다른 이의 한 가지 그릇 하는 것보다 경(輕)한 것처럼, 보호하며 변호하려는 감정이 굳센 것은, 나의 내부에서 자라나려는 영(靈)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 사회보다 동양 사회가 심한 듯하다, 동양 모든 다른 나라보다 우리 조선이 우심(尤甚)한 듯하다”라 대답할 것이다. 묻던 그 사람이 두뇌가 밝다 하면, 문제가 다른 데에로 벗어났다 하고, 다시 화제를 근본으로 돌리어 물을 것이다. “너의 내부 생명의 열구(熱求)가, 너로 하여금 붓을 잡게 하였다 하면, 지금껏 밟아온 모든 너의 경정(經程)이 내부 생명의 열구(熱求)와 저어(齟齬)한 바가 없는가? 모순이 없는가” 나는 그때에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저어뿐이오. 모순뿐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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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모순이며 무엇이 저어이냐.”다시 전착(顚錯)하면, 나는 곧 말할 것이다, “나의 이상과 현실에, 너무 많은 거리가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의 현실의 생활 ─ 본능적 생존과 이상(理想)의 생활 ─ 정신적 생존에 하등의 조화가 없는 것이다. 이 부조화, 모순 저어가 나의 인격적 생활에 고민이란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는 다시 “그러면 어찌 조화를 구하지 않는가. 구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할 것이다. 나는 “구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야소(耶蘇)나 석가(釋迦)는 조화를 구한 것이 아니요 한편만을 오롯이 한 것이다. 그들이 둘을 다 오롯이 하려 할 때, 두 편에 조화를 구하려 할 때 그들에게 보수(報酬)로 온 것은 오뇌(懊惱) 였었다”고 말하리라. “그러면 너는 무엇을 취하려는가.” 물을 때에 나는 소리를 높여 아래와 같이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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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철석같은 이지(理知)가 없는 것이 한이다, 나에게 그와 같은 이지가 없었거든, 아주 기분에 생활할 소질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것을 한한다. 나는 자신 생활의 부조화로 고뇌할 때마다, 나는 섣부른 앎과, 미즉한 양심이 있는 것을 도리어 한한다. 나에게 그러한 아무것도 없었으면, 따뜻한 밥 한 숟가락과 , 훌은한 국 한 모금이, 족히 나에게 환희와 위안을 줄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몰각(沒却)하고 본능적 생존에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도 할 수 없다. 왜? 조그마한 앎과 미즉한 양심이 허락지 않으니까. 나는 본능적 생존을 떠나 법열삼매(法悅三昧)의 경(境)에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본능적 생존의 모든 조건이 허락치 않는다. 아! 고민!” 그는 소리쳐 꾸짖으며 “이 생활의 괴뢰(傀儡)여! 비겁자(卑怯者)여!”
 
6
나는 부르짖으리라.
 
7
“네! 그렇소이다. 생활의 괴뢰(傀儡)이외다 비겁자올시다. 나는 이러함으로 고민이란 형벌을 받소이다. 고민하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 있다 하면 우연히 얻는 바가 있다 하면 이것은 나의 사업이외다. 내가 이 세상에 왔다간 발자취라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무슨 자취를 남기려고 노력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미즉한 양심이 그것조차 허락지 않습니다. 생활의 괴뢰(傀儡)로 있다가 공공허허(空空虛虛)한 곳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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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46호 1924. 4.
【원문】생활의 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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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생활의 괴뢰 [제목]
 
  이익상(李益相)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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