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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이다. 내가 동경에서 조선으로 처음 올 때에 24자 양면 원고지로 팔, 구십매 가량되는 희곡 원고를 하나 가지고 나왔었다. 그때 그 희곡이 물론 습작으로도 쓴 것이지만 한 달 동안이라는 시일을 허비하여 가며 힘들여 쓴 것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나의 마음은 그것을 발표도 하고 싶은 마음에, 원고료도 받아먹고 싶은 마음에 보따리 속에 끼여 가지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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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나에게 있어서 서투른 곳이다. 신문, 잡지사나 출판업자 하나 아는 곳이라고는 없었다. 아는 친구도 하나 둘 밖에는 더 없었다. 그리하여 그때에는 오직 하나였던 친구 ○형이 소개하여 줄 양으로 같이 어느 서점을 찾아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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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은 내 친구고 전날에 글도 많이 써 오던 이인데 지금 써 가지고 온 이 희곡이 매우 재미스러워서 잘 팔릴 듯싶으니 하나 출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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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형이 서점 주인에게 소개하는 말이었다. 그 서점 주인은 일견 봉건시대 조선 종로거리의 장사아치 그대로이다. 나는 속으로 저것이 무슨 희곡이고 무엇이 그를 분별할 만한, 적어도 선진국의 문명했다는 상인쯤이나 되겠느냐 하고 멸시하는 생각도 났었다.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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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다, 각본……연극하는데 쓰는 각본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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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서점 주인이 서로 주고 받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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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각본 말이오. 그런데 각본은 소설과 달라서 잘 안 팔린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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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각본은 재미스러워서 잘 팔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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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가 아니라 잘 팔릴 터이니 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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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잔뜩 빼고 앉았던 주인은 그제야 입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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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두고 가시지요. 한번 읽어 보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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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는 제가 무엇을 봐. 출판을 할려면 할 것이요, 아니 할려면 않을 것이지 보고 말고가 어디 있어…… 주제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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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이 났으나 어디 두고 보자는 작정으로 그 원고를 주인에게 맡기어 두고는 밖으로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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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더니 ○형은 내가 아직도 조선 사정을 잘 모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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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야 하지마는 조선이란 데는 아직도 일반의 정도가 아까 보던 그 꼴과 같으니까…….” 하며 피차 한탄만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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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난 뒤 1개월이나 지나서 ○형과 나는 그 서점을 또 찾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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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것 참 기막힌 일이다. 소위 글 쓴다는 사람이 대단해서 대접을 억지로 받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사람의 물건이기로 물건을 사겠다고 하여 놓고 사람 대접을 하기로도 이같이 하는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만 골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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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고 이리 내오. 창피스러워서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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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붉히며 원고를 찾아서 들고는 ○형이 등을 밀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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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에 ○형이 소개로 그때 조선서는 다만 하나이었던 어느 잡지사에 찾아갔었다. 그 잡지사 주간격 되는 이를 처음 만나서 인사를 하고 원고를 내어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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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게 말을 들었지요. 한데 작품내용이 너무 과격해서는 실릴 수 없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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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과격하다고 하는 곳은 별로 없는 걸요. 좀 염려스러운 곳은 ×표를 쳐 놓았으니 괜치 않을 줄로 아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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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두고 가시지요. 그런데 이 달에는 벌써 원고 모집 기간이 지나고 이 달 말이나 또 그담 호에나 내게 될 듯 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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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또한 기막힌 노릇이다. 원고를 손에 들고 나서면 곧 돈하고 바꾸어질 듯 하던 마음, 원고를 갔다 주기만 하면 즉석에서 돈이 나오겠다던 마음, 궁(窮)에 쪼들려 어디 어디다 돈을 나누어 쓰겠다고 예산까지 하여 놓고 돈을 기다리던 마음이 푸대접에 불쾌도 하고 돈 생길 기한이 하도 엄청나게 멀어져 간이 뚝뚝 떨어지는 마음으로 뒷덜미를 두드리며 발길을 돌려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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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그 원고를 이 달호에는 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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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는 못 내겠는 걸요. 요 담 달에는 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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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 좀 그런 사정이 있어서요. 담 달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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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는 내기로 작정하고 편집까지 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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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요? 그것은 잡지가 나온 뒤에 주는 것이 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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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지나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었다. 잡지가 나온 뒤에 두번, 세 번 졸라서 몇 십원 돈이란 것을 간신히 얻어 쓰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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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무던히 힘들다. 원고 하나 팔아먹기가 이 같아서야 어디 문필업이란 것으로 살아나갈 수가 있나?…… 제기 …… 그러나 앞으로는 시세가 좀 나아갈 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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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시세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좋은 시세란 것은 영영 오지 않고 말았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날수록 좀 나아지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서푼짜리 원고의 가격과 상인 대접만은 면치 못하였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 나 혼자서 탓할 것은 없지만은 조선 같은 곳에서 대중의 문화 정도가 얕고 경제력이 핍절(乏絶)하여 가니 문단의 황금시대는 이 모양 같아서는 영영 없으리라는 절망을 갖게 되었었다. 아니다 다를까, 작금(昨今)양년(兩年)을 통해서 보면 신문에 실리는 연재소설 이외에는 좀 처럼 원고료 맛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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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일이다. 돈 생각이 몹시 나기에 되나 안 되나 써 놓앗던 작품 몇 개를 추려 놓고서 출판할 곳을 물어보니까 어느 친구의 말이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는 완전한 상품이 되지 못하니까 먼저 출판 검열을 치러 놓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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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그것을 부랴부랴 하고 책을 매어『낙동강』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출판 허기까지 맡아 놓고 출판을 곳을 몇 군데 알아 보았으나 출판할 곳을 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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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그야말로 서푼짜리 원고상 노릇을 톡톡히 하느라고 원고를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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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대접이 다 무엇이냐, 창피가 다 무엇이냐, 그것은 다 몇 해 전 감정이 살았을 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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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에 날카롭게 쓰던 신경은 벌써 묵은 호박 덩굴의 권수(卷鬚)같이 마르고 꾀어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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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으로 이 책고(冊庫) 저 책고를 혹은 내가 찾아가기도 하고 혹은 누구를 놓아서 보내기도 하였었다. 그렇다가 한군데 걸려들었다. 서점 주인이라는 대(大)상인에게 이 따위 원고 행상인쯤으로 의례(依例)껏 명령을 아니 들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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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그저 그때 갈 뿐이다. 창피는 둘째다. 원고료만 나오면 그만이다 생각하고 요 다음 또 요 다음 하며 수없이 찾아갔었다. 그러나 그도 실패다. 필경에 퇴박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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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시골 어느 곳에다 출판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인쇄에 부쳤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원고료 독촉이다. 대금(大金) 50원을 목에 침이 마르도록 기다린 지 7,8개월이다. 이 핑계 저 핑계 인제 독촉할 근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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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아주 서푼짜리 원고상 폐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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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선언한다. 선언하면서 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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