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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공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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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1934.5.26
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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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공의 노래
 
 
 

1

 
3
서울의 산은 봉우리마다 바위다
4
풍상 겪은 고도(古都)를 둘러싼 산이 화강암이다
5
부스러지는 바위틈에는 솔이 자라 있고
6
모래 모인 골짜기에는 샘물이 흐른다
7
굳고 단단한 화강암에 석공이 끌을 대면
8
탕탕 산이 울며 바위가 부서진다
 
9
채석장에 그득 쌓인 화강암을
10
비석으로 가릴 때는 손님이 많은 중
11
하루는 젊은 여인이 찾아와 머뭇머뭇
12
그이의 남편의 비석을 부탁하고 갔다
13
높은 곳은 낮추고 낮은 곳은 높이어
14
똑딱똑딱 그이의 남편의 비석이라고
 
15
비명(碑銘)은 “우리 양군(良君) 16세로서
16
물이 변해 돌 되는 줄도 모르고
17
사후를 헤아린 법조차 모르면서
18
천지는 변하여도 부부애는 불변이라고
19
후원(後園) 송백나무에 새기었던 것을”
20
똑딱똑딱 그이의 아름다운 마음씨여
 
21
평면 평면 직선 직선
22
거울같이 다듬던 화강석 위에는
23
그이의 슬픈 비명을 새기던 대신
24
아리따운 그 여인의 자태가 새겨졌다
25
아아 주문 없는 일을 어찌하리
26
똑딱딱 시대의 번민이여
 
27
옛날에도 신라의 석공은
28
불국사의 석가탑을 쌓을 때
29
먼 길을 찾아온 누이도 안 만나고
30
절 동구에서 10리나 떨어진 못 가에
31
탑의 영자(影子)가 못에 비치도록 세웠더란다
32
딱딱 똑딱 영지(影池)에 무영탑(無影搭)이라고 일러라
 
 
 

2

 
34
일개 학도인 그이가 이르기를
35
푸르퉁퉁한 돌은 너무 빛이 없으니
36
우리 집 정원 고석(古石)으로 다시 새깁시다 ⎯
37
영채 있는 눈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갔다
38
이리하여 내 죄도 감추었지마는
39
그야말로 후원의 고석이 운치 있으리라
 
40
북악산 기슭이 후원인 엄엄한 고관(古館)은
41
그이의 심상치 않은 유서(由緖)를 말하였다
42
화려한 5월의 상록수의 그늘
43
청자색 바윗돌 사이 황금색 후원 길에
44
정밀한 꽃밭으로 나를 인도하는 그는
45
올 맺은 보조로 미치는 세상도 바로하리라
 
46
까치의 둥지 짓는 거동을 바라본다
47
하늘 창공에 기껏 부르짖는 종달새를 듣자
48
시방 5월 날 대낮 화창한 동산에
49
젊은 석공인 내가 청춘을 느끼고 있다
50
아아 부스러질 듯한 바위 위에 내가 섰다
51
그이는 청태 덮인 고석을 가리킬 뿐이다
 
52
늦은 사면(斜面)을 바위가 부서져 모래가 구른다
53
내 한숨이 바위 밑까지 사무치리라
54
⎯ 필경 내가 생기기 전부터 저 이렇게 ⎯
55
그이가 상냥히 이야기한다
56
⎯ 저 돌을 실어다가 가운데 붉은 채색으로
57
우리 집 산소를 빛내주셔요 ⎯
58
7세로부터 부도(婦道)를 닦아오던 조선 여자
59
자라지도 않아서는 악을 징계 받았다
60
숙녀 이군(二君)을 섬기지 말 것이라고
61
추상 같은 가풍에는 순종만이 부도이니
62
절조 높은 사부(士夫)의 가문을 욕 안 보이려고
63
서약의 검(劍)을 가슴에 안던 것이다
 
64
⎯ 나 열두 살에 눈을 감고
65
가마 타고 시집 갔더라오
66
연지 곤지로 단장한 얼굴을
67
눈물로 적시면서 신정(新庭)을 떠났지요
68
그 화관이야말로 무거웁디다
69
그 칭찬이 더 무서웁디다 ⎯
 
70
⎯ 나 열여섯에 처녀 과부 되었지요
71
죄인의 베옷을 입고 지팡이 짚고
72
상여 뒤를 걸어서 걸어서
73
멀리 멀리 무덤까지 갔었지요, 그리고
74
산, 각시의 상대역이던 이름뿐인 양군을
75
깊이 깊이 묻어버리었지요 ⎯
 
 
 

3

 
77
반반히 바르게 똑바르게
78
그이의 서방님의 비석이라고 새기었다
79
어떤 때는 해머로 내 손을 찍고
80
어떤 때는 내 손가락을 쪼면서
81
아아 아리따운 그 자태 때문에
82
똑딱똑딱 그 어머니의 속급이었더란다
 
83
고석에서 녹태(綠笞)를 벗기어 갈수록
84
홍백(紅白)의 교묘한 색배(色配)를 본다
85
채색의 농담(濃淡)을 갈라서 생과 사로 양단한다
 
86
아아 애석한 석비와 상쾌한 소상(塑像)
87
생전과 사후가 동떨어져
88
똑딱똑딱 일거양득이란다
 
89
석비는 그이가 만족하였다
90
소상은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91
그이는 순진한 학도가 되었다
92
그리고 세상 풍파에 변하였다
93
나는 종일토록 일개 석공
94
똑딱똑딱 청춘의 무덤이여
 
 
95
《삼천리》 제10권 제8호, 1938년 8월.
【원문】석공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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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순(金明淳) [저자]
 
  삼천리(三千里) [출처]
 
  193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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