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설 없는 신년(新年) ◈
카탈로그   본문  
1939.1.1
채만식
1
설 없는 新年[신년]…… 其他[기타]
 
 
2
새해라고 해도 그저 범연하게 해가 또 한번 바뀌나보다 할 뿐이지 새삼스럽게 무슨 감격이나 감회가 솟거나 하지를 않는다.
 
3
아마 생활이며 생활감정이 마침 요새 겨울 일기같이 꽁꽁 얼어붙고 풀리지 못하는 소치인지도 모르겠다.
 
4
하나 그것은 그렇다고 신년이면 누구한테고(가령 실속이야 있건 없건) 즐거움을 권하는‘설’이요, 해서 설마 어린아들처럼 좋아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얼마큼은‘설’을 맞이하는 흥이 있어야 할 것인데, 흥은새려 도무지 시쁘듬한 게 가난한 동네집 늙은이의 생일만큼도 관심이 가지질 않는다.
 
5
주인 많은 나그네 끼니 간데없다고 하고 또 뱃사공이 여럿이면 배는 산꼭대기로 올라간다고 하거니와‘설’이라는 것도 꼭 하나만 있으라는 법인데 이즈음 우리네한테는 양력‘설’이 있고 다시 음력‘설’이 있고 해놔서 그만‘설’의 값이 폭락이 되고 그렇듯 시시해진 모양이다.
 
6
물론 조리를 따지고 보면 빠안히 경우 아닌 것이 드러난다.
 
 
7
나는 (나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음력 같은 것은 밤의 달이나 짐작하는 데 더러 생각할 뿐이지 당연히 양력 표준이요, 그것은 마치 등잔불 대신에 전등이나, 말 혹은 교군(轎軍) 대신에 기차처럼 보다 편리한 그리고 없지 못할 생활의‘필수품’으로서의 역이 양력이다.
 
8
그러하면서도 12월 31일치까지 달력이 다 넘어가고 새해의 1월 1일이 나와도 해가 새로왔거니는 하지만‘설’이거니 해지진 않는다.
 
9
인습이 조리를 몰시(沒視)하는 힘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완고하다는 폄을 받기 십상이겠으나, 그러나 그러면 음력‘설’에 가서는 제법‘설’다운 기분이 나서 흥청망청‘설’을 쉬느냐 하면, 오히려 양력 때보다 더하게 범연한 것이 매년 두고 겪어보는 전례다.
 
 
10
‘설’없는 신년…… 어떻게 생각하면 좀 섭섭하기도 하다.
 
11
그것이 가령 새끼손가락이라도 한 개 없는 그런 섭섭함은 아니겠지만 식빵과 우유로 조반을 때운 적만큼은 넉넉 섭섭하다.
 
12
사람은 여러 천년 그래도‘설’을 즐겨 내려왔다. 나도 이십 전까지는 그게‘설’이야 어떤‘설’이 됐거나 즐겁게‘설’을 쉬곤 했었다.
 
13
그러다가 그 뒤로 깜빡‘설’없는 그해 그해를 맞이하곤 한 지가 15,6 년…… 일에 잠착하느라고 몇 시간 잊어버렸다가 문득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담배처럼 불현듯이‘설’이 쉬어보고 싶어진다.
 
 
14
이번째 세 번 이곳 송도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15
햇수로 쳐서 꼬박 이태의 송도 생활이 어디로 보나 후일의 수월찮은 토픽을 장만해주었지만 그중에는 내가 비로소 올해의 머리에 흰터럭이 돋았다는 것도 조그마한 기념이다.
 
16
나이 사십이 채 멀었으면서 백발타령이 버릇없다고 하겠으나 실상 백발타령도 백발탄식도 더구나 백발자랑도 아니요 그저 곤충학자가 있을 줄은 알면서도 아직 채취하지 못한 나비 한 마리를 잡은‘상황’이나 조금도 다름없는 단지 이야기다.
 
17
그리고 빛깔 검고 숱 많고 겸하여 새치 한 올 구경하재도 없고 한 머리라서 삼십도 못되어 새치투성이로 두발이 볼썽없는 민군(閔君)의 머리를 더러 구슬리고 했더니 인제는 큰소리를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되고……
 
 
18
민군 말이 난 끝에 문득 생각인데……
 
19
그 주걸(酒傑)로 놀기대장이 어인 바람이 불었는지 가게쟁이가 됐다기에 어디 어떤가 하고 하루는‘야다리’밖으로 나가보았더니, 예의 뚱뚱한 몸뚱이를 궁싯거리면서 마침 달구지꾼한테 무엇인지 팔고 있었다.
 
20
우선 풍신이 가관이었고……
 
21
인사 대신 농담을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앉으니까 따라 들어오더니 치부책에다가 곰상스럽게 치부를 한다.
 
22
보고 있노라니까 그게 혹시 어디서 빌려온 민명휘(閔丙徽)인 것만 같아 농담 한마디를 하기에도 전처럼 무심하질 못했다.
 
23
그러나 잠깐 사이였지만 사람이 완구히 무엇엔가에 안정이 되어 보임은 노상 나의 선입감의 소치는 아닐 것이다.
 
24
회로에 나는 혼자서 감개가 자못 깊었다.
 
 
25
<高麗時報[고려시보] 1939. 1. 1>
【원문】설 없는 신년(新年)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4
- 전체 순위 : 3235 위 (3 등급)
- 분류 순위 : 509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설 없는 신년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새해
 
  # 신년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설 없는 신년(新年)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