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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없는 신년(新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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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1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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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없는 新年[신년]…… 其他[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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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고 해도 그저 범연하게 해가 또 한번 바뀌나보다 할 뿐이지 새삼스럽게 무슨 감격이나 감회가 솟거나 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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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생활이며 생활감정이 마침 요새 겨울 일기같이 꽁꽁 얼어붙고 풀리지 못하는 소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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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것은 그렇다고 신년이면 누구한테고(가령 실속이야 있건 없건) 즐거움을 권하는‘설’이요, 해서 설마 어린아들처럼 좋아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얼마큼은‘설’을 맞이하는 흥이 있어야 할 것인데, 흥은새려 도무지 시쁘듬한 게 가난한 동네집 늙은이의 생일만큼도 관심이 가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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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많은 나그네 끼니 간데없다고 하고 또 뱃사공이 여럿이면 배는 산꼭대기로 올라간다고 하거니와‘설’이라는 것도 꼭 하나만 있으라는 법인데 이즈음 우리네한테는 양력‘설’이 있고 다시 음력‘설’이 있고 해놔서 그만‘설’의 값이 폭락이 되고 그렇듯 시시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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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리를 따지고 보면 빠안히 경우 아닌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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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음력 같은 것은 밤의 달이나 짐작하는 데 더러 생각할 뿐이지 당연히 양력 표준이요, 그것은 마치 등잔불 대신에 전등이나, 말 혹은 교군(轎軍) 대신에 기차처럼 보다 편리한 그리고 없지 못할 생활의‘필수품’으로서의 역이 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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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면서도 12월 31일치까지 달력이 다 넘어가고 새해의 1월 1일이 나와도 해가 새로왔거니는 하지만‘설’이거니 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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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습이 조리를 몰시(沒視)하는 힘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완고하다는 폄을 받기 십상이겠으나, 그러나 그러면 음력‘설’에 가서는 제법‘설’다운 기분이 나서 흥청망청‘설’을 쉬느냐 하면, 오히려 양력 때보다 더하게 범연한 것이 매년 두고 겪어보는 전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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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없는 신년…… 어떻게 생각하면 좀 섭섭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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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가령 새끼손가락이라도 한 개 없는 그런 섭섭함은 아니겠지만 식빵과 우유로 조반을 때운 적만큼은 넉넉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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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여러 천년 그래도‘설’을 즐겨 내려왔다. 나도 이십 전까지는 그게‘설’이야 어떤‘설’이 됐거나 즐겁게‘설’을 쉬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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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그 뒤로 깜빡‘설’없는 그해 그해를 맞이하곤 한 지가 15,6 년…… 일에 잠착하느라고 몇 시간 잊어버렸다가 문득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담배처럼 불현듯이‘설’이 쉬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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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째 세 번 이곳 송도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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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쳐서 꼬박 이태의 송도 생활이 어디로 보나 후일의 수월찮은 토픽을 장만해주었지만 그중에는 내가 비로소 올해의 머리에 흰터럭이 돋았다는 것도 조그마한 기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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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십이 채 멀었으면서 백발타령이 버릇없다고 하겠으나 실상 백발타령도 백발탄식도 더구나 백발자랑도 아니요 그저 곤충학자가 있을 줄은 알면서도 아직 채취하지 못한 나비 한 마리를 잡은‘상황’이나 조금도 다름없는 단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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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빛깔 검고 숱 많고 겸하여 새치 한 올 구경하재도 없고 한 머리라서 삼십도 못되어 새치투성이로 두발이 볼썽없는 민군(閔君)의 머리를 더러 구슬리고 했더니 인제는 큰소리를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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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말이 난 끝에 문득 생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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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걸(酒傑)로 놀기대장이 어인 바람이 불었는지 가게쟁이가 됐다기에 어디 어떤가 하고 하루는‘야다리’밖으로 나가보았더니, 예의 뚱뚱한 몸뚱이를 궁싯거리면서 마침 달구지꾼한테 무엇인지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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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풍신이 가관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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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대신 농담을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앉으니까 따라 들어오더니 치부책에다가 곰상스럽게 치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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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노라니까 그게 혹시 어디서 빌려온 민명휘(閔丙徽)인 것만 같아 농담 한마디를 하기에도 전처럼 무심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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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깐 사이였지만 사람이 완구히 무엇엔가에 안정이 되어 보임은 노상 나의 선입감의 소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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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에 나는 혼자서 감개가 자못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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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時報[고려시보] 1939. 1. 1>
【원문】설 없는 신년(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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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없는 신년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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