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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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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11
계용묵
1
수달
 
 
2
아무리 형의 집이라고는 해도 이태씩이나 끊었던 발을 들여놓자기는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꾹 마음을 정하고 오긴 온 길이로되, 막상 대문을 맞닥뜨리고 보니 발길이 문턱에 제대로 올라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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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멀리 떠나 있어서 서로 그립던 처지 같았으면야 이태 아니야 이십년이 막혔다 치더라도, 아니 그랬으면 오히려 반가운 품이 좀 더 간절할 것이련만, 이건, 아래윗동네에서 고양이 개 보듯 서로 등이 걸려 지내 오던 처지다. 이제 그 형이 이 동생을 맞아 줄 리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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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로 막혔던 인사쯤으로 방문의 소임이 다되는 것이라면 아무리 틀렸던 것이기로 형제의 분의에 찾아가는 동생을 그렇게는 역겹게까지 대하지는 않을 것이련만 끄집어 내고야 말 돈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난다면 미상불 아니 역겨울 수 없을 게고, 그나새나 거절을 당하게 된다면 꼭대기를 털고 되돌아와 할 멋쩍음- 발길은 대문 턱에 뚝 멎고 떨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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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것도 본시 이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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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가지고 나온 세간은 십 년이 머다 말짱하게 탕진이 되니, 동생은 가족의 목숨을 형님에게 다시 의뢰하려 했다. 전연 의뢰하잘 면목이야 있었으련만 할 수 없는 경우이면 으레 형을 넘겨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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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다보는 걸 처음엔 형도 형 된 죄라 알고 열 번에 한 번만큼씩은 들어도 왔다. 그러나 들으면 뒤가 없는 일을 청내 이럴 수는 없다고 몇 번 만에는 아예 딱 자르고 죽여 응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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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동생이 굶어 죽는대도 모르는 형을 형이랄 수가 없다 해서 동생 초시는 형의 집 문전에 발을 끊고 지나오기 무릇 이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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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세는 조금도 복구되는 것이 아니고 왠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쪼들려만 와, 그야말로 군색의 절정에 초시 내외는 있었다. 친지의 신세도 돌아가며 졌다. 그러나 늘, 그러잘 수도 없는 것이, 면목 상 어쩐지 형에게 조르기보다 거북함이 몇 배나 더했다. 두루 생각하던 끝에 해(年)도 저무니 앞으로의 빚냥도 적지 않은 근심이어서 그래도 혈육을 가르고 나온 형님이었다. 그 중 헐할 성싶어 또 찾아보자던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것도 역시 거북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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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서서 머뭇거리고 있으려니까 인기척을 경위챈 개가 짖으며 나온다. 자기의 태도를 누가 보는 것은 아닌가 초시는 성큼 발을 들여놓고 태연히 사랑 쪽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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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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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에 밀창 밖으로 넘석이 머리를 내밀었던 형이 먼저 동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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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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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재! 이게 얼마 만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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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두룩…… 형님 이거 죄송하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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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믄 그저 그렇게 되는 법이워니. 어서 이리 드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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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동생이 오래간만에 반가운 모양이었다. 아무런 티도 없는 인사가 바뀌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숨기지 못하는 어색한 표정들이었다. 오직 경위만을 서로 살피는 침묵이 담배연기와 같이 하잘것없는 방안을 배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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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탄 담배가 공기를 완화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형님은 재를 재떨이에 턱턱 털고 나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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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허디 않아두 다 들어 알갔디만 저근이 참, 우리 집안두 이전 운이 다 진헌 모양이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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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님 그동안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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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는 어떻게 하는 말인지를 몰라 형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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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아내를 가리킴)가 일 년잴 병으루 누워서 일어날 날이 없으니 약값은 태산이웨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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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간한 걱정이 아니라는 듯이 형은 한숨을 허연 수염으로 몰아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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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즈마님 탈두 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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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도 같이 근심스러운 태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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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이라니! 사람의 집에 연고가 없구 볼 말이디 그러디 않아두 밑빚이 무거워 일어날 수가 없는데 이건 엎친 데 덮친 기루…… 허기야 뭐 없음은 못 갚았디 별수 있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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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불겨나오는 이런 소리가 동생의 내의를 짐짓 넘겨다보고 하는 방패막임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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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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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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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빚 걱정을 그리 하시면 저 겉은 놈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늘그막에 괜히 걱정 마시구 마음이나 편안히 가지시다 돌아가시는 게 그게 복이 원다. 아무래슴 형님 당대에 이 큰 집 세간 가지구 밥을 굶으시겠어요? 아야 그런 걱정은 마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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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도 형의 말 가퀴를 모를 리 없었다. 달려붙을 차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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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받아내는 동생의 말이 어지간히 마치는 모양이었다. 형은 한참 서슬이 푸르던 자탄이 주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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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니 걱정을 할래 하고 있음마? 그럼 님재 정황두 딱하구 말구 여부가 있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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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이 딱하다니요! 오죽하면 제가 다시 이렇게 형님 전에 또 사정을 품하레 왔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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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초시는 물고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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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힘없이 머리를 숙이고 담뱃대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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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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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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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간신하시드래두 오늘 돈 백 원만 꼭 좀 변통해 주셔야 남을 우이지 않을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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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 아까 내 말 못 들었음마? 금년엔 글쎄 진 빚이 무거워 니러날 수가 없는데 백 원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와? 이즘엔 뭐 땅돈 한 푼 어쩔 수 없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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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머리를 굳게 흔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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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형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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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둔 넷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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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백 원에야 설마 형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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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형님을 모르는 말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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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동생은 굶어 죽어두 모른단 말씀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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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극언은 못 하는 법이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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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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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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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로 대할 땐 그렇게 부드럽던 형이 돈으로 대할 땐 이렇게도 차다. 더 말이 긴치 않다는 듯이 형은 딱 잡아떼고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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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백 번 말해야 꺾을 수 없는 것이 형의 고집임을 너무도 잘 아는 동생이다. 더 앉았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일어서려는데 오늘 장에도 수달은 나지 않았다라고 심부름꾼이 사랑으로 들어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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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니 형수의 탈에는 수달이 약이라 해서 벌써 달포 동안이나 사처로 구해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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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의 비위는 문득 여기에 동했다. 수달 그놈을 구하지 못할까? 그놈만 구한다면 단 돈 백 원에 그렇게 강경하던 형님의 마음도 미상불 풀려질 것 같다. 그놈을 못 구하다니! 그놈을 구해 보리라, 형님의 마음을 푸는 데도 그렇거니와 그것이 약이 된다는 것을…… 하고 한 맘을 먹어 보는데 안으로 들어갔던 형님이 돌아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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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근이! 우리 오래간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습세. 찬은 뭐 없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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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저녁이나 대접해 보내려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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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야 뭐 집에 간들 못 먹소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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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찬은 없어, 오래간만에게 그러디. 님잰 이즘 무슨 찬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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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랄 게 있나요. 요즘엔 얼음을 까구 고기 새냥을 했더니 그게 찬입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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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생선 반찬 그게 좀 귀한 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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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형님! 고기잽이 말이 났으니 말이디 그저껜 얼음 구녕에서 이상한 즘생을 한 마리 잡디 않았갔소? 아, 물속에두 네 발 가진 즘생이 있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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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의 눈은 금시 둥글해지더니 빨던 담뱃대를 놓고 허리를 펴며 돋우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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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나왔는데 네 발을 가져서? 그래 그걸 어드캤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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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두 이상한 즘생이기에 갯다 뒀습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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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수달 아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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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다들 그걸 수달이라구 그르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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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수달이웨게레 수달이야. 그런데 저근이! 내 이자 안에 들어가서 꼼꼼히 생각을 해 봤더니 이놈의 핏줄이란 무엇이기에 그리 정을 붙잡는 것이와? 님잰 부탁을 거역하구 나니 눈물이 가슴속에서 막 솟아 오름메게레. 같은 아부님의 자손으루 나는 밥 먹구 님잰 밥 굶는다니 이거야 가슴이 아파 살갔습마? 이 정상을 알으시믄 지하에 계신 아부님두 편히 주무시질 못하실거야. 내 아무리 간신하더래두 백 원 다는 못 하갓쉐만 베나 한 댓 섬 낼 아침 내 내려보내워리. 정 급헌 데나 약간 머 좀 부슬거리구 그럭저럭 그저 또 지나가멘서 봅세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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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노그라지는 형의 태도였다. 수달의 탐은 기어코 형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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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벼는 어김없이 닷 섬이 초시 댁으로 꼬박 소 잔등이 두 짐을 날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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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바리 뒤에는 형님이 넌지시 덧달리었다. 형 역시 이태 만에 발길을 들여놓아 보는 동생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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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바님 손수 오시기까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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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시의 아내가 마주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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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데수님두 못 보였구…….”
 
75
인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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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는 아즈반이의 다음 말을 받아야 할 것이 은근히 근심이었다. 아즈반은 틀림없이 그 수달 때문에 내려오셨을 것이고, 왔으니 수달을 보잘 것은 빤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일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대답이 어려우니까 남편은 쓱 몸을 피했다. 잡지도 않은 수달을 뭐라고 대답해야 되나 가까스로 생각이 바쁜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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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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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반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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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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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근인 어디 나갔소?”
 
81
“해변 내려간다구 아침 일즉이 나갔는데요.”
 
82
“그럼 늦게야 들을까 보우다레?”
 
83
“어드케 됨 메츨 될디두 모르갔다구 그래요.”
 
84
남편이 이르던 대로 아내는 대답할 밖에 없었다.
 
85
“하하! 그래요?”
 
86
계획이 틀리는 듯이 머리를 흔들더니 별안간 눈을 치뜨며,
 
87
“그런데 뭐 저근이가 수달을 잡아왔어요?”
 
88
하고, 제수를 건너다본다.
 
89
아니나 다르랴, 수달 이야기는 기어이 나오구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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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할 말이 없다. 초시가 이르긴 역시 모른다고 하랬으나 차마 그렇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또한 달리 꾸며댈 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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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이라니요?”
 
92
우선 반문을 해 보는 것으로 생각에 여유를 주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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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수달을 잡아왔다구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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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반은 의아한 눈이 둥그래서 제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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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잡으러 갔던 일두 없는데요. 저 모를 소리우다.”
 
96
“고기 잡으러 갔던 일두 없어요?”
 
97
“그럼으뇨, 없디 않구요.”
 
98
“그름 그 사람이 거 무슨 소리야?”
 
99
아즈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뜩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100
‘수달을 구헌대니까…… 고이헌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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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아즈반이 보시구 수달을 잡아왔다구 말씀을 디립더니까?”
 
102
‘……허, 고이헌 놈!’
 
103
(1934. 12.)
 
 
104
〔발표지〕《야담》(1941. 11.)
105
〔수록단행본〕『벽을 헨다』(처희문사, 1954)
106
*『신한국문학전집』제6권(어문각, 1976)
【원문】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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