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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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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5월
백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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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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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신혼이라는 그러그러한 때가 저 먼 옛날같이 되어버린 이때에 새삼스럽게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신혼 여행기를 쓰라는 명령을 받고 펜을 들게 되니 공연히 웃음만 납니다. 대체 쓸 만한 거리가 기억에 남아있어야 될 터인데 잊어버렸는지 또는 눈을 감고 여행을 했는지 좌우간 여행기가 될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여행기가 아니라 그저 생각나는 대로만이라도 쓴다면 다음과 같은 운치 없는 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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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길지도 못한 단발머리를 겨우겨우 싸 묶어가지고 긴 치마에 얌전을 빼물고 시댁에 가서 이마에 손을 얹고 큰절을 할 때 머리꽁지 나올까봐 조마조마 애를 쓰며 한번 절하고는 곁에 선 피 씨彼民를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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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 안나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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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표정으로 머리 뒤에 손을 대어보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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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염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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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눈끔직이를 해주면 겨우 안심하고 또 한 상 절을 하는데, 절 받겠다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삼십여 상 절을 계속하고 나니 웬만히 심신이 피로 해졌을 텐데 그 위에 거창스런 하루를 묵게 되었으니 예법이고 깻묵 뭉치고간에 그저 펑퍼져 두 다리 쭉 뻗고 뒹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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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에야 비로소 신혼여행인가 무엇을 간다고 좋은 곳 다 버리고 하필 대판大阪으로 길을 나서 현해탄 위에 둥실 뜨고 보니 무슨 큰 시련이나 겪고 난 다음 같이 갑자기 명랑해져서, 참으로 가뿐하고 시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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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구태여 시골뜨기 때를 못 벗고 대판으로 가게 되었나 하면 공업과 상업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아버지의 의견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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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은 곳에 가면 뭣하나 대판 xx 공장, xx 회사, 무엇무엇 그것은 다 한번씩 참고로 보아둘 만하다. 우리 조선 사람 손으로는 밥 짓는 솥 하 나 경편하게 만들 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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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젊은이들 마음을 이해할 줄 몰라주시니 차마 노인의 의견을 반대할 수 없었던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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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 교토京都나 나라奈良 쪽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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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선에서 이렇게 제의하는 피 씨의 말에 못 이긴 체는 하였으나 속으로는 무척 반가워, 교토로 가자는 약속을 하였는데 하관下關에서 채플린의 「거리의 등불」을 대판 일본전통공연장歌舞佳에서 상영 중이란 신문광고를 보고는 또다시 약속을 집어치우고 좌우간 대판에 먼저 하차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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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에 내리자 「거리의 등불」을 보고 나니 욕심은 그대로 남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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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곧 아버지의 지기요 대판 상공계 중견인 xx 씨를 찾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삼 일간 잘 견학해보라고 권하던 아버지에게 후일 사죄거리를 장만한후 그날 밤 즉시 대판을 떠났습니다. 교토에서 내리려던 것도 차에 올라 조금 종알거리는 판에 당도하고 말았으므로 내리기가 싫어 그대로 기차 닿는곳까지 뻗쳐버리자고 한 것이 동경東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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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통경으로 간다는 것은 촌놈이니 이왕 뻗치는 길이면 더미끄러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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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닛코 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日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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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이 나리는 닛코를 가보는 것은 신애의 성이 백白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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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피 씨의 말이 그럴듯했습니다. 정말 일광에 가보니 틀림없이 백설이 만건곤이요, 만악萬岳에 때 아닌 백화가 만발해 있었어요. 나 역시 시인은 아니지만 한 마디 화답이 없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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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이 내려 때 아닌 백화가 만발했네. 아마도 이화梨花인가 보다.” 했더니 이李가인 피 씨 잠잠하였으나 속으로는 그럴듯한 모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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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자동차 폭음을 내서 설운이 자욱한 골짜기를 천길만길 내려다보며 중선사호中禪寺湖로 구름을 헤치고 올라갈 때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인가 싶던 것 외에는 닛코의 승경 가지가지를 아무 감흥 없이 보고 말았습니다. 피차 닛코는 첫걸음이 아니었던 까닭인지는 모르나 이때에 가본 닛코는 그저 평범한 곳으로 밖에 기억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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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하나 기념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슈크림을 먹기는커녕 보기도 싫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닛코 역에 내려 잠깐 끽다점喫茶店에 들어갔을 때 내가 슈크림을 청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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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슨 맛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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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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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퍽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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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했더니 그날 밤 닛코호텔에서 없다는 슈크림을 일부러 사람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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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 닛코 역까지 가서 슈크림 한 상자를 사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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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실컷 먹으시오. 일부러 당신을 위해 먼 데서 사온 것이니 하며 갓근스럽게 정성껏 권하는 바람에 한두 개면 넉넉한 것을 이럭저럭 자꾸 집어먹이니 그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 제법 맛있는 척하고 먹어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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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먹겠어요 더 못먹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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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겨우 거절을 하면 그 편은 내가 체면이나 하는 줄 알고 자꾸 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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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딱한 노릇이라곤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한 자리에서 열 개를 계속해 집어넣었더니 지금까지라도 슈크림이라면 머리가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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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먹으라고만 권하는 것은 야만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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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금이라도 간혹 싸움 밑천 삼아 들먹거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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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야 체면으로 권했지만 당신의 위 주머니도 상당히 야만적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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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비꼬니 내가 체면 차려 억지로 먹은 줄은 모르는 심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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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허니문은 아무 데나 되는대로 갈 것입니다 좋은 경치고 뜻 깊은 곳이고 무어고무어고 다 소용없는가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느 겨를에 외계경치 구경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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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신혼여행에는 산을 보나 바다를 보나 꽃을 보나 무엇에든지 아무 감흥도 인상도 없다고 그저 이렇게 우물쭈물 쓰다마는 것이 옳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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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1935년 5월
【원문】슈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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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白信愛) [저자]
 
  삼천리(三千里) [출처]
 
  193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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