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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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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11. 28~29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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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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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가기 전에』와 『동토(童土)』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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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박청허 씨의 시집 『동토』와 조병화 씨의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를 읽었다. 이 두 시인은 나와 일상에 있어서도 친근한 사이며 술좌석에서도 여러 번 어울린 바도 있기 때문에 시집을 읽기 전에 그 인간과 태도를 잘 아는 사이다. 이것이 무척 시를 읽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비단 이 두 분에만 한정할 것은 아니겠으나 여하간 시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잘 안 것이 이번엔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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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시에 대해서 많은 논평이 가해지고 있다. 생각하는 시, 생각하지 않고 읊는 시, 자연발생적인 시, 과학을 기초로 하고 쓴 시, 무시학적(無詩學的)인 시, 비역사적인 시, 그러나 그 어떠한 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을 말하기 전에 나는 시에 있어서의 성실과 체험이 중요할 것이며 시를 쓰는 스타일적 부문이 다르다 하고 비난하기보다도 그 시인이 처해 있는 정신적 환경이나 생활의식을 좀 더 존중해 주었으면 원하는 바이다. 그 하나의 실례로서 우리는 김소월이나 한하운의 시가 좋다고 말한다. 생각하는 시도 아니며 자연발생적이고 참으로 무시학적인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좋아하는가? 한 사람은 죽었으니까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불치의 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시대나 어느 계급에 사는 사람에게도 시로써 호소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가 가지는 이미지나 일루전이 중요하며 기교에 있어서는 직유, 은유, 의인법, 형용사들이 많은 작용을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되도록 시에 희망할 것은 시가 사회와 현실에서 격리되어 가지 않도록 또한 상아탑적인 경지에 너무 머무르지 말고 그 주제를 개인보다도 넓은 것으로 바꿔줄 것 등이다. 결국 시에 대한 판단은 어떠한 부문에 국한할 수는 없는 것이며 C. D. 루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시란 실제 인생이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측에서 잘 알지 못하는 측에 걸려진 다리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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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동토』를 읽고 나서 나는 이 시인도 무척 고독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는 동시 시에 있어서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 데 놀랐다. 고독한 인간의 언어, 우리들은 이것이야말로 시라고 말하여야만 되는가? 나는 여기에 대해 솔직히 동의는 못 하지마는 역시 고독이라는 순간은 시에 있어서 그리 쉽게 감추어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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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은 자기가 가지는 유달리 창의적인 언어는 없지만 무척 세련되고 우리의 생활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말을 그때그때 적합하게 쓰고 있으며 그것이 고운 감각적 정서의 세계를 구조(構造)하고 있다. 한 구절 인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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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이 없는 곳에서 앙상한 가지를 펴고 밤을 스며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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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멈추고 비스듬히 등 대어보면 체온이 밤과 같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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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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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그 인간을 아는 나로서는 그 정서적 감흥이 무척 ‘순백하고 고운 것’에서 우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 불안한 조류 속에서 절망의 도주가 못마땅하여 펜 끝에 자세를 바로 갖추어본다는 것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고 있으나 도리어 시풍이나 표현에 있어서는 의식적으로 절망하고 있는 데가 많다. 결코 시인은 지도자나 네거리에 선 교통순경은 되지 못한다. 나는 시란 모순의 확대인 경우도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너무도 의식이 정상적이고 이해에 빠르면 그 시는 수신책의 문장이 될 것이며 읽는 자가 몹시 위태로울 것이다. 한 권의 몇 편 안 되는 시를 읽고 그 시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나는 속단할 수 없으나 이 시인의 본연의 모습은 여기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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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혼자 흐느껴 울기도 하고 깊은 사념에 빠지기도 하고 또한 공포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 인간을 그린다……인간은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인간은 절망과 대결하고 있다고 누구나 잘 알면서도 그것을 솔직히 시로써 대치시키려면 못 하고 마는 것인데 이 시인은 자기의 지나간 성실한 체험과 정서적 에스프리로써 대체적으로 가다듬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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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씨의 『사랑이 가기 전에』. 그가 나에게 시집을 보낼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적어주었다. “한 사람의 벗도 없이 쓰러진다는 것은 대단히 고독한 것이다.” ……그는 어느 시인보다도 고독하다. 그리고 그는 외롭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시를 써왔고 시를 쓰는 것만이 그의 고독을 풀어주는 열쇠인 것이다. 이 시집은 인간으로서의 그를 가장 단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노래하는 시가 될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불행한 시가 될 것이며 우리나라에 있어 현대인으로 완성한 최초의 연애시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이 시집에는 좀 더 많은 주석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는 「여숙(旅宿)」이라든가 「막간의 자리」라는 몇 마디로서 끝장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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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은 요즘 세간에 유명해졌다. 시를 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읽히고 또한 아직도 건전하다면 거기에 어떤 다른 본질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다 . 내가 보기에 그는 몇 가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인간과 그들이 지성이 찾고 있는 향수 ─ 물론 정신면에서 ─ 와 고갈된 우리의 의식이 찾는 페시미즘을 잘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시 시인에게서 압제할 수 없는 것은 향수와 페시미즘이며 결코 우리는 이것을 배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현대인으로서는 지나치게 절망하고 울고 회상하기 때문에 또한 많은 비난도 받지만 그것이 자기가 시나 문학과 대결하는 마지막 것이라면 우리는 여기서 그의 선의의 인생과 세계를 찾아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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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노래한, 아니 사람을 노래한 시집 속의 몇 편의 시, 그 중에서도 나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가을은 당신과 나의 계절」, 「내 마음 깊은 곳에」, 「마침내 깊은 안개가 개이듯이」등이며 옛날 처음 시를 읽을 때 읽던 사람들의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 시인이 자기의 절정이라고 이름붙인 만큼 여기에는 생명이 크게 흘러야 하겠고 좀 더 신선한 감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상화하면 우리들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랜시스 잠의 노래를 귀에 오래 담았기 때문에 같은 사랑의 시 쓸쓸한 시일 경우 이 시인은 좀 더 관념에서 벗어난 오리지널리티한 것을 체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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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어필을 위한 시의 시대는 시를 발전시키기 곤란하며 더욱 개인의 의식 강매는 문학의 보편화에 있어 위험한 일이다. 끝으로 아마 이 시집은 이 시인을 새로운 전환기로 이끌 것이며 시인을 부드럽고 원만한 상태에서 다시 출발시키는 모멘트가 될 줄로 믿는다. 여러 가지 견지에서 주목할 시집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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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1955. 11.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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