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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에 대(對)한 우감(愚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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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10.31
이병각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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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에 對[대]한 愚感[우감]
 
2
― 半難解[반난해]의 詩[시]
 
 
 

(一[일])

 
 
4
라텐語[어]를 朝鮮[조선]이란 땅의 街頭[가두]에서 읽고 다니는 것을 朝鮮[조선] 사람들은 그것을 壯[장]하고 權威[권위]있다하여 優位性[우위성]을 賦與[부여] 共認[공인]치 않으리라. 萬若[만약] 그 읽는 라텐語[어]의 內容[내용]이 言語學[언어학]으로는 그만두고 內容[내용]에 쓰인 글이 아무리 流暢[유창]하고 그 사람들의 生活[생활]을 보담 나은 곳으로 引導[인도]하는 名文[명문]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는 呪文[주문] 以下[이하]에는 아무 것으로나 더 들리지 않을 것이다. 難解[난해]는 神秘[신비]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金科玉條[금과옥조]의 理論[이론]과 詩[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難解[난해]일 때는 그것이 理解[이해][당]할 때까지는 爲先[위선] 神秘[신비]로워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詩[시]가 萬若[만약] 神秘[신비]로운 것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難解[난해]도 싫어할 것이다. 詩[시]나 小說[소설]이나 그 外[외] 모든 藝術作品[예술작품]은 될 수만 있으면 多數人[다수인]에게 읽어지고 理解[이해]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伴侶[반려]가 되고 따라서 價値[가치]를 決定[결정][당]하는 것이다. 神秘[신비]와 難解[난해]는 對象[대상]의 局限[국한]을 强要[강요]한다. 그러함으로써 難解[난해]의 詩[시]란 또한 對象[대상]을 局限[국한][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難解[난해]가 程度[정도]를 넘으면 그것은 쓴 사람 自身[자신] 以外[이외]에는 알아 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요사이 흔히 들을 수 있는 口吻[구문]로서 難解[난해]인 것이 高尙[고상]하고 그것이 다른 平易[평이]한 것보다 優位[우위]에 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그릇되었다는 것이 明白[명백]해지는 것이다. 高尙[고상]은커녕 도리어 그것을 正當[정당]히 말한다면 低級[저급]하다고 볼 수 있다. 難解[난해]와 對象[대상]의 局限[국한]을 高尙[고상]히 볼 때는 벌써 옛날 藝術[예술]과 文化[문화]가 어느 特殊[특수]한 局限[국한]된 階級[계급]의 人間群[인간군]에게 監檢[감검][당]하였을 時代[시대]의 말이다.
 
5
平易[평이]하다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多數[다수]의 對象[대상]이 알아보고 理解[이해]함을 말함이라. 그러함으로 平易[평이]한 것은 對象[대상]을 廣範[광범]히하고 따라서 그것의 效果[효과]를 더함으로서 그것은 價値[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6
그것을 商品[상품]에 比[비]한다면 平易[평이]한 것은 日用品[일용품]과도 같고 難解[난해]의 것은 骨董品[골동품] 以下[이하]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平易[평이]하고 多數人[다수인]에게 읽혀지고 對象[대상]을 廣範[광범]히 한다는 것은 詩[시]의 黨派性[당파성]을 否定[부정]하고 默殺[묵살]시기려는 말은 決[결]코 아니다. 多數人[다수인]의 伴侶[반려]라 함은 嚴正[엄정]한 黨派性[당파성] 밑에서 어느 部門[부문]의 成員[성원]이든 自己[자기] 部門[부문]의 詩[시]로서 좋은 것이라면 伴侶[반려]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決[결]코 남의 詩[시]를 그들의 伴侶[반려]로 삼지는 않은 것이다. 그것은 商業[상업]의 例[예]를 들어서 比較[비교]하면 좋은 빠자마나 와이샤쓰가 勞働者[노동자]에게 所用[소용]되지 않음과 同時[동시]에 그것은 아무리 陳列場[진열장]에 내어 놓더라도 勞働者[노동자]는 그것은 눈도 안돌아본다. 그것은 結局[결국] 그 物件[물건] ― 商業[상업]이 自己[자기]에의 生活[생활] 領域[영역]을 떠난 다른 階級[계급]의 所用品[소용품]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은 平易[평이]한 것인 까닭에 그것이 남의 階級[계급]의 所用品[소용품]이라 하더라도 와이샤쓰인 줄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平易[평이]함으로서 누구에게나 所用[소용]되는 詩[시]는 決[결]코 存在[존재]치 안한다. 부르조아 詩[시]가 平易[평이]하다 하여 勞働者[노동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二[이])

 
 
8
푸로레타리아 詩[시]는 難解[난해]일 수도 없고 神秘[신비]로울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生活[생활]이 벌써 神秘[신비]로운 것이 아니오 따라서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感情[감정]이 또한 神秘[신비]로운 것이 아닌 까닭에 萬若[만약] 神秘性[신비성]을 띄고 難解[난해]의 푸로레타리아詩[시]가 있다면 그것은 밥을 吐[토]할 노릇이다. 그때엔 벌써 푸로詩[시]가 아니다. 이름 붙이는 것은 반드시 內容[내용]을 正確[정확]히 表現[표현]할 義務[의무]를 가지지 않었으니 그것은 似而非[사이비] 푸로詩[시]인 同時[동시]에 그 詩[시]는 부르詩[시]로 養子[양자]보내버리였든지 그렇지 않으면 빠자마를 靑色[청색]의 工場服[공장복]으로 誤認[오인]하였든지일 것이다.
 
9
[시]에 있어서 形式[형식]만을 尊重[존중]히하고 內容[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取扱[취급]한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內容[내용]만을 重[중]히 여기고 形式[형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함도 잘못이다. 兩者[양자]가 正當[정당]히 結合[결합]되였음으로서는 詩[시]는 完全[완전]하야질 것인가 한다.
 
10
形式[형식]을 等外視[등외시]하고 內容[내용]만 取[취]한다면 詩[시]라는 特別[특별]한 名稱[명칭]을 賦與[부여]시겨 煩雜[번잡]스러울 것이 없다. 그것은 散文[산문]도 詩[시]일 것이며 小說[소설]도 詩[시]일 것이다. 그러나 詩[시]에는 詩[시]로서의 形式[형식]이 嚴存[엄존]함으로서 詩[시]라는 名稱[명칭]이 생겨났으리라고 생각한다. 洗鍊[세련]된 形式[형식]은 內容[내용]의 表現[표현]을 도우고 效果[효과]를 갖추는 것이다. 例[예]를 들면 金[금]이 돌과 흙에 섞기여 있는데 그것이 金[금]돌인 것은 確實[확실]하나 누구나 그것을 가지고 金[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꼭 같은 分量[분량]의 含有金[함유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鑛石[광석]이면 鑛石[광석]이지 金[금] 될 수는 없다. 그것을 여러 道程[도정]의 洗鍊[세련]과 分析[분석]을 거쳐 겉흙은 떼여버리고 簡便化[간편화]시키며 그 속에 든 眞正[진정]한 金[금]을 가리여냄으로써 그 鑛石[광석]의 內容[내용][격]인 金[금]의 價値[가치]가 나타나고 그것을 비로소 金[금]이라고 부르게 된다. 詩[시]에 있어서도 아무리 좋은 內容[내용]의 詩[시]가 있다하더라도 形式[형식]이 粗雜[조잡]하면 그것을 그냥 詩[시]로 認定[인정]치 않는다. 小說[소설] 以上[이상]의 큰 內容[내용]일지라도 그것을 文字[문자]를 簡便化[간편화]하고 省略[생략]하며 추리고 추리여서 짤막한 洗鍊[세련]된 形式[형식]으로 나타내이는 곳에 實[실]로 詩[시]로서의 처음 形態[형태]가 드러나는 것이다.
 
11
이곳에 洗鍊[세련]이 잘 되고 자리 잡힌 아름다운 形式[형식]에 到達[도달]하도록 된다면 그것은 音樂[음악]에 가까웁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內容[내용]의 것이라도 形式[형식]만 가추우면 詩[시]가 되나 하면 그것은 決[결]코 아니다. 金分[금분]이 없는 돌을 주서다가 아무리 分析[분석]하고 洗鍊[세련]시켜보아도 그것은 金[금]이 안 나오는 것이다. 차라리 形式[형식]이 잘리고 內容[내용]이 보잘 것 없는 詩[시]보담은 形式[형식]이 보잘 것 없더라도 內容[내용]이라도 좋으면 그것은 詩[시]로는 못살지언정 散文[산문]으로라도 그가 가진바 內容[내용]의 傳達[전달]은 能[능]할 것이다. 金分[금분]있는 돌은 分析[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鑛石[광석]이라는 이름은 부칠 수 있다. 金[금]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 여기에 뿌르죠아 戀愛詩[연애시]라든지, 神秘[신비]로운 難解[난해]의 詩[시]가 形式[형식]이 整然[정연]하게 잘 되여 있다하자. 그러면 그것이 뿌르죠아의 感情[감정]에는 어울릴지는 몰라도 勞働者[노동자]의 感情[감정]으로 보아서는 그것을 그들이 이른바 詩[시]로써 是認[시인]할 수 없는 同時[동시]에 아무런 感興[감흥]도 얻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生活[생활]과 感情[감정]을 멀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一分[일분]의 價値[가치]도 부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天外[천외]의 神話[신화]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왜 그것은 그들이 알 수 없는 生活[생활] 領域[영역]의 것이며 感情[감정]의 所産[소산]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물江[강]』이나 『送葬曲[송장곡]』의 音符[음부]를 부처서 노래를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興奮[흥분]도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을 誤解[오해]할까 하여 다시 말하거니와 여기서는 부르조아詩[시]라든지 또는 李箱[이상][씨][등]의 슈 ― 루레아리슴詩[시][등]은 萬[만] 題外[제외]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말하여도 말하는 것이 어리석지 그들의 詩[시]와 우리의 詩[시]는 그 利害關係[이해관계]가 틀리는 것이니 아무리 서로 말한들 生産關係[생산관계]를 떠난 上部構造[상부구조]를 말함과 같은 것이다. 讀者[독자]들은 그것을 混同[혼동]시켜 보는 곳에 늘 誤謬[오류]를 起[기]하는 것이다.
 
 
12
詩人[시인]과 節操[절조]
 
13
詩人[시인]에게 人間[인간] 以上[이상]의 節操[절조]를 要求[요구]함이 無理[무리]라면 詩人[시인]은 人間[인간] 以下[이하]의 節操[절조]를 亂雜[난잡]도 삼가야 할 것이다. 藝術家[예술가]나 學者[학자]가 예부터 天才的[천재적]이며 뛰어난 偉大[위대]한 存在[존재]는 많다. 그러나 後世[후세]의 우리가 그 傳記[전기]를 볼 때 第一[제일] 感激[감격]하고 그 사람의 平價基準[평가기준]을 도웁는 것과 우러러보이는 것은 첫째 그들의 굳은 節操[절조]일 것이다. 『첫째 藝術家[예술가]가 되기 전에 人間[인간]이 되라』는 말은 어디서인가 金起林[김기림][씨]가 말한 것을 記憶[기억]한다. 이 말은 果然[과연] 眞理[진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藝術家[예술가]의 座右銘[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이다. 요사이 우리는 現實[현실]의 客觀的[객관적] 外力[외력]으로 말미암아 참된 內容[내용]을 具備[구비]한 詩[시]를 發表[발표]치 못하더라도 詩人[시인]으로서의 너무나 亂雜[난잡]된 節操[절조]? 침 뱉을만한 不愼[불신]한 節操[절조]를 種種[종종] 볼 수 있다.
 
 
 

(三[삼])

 
 
15
過去[과거]의 카프 詩人[시인]들을 우리는 푸로詩人[시인]으로 認定[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現段階[현단계]에서는 그러한 嚴然[엄연]한 區別[구별]이 不可能[불가능]하니 作家[작가]나 評論家[평론가]나 詩人[시인]을 가릴 때 이사람은 카프 成員[성원]이였다 아니였다는 것으로 그 사람의 部隊[부대]를 밝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카프는 없어졌더라도 ― 그럴 때 우리들 後進[후진]으로서 甚[심]히 알아보기 어렵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詩人[시인]이나 評論家[평론가]들의 節操[절조]다. 이 사람은 여기에 쓸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고 우리는 月刊物[월간물]의 目次[목차]를 店頭[점두]에서 펴들고 상을 찌푸리게 된다. 아무리 集團生活[집단생활]에서 떠나 個人生活[개인생활]을 强要[강요][당]하더라도 나아가서까지 그리할 것은 없는 듯이 생각된다. 어느 雜誌[잡지] ― 그것은 三文誌[삼문지]로서 아조 低級[저급]되기 짝이 없고 뿌르조아 쩌내리즘의 末子[말자][격]인 ― 에서 카프詩人[시인]에게 詩[시]를 請[청]하였다 하자. 그러면 그것은 請[청]하는 사람의 意志[의지]가 푸로詩[시]의 高揚[고양], 發展[발전]과 또는 陣營[진영]에 읽어지게 하기 爲[위]함이냐 하면 그것은 決[결]코 아니다. 이 사람은 이러한 詩人[시인]이니 이 사람의 讀者[독자]를 끌고 雜誌[잡지]의 融通性[융통성]을 넓히기 爲[위]하야 좋다하여 請[청]하면 누구보담도 먼저 原稿[원고]가 到着[도착]된다. 그러면 그 詩[시]가 檢閱[검열]이 問題[문제]될듯하면 編輯人[편집인]은 卽時[즉시] 다시 편지를 하고 조금 弱[약]하게 雜誌[잡지]에 알맞게 써 보내 달라한다. 얼마 안 있으면 두말없이 정말 좀 弱[약]한 三文[삼문] 비슷한 詩[시]가 말 오줌 맛 같은 詩[시]가 온다. 이것이 잘못이라 한다하여 그 사람은 말할지 모른다. 『×× 小兒病[소아병]』이니 『××團體[단체]에 ××的[적] ××者[자]는 들어갈 것인가 ― (小泉[소천])』의 引用語[인용어]로 對[대]하며 責[책]망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問題[문제]라고 생각한다. 地方[지방]에서 글을 보고 읽고 쓰며 文學[문학]에 나아올려 하는 좋은 뜻을 가진 後進[후진]의 갈 길을 어둡게 하고 또한 過去[과거]의 正當[정당]한 ××的[적] 讀者[독자]의게 疑心[의심]을 주며 漸漸[점점] 離反[이반]하도록 하는 自殺行爲[자살행위]일가 한다. 차라리 붓을 꺾고 發表[발표]치 안하는 것이 個人[개인]으로 보더라도 훨씬 鮮明[선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나 딱함을 자주 보았다. 發表慾[발표욕]이라면 우리들 後進[후진]이나 無名[무명]에는 無理[무리]가 아닐 듯 하나 그래도 中堅[중견]이며 旣成[기성]이란 더구나 무쇠를 갈아마시겠다는 熱[열]을 詩[시]에 小說[소설]에 쓰든 사람들의 節操[절조]가 그러하고야 정말 渾沌[혼돈]되고 마는 것이다.
 
16
稿料[고료]가 重[중]하며 그것이 아니고는 生活[생활]이 問題[문제]라면차라리 그릇된 無言[무언]의 큰 影響[영향]을 생각하야 굶어죽는 것이 조흘 것이다. 좀 過[과]한 말 같으면서도 決[결]코 過[과]한 말이 아니다.
 
17
구역나는 生活[생활]을 爲[위]하야 큰 惡[악]의 結果[결과]의 먹물을 뒤집을 必要[필요]가 어디 있으며 그러한 意志的[의지적]인 生[생]은 차라리 우리가 覺悟[각오]한 바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朝鮮[조선]에서 더구나 푸로派[파] 詩人[시인]으로서 稿料[고료]에 生活[생활]을 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하면 더욱이 우리가 슬퍼하지 안해서는 안 될 現狀[현상]이 아닌가. 우리는 모름지기 부르 學者[학자]나 藝術家[예술가]들의 요사이 ×海公論[해공론][등]에 每號[매호] 빼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냐?
 
 
18
末梢的[말초적]인 詩流[시류]
 
19
모르고 나아가는 것은 차라리 改過[개과]할 바람이라도 있고 그래도 오히려 指導[지도]하야 正當[정당]한 코 ― 스로 넣을 수 있으며 罪[죄]로 보아도 輕[경]하다고 할 수 있다.
 
 
 

(四[사])

 
 
21
그러나 알면서 나아가고 알 만한 사람이 그릇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것은 옛날 倫理[윤리]를 덮어두고 지금 우리네의 倫理[윤리]로도 看過[간과]치 못할 重罪[중죄]일 것이다. 詩[시]에 있어서 말이거니와 우리는 近者[근자] 푸로詩[시]를 쓰고 푸로詩人[시인]이든 사람들과 새로 발을 드려 놓은 사람들의 詩[시]에 있어서 한 個[개]의 共通[공통]된 흐름을 發見[발견]하는 것이니 그것은 超現實派[초현실파](슈 ― 루레아리즘)의 詩形[시형]과 詩語[시어]를 본받고 있는 것이다.
 
22
쉽게 말하면 『鄕愁病[향수병]에 걸닌 街路樹[가로수]』이니 또는 都城[도성]의 경련이라니 等[등]의 정말 難解[난해]며 末梢神經[말초신경]의 못된 發達[발달]에서 나온 詩形[시형]들을 본뜨고 있는 것이다. 남의 體[체]를 본뜬다는 것보다도 詩[시]는 感興[감흥]이 있어야 하며 生活[생활]에서 나온 感情[감정]을 불어넣어야 한다면 푸로詩人[시인]으로서 그러한 感興[감흥]이 일어날 弱[약]한 末梢的[말초적]인 生活[생활]이 어데 있었든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슬퍼할 일이며 그것은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요사이 어느 製鐵工場[제철공장]에 다니는 친구 (그 사람은 文學[문학]에도 理解[이해]를 가지려하고 또 푸로詩[시][등]은 꼭 꼭 읽어왔다. 아마 카프의 發花期[발화기][전]부터이겟지.) 한 사람이 『요사이는 옛날 그 좋은 詩[시]를 쓰던 사람들이 모다 알아보지 못하게 어렵고 무슨 意味[의미]인지 弱[약]해빠진 煙氣[연기]같은 詩[시]를 쓰니 웬일인가. 그리고 그것은 도모지 우리네의 읽을 詩[시]가 못되니 지금은 그 좋아하던 詩[시]도 싫증이 나네!』
 
23
하였다. 이 말은 속임 없는 勞働者[노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는 『아카데믹』하다하여 詩[시]가 못쓸가 하였더니 지금은 도모지 『페탄틱』하다기보담 末梢的[말초적]이며 理解[이해]하려면 머리부터 小市民[소시민]의 末子[말자]가 되지 않고는 안 되게 되겠다. 이것은 훌륭한 뒷걸음질이 아닐까. 그들의 詩[시]에의 푸로詩[시]의 優位性[우위성]을 자랑하던 그때 그 일을 생각해보라! 모르는 동안에 이 危險[위험]한 惡流[악류]에 끌려들어간다는 것은 푸로詩[시]의 敗北[패배]이다! 그리하고 詩[시]를 쓰고 工夫[공부]하야 나아오려는 後進[후진]에게는 더구나 이보다 큰 어두움이 없을 것이다. 標本[표본]을 잃어버리고 어찌 路程[노정]의 참됨을 期[기]하려? 그것은 遺産[유산]이 아니다. 決[결]코 그것은 우리가 攝取[섭취]할 性質[성질]의 것이 못되고 攝取[섭취]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體內[체내]에 毒[독]을 퍼지게 하리라. 지금 이 惡流[악류]의 詩形[시형]은 우리가 批判[비판] 暴露[폭로]하지 않으면 안 될 詩壇[시단]의 當面[당면]한 鬪爭[투쟁]의 對象[대상]인 것이다.
 
24
『難解[난해]의 詩[시]라 해서 나쁜 것이 아니라 進步[진보]된 것은 언제든지 初期[초기]에는 難解[난해]라는 非難[비난]을 듣는 것이다』−(金起林[김기림])−
 
25
(詩苑[시원]) 이 말의 罪[죄] 많음이여!
 
26
渾沌[혼돈]된 詩壇[시단]이라 하야 詩[시]를 배우는 後進[후진]들도 삼가서 좋은 形[형]을 본뜨고 배워야 할 것인데 덮어놓고 好奇心[호기심]에 끌려 아모게나 배운다는 것은 이것은 어리석다기보담 無智[무지]에 가까우며 그 사람들은 詩人[시인]될 素質[소질]이 缺如[결여]하였으니 詩[시]를 쓰지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요사이 無名詩人[무명시인]의 내 남 할 것 없이 다 같이 슬퍼할 惡症[악증]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모를수록 좋은 스승을 찾고 正當[정당]한 形[형]을 배우려고 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원문】시(詩)에 대(對)한 우감(愚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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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각(李秉珏) [저자]
 
  # 조선중앙일보 [출처]
 
  193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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