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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2
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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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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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Phantasie)는 어학상(語學上) 뿐 아니라 철학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하여 필로스트라토스, 칸트, 헤겔, 딜타이 등 여러 철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도 더구나 어학상으로서의 그것은 더욱 연구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아직 과학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연구해볼 기회를 갖지 못하였으므로 다만 아주 상식적으로 극히 조잡하게나마 음미해보려 한다. 그런데 한가지 미리 말해둘 것은 이 판타지는 이곳 말로는 공상, 환상, 상상, 구상력 등의 역어(譯語)가 있으나 엄격하게 따지면 그 중의 하나도 아주 적당한 대용어가 되지 못하므로 그저‘판타지’원어 그대로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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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 있어 어떠한 사물을 접촉하고 경험하는 그 찰나에는 반드시 거기 대한 지각이 생기며, 또 접촉하고 경험한 후 어느 기간까지는 그 지각한 사물을 그냥 그대로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을 지각하고 기억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물에 현(現)한 경험과 접촉을 기초로 하여 실재적 사물이 아닌 다른 새로운 사물을 머리로 상상하며 창조해 낼 수 있다. 이것이 즉 소위 판타지인데 이 작용은 지각과 기억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누구든지 많은 경우 많은 기회에 일어난다. 즉 소화 11년 손(孫)마라송왕(王 ─ 손기정, 편자 주)이 활약하던 올림픽의 장엄한 광경을 감격한 마음으로 보고, 또 그것을 그 후의 어느 시일까지 본 그냥 그대로 기억해낼 뿐 아니라 그 올림픽 외 평일 몇 번이나 여러 곳서 본 경기의 광경과 기타 다른 경험과 접촉을 기초로 어떠한 실재적 경기가 아닌 새로운 경기 광경을 그려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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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농촌의 생활을 보고 알았으면 그것을 그 후 어느 시기까지 본 그냥 그대로 기억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농촌 외 다른 여러 농촌생활 기타 모든 생활에 대한 경험과 접촉을 기초로 어떠한 실재적 농촌이 아닌 새로운 농촌생활을 그려낼 수 있다. 물론 경기와 농촌을 생각할 때에 실재적 아닌 새로운 농기(籠技), 실재적 아닌 새로운 농촌생활을 추상적으로 개념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 즉 경기에 대한 경기의 체육상(體育上) 의의, 경기 규정, 경기의 종목 등을 연구, 검토할 수 있고, 또 농촌에 대한 지주 소작관계, 하천 개수문제, 농촌 진흥 기타 제문제를 연구, 검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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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판타지의 새로운 경기, 농촌의 창조는 그러한 추상적 개념적인 그것이 아니고, 실재적이 아니면서 실재적인 것과 다름없는 한 개의 어떠한 경기와 농촌생활의 영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즉 어떠한 새로운 사물을 관념으로서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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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판타지는 전술한 바와 같이 누구한테든지 많은 경우와 많은 기회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에도 비교적 풍부하고 선명한 판타지를 소유하는 사람이 즉 시인 ─ 예술가이며, 그 풍부하고 선명한 판타지를 의식적으로 작용시키며, 그것을 어떠한 형식으로 정리하며 구체화시키면 한 개의 예술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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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판타지는 시 ─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초와 요소가 되며, 예술가 ─ 시인의 생명과 재산이다. 또 그래서 예술가는 보다 풍부한 보다 선명한 판타지의 소유자일수록 보다 우수한 예술가가 되며, 보다 위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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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판타지는 그 활동이 어디까지든지 자유적이어서 그 범위에 아무런 제한과 구속이 없으며, 또 실재적 대상이 없이도 마음속에 그려낼 수도 있다. 그래서 소위 수동적 판타지는 꿈(夢), 환영, 광자(狂者)의 의식과 같이 현실적인 표상이 부침(浮沈)하며, 어떠한 외부적 자극을 기연(機緣)으로 하여, 아무런 연락도 없는 표상이 계기(繼起)하는 것으로 한 개의 완전한 형상, 계통있는 형상을 창조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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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타이는 어는 군장학교(軍醬學校)에서의 강연 가운데 시인의 상상력과 몽(夢), 환각(幻覺), 및 망상(妄想)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시인 철학자 중에 시인의 상상력과 광증(狂症)이 비슷하다고 말한 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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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데모크리트는 위대한 시인은 일종의 신적 광인이라 하였고, 아리스토델레스는 여하한 위대한 천재도 광증의 혼합 없이는 존재 않았다고 주장하였고, 호랏츠는 시인의 영감을 사랑스런 광증이라 하였고, 심지어 괴테까지도 천재의 상상과 광증의 그것이 근사(近似)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상상력과 광증이 어떤 점에선 유사한 바가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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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대하여 딜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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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꿈꾸는 것, 피최면자(被催眠者), 광인과 예술가 혹은 시인의 공통된 점은 그들의 심상과 그것의 결합이 현실의 조건에 제한되지 않은 자유의 형성이다. 이것은 단테나 혹은 밀튼이 낙원의 환상을 가질 때에 혹은 꿈꾸는 이가 좁은 방에서 별(星)에서 별로 날 때에, 혹은 불쌍한 염세(厭世)인 또 거진 미치광인 장자크가 박해의 망상을 만들어낼 때에 일어난다. 모든 이러한 비상히 다른 경우에 있어 필상(必像)의 자유로운 형성은 언제든지 표상(表象)을 통제해서 현실과 명확하게 관계시키는 조건에서 독립함으로써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러나 지금 이러한 서로 유사한 작용이 꿈꾸는 자, 광자, 피최면자에게는 예술가 혹은 시인과 아주 닮은 종류의 원인에 의하여 산출된다고 주장한다. 정신생활의 가장 높은 가장 곤란한 활동은 정신생활의‘획득연관(獲得聯關)’은 마치 의식의 시점에 있는 지각, 표상, 내지 상황에 작용시키는 데 있다. 그것은 꿈과 광증에는 없다. 거기는 말하자면 인상(印象), 표상 및 감정을 현실에 적합시키는 통제적 기관이 없다. 따라서 필상(必像)은 제 마음대로 전개하여 결합한다. 여기 반하여 시인의 상상력에는 이 연관이 작용한다. 그래서 다만 감정, 격정, 감관적 조직의 이상한 힘이 필상(必像)을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전개케 한다. 천재는 여하한 병적 현상도 아니고, 건전한 완전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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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시인의 판타지와 꿈, 광증 등의 차이는 인상, 표상 및 감정을 현실에 적합시키는 통제적 기관의 유무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현실과 너무도 괴려(乖戾)된 예술품은 즉 정도의 차는 있을지라도 꿈과 광증의 표현에 가까운 것을 가끔 본다. 그러한 작자의 의식은 역시 강약농박(强弱濃薄)의 차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까지 인상, 표상, 및 감정을 현실에 적합시키는 통제를 잃은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작자가 그로서는 가장 정당하게 가장 엄숙하게 가장 진실하게 표현한 그 현실을 정당한 예술적 판타지의 소유자가 볼 때에는 꿈과 광기에 가까운 의식의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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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판타지나 꿈과 광증이나 외계의 제한과 구속을 받지 않고, 마치 대공(大空)에 떠다니는 구름같이 자유스러운 영상, 자유스러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동일하다. 인간과 사족수(四足獸)가 동일한 동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렇다고 자유스러운 영상, 자유스러운 세계의 창조가 곧 예술적 판타지라면 그것은 동물이니 인간이란 논법과 마찬가지의 오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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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그러한 반현실적인 환상, 수동적 판타지와 다른 즉 인상, 표상, 및 감정이 현실에 적합하게 통제된 판타지, 일정한 방향에 연관을 보지(保持)하면서 진전(進展)하는 소위 능동적 판타지는 현실과 독립한 자유스러운 새 세계이면서 아름답고도 진실한 세계 ─ 훌륭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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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판타지가 창조해낸 세계는 현실의 세계는 아니지마는 실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실재의 세계에는 오히려 많이 볼 수 있는 우연성과 비보편성을 모두 추거(推去)해낸 전형적인 보편적인 세계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시는 역사보다도 이상(以上)으로 철학적이며, 이상으로 장중(莊重)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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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적 세계가 아니고, 구체적인 형상적 세계이다. 그래서 그것은 관념적 유령세계가 아니고, 현실적 박력(迫力)을 갖은 육체적 세계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계를 창조할 때에는 비록 그것이 실재적이 아니라도 창조자 자신에겐 훌륭한 실재적인 세계로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그 세계의 깊은 속까지 들어가며, 자신이 주인공으로 되어 그 세계의 환희와 고통을 그 주인공의 비념(悲念)과 희열을 자신의 기쁨과 쓰림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딜타이의 인용한 말에 의하면 플로베르는 그의 상상력의 만들어낸 형태는 그를 추적하며, 혹은 그는 그가 만들어 낸 형태 속에 생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엠마 보아리가 독약으로 죽는 모양을 쓸 때에는 그는 분명히 비소(砒素)의 맛을 느끼고, 그 자신이 실제로 소화불량에 걸렸으며, 그 때문에 두 번이나 오찬(午餐)을 모두 토해내었다 한다. 또 괴테는 씰레르한테 그는 진정한 비극을 쓰기를 무서워한다고 했다 한다. 그것은 그런 것을 씀으로써 자기를 파괴할런지도 모르는 것을 거진 확신한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사실 그들 뿐 아니라 누구나 다 경험한 바와 같이 희비극을 쓸 때에는 작자자신이 작품 중의 인물이 되어 희비를 같이 하게 된다. 이것은 즉 시인의 판타지는 대공(大空)의 부운(浮雲)같이 자유롭게 비약하는 것이지마는 대공의 부운같이 허황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판타지로 창조한 세계는 실재의 것이 아니라도 구름으로 지어진 공중누각이 아니고, 실재의 철근(鐵筋)과 석주(石柱)로 지어진 현실의 누각과 다름없는 것임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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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될 것은 판타지와 현실과의 관계이다. 물론 판타지가 창조한 세계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실재적 세계, 그것이 아닐 뿐 아니라 실재적 대상이 없어도 창조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현실의 아무런 구속과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은 결코 현실과 아무런 인연과 관계없는 수초와 같이 부생(浮生)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현실에 뿌리를 두고 발화(發華)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판타지는 현실에서 발생되고, 시는 판타지로 창조되니 결국 시 그것이 현실의 영상이 되는 것이다. 마치 화경(花莖)이 뿌리 위에서 자라나고, 꽃은 화경 위에서 피니 꽃이 결국 뿌리의 양분으로 피는 것과 마찬가지다. 꽃은 꽃줄기와 뿌리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꽃은 역시 뿌리의 양분으로 꽃줄기 위에서 피는 거와 마찬가지로 판타지로 창조된 세계가 실재의 세계보다 아름답고 보통적인 전형적인 그것이라도 결국 현실 위에서 발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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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이 현실적 생활의 경험에서 쌓아지는 여러 가지 지각, 인식의 퇴적(堆積) 그 위에서 각종각색의 판타지가 발효(醱酵)되는 것이므로 그 지각, 인식하는 현실에 따라서 그 판타지의 광폭(廣幅), 농박(濃薄), 채색(色彩) 등이 달라진다. 예하면 아동과 대인, 미개인과 문명인, 고대인과 근대인, 서양인과 동양인의 판타지는 다 각기 다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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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육 칠세 때 어느 날 오후 모친을 따라 동리 뒷산 언덕에 있는 목화밭 속에 서 있노라니 마침 저 편 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불그레한 햇살이 목화밭 위를 덮어 노란 목화꽃은 모다 목련같이 당홍빛으로 물들이고 그 밑에 죽림(竹林) 속 마을에는 은사(銀紗)같은 저녁연기가 덮여 있는 경치를 보고 어린 가슴속에 일어난 여러 가지 시적 판타지와 십이 삼세 때 둘째 숙모한테 무섭고 슬픈 옛이야기를 듣고 일어난 여러 가지 동화적 판타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마는 그때에 일어나던 그 판타지는 지금 필자가 그때와 같은 경치를 보고 얘기를 듣더라도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일어난 판타지는 그때엔 일어나지 못할 판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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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타이의“마음 가운데 상기(想起)해 된 상(像)은 조건은 같더라도 개성이 다름에 따라 강약, 명암, 선명, 형상성(形象性)의 정도가 모두 다르게 된다”고 한 것도 이것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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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식 가운데 동일한 표상은 제2의 의식 가운데 전연 본래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새봄이 와도 나무엔 거년의 잎이 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모든 표상은 오늘엔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다. 설령 있더라도 색이 희박(稀薄)하게 되어 있든지 선명치 않든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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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것은 현실이 자꾸 변전하여 동일한 현실이 두 번 오지 않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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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상의 상기와 현실문제에 대하여 삼기박음(三技博音)씨는 딜타이의 말을 거듭 인용해가면서 상당히 상세한 음미를 하였다. 즉 딜타이는“마음 가운데 상기된 표상은 그 재료가 된 지각 가운데로부터 취해둔 성소(成素)가운데서 현재의 제 조건이 필요로 한 범위의 구성 재료만을 채용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현재의 제 조건은 즉 현재의 실현적 제 조건이다. 예해서 현재 우리 머리에 어떠한 판타지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현재의 그 찰나에 어떤 사물로부터 받은 자극 ─ 감각, 지각으로 작용되는 것이 아니고 전술한 바와 같이 과거에 쌓인 여러 가지 현실적 사물에 대한 지각, 인식 등의 퇴적으로 양성(釀成)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쌓인 지각, 인식 등 그냥 그대로가 무조건으로 판타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현실적 제 조건으로 부터 주밀(周密)한 선택을 받으며 물리적, 화학적 가공과 변화를 입어 비로소 현재의 판타지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타지는 여러 가지 지각의 취합(聚合)이 아니고 그것을 재료로 한 새 창조다. 현실의 모든 조건과 영향 위에서 양성(釀成)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표상은 금일에 다시 떠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변변치 못한 현재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그래서 피해서 형성되지 못할만치, 현재의 판타지에 대한 위력은 크다. 그러나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위력을 가진 현재의 제 조건, 그것은 결코 하늘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결국 과거의 퇴적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농촌에서 자라난 농민의 판타지는 그가 농촌에서 우금(于今)까지 여러 가지 보고 듣고 느끼고 한데서 생기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어느 소정(所定)한 시기 그 농민의 머리에 일어난 판타지는 그 현재 그 농촌의 현실적 제 조건으로부터 절대(絶大)한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 현재 그 농촌의 현실적 제 조건은 그 농촌의 과거의 모든 조건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삼기박음(三枝博音)의 다음 말은 기억해 둘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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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거가 현재화되는 시(時)에는 현재의 제 조건이 한정을 주나, 그 제조건의 한정은 과거의 퇴적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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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의 구상력은 그 시인의 현실 또 그의 전통과 지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문학사는 그 나라의 민족의 전통과의 관계를 구명(究明)하는 것이 중심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인들의 구상력은 그 나라 민족의 특질을 나타낸다. 예하면 현재 독일시인들의 구상력은 게르만 민족의 특질, 지나(支那 ─ 중국, 편자 주) 시인들의 구상력은 지나 민족의 특질을 발로(發露)한다. 그래서 삼지(三枝)씨의 말과 같이 구상력은 역사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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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모든 시대의 문학적 행동은 그 전 시대로부터 조건이 붙는 것이다. 언제든지 시대의 것이 규범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한 딜타이의 말은 문학과 시대와의 관계를 명시한 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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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현실에 대한 관계는 시간적으로만이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극히 중요하다. 즉 동일한 시대의 시인의 판타지도 지방에 따라 각각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동일한 지방의 시인의 판타지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같은 시대에 있어서도 동양시인과 서양시인의 판타지는 동일하지 못하다. 그리고 그 시간적 공간적 관계가 종합되어 판타지의 민족적, 혹은 개성적 특징을 양성한다. 현재 조선시인의 판타지는 도연명이나 괴테의 그것과 다를 뿐 아니라 발레리나 김립(金笠)의 그것과도 동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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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판타지는 시간적, 공간적 관계만으로 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교양 정도, 빈부 정도, 직업 종류 등의 관계로도 그 특징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후자의 관계가 전자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때도 있다. 즉 같은 시대, 같은 지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도 그의 직업, 교양 등의 다름으로써 그의 머리에서 작용하는 판타지는 다 각기 다를 뿐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직업, 교양 등에서 받는 영향은 실로 강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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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지방, 동일한 시대라도 상인과 농민의 판타지, 별장과 토막에 사는 사람의 판타지, 지식계급과 문맹의 판타지가 동일할 수 없다. 시대, 장소, 직업, 빈부, 교양 등이 현실적 조건이다. 판타지가 비록 실재적 대상이 없어도 성립할 수 있을 만치 창조적이고 자유적이고 또 현실적 제조건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것이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현실을 기초로 하여 발생되는 것이며 현실과 관련없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인의 판타지는 현실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인식이 철저할수록 그것도 정비례로 풍부하고 선명하며 판타지가 풍부하고 선명할수록 위대한 예술은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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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명은 판타지이며 판타지의 자원은 현실이다. 의식자원의 풍부한 소유가 국민생활을 앙양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판타지 자원의 풍부한 섭취가 위대한 예술을 창조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필로스트라로스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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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시를 지으려면 휘지아스가 진심 실행한 것처럼, 제우스와 함께 하늘, 사계(四季), 성진(星辰)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아테나의 얼굴과 함께 전장(戰場)과 지혜의 모든 기술을 보며 또 어떻게 해서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뛰어나왔는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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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딜타이도 말한 바와 같이 세익스피어는 지주의 아들로 성장하며, 변호사의 제자도 되고 소년으로 연애와 결혼을 겪고 윤돈(倫敦 ─ 런던, 편자주) 생활에 대해(大海)에 투신하여 비상(非常)히 복잡한 생활상태에 있으며, 가장 잔인한 국가행위가 모든 사람들의 안전(眼前)에 일어난 엘리자베스 시대에 있어 많은 현실생활의 경험을 쌓았다. 또 세르반테스는 법왕(法王 ─ 프랑스 왕, 편자 주)의 사절로 비서로써 교차출정(敎次出征)한 병사로써 쇠사슬에 매이며, 작가의 작업에 부풀려서 많은 현실적 생활의 경험을 쌓았다. 또 디킨즈는 도제(徒弟), 변호사의 서기, 의회의 의사록계도 되고, 또 영국, 구주, 미국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학교, 감옥, 전광원(癲狂院), 궁전(宮殿), 극장 같은데서 인간을 연구하고 무수히 많은 심상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위대한 예술을 창작하여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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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딜타이가 한 다음 말은 정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위대한 독창력을 가진 시인은 인생의 태타(怠惰)한 방관자가 아니고, 인생의 모든 희극, 비극의 공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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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현실과 관련 없다는 것, 현실을 경원(敬遠)할수록 보다 훌륭한 판타지가 작용된다는 것, 현실과 배려(背戾)되는 것이 판타지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 시인에게 가장 있기 쉬운 가장 많은 오해이다. 그러나 있기 쉽고 많은 그것이 곧 오해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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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예술적 판타지는 차츰 색이 어두워지고 폭이 좁아지고 탄력이 약해지고 형체가 수척, 빈약해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역사문학 그 물건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의 무제한 유행의 원인은 창조적 판타지의 빈약을 보충하려함에 있지 않은가 한다. 그러면 예술적 판타지의 위축(萎縮), 빈약에 대한 구료(救療) 방법은 어디 있을까. 그것은 오직 일반 시인 작가의 현실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철저한 인식, 현실생활에 대한 풍부한 경험에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써 우리들의 예술적 판타지는 더욱 풍부해지고 더욱 선명해 질 것이다. 끝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판타지의 자유성(自由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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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가장 영예롭고 가장 강점인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자유성이다. 그것엔 외계의 어떠한 박해(迫害)와 강압도 가하지 못한다. 필로스트라토스의 말과 같이“어떠한 물건한테도 위축되지 않고 똑바르게 이상을 향해 간다.”딜타이가 시인의 상상력을 정신생활의 최고의 활동의 하나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자유성의 특전을 가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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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인생의 가장 고귀한 꽃이다. 그것은 풍우(風雨)와 상설(霜雪)의 장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꽃이다. 시인의 이 영예롭고 권위 있는 특전을 인식하여 그 영예와 권위를 어디까지든지 언제까지든지 보지(保持)할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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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1940. 12)
【원문】시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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