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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고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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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히로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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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이즘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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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상징운동이래 시인들은 인식적인 태도를 지님으로써 각기 세계에 대한 해결을 구하였었다. 시인들은 자기 안으로 점점 눈뜨며 이글거리는 몸부림 속에 저가 전체화 되고 또는 저가 세계화 되는 일종의「히로이즘」에까지 전염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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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에서 소설의「히로이즘」은 소설화 속에 있으나 시의 「히로이즘」은 시작(화) 속에 있지 않고 다만 시작 밖에 있었다는 놀라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들은 개성이 멸각해서 저들의「히로이즘」을 얻는데 반하여 시인은 개성의 제고에서만 스스로의 「히로이즘」을 표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개성의 제고가 개성의 멸각에 대한 순전한 역방(逆方)이 되지 못한 것은 시와 산문의 타율적인 요소가 여기에 앞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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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은「상」이 되려고 했다. 한층 강력한 세계 초월을 일삼았다. 새로운 근원 내용을 형성하고 다시 그것을 파괴했다. 군돌프의 의하면「히로이즘」은 아래와 같이 성립한다.“모든 전변을 넘어 영원히 인각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 이 영원에 대한 인각적인 것은 상대적인 해석과 방법이 피안에서 일체 타당한 기준을 갖는 것. 그 기준은 다시 마음대로의 추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만 구체화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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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바랬던 개성의 제고는 인식적인 태도를 내향의 태도로 다시 실존의 태도로 바꾸어 나타났다. 개성은 제고되기 이전에 초월되어야만 했다. 군돌프에서와 같이 영원적인 것에 대한 방향은 상황적인 것에 대한 방향과 이중으로 타율하며 시의 방향과 산문의 방향은 수직과 평형의 방향처럼 서로 교착된 것이다. 개성의 제고는 개성의 멸각과 서로 수직 평행하는 현재성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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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히로이즘」은 과연 있는 것일까? “나의 현대 중에 영웅을 자각케 하고 나의 존재 중에 영웅을 치환하고 다시 내가 저들로부터 받은 방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개변하는 사명감”이란 시인들이 그들의 개성을 한층 시대적 역사적인 전형으로 총체 인격으로 형성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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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러한 사명감은「히로이즘적 실존」아니면「상」의 획득이던 것이다. 수직한 개성의 제고는 평행한 개성의 멸각을 다른 의미에서 보상해야만 한다. 즉 시의 영원성은 산문(소설)의 상황성을 자기내에 개변케 하는 영웅을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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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란 피와 살이다. “영웅이란 사람이다.” 물론 영원성에도 사랑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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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황성을 배척하는 “사랑이란 개성의 제고가 아니라 개성의 도피”란 말이다. 엘리어트의「개성의 해방」은 개성의 도피가 아니었다. 그것은「사랑」하는 개성이었다. 그렇게 엘리어트에 있어서 히로이즘적 창조는 사랑의 창조로, 즉 초개성으로 제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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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와 같은 기독교주의자들의 밑바닥을 흘러간 멸각된 개성은 곧 그들의「복음」이요「사랑」이었던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어서 모로 보나 산문(소설)은 그의「사랑」을 시현하면서 있다. 실존주의 작가들에 의한 「인인애(隣人愛)」도 그러한 개성 멸각의 승리인 것이다.「사랑」하는 상황성이 승리하고 있음에 비추어「영웅」하는 영원성이 점점 고립되고 난해하다는 누명은 무엇인가. 수직에서만 떨고 있는 소위 현대시의 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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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르 ‧ 리얼리스트의 개성의 제고는 곧 목적의 무화였다. 목적의 무화는 자동기술법이었다. 반현실이었다. 소위 현대시(?)의 초기에 붙잡힌「영웅」들은 이토록 어지럽고 혼란된 비근원적인「상」이었다.「상」이라기보다 차라리 일종의「체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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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기술은 무엇보다도 주관성의 파괴다. 우리가 그러할 때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를 분열하는 응혈에 대하여 경련하며 달려 붙는 것이다.” 싸르트르는 다시 주관성의 파괴와 함께 나타난 주관성의 기피 즉 평행적인 상황성의 기피를 쉬르 ‧ 리얼리스트들이 범한 것으로 보았다. 이는“오로지 가공적 지점이라 불리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의 상황(2권)에서 공언했다. 소위 현대시의 선구자들은 인식의 태도에서 내향의 태도로 옮겨 올 때 다시 그것이 실존의 태도로 하여 전체화되며 세계화될 것에 인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십세기 후반기에서 엘리어트나 스펜더 오든 등의 시도는 이 인종을 다시 이행하고 모든 측면을 반성하는 노력에 참혹하도록 집중된 것이 있다. 시인들은 제약과 포위 속에서“자기 스스로를 볼 때 자기 스스로가 남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결정적인 현재에 몸서리친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의 남(인인)은 곧 무엇을 대명하여 무엇을 강행하는 것인가. 이러한 남을 멸시하며 스쳐간 선수들의 신화가 기껏「실패된 히로이즘」이란 것을 싸르트르는 통박하고 산문의 상황성, 즉 산문의「남」에 대한 승리를 얼마든지 과시하였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산문의 복수성은「남」에게 대한「사랑」으로 충만한 것이다. 인류 전반에 대한 책임을 호소하던 도스또예프스키의 근원과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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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기 30년대의 오든을 열거함으로써 이 글의 결구를 앞설까 한다. “그가 하는 사랑이란 말의 깊은 의미를 우리는 모른다.…… 일종의 리리시즘을 자극하는 초자연적인 것의 암시가 있다.” “휩쓸려 가는 자 해방하며 다시 확대하는 노력” 이라고 호가아드는 지적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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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든 자신 “사랑이란 그 위를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고 또한 움직이려고 애쓰는 홍수와 같다” 고 읊었다. 「다른 하나의 시간」에 있어서 오든의「사랑」은 밖으로 돋히려고 하였다. 오든은 수직의 멀미에서 상황성의 안정으로 그의 평행으로 강하하려 했던 것이다. “역사의 전변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예언 할 수 있다.그리하여 각인이 신을 사랑하고 신을 통하여 인인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그것은 자발적이다.” (「『시미온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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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시의 서사성 또는 시의 행동성…… 거듭 군돌프가 지적하는“무엇을 하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에 대하여 시는 선택하여야만 될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한국 시인들의 경련과 인종이 오늘날 무엇을 위한 사명감으로 반성되겠는가에 대한 커다란 계기를 짓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리리시즘이 피와 살로 얽힌 복수적 사랑을 용해하는 일군의 빛이 벌써 훤한 것이다.
【원문】시와 히로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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