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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소설 만평(新春小說漫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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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2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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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소설 만평[新春小說漫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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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事件)」 회월 작(懷月 作) (『개벽(開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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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까닭에 정미소에서 쌀 고르는 몸이 되고 음흉하고 포학한 주인에게 절도죄로 몰리어 정조까지 빼앗기게 되고 말경에는 거기서 쫓겨나게까지 되었다. 생활에 부대끼다 못한 그는 “공장에 가는 대신 이 사내 저 사내에게로” 가 보았으나 그 짓만으로는 주린 배를 채울 길이 없으매 그는 방물장수가 되어 술집에서 술집으로 돌아다니며 물건과 여자를 한꺼번에 팔았고 한껏 거칠어진 그의 마음은 남의 돈지갑까지 훔치다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주리난장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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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 그것은 얼마나 침통한 비극이냐. 얼마나 악착한 자본제도의 희생이냐. 이런 자료로 된 이 작품이면 보는 이의 피를 끓이고 가슴을 치는 듯한 역(力)과 열(熱)이 용솟음을 하리라고 누구든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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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그 작품은 아모런 침통미도 없고 육박력(肉迫力)도 없으니 웬일인가. 사회주의자로 민중을 위해 일하겠다 하던 P와 Y가 자추락(自墜落)으로 술집에 갔다 하나 술집에 간 듯싶지도 않고, 술을 먹는다 하나 술을 먹는 듯싶지도 않으며, 문제의 여자가 들어와서 양말 밑으로 Y의 손을 잡았다고 하나 잡은 듯싶지도 않고, 그 여자가 자기의 비참한 과거를 이야기하건만 조금도 제 이야기 같지도 않으며, 그것을 듣고 흥분되어서 분명히 “부르주아를 박멸하여야 한다.” 고 소리를 지르건만 조금도 뱃속에서 우러나는 것 같지도 않고, 다른 방에 가서 돈지갑을 훔치다가 그 여자가 뚜들겨 맞고 또 흥분된 P가 뛰어 들어가서 그 여자 치는 자를 따리건만 이 극적 광경이 도모지 보는 나의 가슴을 질르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보는 나의 신경이 둔한 탓이라 하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고 하면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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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작품으로서의 자연성(自然性)과 진실성(眞實性)을 잃은 까닭이 아닌가 싶다. 바꾸어 말하면 실감을 잡지 못한 까닭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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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을 위한 문예도 때 있어 필요할 줄 안다. 선전이란 선전일수록 독자에게 작용하는 힘이 강렬하여야만 선전의 목적을 달(達)할 것이 아닌가. 경향적(傾向的) 작품일수록 이 자연성과 진실성을 잃어서는 죽도 밥도 아니 되는 것이다. 능란한 기교와 용한 묘사에만 구착(拘搾)됨은 그리 바랄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도 문제인 줄 알아야 한다. 제가 쓸려고 한 것은 어데까지 표현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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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한마디 할 것은 이 작자가 구상과 극적 광경을 잡는 데에는 매우 묘(妙)를 얻었다는 것이다. 전번의 「피의 무대」도 극적이었다. 이 「사건」도 이 점에 이르러서는 경복할 만하다. 바라건댄 이 극적 광경으로 하여금 생동하고 활약하도록 표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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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沒落)」 팔봉 작(八峰 作) (개벽(開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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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소설의 눈물겨운 일절(一節)을 읽는 듯하다. 남편은 계집을 더리고 시골에 드러누웠으며 하나 있는 아들은 ‘칠거지오악(七去之五惡)’ 도 없는 조강지처를 내쫓고 세상이 깨어져야 된다는 둥 어쨌다는 둥 떠들면서 다니던 은행도 구만두고 집에 붙어 있지도 않고 자기주(自己主)로 병석에서 신음하는 늙은 여자의 한숨과 탄식을 늘어놓은 것이다. 작자는 그 미끄러지는 듯한 센티멘탈한 붓끝으로 이 시대에 뒤진 노파의 독백을 설명해 주기에 전편을 허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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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작품을 가지고 그 제명(題名)과 같이 어떤 계급의 몰락과 어떤 계급의 신흥(新興)을 의미함이라 하면 너무도 힘이 없고 희망이 없다. 더구나 작자의 태도가 몽롱하다. 몽롱하다느니보담은 도리어 몰락해 가는 계급에 만강(滿腔)의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 ‘삼강오륜(三綱五倫)’ 을 찾는 어머니와 안해를 이혼하는 아들로써 신구계급을 대표했다고 하면 그것도 너무 천박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사상적으로 영(零)이라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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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그 표현방식이 또 얼마나 케케묵은 수법이냐. 춘원의 「무정」 쓰던 솜씨에서 일보(一步)도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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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작품은 반푼의 취할 점도 없다는 말이냐. 그런 것도 아니다. 사상으로 보아 하잘것이 없건마는 그래도 측측(惻惻)히 보는 이의 마음을 끄는 무엇이 있다. 맨 끝에 전도부인(傳道婦人) 그릇을 꿈꾸며 어린 외손녀를 안고 우는 정경에 이르러서는 보는 이의 눈을 젖게 한다. 거기는 눈물겨운 실감이 있다. 나로 하여금 턱없는 상상을 마음대로 하라 할진댄 성칠은 곧 어느 때 작자의 꼴이 아니었던가. 그리면서 회상의 눈물에 젖어가면서 이 일편(一篇)을 이룩한 것이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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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또 한 가지 상상을 용서해 준다면 작자는 이 작품을 내어놓을 때 많은 번민과 비애를 느꼈을 줄 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작자의 평일의 주의주장과 이 작품과는 소양지판(霄壤之判)으로 따른 까닭이다. 사상과 감정의 모순, 이론과 실지의 당착! 이 또한 심각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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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어 가는 이들」 성해 작(星海 作) (『개벽(開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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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춘이란 농부 부부는 제 고향을 떠나 전토를 따라서 전북 평야 C村[촌]으로 이사를 하였다가 거기서 또한 농토를 빼앗기고 빚을 짊어진 까닭에 새벽을 타서 도망하는 광경이 맨 처음에 나타난다. 정들여 살던 곳을 떠나는 발길이 어니 자욱자욱에 눈물 올 것이요 채귀(債鬼)의 자는 틈을 타서 몰래 달아나는 가슴이어니 풀 끝에 실바람만 지나가도 두근거릴 것이다. 이 얼마나 눈물겨웁고 비장한 장면이냐. 그런데 작자의 질팡갈팡하는 붓은 쓸데없이 중복과 우회를 일삼을 뿐이요 살던 곳에 대한 애착과 도망꾼의 공포와 불안이 하나로 그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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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이 작품의 서설에 불과한 것이 있다. 그들은 T역이란 데 와서 술장사를 시작하였는데 부잣집 서방님이 그의 안해에게 마음을 두어 입을 맞추고 몸만 허락하면 많은 돈을 주리라고 꾀였다는 말을 듣고 매우 분개하고 있던 차에 그자가 아닌 밤중에 잠긴 문을 뚜들기고 들어와서 행패한 것을 보다 못한 득춘이가 장작개비로 그자를 뚜들겨 주고 나서 “악은 악으로 갚을 터이다.” 라고 부르짖는 것이 이 작품의 초점이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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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악으로 갚는다는 사상에는 나도 공명(共鳴)하는 바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 안해의 입을 맞춘 자를 뚜들겼기로 이것이 악을 악으로 갚는 끔직한 표시가 될까. 그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저를 욕하는 자를 같이 욕하고 저를 따린 자를 같이 따렸다고 악을 악으로 갚았다고 해석함은 어루 유치하지 않을까. “굴종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복수할 때의 기쁨이 어떻게 큰 줄을” 깨닫게 맨들려 할진대 작자는 먼저 주인공이 굴종에 번민하는 꼴을 심각하게 그려야 될 것이 아닐까. 어둔 밤에 홍두깨 내밀기로 부잣집 서방님을 쳐나서 별안간에 굴종의 치욕을 느끼고 복수의 유쾌를 깨달았다 한들 독자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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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표현은 보잘것도 없다. 생동하는 대문이라고는 약(藥)에 쓰려도 없다. 이렇게도 힘이 빠졌는가. 무거운 머리로 쓰기 싫어 싫어하면서 억지로 억지로 긁적거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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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暴君)」 서해 작(曙海 作) (『개벽(開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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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로서는 매우 떨어지는 작품이다. 폭군(暴君)이 술집에서 주정하는 광경의 묘사도 잘 되었고 자기 집에 돌아와서 방춧돌로 안해를 쳐 죽이는 장면도 매우 끔찍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만 그것뿐이다. 작자가 무엇을 쓰려고 하였는지 도모지 알 길이 없다. 춘삼이가 왜 그렇게 광란에 가까운 주정을 하였는가. 왜 선량한 안해를 포학하게도 쳐 죽였는가. 아모리 뒤져보아도 작자의 단 한 마디의 대답도 발견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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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二) 천성 ― 주위와 환경의 지배로 말미암아 다시 말하면 현제도의 결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인물이 생겨났다고만 하여도 우리는 어떤 속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천성 곧 성격의 비극을 그렸다고만 해도 우리는 인간성의 영흉(獰兇)함을 전율할 것이다. 또는 그를 포학한 남성의 일 전형으로 맨들고 비둘기 같은 여성의 운명이 얼마나 무참한 것을 보여 주어도 우리는 소름을 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 중의 하나 또는 이외의 무엇도 잡지 못하였다. 애석(愛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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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밤」 서해 작(曙海 作) (『신민(新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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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가 너무 길다. 간소하고 강경(强勁)하던 이 작자의 필치는 조금 용장(冗長)해진 흠이 없지 않으나 묘사가 여전히 생동하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음력 섣달밤 고요한 서울 거리에는 호통 치는 찬바람과 어우러져서 거지들의 “한 푼만 줍쇼!” 하는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 때에 청구 은행장이요 동방신문 사장인 한남윤의 집에서는 만찬회가 벌어졌다. 사내와 여자가 모이어 바깥날의 치운 것도 잊어버리고 거지 소리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진수성찬에 배를 불리고 가효미주(佳肴美酒)에 취흥이 겨워 여자로서 술 먹은 것을 자랑하고 사내로서 기생(妓生)과 사이 좋은 것을 웅얼거리며 밤이 늦으면 자동차를 타고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는 판에 난데없는 장정 하나가 뛰어 들어와서 서리 같은 비수를 번뜩이며 금품을 강탈해 가는 것이 이 소설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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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경개(梗槪)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음과 같이 이 작품은 다분히 탐정소설의 냄새가 나고 그 결구로 보아 흥미 중심의 통속미도 없지 않다. 그러하되 그 대조의 묘와 정경의 약동이 얼마큼 이런 결점에서 이 작품을 구해줌도 간과치 못할 사실이다.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그리 깊다고 못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배가 고파서 강도질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의 귀에 못이 되도록 이런 사실을 듣지 않았는가. 강도질하였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속을 줄 수가 없을 것이다. 작자의 관찰이 한층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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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개벽(開闢)』에는 이기영(李箕永)씨의 「농부(農夫) 정도룡(鄭道龍)」이 있고 『신민(新民)』에는 김태수(金泰秀) 씨의 「위스키」가 있지마는, 전자는 미완이기 때문에 후자는 소설이라 하기보담 일 소품(小品)이기 때문에 모두 평(評)을 약(約)하였다. 그리고 잡지 이외에 각 신문지상에 발표된 작품에도 망평(妄評)을 가하였지만 잡지의 작품을 보고 떡됨이 풀린 나는 작자에겐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로되 구만두기로 하였다. 망평다사(妄評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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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192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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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玄鎭健) [저자]
 
  개벽(開闢)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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