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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자의 생활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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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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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자의 생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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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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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퍽이나 괴롭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괴롭다면 자살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겠나이다. 낙엽이 창가에 부딪치고 바람소리 조차 음산한 가을날 번민의 바다에 혼자 헤매고 있읍니다. 혹은 사회를 원망도 해보고 혹은 운명을 저주도 해보았으나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아, 패배자의 괴로운 술잔 ─ 이 잔을 혼자 마시며 힘없이 남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4
흘러가는 구름 ─ 한 떨기 구름이라도 된다면 저 창공에 유유이 떠들며 구만리 큰길을 마음대로 갈것이 아닙니까? 저 수줍어 우는 한마리 새 ─ 내가 그 새라도 된다면, 계곡과 산림의 맑은 노래나 부르며 훨훨 날지 않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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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가고싶은 곳을 가지못하며 회색의 감방에서 쓰라린 눈물만 짜낸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읍니까?
 
6
B형! 저는 한동안 문학을 위하여 가진 정열을 다하여 보았읍니다. 또는 가두(街頭)에도 나서보고 혹은 일확천금을 꿈꾸고 남북 만주에도 헤매어 보았읍니다. 그러나 모든것이 한겹 꿈이구려. 운명이 나를 버리고 행복이 나를 등졌는지, 나의 앞에는 인제나 형극(荆棘)의 길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날그날의 생활조차 급하게되어 그야말로 인생의 쓴맛을 속속히 맛보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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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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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년전이 아닙니까? 형과 아우가 조도전 문과에 있을 때였지요. 어느 일요일날 江汲君[강급군]과 셋이서 오오모리 해안에 배를 띄우고 유유히 해안을 오르내리면서 아름다운 꿈을 여름날 구름과 같이 하늘위에 그리지 않았읍니까? 형은 세계적 과학자, 아우는 세계적 문학자 ─ 이러한 꿈같은 공상을 가슴에 품고 어깨를 뽐내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현실이란 너무도 악착합니다. 이제 그때의 꿈이란 쪽박이라도 찾을길 없고, 형이나 아우나 생활이란 그날그날의 밥을 위하여 악착같이 헤매일 뿐이요. 음신(音信)조차 끊이게 되었구려. 인생이란 이렇게 괴로운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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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아우는 그간 결혼도 하고 어린애도 셋이나 있어서 이제는 벗으려도 벗을 수 없는 어깨의 짐이 무겁소이다. 얼마전 까지 경영하던 ××상회도 그만 실패하고, 이제는 하나의 실패자로 가두(街頭)의 보헤미안이 되게 되었읍니다. 형께서는 지금도 함주사촌(咸卅沙村)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며 고요한 생활을 하신다니 부럽소이다. 고요한 전원의 생활이 얼마나 즐겁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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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밤이면 기러기 우는 시즌이 되었읍니다. 북에서 오는 몇 마리의 기러기 소리! 달빛 조차 쓸쓸한 밤에 멀리 북쪽을 향하여 형을 그리며 이 펜을 놓나이다. 그럼 귀하신 몸이 내내 건강하시기만 비나이다. 반가운 하서(下書)나 주시기를 기다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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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 漁波[어파] 아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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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서간집 「나의 화환」에서
【원문】실패자의 생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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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영(盧子泳) [저자]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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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