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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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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9
조명희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성을 주제로 함
1
아들의 마음
 
 
2
바깥은 사월 그믐의 푸른 하늘이 높이 솟았다. 가만히 내려붓는 따스한 햇살, 살살 불어오는 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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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숲, 가까이 보이는 벽오동나무. 그 야드러운 잎들은 따스한 햇빛을 머금어 산들바람이 스칠 때마다 그들도 산들산들 웃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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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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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 밑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힘껏 한번 들이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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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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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듭 중얼거리며 새삼스럽게 더 한층 자연의 은혜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에 나의 신경은 가슴 속을 찡하고 울리며 그 속에서도 또한 햇살이 퍼지는 듯싶었다.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다시 고개를 이편으로 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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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한 발자국 건너 옆 병상 위에 누운 병인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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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제 저녁때에 들것에 담겨 들어온 병인인데 어느 가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가스 도입관이라던가 그 무엇이 폭발되는 바람에 불이나서 불에 데고 가스에 중독되어 거의 송장이 되다시피 하여 들어온 일본 사람이라 한다. 다행히 죽지는 않고 오늘 아침결에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떴다 할 뿐이다. 밤이 새도록 그 옆에서 붙어 앉아서 울며 간호하며 하던 가엾은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흐린 듯한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또 그 옆에는 어는 간장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간장의 끓는 가마 속에 빠져 거의 다 죽게 된 덴둥이로 벌써 오래 전에 들어온 사람 또 그 건너편에는 어느 연필 공장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하다가 건성 늑막염에 걸려 노란 살가죽만 남은 얼굴로 한달 전에 들어온 그는 나와 한가지로 이 병실 환자 중 원로격(元老格)이었다. 그는 이 병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노동조합에서 용감히 싸워 나가는 투사였다. 그 언제인가 재일본조선노동조합 창립 대회 때에 그가 내빈으로 와서 열렬히 부르짖던 그 사람이다. 내가 여기 들어온 뒤에도 제일 정답게 지내는 일본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빈궁한 여러 친구의 힘을 모아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또 그 다음에는 조선 유학생으로 와서 고학하는 사람인데 히비야 공원 근처의 새로 짓는 집 2층 꼭대기에서 벽돌을 지고 사다리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을 지경이 된 것을 어느 친구의 주머니를 털어서 우선 입원하여 놓은 것인데 몇 주일 동안 입원료를 내지 못한 까닭으로 나가주든가 돈을 내든가 하라는 독촉을 날마다 받고 있는 터이다. 이 병실에 가득찬 열 이상의 사람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이따위 병인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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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동경 본소에서도 제일 값싸고 구치레한 병원, 빈민이나 노동자 병원이라 할 만치 없는 사람들만 모여드는 병원이다. 그러나 유료병원이니 만큼 사람의 병을 고치는지 더치는지 모를 만한 소위 무료 진찰소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그 몹쓸 축대에 몸이 말려들어 가 온 몸이 가루가 될 뻔하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왼팔과 늑골 하나가 부러졌을 때 회의사의 소위 ‘하해 같은 덕택’으로 어느 병원에 들어가 일지울이 지난 뒤 팔과 가슴의 수술한 자리가 겨우 합창도 되기 전에 회사에서는 자기네의 책임을 다하였노라고 입원료를 더 낼 수 없다 하여 잡아떼므로 하는 수 없이 어느 동무의 집에 와 누워서 지내다가 병이 더 더쳐서 어찌할 줄을 모를 판에 나와 같은 조합원의 친구들이 회사에 가서 싸움을 하여 가며 치료비를 받아다가 다시 이 병원으로 입원하여 몇 주일 동안 헛 애만 쓰다가 필경에는 팔을 잘라내고 만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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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사흘 전 일이다. 그 동안에는 아픈 데만 정신이 없어서 이 생각 저생각 할 겨를도 없었다마는 오늘부터는 아프기도 덜하고 정신도 좀 들고 하니깐 괴로운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게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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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하나 잘라내다니……영영 병신이로구나……팔이 하나 없어졌지……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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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없는 팔을 움직이려 할 때 그쪽 어깨만 들썩하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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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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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의 반을 잃어버린 듯이 허전허전하다. 똑 꿈 속 같다. 고약한 꿈 속 같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 대로 쓴 것은 쓴 대로 대하는 것이다. 인제는 현실 그대로를 놓고 생각할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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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하나 없는 몸이 앞으로 어찌 먹어 가며 어찌 일을 잘하여 나가느냐 말이다.……아니다. 더욱 더 힘써 나가자, 죽도록 힘써 나가자. 인제 내 앞에는 다른 아무 소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오직 일 뿐이다.……이 팔이 이 모양으로 된 것이 오히려 나를 사회주의혁명 투사로 만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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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생각하며 전일보다 더 마음이 당당해질 때도 많다. 하나 또 한 옆으로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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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을 하재도 먹어야 하지 않다. 이 모양으로서야 벌어 먹어 나갈 수가 있다. 하루 이틀 동안도 아니고 이루 동무들에게 신세를 질 수 도 없는 일이고……아 이것 참 이보다도 더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우리 어머니 일이다. 아, 이 일을 어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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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생각하였다. 나의 가슴 속에 돌던 기계가 딱 서고 전등불이 탁 꺼진 공장 속같이 갑자기 어둡고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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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는 당신을 영영 저버릴 때가 필경은 있고야 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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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부터 이런 생각을 하니 한때 가엾었다마는 인제는 저버리지 아니 할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다만 몇 푼씩이라도 가끔가끔 보내 던 돈도 이 달부터는 보내지 못하였다. 앞으로도 보내지 못하게 되리라. 요전 편지할 때에도 내 몸이 이렇다는 말을 비치지도 않고 몸이 튼튼히 잘 지내며 다만 실업을 하여 근일은 조금 곤란히 지낸다는 거짓말을 하여 썼다. 내가 실업을 하여 곤란히 지낼 터이니까 보낼 돈이 없으시라고 생각하겠지마는 그래도 자기가 곤궁할 때에는 은근히 돈 오기를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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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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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어머니의 정경을 생각해 보았다. 구차하기 싹이 없는 당숙의 집 웃방을 빌려 인제는 근력도 없어서 품팔이 같은 일은 물론이고 쉬운 일도 잘 못하시는 터이다 (요전의 편지에 당숙이 그 곳에서 살 수가 없어서 간도로 이사를 가려는데 이 봄에 가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가을로 미루었다고, 그리하여 따라 갈래야 따라 갈 근력도 없고 그곳에 그대로 있자니 인제는 방 하나라도 얻어 들 곳이 없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암만해도 네가 나와야겠다는 의미의 말이 길게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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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살아 나가시노?……더구나 이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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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생각할 때 앞길이 캄캄하다. 주림과 걱정에 견디다 못하여 두 팔로 두 푸릎을 얼싸안고 그 구긴 명주살같이 주름이 구깃구깃 잡힌 얼굴에 수심기 띤 흐린 눈으로 앞만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계신 꼴을 그려볼 제 내가 그 옆에 섰다가 그 애쓰시는 꼴을 더 견디어 볼 수가 없는 듯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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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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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런 입속말을 내었다. 나는 그것이 무의식적이었음을 의실할 때,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나서 눈물을 머금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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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든지 눈을 감고 지내고 싶었다. 이 아프고 침울한 기분 속에 끝까지 가라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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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4월 그믐의 푸른 하늘, 방안은 침울과 침울로 거듭 싼 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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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같은 침울이 송장같은 사람 사람의 주위를 꽉 둘러싸고 말았다. 아 이 침울을 깨일 그 무엇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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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 누운 유학생이 조선서 오는 신문을 보다가 외쳐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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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여류 비행사가 났구나……중국 남방에 가서 북벌군에 참가하여 크게 활약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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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리를 듣자 호기심이 부ᄍᅠᆨ 나서 벌떡 일어나 나가는 판에 늑막염 환자 일본 친구의 앞을 지나자 뻗은 다디로 일어나 앉았던 그는 해쓱한 얼굴에 정다운 미소를 띄우고 일본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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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방, 바깥 일기가 참 좋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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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이 말에 뒤받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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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아요. 저런 자연과 우리 친구 밖에는 우리에게 정다운 것이란 다시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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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바른 손을 내밀었더니 그도 또한 여윈 손으로 나의 손을 붙들고 떤다. 나도 힘있게 쥐고 떨었다. 온 방안에 있는 사람에게 달려가 모조리 손을 한번씩 쥐고 흔들고 싶었다. 모두가 성한 사람 같고 보면 모두 거리로 뛰어나아가 어깨와 어꺠를 겨누며 손과 손을 마주 잡아 땅을 구르고 걸어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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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 노동자들의 단결 만세!’하고 소리를 한데 합쳐서 외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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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걸음 더 걸어 나가 유학생의 어깨를 바른손으로 탁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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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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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을 내어밀었다. 그도 나의 손을 잡고는 우두커니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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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 와서 죽을 고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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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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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가 힘을 다시 내어 쥐어보았다. 그도 힘있게 대거리하여 말없는 가운데 그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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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에 신무을 얻어들자 쏜살같이 침상으로 돌아와 사회면을 헤치고 들여다보았다. 우선 눈 앞에 뜨이는 여자의 사진이 눈에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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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이 나의 잊지 못하던 금순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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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이다. 금순이! 일곱 해 전에 고향에서 떠나간 이 금순이가 분명하구나. 장성한 그의 용모를 보아도 본적과 성명을 보아도……나는 황황한 마음으로 기사를 내려 훑어 읽었다. 그가 부모를 따라 만주에 가서 표랑하다가 중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비행 학교를 졸업한 후, 북벌군에 참가하여 섬약한 몸이 비행기를 몰아 매같이 북군 진지 위에 달려나갈 제 북군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하게 한다는 둥 아리따운 그 이름이 남방 중국에 떠돈다는 둥 길디길게 써 늘여놓았다. 기사를 다 읽자 나는 뛰는 가슴을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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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금순이가 과연……중국 혁명을 위하여……아니 세계무산 계급해방을 달성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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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새로 한층 더 힘을 얻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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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무장을 하고 쌈하자. 민족해방을 위하여……너는 중국에서 나는 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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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일본 말로 소리쳐 여러 사람에게 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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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 고향, 한 학교에서 공부하던 동창생이요, 또 나의 첫 사랑이던 처녀가 중국 북벌군 중의 가장 용맹스러운 비행사가 되었다네, 어떠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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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자랑할 제 여러 사람의 입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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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참 굉장하구려.” 하는 소리가 연달아 난다. 그 중에도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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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친구 하나는 참다 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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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일 메이데이에 우리도 참가하지 않을려나… 이것 참 못 견디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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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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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가서 참가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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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빙그레 웃으며 농담 비슷한 동의를 하고는 허리가 아파서 그만 눕고 말았다. 옆에서는 웅얼거리는 메이데이의 노래도 들린다. 나는 눈을 감고는, 비행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금순의 모양을 그려 보기도 하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옛날 금순이와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일, 아카시아 그늘 밑에 앉아 이야기하고 놀던 일, 금순이가 서간도로 간 뒤에 날이면 날마다 뒷산 봉우리에 올라가 금순이가 떠나가던 길, 그쪽 산 그쪽 하늘을 바라다보고는 눈물지으며 서글퍼하던 일을 모조리 그려 보았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또 그려 보았다. 아까 그려보던 쭈그리고 앉은 그 모양이 또 나타날 제 나는 그만 목메인 소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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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하는 수 없이 인제 아주 어머니를 저버리게 됩니다 ……집에 가서 어머니를 모실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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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주먹은 더 힘있게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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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나는 메이데이 행렬에 참가하여 나가는 꿈을 꾸었다. 그 뒤 잘려 낸 나의 왼쪽 죽지가 합창되어 퇴원하였을 제 때맞추어 그때 마침 메이데이를 시위하는 노동자의 대열이 두어 마장이나 뻗쳐 히비야 공원 앞 큰 거리를 뚫고 나갈 때이다. 나도 거기 참가하였다. 금순의 비행기가 남중국 공중에 높이 떠서 적군을 향하여 매같이 달려 날아가리라고 생각할 제 나와 나의 친구들의 힘있고 무거운 발들은 혁명의 거리를 구르며 걸어 나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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