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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 채옥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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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3.8
조명희
1
아우 채옥에게
 
 
2
내가 여기로 나올 때의 일만 생각하고 네가 그저 고무신 공장에서 무사히 일하는 줄만 알았구나.
 
3
그리다가 그 어느 날인가? 무심코 읽어내리던 신문의 글자가 내 눈을 그만 놀래어 주었다.
 
4
네 이름을 기록한 몇 낱의 작은 글자가 몽둥이가 되어 내 가슴을 두드리었구나 …… 네가 검사국으로 넘어갔다고 …….
 
5
영광스런 희생에 자랑스러운 마음이 남은 오히려 나중의 일이었었다. 먼저는 연약한 네 몸을 생각하고 놀라움에 마음이 떨리었구나.
 
6
그래 네가 동맹 파업에 참가하였다고, 비밀 선전문을 여직공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그 독수리 같은 놈들이 너를 병아리같이 채어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었었겠지. 취조실의 의자 위에 얽매어 놓고 연한 뼈를 두드리며 살을 터치며 독사의 눈찌로, 서캐 훑는 솜씨로 너를 조사하고 다루었겠지?
 
7
생각만 하여도 끔찍한 노릇이다.
 
8
기름을 짜내는 듯한 심문에 시달리어, 모진 매에 부대끼어, 네가 그만 불에 시들은 연한 풀포기같이 쓰러지고 말았겠지?
 
9
이것을 생각하는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구나.
 
10
무지한 순사의 발길이 네 몸을 사정없이 찰 때, 억센 주먹이 네 뺨을 욱일때, 손가락 주리가 네 손마디를 야기울 때, 너는 그만 ‘아이구 어머니!’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옆으로 기혼되어 쓰러지고 말았겠지…….
 
11
이 모양을 생각하는 나의 눈에는 불이 일고 이가 갈리고 주먹이 떨리어 가는구나.
 
 
12
그 뒤에 판결을 받아 이태 동안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철창 안에서 보내리라는 말을 신문에서 또 보았다.
 
13
오늘날의 여감방이라고 예전보다 다를 것 있겠나? 오히려 학대와 고생이 더 심할 것이다.
 
14
푸른 죄수 옷을 입은 네가 감옥 안 어느 공장일는지? 음식 간일는지? 그 어디서 얼어 터진 손을 어루만지며 일하는 꼴이 눈에 보이는 듯하구나.
 
15
밤이면 선들거리는 널장 위에서 때묻고 얇은 이불 속에 떨리는 몸을 옹송그리고 누워 이에게 뜯기어 가며 밤잠을 자겠지?
 
16
이애! 참, 지난 겨울 추위에 너의 발이 얼었겠구나.
 
17
피는 꽃송이 같던 네 얼굴은 콩밥 먹던 끝에 메주색으로 변하였겠구나!
 
18
웃을 때면 아름답게도 우물지던 귀여운 네 뺨에 살이 내리어 우물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겠지…….
 
19
만일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자, 하더라도 너는 조금도 낙심 말고 슬퍼하지도 말아라.
 
20
자본 사회에서 무산 계급의 여자들이 돈에 끌리어 허영에 팔리며, 부잣집 자식들의 꼬임에 빠지어서 그놈들의 입에 씹히다가 배앝아지는 산 고깃덩이가 흔히 되거던 너만은 그것이 되지 않으려는 값으로, 제 부모의 일, 제 형의 일을 생각하고 또는 제 계급의 일을 생각하고 옳은 길을 걸어 오던 값으로 그런 일을 당하였다.
 
21
네 형의 일 ─ 나의 일을 생각해 보렴. 첩으로 팔리어, 창기로 굴러, 학대와 매에 견디다 못하여 몇 번 도망질 끝에, 징역살이, 그제부터야 제 길로 들어서서 노동 여자가 되어, 싸움꾼이 되어 또 다시 감옥으로…….
 
22
옳은 싸움에 나선 사람의 몸에서 도는 피는, 떳떳한 마음은, 부자놈이 주는 고깃점을 씹을 때보다 얼마나 더웁고 깨끗한지 너도 알겠지?
 
23
오늘에 당하는 고생은 뒷날 사업의 힘이 되고, 마음의 꽃이 될 것을 알아라.
 
 
24
내가 너를 만난 지도 벌써 삼 년이나 되었구나. 네가 함흥 감옥으로 면회오던 그 해 가을에 내가 감옥에서 죽게 된 몸이 가출옥인지, 보석인지 되어 나왔다가 이곳으로 급급히 들어오느라고, 너를 만나 보고야 싶었지마는 어찌 서울로 갈 수가 있었으랴? 섭섭한 마음을 안고 그대로 먼 길을 떠났었구나.
 
25
이 곳에 와서 첫째로 모쁘르 신세를 많이 졌다. 치료도 받고 요양소 생활도 하였다. 이와 같이 마음에 떳떳한 호강을 하여 보기는 내 일생에서 처음인가 보다.
 
26
삭은 나무같이 부러질 몸이 지금은 물오른 나무같이 싱싱하여졌구나.
 
27
그리하여 나는 공부할 생각도 있지마는 일하고 싶은 생각이 더 먼저 나서 작년부터 농촌 콜호스 노력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뜨락또르가 더 타고 싶었다. 콜호스나 뜨락또르가 무엇인지 너는 잘 알지 못하리라. 사회주의 국가에서 한데에 묶어 놓은 농민 대중의 힘과 즐거움과 용기가 날뛰는 농촌에, 소보다도 크고 그 몇 십 필보다도 더 힘 센 밭 가는 쇠기계를 가리킴이다. 뜨락또르 강습, 뜨락또르 운전수! 호기스러운 장군 같이 이 기계 위에 올라앉아 넓은 들을 호령하며 갈아 번지어 놓는구나!
 
28
얼마나 보기 좋은 일이냐? 붉은 수건 쓴 여성들이 활개치며, 노래하며, 일하는 모양이! 이들은 다 사회주의 건설의 영웅이란다. 그들의 마음도, 정신도 그 붉은 수건같이 빛나고 즐겁단다!
 
29
이 여성들의 어린 아기들은 우리 조선의 상전 아기보다도 더 잘 자래운다. 탁아소, 아동 공원…… 도시에나 농촌에나 간 곳마다 이것이 있어, 노력 여자의 자식이면 누구나 다 넣어서 그렇게 기를 수 있다.
 
30
여자 형편만도 여기에 이루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다만 여자의 진실한 해방과 행복은 오직 이 나라에서만 있는 줄 알아라. 노력, 공부, 휴식, 그리고 또 높은 칭호까지 무엇이고 다 할 수 있으며 가질 수 있다.
 
 
31
채옥아, 지금은 새 봄이 막 들어오는구나? 건설이 무성한 삼림같이 높고 크게 자라며, 수천만 노력 대중의 힘이 얽히고 설키어 뛰는 이 나라에, 활개치는 봄과 함께 공격의 소리가 더 높아지는구나. 나는 다시금 힘을 가다듬어 뜨락또르의 채를 잡겠다. 피어지는 봄과 함께 이 나라의 힘을 키워 주겠다. 이것이 건설을 위함이고 혁명을 위함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조국인이 나라를 사랑함이고 앞날에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될 조선을 사랑함임을 네나 내나 잘 알고 있지 않느냐?
 
32
채옥아! 이 사이는 밤이 많이 짧아졌다. 벌써 멀리서 우는 닭의 울음 소리가 고요한 밤을 스쳐 들리어 오는구나. 할말은 가없으나 이 다음으로 미루고 그만 붓을 놓겠다. 부디 몸 조심하여 지내다가 출옥되기를 바란다.
 
 
33
멀리서 그리는 네 형 영옥으로부터
 
34
1935.
 
 
35
『선봉』1935. 3월 8일자에서
【원문】아우 채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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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아우 채옥에게 [제목]
 
  조명희(趙明熙) [저자]
 
  1935년 [발표]
 
  서한문(書翰文)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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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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