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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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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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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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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쉰 대루 언문이나 깨쳐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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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한 번씩 오는 늙은 우체부한테서 편지를 받아든 윤 서방은 뒤늦게야 이런 후회를 해본다. 어쩌다 보니 반절도 못 깨우친 채로 환갑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그까짓 언문이 무슨 글값에나 가느냐는 되잖은 생각에 남들이 배울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남들이「토끼전」이니「심청전」이니 하는 이야기책을 보고 구수하니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는 언문글도 아쉬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머리가 커져서 새삼스러이 언문을 배우기가 열쩍은 생각이 들어서 이래저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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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언문글이나마 달갑게 아쉬웠다면 어떻게든지 깨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이 군대에 뽑혀가기 전까지는 국문도 모르는 까막눈으로 별로 큰 지장이 없이 육십 평생을 살아올 수 있었던 윤 서방이기도 했던 것이다. 평생 누구한테 편지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또 별로 편지를 받아본 적도 없이 살아온 육십 평생이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면서부터 맨 진서로만 하던 공문도 국문이 되기도 했지만 윤 서방으로 하여금 언문글이나마 아쉽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들 창수가 해병대에 입대를 한 뒤부터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는 편지를 들고 다니기도 구차스러웠지만 답장까지 써달라자니 정말 번거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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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복녀가 있었을 때는 국민학교를 다녔으니까 쇠발개발 그려서 의사만은 전할 수가 있었다. 그 복녀도 작년에 시집을 보냈고, 둘쨋년 복순이는 그나마 월사금도 대기 어려워서 사학년에 들여앉혔더니 박은 글씨는 띄엄띄엄 뜯어보나 답장 하나 제대로 쓰지를 못한다. 복순이보다는 이제 사학년인 막내놈 창길이가 제법 뜯어도 보고 부르는 대로 받아쓰기도 하나 시오리나 되는 학교길이라 집에 돌아오자면 대개 어둑어둑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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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서방은 할 수 없이 편지를 들고 구장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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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구장은 바깥마당에서 두엄을 내고 있는 일꾼한테 게으르니 마니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고향에서는 면사무소 서사도 했다는 항섭이었다. 1 ‧ 4 후퇴 때 밀려내려와서 취직자리를 구해보려고 일년 남짓 고생만 하다가 우연히 이 동리로 농사품을 팔러 들어온 것이 인연이 되어 박 구장이 잡아앉힌 것이다. 궁둥이가 무거운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무거운 대신에 한번 일어서면 좀처럼 앉지를 않는다. 힘도 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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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그래 자네가 나이 몇 살인가, 열다섯 살인가? 나이 삼십이 넘어 사십을 바라보는 사람이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할 때까지 기두를 게 뭐냔 말야. 매두 먼저 맞는 놈이 장사라구 언제 해두 제가 할 걸 미루적미루적 밀쳐만 놓으면 어쩌잔 작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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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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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섭이는 못 들은 체 두엄을 긁어 바소쿠리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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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구 싶거든 혼자 실컷 떠들어보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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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점심 전에 해치우구 큰 뙈기 보리밭에 거름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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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항섭이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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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저런 쇠귀신 같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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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은 침을 퉤퉤 뱉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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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뭔가? 창수한테서 또 편지가 온 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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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윤 서방한테 아는 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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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놈한테서 왔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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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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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은 윤 서방한테서 편지를 받아 들고 앞뒤를 번득여 보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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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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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뜯더니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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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서방, 수났네나. 수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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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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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가 제대가 된다네나. 삼월 그믐이나 사월 초생께는 발령이 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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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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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럼 양력이지 지금 세상에 음력이겠나. 오늘이 스무날이니까 이제 한 열흘 남았군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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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말밖에 없습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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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하구, 제놈두 튼튼하니 다행이라구 그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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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엔 아무 말두 없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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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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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할 작정인구, 저 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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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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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대해가지군 어떻게 한단 말 한마디두 없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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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이 사람. 그야 나와봐야 할 게지. 지금 뭐 취직이 그리 쉬운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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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루 오겠다구두 안 그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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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저런 멍추가 있는가. 제대한 녀석이 지금 집으루 오지 딴데루 갈라구. 뭐 그런 말까지 편지에 써야 하는가. 거 천치소리 그만 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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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이 그렇게 핀잔을 주는 바람에 윤 서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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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사람은 매사에 그렇게 다심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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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쩍어했지만 실상 무식해서가 아니라 윤 서방으로서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창수놈이 곧장 집으로 들어올 것 같지가 않다. 어디로 새어버리든지, 집으로 곧장 들어온다 해도 짐이나 두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앞을 서는 것이다. 윤 서방은 그런 눈치를 채고 있기 때문이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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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서방 춘배는 쉰여섯 살이나 되도록 자기 아들이 군대에 들어가기까지에는 남의 편지 한 장 받아본 기억도 없고, 또 그의 편지를 받아줄 사람조차도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춘배가 받은 편지라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보내는 운동회나 졸업장 청첩장 따위의 이름도 없는 공문 정도다. 그러니 오십리만 나가서 기차에 오르기만 하면 일곱 시간에 갈 수 있는 서울에도 딱 한 번 가본 일밖에 없었고, 시오리밖에 안 되는 장터에도 호미나 낫을 벼리러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슨 공판이나 검사 같은 것이나 있어야 만리 타국이나 가는 심정으로 나가고는 했다. 장에 간대야 남들처럼 파장머리에 한 잔 얼근히 하고 들어오는 그런 맛도 모른다. 볼일을 보고 나면 쫓기는 사람처럼 휭하니 집으로 돌아와버린다. 오십 평생 남의 땅만 부쳐온 춘배한테 매어달린 가족은 사남매 외에도 병든 모친과 몸져 눕지는 않는다지만 비루 먹은 말처럼 까칠하니 늘 오한이 난다는 아내를 합치면 일곱 식구나 된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단 네댓 마지기라도 제 땅을 마련해 보겠노라 이십 년 동안이나 이를 악물었어야 아귀만이 아플 뿐이었다. 정말 일생에 남과 편지 한번, 장에 남들처럼 갈지자걸음 한 번 걸어보지 못한 채 오직 일만을 하면서 살아온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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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새가 황새 걸음을 쫓아가려다간 가랭이가 찢어지는 법이니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두 말랬다. 그저 사람이란 제 분수에 넘는 일이란 생각부터두 말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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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는 해뜩배뜩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해방이 되던 해 열다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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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갇혀 있던 짐승들처럼 아이들이 날뛰었을 때도 창수만은 나이 요량해서 잠이 자 있었다. 어른들 섬길 줄도 알았고 부모 소중한 줄도 알던 아이다. 그렇건만 춘배는 혹시나 해서 다심하게 굴었다. 남처럼 투철하게 공부를 못 시킬 바에야 농지개혁 덕분에 얻은 닷 마지기와 밭 이틀갈이에 재미를 붙이게 하고 싶었다. 해방이 되자 무슨 회다 단이다 하고 아이들이 몰려다닐 때도 춘배는 창수만은 꼭 잡아두었었다. 국민학교는 나왔으니 앞가림은 된다 했다. 농사에 맘을 붙이자면 먼저 일이 몸에 배야 한다 했다. 그래서 춘배는 논일에나 밭일에나 창수를 앞잡이세우고 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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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두 거 무슨 회엔가 들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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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배는 잊지 않을 만하게 이렇게 아들한테 묻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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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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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지, 거 다 쓸데없는 노릇이니라. 사람은 제가 타고난 복대루 살아야 하는 거야. 그야 누군들 잘살구 잘되구 싶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누구나 다 비단옷 입구 싶구, 서울 같은 데 가서 양복에 자동차 타구 다니구 싶구, 벼슬두 높게 하구 싶지. 허지만, 어디 그게 다 되나?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이란 제 신세를 망치는 거야. 아빈 별 사람이냐? 애비두 널 남들처럼 서울 보내서 대학교까지 보내고 싶지. 그래서 높은 벼슬두 시키구 싶구. 허지만 내 분수에 넘는 일이거든. 부디 딴생각일랑 말구 일을 배워. 농삿일처럼 몸에만 배면 재미나는 일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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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을 매면서도 풀을 깎으면서도 춘배는 아들한테 이렇게 이르고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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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춘배의 말에 단 한 번 거스른 일이 없는 창수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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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마세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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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야지. 사람은 다 제 복 제가 타구났어. 그야 지금은 이런 구석에서 두더쥐처럼 땅이나 파먹구 살지만, 제가 타구난 복이 있으면 언제든지 한번 활개치구 남처럼 살게 되는 거야. 세상 일이란 억지루는 안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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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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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에 입대할 때만 해도 그랬었다. 소집장을 받은 집에서는 대성통곡이 터졌었다. 창수네 집에서도 그랬었다. 할머니가 더했었다. 왜정 땐 아범을 징용으로 잡아가더니만 제 나라를 찾았다더니 인제는 손자놈을 잡아간다고 갖은 포악을 하며 울었었다. 할머니가 우니 자연 어머니가 울고 복순, 복녀, 철모르는 창길이까지 울어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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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은 것은 춘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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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두 다 네가 타구난 팔자의 하나니라. 제가 타구난 팔자는 제가 치러야만 해. 뭐 군대 간다구 다 죽는다던. 암 말두 말구 거거라.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제 맘대루 못하는 거야. 물에 빠져 죽을 팔자면 접시 물에 코를 박구 죽는 거야. 살 팔자면 전쟁터에서두 살아오구, 죽을 팔자면 집에 있다구서 안 죽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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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배는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 그가 평생을 두고 남의 땅마지기나 얻어부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꾸벅꾸벅 일을 하며 살아온 것도 이런 체념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모두가 제 팔자라 했고, 모두가 하늘이 시키는 노릇이니라 했다. 모두가 천지 조화속이라는 것이다.
 
60
온 집안이 울음판이 되자 창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죽으러 가는 것만 같아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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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창수면서도 춘배가 이렇게 순순히 타일렀을 때는 눈물을 쓱 걷고서 웃는 낯으로 소집에 응해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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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창수였다.
 
63
그러나 이렇던 창수가 군대에 들어가면서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멋을 부리려 들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먹는 눈치다. 그러나 이 늙은 농부가 걱정하는 것은 담배도 아니요, 술도 아니었다. 사내자식치고 술담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했다. 그러나 멋을 부리려 드는 것만은 큰일이라 했다. 용돈도 못 된다는 월급으로 부잣집 자식들처럼 멋을 부리자면 아무래도 잘못을 저지를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휴가를 맡아가지고 올 때마다 조금씩 멋들어져가는 창수를 동리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고 추어주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춘배는 기쁘기보다도 겁이 덜컥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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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이 저러다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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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배는 이것이 걱정이었다. 멋을 내게 되면 사람도 버리겠거니와 이런 촌구석에서 두더지처럼 땅이나 파먹고 살려 들지를 않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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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아무래도 좀 희떠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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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이었다. 춘배는 창수가 양담배를 피우더라는 말을 듣고 당장 집으로 달려 왔었다. 아내한테 물어보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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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양담배가 어떤 겐지 아우. 아궁이에 빈갑 버린 게 있으니 가져와 보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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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가져와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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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배는 이렇게 말을 하고서는 자기가 휭하니 부엌으로 뛰어들어갔었다. 정말 틀림없는 양담뱃갑이었다. 춘배는 눈이 홱 돌아갔다. 가슴이 뛰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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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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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한 갑에 이백환씩이라던데? 그래, 이 자식이 어디서 돈이 나서 이런 담밸 사 피울까? 하루 한 갑씩만 핀대두 육천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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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배는 아들의 월급과 이 담뱃값을 비교해보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에는 무서운 광경이 그의 눈앞에 어리었었다. 수갑을 찬 창수의 창백한 얼굴이었다. 춘배는 그런 자기 아들을 본 순간 몸서리가 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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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보냈더니 사람을 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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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76
“아무래두 저 자식이 삼식이 녀석 꼴이 될랴나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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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가 왜 어때서 그래요. 제 재주 좋아서 흥청망청 쓰구서두 쌀을 팔아들인다, 옷감을 필루 들여온다… 삼식이만만 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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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하는 소리였다.
 
79
춘배는 이런 아내가 싫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다소곳한 게 아니라 혼자 아는 체 나설 때마다 핀잔을 주어오건만 언제나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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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래, 삼식이 그 녀석이 제 재간으루 돈을 버는 줄 알아? 종로 어깨패라! 쌈패! 돈푼 있는 사람이면 떼를 지어 몰려가서 잡들이를 해서는 뺏어다 먹는 게 불한당이지 뭐야? 인저 두구봐, 그런 짓이란 한두 번이지 평생 두구 할 것인 줄 아던가?”
 
81
남의 말만을 듣고서 하는 소리만이 아니다. 춘배는 삼식이의 하는 행동에서 그런 결론을 얻은 것이었다. 삼식이도 창수와 함께 국민학교밖에 다니지 않았다. 말은 만기제대를 했다지만 군대에서도 잘못을 저지르고 파면을 당했다는 말도 춘배는 듣고 있는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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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 할 건 아니지만, 배운 것도 없는 아이가 높은 월급자리를 얻었을 리 만무요, 밑천이 없고서야 장사를 한다는 말도 안 되고… 서울 같은 백사지 땅에서 뭘루 희(喜)짜를 빼구 다니며 술에 계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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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두 재간이지 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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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런 게 아니래두 그러거든! 아예 창수 듣는 덴 그런 소리 마우! 될 뻔댁이나 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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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춘배의 예언은 두 달도 못 되어 들어맞았었다. 삼식이는 잠복했던 형사한테 붙들리어간 지 벌써 반년이나 되어도 소식이 없는 것이다. 삼식이네 집 식구들은 죄없는 것이 판명되어 사흘 만에 풀려나와서 취직을 했다지만, 일년 징역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삼식이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춘배는 정말 진저리가 치어지는 것이었다.
 
86
아들이 촌티가 싹 가시고 점점 도시 청년처럼 미끈해가는 것을 바라보며 춘배가 겁을 집어먹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춘배는 덕원의 딸 분남이를 며느릿감으로 작년부터 점을 찍어놓고 있었다. 국민학교도 나왔고 서울에 저의 이모가 있어 몇 달 씩 가서 있으면서도 머리를 고스란히 두고 있을 수 있도록 참한 아이다.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이모가 파마를 해주겠다는 것을 울며불며 싫다고 앙탈을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식당에서 심부름이나 해주고 혼수 장만이나 하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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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깐 치마 저고리 몇 벌과 사람과 바꿀 수 있어요? 혼수감 없다구 데려가는 녀석이 없으면 고마니 벌러지루 늙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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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했다는 분남이었고, 손님이 붐벼서 손이 째일 때면 이모가 곧잘 손님 앞에 심부름을 내어보내는 것이 싫어서 집으로 뛰어내려온다는 분남이 기도 해서, 농가집 며느릿감으로는 안성맞춤이니라고 춘배는 목이 말라 하는 터다.
 
89
창수만 해도 아버지의 이런 꿈을 모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집에 올 때마다 춘배의 아름다운 꿈을 한 조각 한 조각 깨어놓고 가던 것이다. 마지막 다녀간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그때 창수는 저의 어머니한테 제대를 한대도 농촌에 살고 싶은 생각은 없노라고 아주 터놓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이다.
 
90
‘제대 제대 하고 정안술 떠놓고 빌었더니만, 아주 자식을 잃어버리나보다….’
 
91
춘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3

 
 
93
사월 초승이면 제대 발령이 난다던 창수는 보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다. 이 보름 동안에 춘배는 전에 없이 끌탕을 했었다.
 
94
“허, 이 자식이 어디루 샌 거야. 샜어!”
 
95
하고 춘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뇌고 있다.
 
96
“그렇지 않구야 이렇게 온다간다 말두 없을 리 없지!”
 
97
“아이, 즈 아버지두 뭘 그러슈. 아무러면 제댈 하구서 집에두 안 들르겠수. 어디 취직자리가 있어서 간다 하더래두 한번 다녀야 가겠지… 늦더라두 제발 취직자리나 마련됐으면 좋겠구먼서도…”
 
98
춘배의 아낙은 춘배와는 생각이 다르다. 씨값두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농사랍시고 지어보았자 평생 그 꼴이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 바에는 지게품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대처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요새는 길도 고치고 집들도 수리를 하느라고 서울에는 날품팔이꾼이 몹시 짼다는 소리를 듣고는 더욱 그렇게나 해보고 싶은 심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창수가 집에 돌아온 것은 춘배 내외가 거의 단념을 하다시피 하고 있을 무렵이다. 삼월 말에 나리라던 제대 발령이 오월 일일에야 겨우 나서 지금 왔다는 것이다.
 
99
춘배는 그날따라 몹시 심란해서 아침상을 물리고는 능처줌하니 칠방산으로 나무를 갔었다. 자식을 묻고 나기나 한 때처럼 앞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100
“아아니, 즈 아버지, 나무는 웬 철적은 나물 간다구 그러우? 집안에두 얼마든지 일이 벌어졌는데…”
 
101
아내가 짜증을 내다시피 하는 것을,
 
102
“이제부터 바뻐지니까 땔나무라두 마련해 두어야잖아? 솔머리 큰밭은 내버려둬요. 그 밭엔 흰 밥밑콩을 심을 거야. 임자는 못자리나 두어 번 나가보라구.”
 
103
이렇게 이르고는 곧장 산으로 올라갔었다. 말은 뒷산이라지만 낙엽이라도 긁자면 산부리까지에만도 십리 길이나 된다. 해도 마냥 길 때다. 소만에 갈을 꺾느라고 일꾼을 얻던 날 이후로 춘배네 집에서는 어른들은 점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망종까지는 사뭇 점심을 모르고 살아야만 했다. 긴긴 해라 후출해 못견디니까 창길이 놈은 벌써부터 감자 밑을 파다가 저의 어머니한테 볼기짝을 얻어맞고는 한다.
 
104
“네 요녀석! 이제 겨우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파헤치면 어쩌란 말야 익! 다시두 고런 손버르장머리를 할 테냐! 다시두!”
 
105
춘배의 아내가 달구치니까 창길이는 어머니 다리를 얼싸안고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 설설 항복을 하던 것이다. 춘배는 못자리의 피를 뽑아주고 들어오던 길이었다. 춘배도 화가 콱 치밀었다.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달려가서는 아내를 한번 쥐어박았었다. 달려갈 때까지도 춘배는 막내놈의 소행에 분개했다고 생각했었고, 또 그가 박으러 간 것은 창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쥐어박힌 것은 아내였었다. 오죽 배가 고파서 알도 들지 않은 감자 폭을 들쑤셔보았겠느냐, 배고파하는 어린것에 무슨 죄가 있어서 그 불쌍한 것을 때리고 있느냐 ─ 달려가는 동안에 정말 맞아야 할 사람은 창길이가 아니고 그 불쌍한 것을 때리고 있는 어미라고 그 자신도 모르게 심경이 변했던 것 같았다.
 
106
“아니 그래, 배가 고파서 날감자라두 캐어먹잔 놈을 때리면 어쩌자는 거야!”
 
107
춘배의 처도 한번 쥐어박히더니 창길이를 떼밀치고 물러섰으나 자식을 때리는 어미의 마음은 아팠겠지만 자식을 때렸다고 아내를 쥐어박은 춘배의 마음 또한 아팠었다.
 
108
진종일 긁었대야 중짐밖에 안 되는 솔가리였지만, 아침이라고 한술 떴을 뿐인 춘배한테는 역시 무거운 짐이었다. 허리가 접히듯 하며 이마에서 진땀만이 흘러 떨어졌다. 춘배는 사흘 전 창길이란 놈이 어미한테 얻어맞던 생각을 하며 오죽해서야 그런 생각을 했으랴 싶어 가슴이 아파지던 것이다.
 
109
‘모두가 나라에서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 거지. 기왕지사 농지개혁을 할 마련이면 한집 식구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나누어주었어야 할 것이 아닌가.’
 
110
춘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창길이가 내어달으며 형
 
111
이 왔다는 것이다.
 
112
“아버지, 형이 왔어! 과잘 이만큼 사갖구 왔다나!”
 
113
“어 참, 우리 창길이 좋겠구나.”
 
114
창수가 왔다는 말에 춘배는 딴 힘이 버쩍 났다. 굽힌 듯싶던 허리도 쭉 펴지고 오금도 한결 가벼워졌다.
 
115
“어서 가거라. 아버지는 짐을 졌으니까 천천히 갈 게지, 먼저 가서 과자두 먹구 밥도 먹구 해.”
 
116
“괜찮아. 배 안 고파, 엿을 두 개나 먹은걸.”
 
117
이런 이야기를 부자가 주고받으며 동구로 들어서는데 창수가 달려와서 아버지의 지겟다리를 움켜쥔다. 제가 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118
“그만둬라, 인저 다 왔는데.”
 
119
춘배가 이렇게 말려도 창수는 다리를 놓지 않는다.
 
120
“이리 내려놔 주세요. 제가 지고 들어가겠어요. 점심 진지두 안 가지구 가셨다면서 뭣하러 이렇게 늦게까지 계십니까?”
 
121
“한거둠 하러 갔더니 또 어디 그렇더냐, 이왕 여까지 온 김에 좀더 긁어가지구 온다는 게 이렇게 늦었구나 그래 넌 아주 제대가 된 거냐?”
 
122
“네.”
 
123
창수가 춘배 대신 나뭇지게를 지고 일어서며,
 
124
“예정보다두 한 달이나 늦었어요. 하마터면 요번에두 빠질 뻔했었는데 부대장님이 입대 일자를 다시 조사해서 겨우 추가 발령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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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잘됐구나!”
 
126
춘배는 진심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시장기도 없어졌었다. 창수는 아직도 많이 변하지 않았느니라 한 것이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이렇게 기어이 나뭇지게를 뺏어 지지는 않느니라 한 것이다.
 
127
‘내가 공연시리 애를 태웠나보구나…’
 
128
이런 후회도 해본다. 즐거운 후회였다.
 
129
‘그러면 그렇지! 내 자식이 아무려면 그렇게 못되게야 변했을라구.’
 
130
정말 흐뭇했다.
 
131
오래간만에 고기 무국에 쌀밥을 대하니 눈시울이 다 뜨끈해진다. 고기도 창수가 사왔다는 것이다. 집에 들이닥치는 길로 쌀도 구장 집에서 닷 말을 팔아왔다고 한다. 고깃국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순 쌀밥은 금년 정월 이후로 처음이었다.
 
132
춘배는 어린애처럼 정말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육십 평생 음식을 앞에 놓고 눈물을 머금기는 장성한 후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는 가끔 그런 적이 있었다. 몹시 배가 고팠다가 밥을 대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늙은이가 음식을 보고 울다니… 춘배는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133
“어서 잡수시우. 오죽 시장하셨겠수.”
 
134
아내가 수저까지 들어주려는 것을 춘배는 막듯이 하면서,
 
135
“아니야, 그럴 게 아니야. 너 창길아, 빨리 가서 분남 아버지 오시라구 그래라. 그 사람인들 어디서 기름기 뜬 국을 얻어먹겠나. 밥 있나? 없으면 없는 대루 한술씩 말지 뭐. 어서 가 오시라구 그래.”
 
136
“아니, 뭐 그리 장한 국이라구, 한 근 사온 걸 반은 남기구 반만 집어넌 것을. 중 이마빡 씻은 것 같은 걸 가지구 뭘 누굴 오라 가거라. 분남이네두 먹었겠지. 뭐 여태 있을라구…”
 
137
춘배는 아내를 부릅떠보듯 눈을 흘기며,
 
138
“거 그러는 게 아니래두 그래. 많아야 맛인가, 정이지. 어서 가거라. 곧 오시라구 그래.”
 
139
“제가 갔다 오지요.”
 
140
하고 창수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니 춘배는 또 한번 마음이 흐뭇해진다.
 
141
창길이가 가는 것보다는 창수가 가겠다는 것이 더 좋았다.
 
142
“그래라, 그래, 네가 갔다 오렴. 거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두 한잔 있었으면 좋겠구나.”
 
143
정말 인생이 즐거운 모양이다.
 
144
“오다가 덕만네 들러보지요.”
 
145
“그래라, 혹 있을지두 모르지. 그 사람이야 밥보다도 술 한사발에 국이면 그만이지, 참 좋아하거든.”
 
146
“아들이 좋긴 참 좋구려. 오늘은 아주 흥이 나는군.”
 
147
“그럼 자식보다 더 좋은 게 있던가. 우리야 이제 더 사는 것두 저희들 잘 사는 것 보는 재미지. 이놈의 밀기울죽 먹자구 살던가.”
 
148
다행히 막걸리도 있어서 분남 아버지 덕원이와 단란한 저녁식사가 벌어졌다.
 
149
“춘배, 여보게, 나 오늘부터 생일을 고치려네.”
 
150
술에 고깃국에 쌀밥에… 이렇게 먹고 나서 분남 아버지 덕원이가 하는 소리다.
 
151
“그까짓 씨레기국두 제대루 못 얻어먹는 놈의 생일날은 정해두어 무엇에 쓴다던가. 잘 먹는 날이 내 생일이지.”
 
152
“암 그렇구말구.”
 
153
춘배도 한잔 한 기분이었다.
 
154
저녁상을 물리고는 농군들이 둘만 만나면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되는 연사로 화제가 옮아갔다.
 
155
“광에서 인심 난다고 어쨌든 풍년이고 들구 봐야겠는데 금년 연사는 어떻게나 되는지. 대보름달이 붉은 요량해서 가물지는 않겠다구들 그러더면서두 모르지.”
 
156
“농사도 농사지만 추렴세가 줄어야 백성들이 살지.”
 
157
분남 아버지의 말이다.
 
158
“어떤가요, 아저씨, 저의 봄에는 지금 농촌 형편이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159
“말이 아니구말구.”
 
160
“왜정 때하구 비한다면 어떻습니까. 제가 듣기엔 왜정 때보다두 더 살기가 어렵다구들 그러나 보던데요.”
 
161
“왜정 때보다 더하다구?”
 
162
분남 아버지는 펄쩍뛰듯이,
 
163
“거 그렇게 말할 순 없겠지. 그야 왜정 때보다 더 못사는 사람두 있기야 하겠지만 통틀어 말하자면 그래두 왜놈들 때보다야 난 셈이 아닐까 원… 당장 자네네나 우리네나를 두고 본다더라두, 지금 두 끼니를 건너구 끽해야 썩은 보리 아니면 밀기울루 연명을 하는 셈이기는 하지만 그래두 제 땅이랍시구 몇 마지기씩 마련을 하지 않았는가. 왜정 때만두 못한 게 아니라 대체루 하면 우리네 사는 정도가 높아졌으니. 옛날에는 어디 우리네 농촌에서 쌀을 먹었던가. 정월 초하루에 한 번, 추석 명절에나 한 번 쌀밥 구경을 하면 그만이었지 뭔가. 허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우리네처럼 보상금 물랴, 세금 물랴, 온갖 추렴 물랴, 적은 농사에 무는 것이 많아 그렇지, 대체루 사는 정도들이 높아졌으니. 신발 하나만 해두 그렇지, 전에야 누가 꼭 사만 신었는가, 다 삼아 신구 장에 나갈 때라야 고무신이라구 꺼내 신었지. 신발뿐만 아니라 옷감두 그랬느니. 전에야 다들 틈틈이 집안에서 짜 입지 않았나. 허지만 지금이야 실 한 오리까지 돈 주고 사다 쓰거든.”
 
164
“부업들을 통 할 줄 모르잖아요.”
 
165
“그두 있지.”
 
166
“그럼 추렴센 어떤가요, 왜정 때보다두 되레 많습니까?”
 
167
“추렴세가 많다구 할 수 있지. 세금이야 실상 몇 푼 안 되는 셈이니. 군경 원호비쯤은 도리가 없다지만, 뭐다뭐다 참 많으니. 어디 시탄비다, 무슨 접대비다, 무슨 단비다… 접대를 모두 다 주워 치더니 쉰 몇 가지나 되더라네. 왜정 때는 저놈들이 막 볶아칠 때두 열댓 가지밖에는 안 됐거든.”
 
168
“거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아저씨?”
 
169
“다 나라에서 주는 국록만 가지군 살 수가 없으니까 그런 추렴세를 만드는 게지. 정말인지 어쩐지 몰라두 순경 월급이 본시는 육백환이라나 보데? 그러니 육백환 받아가지구 몇 식구 살아내겠는가?”
 
170
“못 내겠다구 버틸 수두 없나요?”
 
171
“버티긴, 예가 어디라구 버티냐.”
 
172
춘배가 하는 소리다.
 
173
“첫째 지금 농촌엔 사람이 없거든. 곡가는 다른 물가에 비해서 아주 헐값이지. 젊은 사람들은 모두 군대다 뭐다 하구 다 빠져나갔으니 농사질 사람은 없지! 요새두 하루 품값이 육백환이란다. 삼시 먹이구서지 그것두. 그런데다가 뭐다뭐다 하는 추렴세를 막아줄 사람이 없구나. 그래두 왜정 땐 어떤 동리에든지 적고 크고간에 지주들이 살고 있잖았더냐? 그 사람네가 작인들 등은 쳐먹으면서도, 그래두 다 글줄이나 배웠구 말주변도 있구 해서 또 무슨 단체서 뭐니뭐니 하는 추렴이 돌아오면 따질 건 따지거든. 안 따지면 저희들두 물어야 하니까. 허지만 지금이야 어디 농촌에 사람이 있나. 전엔 순사가 무섭다지만 지주 앞에 와선 그래두 굽실댔더니라. 면서기두 그렇지. 지주가 면장하구 거래가 있구 하니까 마구 못하거든. 허지만 지금이야 남사당패가 들어와서 딱딱대두 말 한마디 나서서 대꾸할 사람이 없구나. 그대루 무법천지니라.”
 
174
“그렇기에 인저 자네두 아버질 뫼시구 아주 털썩 앉게나.”
 
175
춘배가 하고 싶던 말을 덕원이가 대신 해주고 있었다.
 
176
춘배는 가렵던 자리를 시원스럽게 긁어주기나 한 때처럼 덕원이가 고마웠다.
 
177
“아저씨 말씀 잘 들어라.”
 
178
하고 춘배는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바짝 들러붙었다.
 
179
“너희 같은 청년들이 농촌을 바로잡아 가야 하느니라. 우리야 우물 안 개구리루 뭘 알더냐. 너희는 세상 물정두 겪어보았구, 듣구 본 게며 배운 것두 있구 하니까 농사법두 개량해보구, 지금 세상에 맞는 부업 같은 것두 연구를 하구… 거 오죽이나 좋으냐. 지금 서울 사람들이야 걸핏하면 서울 서울 하지만 그 손바닥만한 서울루만 모두 다 몰려들면 어떻게 한다던? 사람이 생업이 있어야 먹구 살지 않겠니? 아 서울 본바닥 사람들두 직업이 없어서 거리루 빈들대기만 하는데 겨울 미꾸리처럼 서울 좁은 바닥으루만 기어들어가다간 나중엔 다들 굶어죽지!”
 
180
“암, 자네 같은 사람이 농촌을 지켜야지. 군대 한번 갔다 왔으니까 또 갈리두 없구. 자네네가 동리를 지켜줘야 또 다른 젊은 애들이 맘놓구서 군댈 가지? 안 그런가?”
 
181
“네.”
 
182
창수는 열쩍게 이렇게만 대답을 한다. 이 창수의“네”란 대답의 뜻을 몰라서 춘배는 자꾸만 아들의 낯빛을 훔쳐보고만 있었다.
 
 
 

4

 
 
184
그날 밤 창수의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며칠이 되도록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애만 썼다. 어떻게 들으면 고향에 남아서 농사도 짓고, 동리를 위해서 일해보겠다는 말처럼도 들리고, 또 어떻게 들으면 그저 건성 대답을 한 것처럼 보이었다. 집에 돌아온 후의 행동 또한 그렇다. 집에 있을 궁리를 하는 겐지 도망할 채비를 차리는 겐지 통 갈피를 잡을 도리가 없다. 마침 농사철에 접어든지라 콩이다, 동부다, 목화다, 고추에 채마다, 모두 일꾼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고, 못자리도 물이다, 피다, 손이 가야 했고, 감자도 북을 돋우어주어야 했으며, 첫째 둘째는 씨만 뿌려 둔 채라 춘배 혼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는 터고 보니, 전 같으면 제가 앞장을 나서서 서두르기라도 했으련만 통 아랑곳없다는 듯이 겉으로만 비슬비슬 돈다. 밤만 해도 그렇다. 저녁이라도 한술 뚝 뜨고 나가면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놀다 오는지 이슥해서야 돌아왔고, 돌아와서도 금세 자는 것이 아니라 무슨 궁리를 하는 것인지 뒤스럭대기만 한다.
 
185
하도 보기가 답답해서 춘배가,
 
186
“왜 너 요새 무슨 걱정이 있냐?”
 
187
이렇게 넌지시 물어볼라치면,
 
188
“아니요.”
 
189
하고 말꼭지를 딸 뿐이다.
 
190
그래저래 십여 일이 지났다. 춘배는 창수를 이미 잃은 자식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창수는 제 어미를 보고서 옷을 있는 대로 모조리 빨아서 손질을 해달라더라는 것이다. 아내의 그 말에 춘배는 가슴이 덜렁 했다.
 
191
“그래? 글렀구나, 글렀어. 그 자식이 그예 빠져나가려는군. 덕원이 그 사람은 사둔이 돼도 좋다구까지 그러던데…”
 
192
“분남 아버지뿐 아닌가봅니다. 분남이년두 걔한테 마음두 없잖은가 보던데, 허지만 먹구 살 마련이 안 서구는 나갈 눈칩디다.”
 
193
“아, 그래!”
 
194
춘배는 정신이 번쩍 든다. 분남이까지 그런다면 분남이를 시켜서 한번 붙들어보면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195
“그래, 건 어떻게 아우?”
 
196
“즈 아버지한테 이야긴 않았지만, 분남이년이 벌써 여러번째나 창수 주라구 반찬거리를 해왔다우. 그저껜 웬 달걀을 다섯 개나 가지구 왔습디다.”
 
197
“허, 그래!”
 
198
“허지만 조용히 있수. 걔가 통 거들떠보지두 않으려 드는걸.”
 
199
“?”
 
200
춘배는 말을 재촉하듯이 아내를 버언히 쳐다본다.
 
201
“분남이가 달걀을 반 꾸러미 가져왔구나, 아마 반찬 해주라구 가져왔나부다… 이래 봤지 않았겠수? 그랬더니 픽 웃으며 깐에 나이는 먹어서… 그러구 휙 나가버립디다.”
 
202
“으음.”
 
203
춘배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204
바로 그날 밤이다. 춘배가 덕원이네 사랑에서 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서니 밤중에 야단이 났다. 창수가 옷이란 옷은 말끔히 싸가지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섭게 어두운 밤이기도 했지만 춘배의 눈앞은 한층 더 어두웠었다.
 
205
“그래, 언제 알았나?”
 
206
“지금서야 보니까 없어요. 농사지어서 집안 식구도 못 먹는데 덧붙이기로 엎드려 있을 수 있느냐구, 제 입벌이나 한대요.”
 
207
“에이끼, 천치들아!”
 
208
하고 춘배는 홧김에 아내를 한번 쥐어박고 말았다. 아내는 한번 쥐어박히더니 독살이 나서 되레 포악을 했고, 복순이도 깩깩 치울어댄다. 밤중에 계집애년이 왜 울음소리를 내느냐고 이번에는 또 복순이년을 쥐어박고서 보니, 그것은 복순이가 아니고 덕원이의 딸년 분남이었다 ─ 그러다 깨었다. 꿈이었다.
 
209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한참이나 걸렸다. 춘배는 옆자리를 더듬어 보고서야 한숨을‘휴’내쉬었었다. 창수는 분명히 자기 옆에 누워있었던 것이었다. 춘배는 그것이 꿈이요, 거기 누운 것이 분명히 창수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눈물을 걷잡지 못했었다. 좋은지 슬픈지도 몰랐다. 그저 자꾸만 눈물을 쏟아지는 것이었다. 눈물뿐이 아니었다. 춘배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음소리까지 새어나왔던 것이다.
 
210
아버지의 울음소리에 아들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211
“아버지, 어디 편찮으십니까?”
 
212
근심스러이 창수는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손이 닿은 것은 이마가 아니고 눈이었다. 창수는 그제야 아버지가 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213
“아버지, 왜 그러셔요?”
 
214
“너 안 잤더냐?”
 
215
“네.”
 
216
“거 불 좀 켜라.”
 
217
창수는 머리맡에 놓았던 성냥은 더듬어 등잔에 불을 켰다. 조그만 사기등잔인데다가 심지를 어찌나 줄였는지 겨우 형체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불이 켜지자 손등으로 콧물을 닦는 춘배의 모습이 나타났다. 얼마를 훌쩍이더니 부스럭부스럭 대에다 담배를 한 대 담아 한동안이나 생각깊은 낯으로 빨고 있더니 나무 재떨이 가에다 담뱃대 꼬다리를 걸쳐놓는다. 그러고는 슬픈 음성으로,
 
218
“얘야.”
 
219
“네.”
 
220
“너 이렇게 할 게지?”
 
221
“뭡니까, 아버지?”
 
222
“너 지금 내가 운 것을 보았겠구나. 네가 달아난 꿈을 꾸다가 깨었었다.”
 
223
“아버지두, 그래 우셨어요.”
 
224
“그래 운 게 아니다. 네가 달아났다는 소릴 듣구서 느 어머니와 복순이를 들구 패다 나니까 꿈이로구나 . 꿈이 깨면서 널 더듬어보니까 네가 옆에 있지 않으냐! 네 몸에 손이 닿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더구나. 창수야.”
 
225
“네.”
 
226
“너 이 아비의 심정을 알겠느냐?”
 
227
“……”
 
228
창수는 대답이 없다. 그것은 실로 오랜 침묵이었다. 춘배는 꺼진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인다. 이 긴 침묵은 춘배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재판 언도를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과도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의 춘배로 본다면 창수를 내어보내는 것은 죽음이나 진배없었다. 그는 무식은 해도 지금 세상에 국민학교 졸업쯤 해가지고 대처에 가서 제 입 호구를 할 만한 월급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렵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밑천 한 푼 없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도 삼식이 꼴밖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했다. 삼식이 꼴 ─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229
그러나 제가 마음만 잡고 농사를 짓는다면 죽이고 밥이고간에 굶어죽지는 않는다. 보상금도 이태만 더 물면 끝이 날 것이다. 아직은 큰 빚도 없었다. 저만 부지런히 한다면 부자간 한집에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30
“창수야.”
 
231
“……”
 
232
창수는 여전하게 입을 봉하고만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춘배는 알고도 남았다. 아비가 이렇게까지 하니까 차마 나가겠다는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233
‘이 자식이 아빌 배반하는구나…’
 
234
춘배는 이런 절망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무서운 절망의 함정이었다. 춘배는 눈알이 뿌예져 왔다. 또 눈물이 어린 것이다. 춘배는 창자 저 속에서부터 무서운 세력으로 치밀어 올라오는 그 어떤 감정에 휘갑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절망의 비명 ─ 슬픔이었다. 절망한 사람만이 울 수 있는 울음이었었다.
 
235
이 치밀어 올라오는 슬픔을 입술을 깨물고 참는데, 울음이 왁 터졌다. 그러나 그 울음은 춘배 입에서가 아니었다. 창수였다. 창수는,
 
236
“아버지…”
 
237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어댄 것이다.
 
238
“아버지, 용서해주십시오. 아버지 뜻을 못 받든 불효자식입니다!”
 
239
“창수야.”
 
240
춘배는 아들의 등에 손을 얹었다.
 
241
“아버지, 조금두 염려 마세요. 전 무슨 일이 있든지 아버질 뫼시구 농살 짓겠습니다. 저두 많이 생각해봤어요.”
 
242
하고 비로소 창수는 고개를 든다. 얼굴빛도 아까보다도 밝았다. 방안이 한결 환해진 것 같았다.
 
243
“전두 아까까지두 맘을 결정 못하구 있었어요. 그동안 많이 생각두 해봤구 알아두 봤어요. 허지만 아무래두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까짓 농사랍시구 짓는댔자 일년 계량두 안 되는 걸 바라구 있다간 왼 집안이 다 굶어죽기가 십상일 것 같아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울루 가볼까 했었어요. 그랬더니 역시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계량을 하면 그까짓 추렴 돈이야 안 나오겠습니까? 저의 부대서두 농사두 짓구 채마두 부쳤지요. 토마토 모를 부어서 그것두 내다 팔아서 부식비에 보태 쓰구들 했었습니다. 우리 군대들두 그렇게 사는데 고향에 와보니까 그저 뜸방 논만 들여다보구 살거든요. 부업될 것만 잘 궁리를 하면 농사 수입보다두 그게 날 거야요. 부대에 있을 때 여기저기 농촌을 보구두 늘 그런 생각을 해봤었어요.”
 
244
“거 옳은 생각이다.”
 
245
“아버지, 조금두 걱정 마세요.”
 
246
“오냐, 네가 앞에 있으면 내가 무슨 걱정이냐. 덕원 아저씨두 그러시더라. 창수 같은 젊은 사람들 몇이 딱 짜구서 동릴 지켜주면 어디 누가 와서 집적대며 뭘 내라 뭘 사라 하구 강젤 쓰겠느냐구. 정말 네가 보다시피 이 동리엔 사람이 없다. 맨 늙은이 아이들밖에 없어노니까 이 장사치 놈들까지 깔보구서 막 흔들어대는구나. 그러니 농군들이 살 수가 있다더냐.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네 말이 맞다. 하긴 우리야 논밖에 뭘 아느냐.”
 
247
“가마니까지들 사서 쓴다니 말이 돼요. 와서 보니까 누에 치는 집두 또 한 집이 없군요. 아주 여기 사람들한테 정나미가 떨어졌어요. 경주 부대가 있을 때 광명동이란 동릴 가봤어요. 그 동린 무슨 상두 탔다는 동린데, 집집마다 닭이구 토끼구 없는 집이 없어요. 거기다가 누엘 일년에 두 번씩 치는데 고치값이 논 농사 못지않게 나온대요. 따비밭을 일구어서 도라지를 심어서 생계를 하는 집도 세 집이나 있어요. 그런데 여기선 그저 논만 들여다보니…”
 
248
“도라지? 허, 그거 참 잘한 생각이로구나. 그렇지, 왜정 때만 해두 이 동리서두 누엔 많이 쳤더니라. 그런 걸 나물 모두 베어버려서… 그래그래, 네 말이 맞다. 돼지두 그놈이 괜찮은 놈인데 멕이가 있어야지, 촌에서야.”
 
249
“아이, 아버지두. 저의두 부대에서 돼질 먹여봤지만 아무것이나 막 먹어요. 아까시아 잎과 연한 풀로만 먹여도 되고, 사병들 찌꺼기가 모자라서 돼지감자라는 걸 사다 섞어 먹여봤는데 참 잘 먹어요. 값두 굉장히 싸구요. 여기서야 어디 심더래두 보통 감자의 삼 배는 난답니다. 한번 해보겠어요. 머리만 쓰면 될 것 같아요.”
 
250
“오냐, 해봐라. 공연시리 대처 바닥에 가서 비일비일 돌면 사람만 버리느니라. 삼식이 보지! 네가 삼식이 꼴이 된대서야 말이 되느냐. 오냐, 잘 생각했다. 네가 그렇게 동리서 버티구 앉으면 이제 군대서 나오는 애들두 네 본을 뜨거든! 뭐 농촌 사람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내기 싫어하는 것이 죽을까봐서만 그러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어, 곧잘 농살 짓던 애들두 한번 군대에만 갔다가 오면 얼치기가 되는구나. 술이나 먹구 쌈질이나 하구 일은 않으려 들구, 본 데는 있으니까 희떱기는 하구. 그래 그러는 거야. 네가 그렇게 떡 동리에 버티구 있어봐라, 다 따라오지! 그럼 모두들 자진해서 군대를 보내려 들 게니 네 두구 보렴!”
 
251
춘배는 신바람이 났다. 창수를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뒹굴고 울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었다.
 
252
“그래, 그래야지, 내 자식이지! 암 그래야지, 그래야구 말구!”
 
253
춘배는 이렇게 몇 번이나 되풀이를 하며,
 
254
“어디 다 밝았느냐 원…”
 
255
하고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늦은 봄, 새벽의 부유스름한 하늘이 히죽이 웃고 있다.
 
256
“오늘두 날은 참 좋겠다. 어서 넌 좀더 눴거라, 난 재나 좀 치겠다. 고추모가 여간 이쁘지 않더구나. 어서 누워.”
 
257
춘배는 바지 괴춤을 추키면서 휭하니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안방에 대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258
“얘들아, 그만 일어나서 조반들 해라. 복순아, 일나. 오라비도 오늘부턴 밭에 나간단다. 어서들 일나.”
 
 
259
〈1955년〉
【원문】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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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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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1955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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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02일